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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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라는 제목과 만나면서 먼저 이 시를 떠올렸습니다 살면서 무주공산같은 그 세계에
한번쯤 갇혀서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갇혀서 세상 모든 것 잊고 하룻밤, 한 나절이라도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살겠지요
그것은 그냥 환상이니까, 상상이니까, 생존이라는 극한 법칙쯤은 쉽게 무시해버리고
마치 병문안 가면 겉으로는 말 못하더래도 나도 저처럼 한 보름쯤 누워 쉴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했던 상상을 했던 것처럼 실제로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
아주 당연하게 아픈데 없이 사는 사람들이 가는 그런 배부른 상상처럼 한계령을 위한 연가
라는 시를 먼저 떠올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같은 이야기라면 소설은 이빨 앙당문 추위같은 현실이겠지요
폭설은 길을 없애고 없어진 길은 생존을 위협하고 그 속에서 인간애와 생명애가
더 희게 반짝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황석영의 단편 삼포가는 길은 아니더래도 누구나 한번쯤은 가졌을 상상이 공포로 바뀌는
그런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오랫만에 박서영 작가님의 글을 읽습니다 시도 제대로 못 읽을만큼 분주하게 살아오다보니
진즉 제대로 날 잡아 감상해야지 하다가 한 겨울 훌렁보내고 봄도 지지리 지지리 못나게
보내고 초록이 연두를 낼름낼름 잡아먹어가는 그런 늦은 봄날에야 이 맛있는 식단을
포식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소설은 어쩌면 박 작가님의 초기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꼼꼼하신 작가님의 글 흐름과는 달리 군데군데 독자들로 하여금 시간과 풍경의
혼돈을 가져오는 곳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혹시 퇴고 하실 때 도움이 될까 해서 몇 군데 올립니다.
먼저 버스가 멈추는 곳과 싯점이 조금 혼란합니다 운전기사는 차를 포기하고 뉴스를 틀었다가
다시 차는 올라가다가 멈추는 싯점이 나옵니다
차 안에는 처음에는 열명쯤의 사람이 있었는데 용변을 보러가는 남자의 숫자만 열명이 되었습니다.
충분히 감지 하셨겠지만 그래도 좋은 글을 읽은 값은 해야할 것 같아서 몇마디 거들었습니다
꽃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꽃사태가 나려는듯 이 꽃이 지고나면 저 꽃이 피고 이 새가 날아가면 저 새가 날아와서
마음을 흔들고 갑니다
향기는 이 향기 저 향기가 겹해져서 머리만 혼미해지고 그렇게 봄날은 가고 있습니다
폭설은 이미 그쳤더라도 아직도 내리는 꽃눈을 보면서 한 편 맛있게 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인님,4년전에 쓴 수필인데. 누가 그러더군요 소설로 고처 보라고, 그러나 고처 놓고 보니 아니었습니다. 수필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허술함에 무척 후회를 했습니다. 수필만 망쳤구나 싶기도 하고. 사람이 용변보러 나가는 장면은 다녀오고 나서 또 나갔다는 서술인데 그렇게 허술한 묘사가 되었습니
첫댓글 바쁘신중에도 감사하게도 읽으시고 또 서평까지 해주시어 반가움에 (어제 먹은 술때문에 하루종일 고통에 시달리며) 잊은체 기쁨에 아픔도 잊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시인님,4년전에 쓴 수필인데. 누가 그러더군요 소설로 고처 보라고, 그러나 고처 놓고 보니 아니었습니다. 수필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허술함에 무척 후회를 했습니다. 수필만 망쳤구나 싶기도 하고. 사람이 용변보러 나가는 장면은 다녀오고 나서 또 나갔다는 서술인데 그렇게 허술한 묘사가 되었습니
좋은 작품 쓰기란 이렇게 갈수록 첩첩 산중 폭설속에 혜메듯 이리 힘이 듭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지적해 주신 장면은 다시 읽어보며 수정하겠습니다./
허접스런 말이 괜히 혼란을 드리지 않았나 싶습니다.하지만 독자이기 전에 존경하는 작가님의 작품이 더 반짝였으면 하는 진실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럼요 알고 말고요. 제게 누가 있어 애정어린 서평을 써 주시겠는지요. 다만 5월은 바쁜 관계로 손을 못대고 있습니다. 5월이 지나면 퇴고훌륭하게 해 놓겠습니다 그런데 워낙 수필로 쓴것이라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진실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