8/9/일. 구름의 이데올로기
연일 폭염이 계속 되고 있다. 서울은 소나기가 종종 내린다는데 여기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산에 올라오면 벌써 낙엽이 생기고 억새 등 벼과 풀들이 피기 시작하고, 하늘은 매일 구름이 장관을 펼치고 있다. 높디높은 성층권에서 깁을 펼치듯 흐르는 구름이 있는가하면 바로 능선 너머에서 무서운 속도로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이 있고, 먼 산을 어둑하게 덮고 우르릉우르릉 우는 구름도 있다. 구름을 보면 비슷비슷하지만 같은 게 하나도 없고,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도 없는 순간의 쇼를 하듯 변화무쌍하다. 그렇게 파란하늘에 구름이 마구 피고 펴고 흐르고 사라지는 걸 보면 가슴이 어느새 하늘처럼 뻥 뚫린 것 같다.
구름에게는 햇살과 바람밖에 필요한 것이 없는 듯 하다. 구름을 통해 하늘이 얼마나 약동하고 변화가 심한지 비로소 알 수 있다. 하늘의 살은 거친 비질처럼 가지런하게 근육이 뻗는가하면 꽃송이처럼 부드럽고 풍성하기도 하다. 눈부신 구름의 머리를 보면 신생과 열망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한편으로 저 무한의 놀이를 바라보며 나는 부질없음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파란 하늘도 하늘이지만 요즘처럼 꽃 피듯 구름 가득한 하늘을 보면 인간과 무관한 자연의 무진장함에 압도된다. 바닷가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수많은 파도, 그리고 바람은 우리를 한없이 외소하게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칠 줄 모르는 허무가 생을 자극하고 벅차오르게 한다.
하늘에 얼마나 많은 구름이 피고 졌기에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을까? 우리들의 아웅다웅도 우리들의 이데올로기도 구름 역사와 구름의 이데올로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구름은 무한 상승욕으로 피어오르고, 무한 변화욕으로 퍼져나가고, 무한 사랑으로 빛나며, 무한 연민으로 쏟아진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무한히 자유롭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울 것이다. 구름에 자기가 있다면 구름이 아닐 것이다. 구름이 자기에 갇힌다면 어떻게 구름이라고 하겠는가? 때문에 구름은 깊은 계곡도 갈 수 있고 히말라야 같이 높은 곳도 갈 수 있다. 빗물 되어 쏟아져도 아쉽지 않고, 눈송이 되어 내려도 아프지 않다. 아니 그냥 허공에서 태어난 것처럼 도로 허공으로 증발해버려도 아쉽지 않다.
온 하늘을 유희 삼아 꽃피는 구름은 말한다. 지금 이 순간으로 충분하다고. 그렇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구름의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