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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민주주의
코로나19 사회와 정명
2020년은 코로나19의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2차 팬데믹을 겪고 있습니다. 당장 서울 경기는 거리에서조차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습니다. 이제는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합니다. 이렇게 코로나와 함께 살기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에 맞는 사회경제 구조의 재편이 더딘 것도 사실입니다.
세계 각국도 국경이 락다운 되고 일상이 셧다운 되면서, 이주민, 노인,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먼저 희생자가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2차 팬데믹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같은 3세계의 가난한 나라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긴급구제가 시급하지만 아직 세계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코로나19도 자연의 조절현상으로 자연스런 것이라며 19세기 식 진화론을 거론하는 사람이 아직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자신뿐 아니라 사회와 문명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한편 플러스 경제성장이 황금률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에서 세계는 순식간에 –10, -20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맞게 되었습니다. 경제성장이 멈추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일입니다. 자본주의 성장신화가 허구였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경제에서 성장이 절대적인 것도, 정상적인 것도 아닙니다. 자본의 무한한 탐욕을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겠지만 경제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문명의 고질병인 무한한 경제성장 신화가 코로나19로 강제 정지당한 것이야말로 커다란 기회입니다. 우리는 이제 존재형식을 새롭게 발명해야 합니다. 과연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나만 앞으로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뒤를 돌아보며 함께 갈 수 있을까요?
공자의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께 정치를 맡기면 선생님은 무엇을 가장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반드시 이름(名)을 바르게 할 것이다.”
자로가 말했습니다. “현실과 먼 말씀이 아닙니까? 어찌 먼저 이름을 바르게 한다고 하십니까?”
공자가 말했습나다. “자로야, 너는 참 비속하구나.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일에는 입을 다무는 법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불순해지고, 말이 불순해지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절하게 집행되지 못하고, 형벌이 잘 집행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 둘 곳이 없게 된다. 군자가 이름을 바르게 하면 반드시 말이 따르고, 말이 따르면 반드시 행동이 이루어진다. 군자는 말에 있어서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 제13편 자로 3장 『논어』
난세에 공자는 먼저 말이 어지러운 것을 문제 삼습니다. 요즘 ‘국민의 힘’이라고 당명을 바꾼 보수당이 조국과 추미애 장관의 자녀들을 문제 삼으며 청년들에게 공정성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나라고 선동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신문과 텔레비전, SNS의 보수매체들도 일제히 화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8.15 광화문 집회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점점 극단의 선동정치가 세력을 얻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인지편향의 약점 위에 유튜브와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편향을 증폭하고 집중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믿는 것만을 보는 확증편향이 발생합니다. 즉 뭐 눈에는 뭐만 보이게 됩니다. 보수주의자 눈에는 문제인 정부의 정치가 온통 빨갱이 정치며 자유를 억압하다고 말합니다. ‘국민의 힘’도 중요하고 ‘공정’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들 속에 인지부조화와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현상과 이름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혼란할수록 공자의 말처럼 다시 이름을 점검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실체와 부합하는가? 실체 없는 헛것의 말에 끌려 다니지 말고, 실체 있는 말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물론 말이 가진 근원적 한계도 있습니다만 공자의 말처럼 이름과 뜻을 바르게 하고 생각을 바르게 하고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경제 ‘자본주의’와 정치 ‘민주주의’의 이름을 바르게 하고, 그것을 살아가는 ‘나’와 ‘세계’의 이름도 다시 바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과 생각의 정립 위에 장기비상사태의 위기 안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다시 코로나19로부터 긴 우회를 시도하겠습니다.
위 사진은 코로나19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재현한 것입니다. 코로나는 왕관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밖으로 돌출한 부분들이 왕관의 뿔들을 닮은 탓이지요. 화염기둥들로 둘러싸인 태양의 외부도 코로나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저는 그 모습이 꽃가루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저런 돌기를 이용해 꽃가루는 암술머리에 더 쉽게 안착하고 생명을 퍼뜨립니다. 꽃가루를 생각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다시 보니 코로나가 공포스럽게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생명이 가진 공통점, 바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는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어떤 학자는 코로나를 생명체가 아닌 무생물이라고 분류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마치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정보바이러스와 같이 자기를 복제하고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는 생물 무생물을 떠나 존재하는 모든 것과 정보까지도 생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느끼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혀그런 의식 없이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더불어 어떻게 조화롭게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지구상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뿐 아니라 더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생명들이 서로 어우러져 상호의존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도 그런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며 우리는 새롭게 역동적인 조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코로나19와 삶의 풍경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2차 팬데믹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이미 전 세계 확진자가 2천만이 넘어섰고 사망자 또한 80만에 육박합니다. 한국은 8월 15일 사랑제일교회를 중심으로 한 광화문 집회 이후 일찌감치 2차 팬데믹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위치추적을 피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끄고 검사를 거부하고 참가 사실을 숨기고 거짓말하고 도망가고 음모론을 유포하는 상황에서 이만큼 유행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소위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무증상 감염자가 55%가 되고, 캄캄이 확진자들이 많아지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고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기가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전남 강진에 살고 있지만 3월 1차 팬데믹 때는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소위 청정지역이라고 해서 코로나19가 뉴스에서 만날 수 있는 저 먼 곳의 일이었습니다. 개학이 연기되면서 온라인 수업을 한다는 것 외에 일상의 큰 불편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강진까지 밀려오던 미세먼지가 없어지고 공기가 맑아졌습니다. 위축된 상황이었지만 큰 염려는 없었습니다. 아직 집이 없는 가난한 월급쟁이지만 월급쟁이이기 때문에 지역에서 제공하는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 삼국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장마를 겪었고 제 일생에 이렇게 긴 장마는 처음이었습니다. 재작년 여름 겪은 폭염과 더불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심각함이 더 염려스러웠습니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호주 대륙을 불태웠던 호주산불은 기후변화로 이미 예견된 산불이었습니다. 저는 코로나19의 발생과 유행이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은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기후위기와 그 원인인 현대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처방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8.15 광화문 집회 이후 이곳도 확진자가 다녀가면서 이제 어디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처럼 지역을 벗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서울이나 대도시를 방문하는 일은 모험처럼 느껴집니다. 그 만큼 제 마음과 신체도 위축되어 있습니다.
소외된 자들의 우울과 자살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태국 방콕에 사는 지인에게 소포를 보냈는데 한 달이 걸리더군요. 교통 발달로 물리적으로 가까워진 세계가 다시 멀어졌습니다. 국경의 장벽도 높아졌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장기비상사태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인터넷의 접속과 의존은 급속히 심화되었습니다. 학교도 화상수업을 진행하고 학생들에게 아이패드를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정보접근의 평등이라는 차원에서 저는 옛날부터 학생들에게 노트북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아이패드 지급의 상황이 되니 한편 착잡한 마음이 듭니다. 교실에 가면 쉬는 시간이 수업시간보다 더 조용합니다. 학생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가상이 실제를 압도하는 것 같아 위기감을 느낍니다. 저희 반에는 베트남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베트남 노래를 듣습니다. 그러다보니 함께 생활해도 실제 관계 맺을 기회가 적고 각자 외로운 채 서먹합니다. 오히려 학생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물리적 현실계보다 전자정보가 매개하는 게임, 유튜브, SNS 등 스마트폰 속 세계인 거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체가 매체에 종속되고, 현실이 가상에 압도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것이 정보화사회의 풍경인데 코로나19가 이 변화를 더 가속화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저는 오늘 ‘코로나19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발제를 부탁받았지만, 민주주의를 논의하면서 자본주주의와 달라진 주체, 그리고 세계를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민주주의의 위기?
WHO에서 코로나19 1차 팬데믹을 선언했던 3월 11일 당시 유럽과 미국은 하루에도 수만 명 확진자가 발생하는 현실에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유행이 아니라 폭발이었습니다. 이탈리아와 미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생업활동을 정지시키고 도시를 봉쇄하고 국경을 폐쇄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의 선례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 뿐 아니라 곧 스페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각국들이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였습니다. 각종 생필품의 사재기가 일어나고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등장하는가하였으며 정부의 조치를 자유의 침해로 받아들이며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소위 선진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국가라는 서방선진국들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마스크 하나를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논란이 일고 얼마나 많은 사건이 벌어졌습니까? 마스크나 화장지를 서로 사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훔치기도 하고, 사재기를 해서 되팔기 장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공동체가 사라지고 정글이 지배하는 사회같이 보였습니다. 소독제나 마스크 등 기본적인 의료물품의 생산 공장이 없는 선진국들은 당장 의료물품 확보 경쟁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살던 세계화된 사회가 정상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고도의 특수사회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과연 공통의식이라는 것이 있는지, 연대가 사라진 각자도생의 모습이 우리의 실상이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유발 하라리는 3월 20일 파이낸셜타임즈에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라는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인류가 두 가지 선택의 기로 앞에 섰음을 경고하였습니다. 하나는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와 시민적 역량강화의 길이며, 둘은 국수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의 길입니다.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 미국과 유럽을 보며 100년 전 대공황기와 전체주의 시대의 도래를 떠올리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정말 우리는 기로에 선 걸까요?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호모 데우스』에서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세계가 장밋빛 미래라기보다 인간을 초월한 AI를 장악하며 생명공학에 의해 업그레이드 된 소수 엘리트 인류가 그렇지 못한 소위 자동화에 의해 쓸모없어진 그래서 잉여인 다수 인류를 지배하는 계급사회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예견하는 만물인터넷 사회는 데이터화 된 인간의 무력화와 고도로 시스템화된 사회에서 민주주의 또한 낙후되고 불필요한 제도가 될 수밖에 없음을 예견케 합니다.
과연 근대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 것일까요? 아니 민주주의라는 것이 과연 제대로 작동했던 적이 있을까요? 저는 민주적 주체인 시민이라는 말도 낯설어진 시대가 되고 있지 않나 싶습 니다.
한국의 성공
유럽 선진국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 때 한국은 대구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한 1차 확산을 잡으면서 소위 K방역의 원칙을 세계에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세계의 리더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서방 선진국들은 한국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놀라움과 더불어 의구심을 보였습니다. 확진자의 위치추적이나 동선 공개가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자유를 침해하는 반민주적인 방식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그와 같은 방식을 취할 수 없고 한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한국이 자신들과 같은 락다운과 셧다운 없이 코로나를 질서 있게 통제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모델이 유일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한국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 추켜세울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한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잘 발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질병본부를 주축으로 ‘검사-추적-치료’ 시스템을 신속하게 마련하고,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보를 ‘개방-투명-민주’의 방식으로 공유하며 공공의 안전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과 실행 성과를 세계 각국과 공유하는 연대의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자, 한국국민 스스로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한국은 코로나19에 이렇게 빨리 또 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역시 우리가 예외적 순간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가지 차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첫째 경제적 차원입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IT강국입니다.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보급률과 인터넷 속도는 물론 방역의 기본물품부터 진단 키트와 의료 장비까지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신속하게 생활치료센터로 전환할 수 있는 대기업의 연수관 등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경제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갖춰져 있었습니다.
둘째 정치적 차원입니다. 2016년 겨울 광화문 촛불집회를 통해 권위주의적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고 우리는 새로운 민주 정부를 탄생시켰습니다. 세월호도 그렇지만 우리는 벌써 권위주의 정부와 함께 2009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를 겪으며 권위주의 정부의 무능을 실감했습니다. 특히 2015년 메르스 때는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과 화상통화를 하며 ‘살려야한다’는 연출 사진을 찍은 대통령이 두고두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되어 우리는 민주주의 정부의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정보의 수집과 이용이 감지와 통제의 방식이 아닌 공공의 건강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개인정보의 수집과 통제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폭넓게 퍼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셋째 제도적 차원입니다. 위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리는 세 가지 차원의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질병본부를 중심으로 한 지휘체계이며, 둘은 신종플루와 메르스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비한 감염예방법이고, 셋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제도입니다. 이로서 비상사태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국가적으로 갖춰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늘이 도왔다고 하면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넷째 시민의식과 근성이 있습니다. 서양의 시선으로 볼 때 한국인은 집단주의적 성격이 유난히 강해 보입니다. 험난한 근현대사를 겪은 한국인들은 위기 앞에 더욱 단결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뭉쳐야 산다’는 공동체의식이 근성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나라 우리가족 우리학교 라는 말처럼 우리는 나를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정체성으로 표현하는데 익숙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이런 의식이 파워풀한 에너지로 작동했습니다.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시민 개개인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의 시민은 위기 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를 바꾼 것도 시스템을 바꾼 것도 결국 시민의 힘이었습니다. 민주 시민이란 바로 이런 공동체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로 드러나는 존재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 시민의 힘이 살아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국에서는 그 사이 5월 6일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확산의 위기를 겪었으며, 여름철 휴가를 숨죽이며 보낸 뒤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사랑제일교회를 중심으로 한 보수기독교와 극우단체의 광화문 집회 강행 이후 2차 팬데믹의 파고를 넘고 있습니다. 세계적 추세로 보면 100명 200명 단위의 확진자 발생이 새발의 피 같겠지만 한국은 전국적인 확산세에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준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가 세계는 물론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징후를 더욱 목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앞서 말한 유발 하라리의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의 선택상황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 혐오감의 증대입니다. 한국사회는 특히 이분적 대립이 심화된 사회입니다. 이것은 과거 냉전시대부터 강화된 요소입니다. 독재정부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공 프레임으로 반대파를 가두면서 좌파를 빨갱이로 몰아가고, 해방 후 역사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우파는 친일파의 덫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8.15 광화문 집회에서 성조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극적으로 표출한 상징 같은 것입니다. 왜냐면 극우파의 입장에서는 일본보다 같은 민족인 빨갱이가 더 싫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북한에 대한 태도도 미국과 일본과 괘를 같이 하는 겁니다. 한편 우파 정부로부터 용인되고 양산되기까지 한 일베의 혐오언어가 광범위하게 유포된 바탕 위에 여혐에 대한 대항으로서 메갈리아의 미러링으로 남형이 자리 잡으면서 성문제가 이분법적 대립으로 단순화되는 경향도 보이고 있습니다. 선악의 이분법적 대립과 혐오는 담론을 빈곤하게 하고 폭력과 배제를 유포합니다. 코로나19를 우한바이러스라고 불렀던 것이나 중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것도 이런 배경과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2월 16일 31번 대구신천지교회에서 밀집 예배를 본 31번 확진자가 슈퍼전파자가 되면서 신천지교회는 기독교 이단으로 지탄을 받았습니다. 5월 6일 이태원 클럽 발 확진자 확산 때도 젊은이들과 성소자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8월 15일 광화문 집회는 노인과 개신교 교회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광화문 때는 사회적 비난과 지목을 두려워 해 비협조, 은폐, 거짓말, 음모론, 가짜 뉴스가 유포되면서 이태원 클럽 발 확산 때의 협조적 분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방식으로 즉 문재인 정권이 탄압에 대한 저항 운동처럼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억눌린 혐오의 에너지는 선동에 취약하고 폭력화되기 쉬워집니다. 소위 전체주의적 바탕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아니라 증오의 감정이 사회적 행동이 동인이 될 때 민주적 공동체는 파괴되고, 전체주의적 폭력이 지배하게 됩니다.
둘째는 선동입니다. 정보화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선동적인 가짜뉴스에 취약해졌습니다.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대중은 알고리즘에 의한 인지편향이 강화되고 편집증적 확증편향이 강화되고 있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사유가 사라졌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분노합니다. 우리 사회는 과도하게 감정적이고 과도하게 예민합니다. 합리적 이성의 힘이 약한 상태입니다. 저는 이러한 편향이 이미 사회의 광적 질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극우의 음모론이 폭넓게 퍼지면서 정부의 방역 조치를 고의로 무너뜨리려 는 시도를 하며 자유를 빙자한 반정부 시위와 인종차별의 조장 등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보화시대의 암울한 그림자입니다. 미국과 한국에서 벌어지는 가짜뉴스의 기승과 SNS를 통해 유포와 결집, 그리고 조직적 대항은 정보화시대 정보바이러스의 공동체 파괴적 전체주의적 징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셋째가 전체주의입니다.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을 우리는 다시 소환해야 합니다. 당시 사회주의 계열의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이 세계적으로 퍼져있었음에도 국가단위의 민족주의를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세계 국가들은 좌우의 전체주의 홍역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100년 전 스페인 독감 이후의 상황처럼 세계는 전체주의 국가의 도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지구자본주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문명의 멸망과 인수공통전염병의 유행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신석기혁명이라고 하면 농업과 목축의 발달을 이야기합니다. 정착생활을 하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도시 안에 권력의 위계와 분업구조가 만들어집니다. 도시는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으므로 주변의 배후지와 연결하여 필수품과 사치품을 조달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 교통이 발달하게 되지요. 즉 문명에서 도시화와 교통화는 필수입니다. 도시화를 통해 통치와 분업의 효율은 증가하지만 인구밀집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도시로부터 뻗어나간 도로를 통해 교통이 발달해 인적 물적 지배와 이동이 용이해졌지만 전염병의 전파도 쉬워졌습니다. 신석기 혁명은 농업과 더불어 가축 사육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로 인해 인수공통전염병의 발생 빈도가 자연 상태보다 월등히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즉 인간과 가축이 가까이 생활하면서 동물을 숙주로 삼았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아오고 이것이 밀집된 도시와 편리한 교통을 통해 급속도로 전파하게 되고, 급기야 문명 패망의 정기적인 원인이 되곤 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고대 도시국가의 갑작스런 멸망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우르크 같은 도시국가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구의 문명들 간에 지구적 규모의 교역과 이동이 발생하면서 전염병의 전파속도도 단축되게 되었습니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하며 인구의 1/4를 사망케 한 페스트는 아시아를 재패한 몽골군의 유럽 침입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16세기 대항해시대 유럽제국주의 국가들의 배를 타고 천연두, 홍역, 발진푸스, 매독 등 구대륙의 전염병이 중남미 그리고 북미 대륙에 차례로 착륙하게 되어 원주민 문명의 멸망을 초래하였습니다. 원주민 90% 사망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은 무력하게 식민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1918년 전세계를 강타한 스페인독감도 이런 지구화한 세계 제국주의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코로나19도 도시화와 교통화의 조건 위에서 발생한 문명의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보편적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코로나19와 함께 나타나고 있는 심각한 기후변화를 통해 이것이 자본주의 문명의 환경파괴와 생명파괴 때문에 지구생태계가 요동치면서 인수공통전염병이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자본주의가 전지구를 더욱 강도 높게 도시화 시키고 교통화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전 스페인 독감 까지가 배를 통한 전염이었다면 현대는 비행기를 통해 하루 이틀 만에 전 세계로 전파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습니다. 그 파급력으로 인해 위험의 강도는 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코로나19와 지구자본주의의 연관을 분리 불가능하며, 코로나19에 대한 원인 분석을 위해서라도 자본주의문명의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자본주의 문명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구자본주의의 역사
유럽자본주의 문명의 태동는 중세 암흑기를 지나 도시국가들을 중심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를 뒷받침하는 이탈리아 중계무역의 상업자본주의로부터 시작해야 될 것입니다.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아시아의 향신료 무력을 독점하며 발달하였습니다. 이탈리아의 독점을 깨고 아시아무역에 뛰어들고자 스페인 포르투갈이 16세기 대항해시대를 열고 그 길을 따라 네델란드와 영국이 차례대로 바다의 패권을 장악해갔습니다. 그렇게 교역을 통해 대륙 간의 물자이동을 하며 시장과 상품의 가치를 알게 된 유럽의 자본가들은 돈이 될 만한 상품은 무엇이든 거래하기 시작했습니다. 향신료, 사탕수수, 도자기, 비단, 차 등 품목이 다양화되고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직접 플랜테이션 농장을 세우고 강제 노역을 위해 노예무역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지구온난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증기기관이 발명된 뒤 석탄으로 시작되는 화석연료가 에너지의 주원료가 되면서부터입니다. 산업자본주의는 더 많은 이익을 남기고자 한 자본가들의 욕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공장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산업자본주의 상품들이 이제 제국주의 군대와 함께 전 세계를 강타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은 인도를 지배하며 목화솜을 값싸게 들여와 공장에서 면직물을 생산해 오히려 인도에 되팔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산업은 붕괴하고 전 세계가 점차 1세계 산업선진국의 자원 공급지와 소비시장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비자본주의 국가들이 위계 피라미드의 하위 단위로 편입되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주인공은 자본가였습니다. 한편 극단적인 양극화와 노동자의 비참함을 자본주의의 야만성으로 인식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새로운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부상하였습니다. 세계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분할하고 급기야 제국주의 전쟁인 1,2차 세계대전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찾아온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도 역시 상품 생산을 제1 목표로 삼은 연장 산업자본주의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두 세계대전을 겪으며 석유는 석탄을 밀어내고 문명을 추동하는 가정 중요한 원료가 되었습니다. 온통 상품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는 더욱 거대해지고 항공의 발달과 자가용의 보급으로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도시 거주 인구가 농촌 거주 인구를 압도하며 우리는 소비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농촌의 전통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라지고 도시 소비자들이 전후 베이비붐을 타고 태어난 청년문화와 함께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 사이클이 완성된 시기입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주인공들이 책과 신문을 주된 매체로 삼았다면, 이 시대에는 텔레비전이 주된 매체가 되었습니다.
68혁명은 기존의 산업제국주의의 모든 권위를 거부하였습니다. 권위적 자본주의 국가는 물론 사회주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도 더 이상한 신성한 것이 아니며 거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의 국제상황주의자들과 이탈리아의 자율주의자들을 비롯해 페미니즘과 생태주의가 태동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우리가 하는 들뢰즈와 가타리 같은 68세대의 학자들이 등장한 시기입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평화 운동도 절정에 이르렀지만, 도시 소비자들의 욕망은 더욱 개인화하고 자본의 욕망과 닮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앵글로섹슨의 영국과 미국 중심의 금유자본주의가 1980년대부터 대처-레이거니즘으로 등장해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금융시장 자유화를 요구하시 시작했습니다. 마침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이들이 표방한 신자유주의는 세계 유일의 강대국인 미국의 지원 아래 전 세계를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WTO와 IMF는 국가단위의 산업자본주의 시스템을 세계 금융자본주의에 적합하게 구조조정하며 투기자본이 전 세계를 농락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나갔습니다. 영국과 미국이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3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인터넷의 발달은 정보화를 통해 자본의 이동을 초단위로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투기자본의 이동과 영향력이 거세지면서 그 농락에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고 구조조정을 해야 했습니다. 미국도 과도한 금융상품의 남발로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였습니다. 도시의 젊은 소비자들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바로 극한의 생존게임에 몰두하는 게이머로 변신했습니다. IMF가 터지고 이듬해인 1998년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는 소비자를 게임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습니다. 시대의 자아는 자본가에서 노동자로, 노동자에서 소비자로, 소비자에서 게이머로 변하였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근대자본주의까지 200여년을 경과하면서 지구의 온도는 1℃나 오르게 되었습니다. 환경오염과 생태파괴와 기후변화가 만나 지구생태계가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를 맞아 우리는 지금 전자자본주의시대로 돌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게이머이기도 하지만 스마트폰이라는 놀라운 매체 속에 빠져 있습니다. 금융자본주의 이후 사춘기 청소년들은 스마트폰 속 전자정보 속에서 자아를 형성합니다. 흔히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AI에 의한 자동화 사회를 이야기합니다. 사람의 모든 것이 데이터화하고 사물인터넷이 점점 만물인터넷으로 포섭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면서 세계를 재시장화 함으로서 자본은 다시 업그레이드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떨까요?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호모 데우스』에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AI와 연결되고 그것을 통해 신적 힘을 갖게 된 사람들과 자동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쓸모없어져 결국 데이터화되어 버린 대중이 나뉘는 암울한 세계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가 감시사회의 전체주의 사회를 경고하는 맥락도 바로 이런 전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방금 산업자본주의-소비자본주의-금융자본주의-전자자본주의라는 일련의 순서로 지구자본주의의 진화과정을 요약하였습니다.
자본주의는 없었다
하지만 인류의 장구한 역사 속에 자본주의는 없었습니다. 자본축적이라는 이기심은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는 사회적 책임과 절제를 요구받았습니다. 놀부는 악해서 벌 받았다기보다 이기적인 부자였기 때문에 벌 받았습니다.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장자못 전설의 저주도 이기적 부자에 대한 저주였습니다. 상업자본주의의 태동기 자본가의 전형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등장한 『베니스의 상인』도 자본가를 조롱하는 전통 위에 있었습니다. 예수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한 말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유럽에서는 자본가가 이상적 인간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유아처럼 이기적 욕망으로 충만하고 반사회적이고 비정상적인 인간이 시민의 탈을 쓰고 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Capital은 라틴어 Capitalis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머리, 돈’을 뜻하는 Caput에서 온 말입니다. 즉 목축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소가 재산의 상징이었고, 소의 머리를 헤아림으로써 부를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 전통에서 소가 차지하였던 역할과 같습니다.
돈만 밝히는 자본가의 욕망은 이기적인 것이었기에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상업자본주의를 겪으며 도시의 자본가들은 점차 사회의 권력자로 등장하고 국가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종교개혁이 이뤄지는 16세기 중반 칼뱅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도시 브루주아지들의 신학을 수립하였습니다. 예정설과 직업소명설로 불리는 신학은 금욕적으로 열심히 일을 하는 자본가의 성공이 신의 예정에 의한 축복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브루주아지는 원래 성안 즉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뜻하였지만 자본가와 동격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들이 시민인 것이지요.
그 뒤 스페인을 중심으로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유럽은 상업자본주의의 교역을 통해 부를 추축적하고 부에 대한 탐욕으로 점차 산업자본주의의 생산체제를 만들어갑니다. 상품중계에서 상품생산으로 확장한 것이지요. 사탕수수와 면화 등의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어 수출을 하는 식입니다. 그러자니 노동력이 필요하지요. 노골적으로 인간을 상품화하는 노예무역이 활성화된 것도 산업자본주의의 시스템에 필수적이었습니다. 국외의 노예무역과 국내의 인클로저는 자본의 시초축적을 위해 인간을 상품화하는 합법적 국가폭력의 형태를 취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장식 생산이 확립되고 여기에 18세기 증기기관의 발명이 더해져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1776년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자본의 시장 이데올로기를 확립한 사상가입니다. 자본축적을 국력의 수단으로 바라보며 자본과 국가를 결합시킵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시장자유주의의 이상을 발견합니다. 즉 시장에서 벌어지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사익추구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절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책임합니까? 도덕적 고려 없는 인간의 행동을 학문의 이름으로 합리화한 것이지요. 덧붙여 그는 분업에 의한 공장식 생산의 효율성을 이야기하며 시장과 공장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학문의 이름으로 합리화합니다. 물론 스미스는 도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이론은 자본주의의 비도덕성을 합리화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의 영향력에서 인간이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허버트 스펜서에 의해 사회진화론이라는 유사과학이 폭넓게 유포되면서 인간의 폭력적 지배를 합리화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각축 과정에서 발전된 문명국가가 미개한 국가를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였습니다. 유사과학으로서 인종학을 통해 인종차별이 합리화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지금까지도 강대국의 횡포를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만큼 유사과학인 사회진화론의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또한 사회진화론에 의해 추동된 역사는 발전한다는 발전사관을 아직도 신봉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폭력적인 지배가 이렇게 발전사관과 결합해 합리화되곤 하였습니다.
1867년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구조와 모순을 분석하고 역사적 대안을 내놓는 것을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는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역사적 필연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종속된 프롤레타리아트를 다음 시대의 주역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역사발전 법칙이라고요. 하지만 그의 기여가 빛을 발하는 부분은 자본의 시초축적을 분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을 예로 들면서 자본의 시초축적은 국가폭력에 의한 강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단정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든 자율적인 삶을 자청해서 포기하고 노동자가 되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농민들의 생산수단인 토지로부터 그들을 내쫓아야 농민은 값싼 떠돌이 노동자 전락해 인력시장의 상품이 됩니다. 하지만 혁명가인 마르크스조차 유사과학적 발전사관에 사로잡혔다는 것은 애석한 일입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통해 자본가의 자본주의과 경제성장 신화는 합리화되고 지배적 담론이 되었습니다. 비덕적인 이기심이 종교와 사회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것이지요. 이런 정당화 과정이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여전히 없었을 것입니다.
경제의 강탈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바로 경제의 강탈입니다.
공자의 정명처럼 우리는 말의 어원을 탐구하며 왜곡과정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경제를 뜻하는 Economy는 그리스어 oikonomiā에서 온 말입니다. oikos + nomos의 결합으로 이뤄진 말로, oikos는 ‘집, 환경’을 뜻하고 nomos는 ‘관리, 꾸림’을 뜻합니다. 즉 가정관리, 살림살이라는 뜻이지요. 경제와 경영이라는 말은 가정이나 국가에서 항상적 삶의 유지를 위해 환경(집)을 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경제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국가들은 농업을 경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았습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나 홍만선의 『산림경제』 같은 책을 보세요. 그것은 가정과 국가의 살림살이 백과사전입니다. 맹자가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며 경제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이런 살림의 안정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발상지라고 대우받는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민의 자격을 보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장원의 소유자였습니다. 생존의 위협이 없고 안정이 되어야 즉 여유가 있어야 시민적 교양을 닦고 폴리스를 위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근대민주주의가 도시자본가인 부르주아지에서 출발한 것과 전혀 다릅니다. 아이스토텔레스가 생각하기에 시민의 좋은 삶이란 이렇게 사익을 추구하는 사적 삶이 아니라 공동체인 폴리스의 정치에 참여해 공동체에 기여하는 공적 삶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경제는 자본주의 체제이고 이것은 원래의 농생태적 경제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Economy(경제)는 Ecology(생태학)와 결부된 것이었습니다.
위에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자본주의가 유사과학적 학문에 의해 종교와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으면서 경제를 왜곡하고 전용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오직 자본(돈)을 추구하며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모든 비용을 외부화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착취와 파괴입니다. 인간 파괴, 공동체 파괴, 자연 파괴입니다. 사람과 사회가 건강할 리 없지요. 코로나19의 지구적 충격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 소외와 우울증, 자살률 증가는 이제 일상화되었습니다. 공동체의 최소단위인 가족도 해체되어 1인 가족이라는 모순어가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석유문명에서 석유가 생산되고 변형되고 소비되는 과정을 잠깐이라고 그려보세요. 핵에너지를 위해 우라늄을 채굴하고 가공하고 발전하고 원자력 폐기물을 쌓아두고 각종 사건은 은폐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광업, 농업, 어업 등 모든 분야에서 자연은 일방적으로 착취되고 오염되고 파괴되고 있습니다. 도무지 인간과 공동체와 자연에 대한 책임 의식이 없어요.
그 결과 중 하나가 바로 몇 년 사이 극심하게 체험하고 있는 기후변화로 인한 각종 재난입니다. 산업자본주의 이후 지구 온도 1℃가 상승하며 벌어진 일들을 생각해보세요.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초강력의 태풍과 급속한 사막화와 호주와 미국을 불태우는 산불 등은 무수한 예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2018년 ICPP 총회에서는 ‘1.5℃의 한계’와 목표를 설정하고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대 수준으로 낮추지 않으면 기후 재앙은 티핑 포인트를 지나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범위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보고서는 2030~50년 사이 1.5℃의 한계를 돌파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시스템이라는 것이 만들기도 어렵지만 없애기는 더 어려운 법이지요. 코로나19와 같은 충격이 반복될 것으로 예측됩니다만, 지금으로서는 이러한 세계적 충격에 의해서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들이 창출될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인가?
아테네 민주주의
길고긴 우회의 과정을 거쳐 이제야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현대민주주의는 자본주의민주주의 이기 때문에 먼저 자본주의를 살펴본 것입니다. 왜 그런지 잠깐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민주주의 원형은 아테네 민주주의입니다. 우리는 아테네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사실 직접민주주의가 원래 민주주의인 것이고, 현대민주주의는 그로부터 변형된 간접민주주의라고 하는 편이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민주주의의 영어 표현인 Democracy는 Demos(민중) + Kratos(지배)를 뜻하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민중이 통치에 참여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비록 아테네가 시민의 자격을 가부장남성으로 제한했더라도 기원전 4세기면 대략 3만 명이 됩니다. 시민들의 민회에는 시민 모두가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오라고 해도 모두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민회의 좌석이 6천석 정도 됐다고 합니다. 폴리스의 중요 사안을 바로 이 민회에서 결정하고, 20세 이상의 시민은 모두 여기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의 중요 사안이 아닌 경우는 일상적으로 평의회를 통해 결정했습니다. 이 때 사용한 방법이 바로 제비뽑기인 추첨입니다. 투표가 아니라 추첨입니다. 추첨이라는 제도를 통해 아테네 시민들은 권력의 등장과 집중을 방지할 수 있었고, 일반 시민의 정치 참여 기회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평의회는 2년 임기로 500명의 추첨된 시민이 참여합니다. 자격은 30세 이상 시민이며 동일인이 2회 이상 참여는 불가능합니다. 견제와 균형이 돋보입니다. 얼마나 합리적입니까?
시민법정은 30세 이상 시민 중 6000명을 추첨한 뒤 그날 출석자 중 다시 추첨에 의해 재판과 배심원을 정해 이뤄졌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이 바로 이런 방법으로 결정된 것이지요. 이것을 목격한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혐오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슈가 된 재판에는 작심을 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은 참석하지 않았을 테니 표본 추출에 있어서 약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미국의 배심원 제도처럼 일반시민의 판단이 우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질적인 행정업무는 행정관이 보았는데, 약 700명의 행정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격은 30세 이상의 시민 자원자이며 임기는 1년이며 중임은 불가능하였습니다. 600명은 그렇게 추첨을 통해 뽑고, 군사 재정 등 특수한 전문적 기술이 필요한 분야는 100명 정도 선거로 선출되었습니다. 관료와 테크노크라트의 지배를 차단하는 장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민이 적극적으로 Polis의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서 바로 Politics이 나온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시민적 자유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바로 다스리는 것과 다스림을 받는 것을 번갈아 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시민이 가진 자유의 의미지요. 이러한 자율과 자치를 우리는 적극적 자유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자유인으로서 시민의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략으로 벌어진 페르시아전쟁을 다룬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자유인으로서의 시민적 자부심과 우월감이 넘쳐흐릅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침략자들을 노예라고 불렀으며 그 전쟁을 노예와 자유인의 전쟁으로 불렀습니다. 그들은 제국과 맞서 싸워 이긴 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이룩한 자유시민의 힘이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People’s power입니다.
현대민주주의
하지만 현대민주주의는 어떻습니까? 흔히 대의민주주의 혹은 간접민주주의라고 부르지요. 선거민주주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현대민주주의는 투표권의 확대를 중심으로 이해하면 그 특징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현대민주주의는 시민혁명으로 시작됩니다. 17,18세기 영국, 미국, 프랑스의 시민혁명을 통해 전제정치를 반대하고 현대민주주의 국가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하지만 시민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시민혁명은 부르주아지인 유산계급의 혁명이었습니다. 부르주아지가 바로 시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시민이라는 말을 쓰며 은연중 현대적 국민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시민혁명기의 시민은 분명 도시 자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자본이 국가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왕권을 대신해 그들의 국가를 획득해가는 과정이 바로 애초의 시민혁명이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방식이 바로 시민들이 자신들의 투표에 의해 정체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투표는 부르주아지 권력의 정당성과 명분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선거제도에 대해 당시 루소는 이렇게 혹평합니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선거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가 되어버린다.’ 일찍이 선거민주주의 맹점을 간파한 것이지요. 루소가 보기에 선거민주주의란 부르주아지의 과두정치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지요. 선거제도가 민중 민주주의의 수단인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의 과두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19세기 산업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산업자본주의의 생산력은 점점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들도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각성을 하며 정치적 요구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심화에 따라 투표권의 확대는 점점 불가피한 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들의 투표권도 19세기 일련의 사회혁명이라는 치열한 투쟁과정을 통해 확보된 것입니다. 부르주아지의 선거독점에 맞서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선거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생산의 시대에 노동자로 불리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산업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자본가인 부르주아와 상호의존 할 수밖에 없었고,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19세기와 20세기 전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가 되면서 사회는 점차 소비의 시대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1,2차 세계대전을 겪어야 했지만 소비자인 여성의 선거권 요구가 거세게 일기 시작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면서는 소비의 주체로 청소년까지 등장하면서 선거권은 여성과 청소년에게까지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여성의 집요한 참정권 투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투표권의 확대가 역사발전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진화과정에서 자본의 필요와 닿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냉소적인가요? 자본주의의 진화 과정과 투표권의 확대 과정이 일치하는 것이 단지 우연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진화 과정에서 경제와 정치가 재편되는 필연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사실 금권민주주의입니다. 자본가들의 과두체제라고 봐야 할 겁니다. 미국 정부가 군산복합체를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국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르주아지들의 대의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왜곡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기적 자본가의 전형인 트럼프가 대통령인 것을 보면서도 자본주의가 어떻게 경제를 잠식했고, 또 정치를 왜곡했는지 우리는 여전히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시민다운 시민이 존재할까요? 아테네적 시민 대신 자본가적 개인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따라서 자유도 시민의 적극적 자유 대신 외부의 강제를 받지 않는 소극적 자유만이 존재합니다. 사회가 공정한 경쟁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자본가의 경쟁심과 이기심을 내면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상의 민주주의는 존재하지만 현실의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개인민주주의
이즈음에서 저는 현대민주주의를 개인민주주의라고 부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 필요한 시민이란 사적 개인이 아니고 공적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사적 개인의 소극적 자유는 자본가의 자유지 공적 시민의 적극적 자유가 아닙니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은 소시민이 되었고 소시민은 다시 소비자개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개인들의 각축하는 시장은 있을지언정 공동체다운 공동체는 파괴된 지 오래입니다. 국가까지 시장이 지배하고 공공의 영역이 사유화되면서 시민의식이라는 것도 희미해졌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자본주의문명의 지난한 과정과 신자유주의의 노골화로 벌어진 일입니다.
저는 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국의 청소년들이 신자유주의 야만적인 풍토 속에서 게임 속 개인들로 자라났다고 진단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입시경쟁을 내면화한 바탕에 게임을 통한 강화로 우리 사회는 극단적 시장원리가 지배하는 생존경쟁 장소가 되었습니다. 정의 대신 공정을 요구하고, 민중 대신 개인을 앞세웁니다. 연대가 사라지고 소확행이 삶의 가치관이 되었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시도한 계약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반대하는 청년들에게 시민이란 무엇일까요? 조국과 추미애 법무장관의 자녀들을 물고 늘어지며 공정성 시비를 거는 보수언론과 이에 분노하는 대중을 보며 초라해진 개인들을 생각합니다. 공공의대 정책에 대한 의료파업과 의대생 동맹휴학은 또 어떤가요? 의료행위가 사익의 수단이 되어 공공의료 정책에 대한 건강한 논란은 전무한 채 전문가 이익집단의 사회적 횡포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시민 없는 개인사회를 생각하게 하고,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을 고백하게 합니다.
우리는 다시 시민들의 정체성 투쟁을 겪어야 합니다.
아모르 문디
20세기는 욕망의 시대였습니다. 경제는 물론 철학과 생태 담론도 욕망을 중심으로 전개 되었습니다. 그것은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특히 독일의 유태인 학살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통해 합리적 이성의 냉혹성에 대한 반동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본주의 시대 상품광고가 만들어낸 욕망하는 인간의 정체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앞서 현대를 자본주의민주주의로 규정하고, 시민이 사라진 개인민주주의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특히 한나 아렌트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다룬 ‘시민’과 ‘좋은 삶’에 대한 조건을 분석하며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을 저술합니다. 그녀의 평생 고민은 홀로코스트에서 시작됩니다. 그녀는 어떻게 이성적인 인간이 그렇게 잔혹한 인종학살을 감행할 수 있을까 절망합니다. 그것을 ‘악의 절대성’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화해하려 해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그래서 절대적인 악을 인간이 저지를 수 있다는 것에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녀가 아우슈비츠의 학살자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에 기자로 참석해 관찰하고 발표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인류사에 나타난 절대악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악마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보잘 것 없이 평범한 소시민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은 그저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자신을 변명하였습니다. 그는 성실한 소시민이었습니다. 과연 수백만의 학살 채임을 진 그를 어떤 근거로 처벌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아이히만의 ‘생각 없음’ 자체가 유죄라고 말합니다. 인간으로 도덕적 책임에 대해 생각하고 선택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민을 포기했기 때문에 학살의 책임을 지게 되는 겁니다. 이후 아렌트는 시민의 요건을 생각과 행동에서 찾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철저히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입니다. 즉 공공에 대한 책임감을 의식하지 않고,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 버리고, 오로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실천할 뿐입니다. 아렌트는 이렇게 사적 인간들이 사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시민의 기준으로 삼은 장원의 소유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사익을 배제하고 공익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나 아렌트는 사적 개인들이 공적 시민으로서 각성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말한 아모르 문디(세계애)는 바로 공공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결국은 세계에 대한 사랑만이 사적 인간을 스스로 극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한나 아렌트의 생각을 바탕으로 생태민주주의의 대략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생태민주주의를 위하여
민주주의란 민중의 직접 통치를 의미합니다. 대의민주주의는 태생부터 자본주의와 결탁하면서 그 기만적 한계를 드러낸 정치제도입니다. 만약 대의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 불려질 수 있다면 그 기반에 지역적 직접민주주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직접민주주의의 바탕 위에서 민주적 의사 수립과정을 확보한 뒤에라야 대의민주주의라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국민참여재판, 신고리 5,6기 공론화 위원회, 서울시 시민의회 등 추첨에 의한 직접민주주의 형식을 시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아직 미국의 오랜 전통인 배심원 제도와 캐나다의 선거개혁시민총회 같이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직접민주주의의 방식의 실험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시민들의 의식도 바뀌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 단위의 지자체에서는 당장 마음만 먹으면 지역시민의회나 평의회, 행정관을 추첨에 의해 뽑아 운영하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지금 웬만한 군 단위 인구가 고대 아테네 인구수에도 못 미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강진군만 해도 당시 아테네 시민보다 적습니다. 아테네의 실제 인구수는 아마 강진군의 세 배는 되었을 겁니다. 이런 곳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어디서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우리는 교통이라는 놀라운 이동수단과 인터넷이라는 놀라운 정보교환 수단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여건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앞에서 길게 자본주의의 역사가 어떻게 경제와 민주주의를 왜곡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공적 인간과 공적 삶이 소멸하고 사적 인간과 사적 삶이 지배하는 시장이 우리가 살아야할 공동체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동체 없는 개인에서 다시 공동체적 인간으로 즉 시민으로 자각하고 시민의 삶을 개척해 가야 합니다. 자본주의적 개인이 공동체적 시민으로, 공동체적 시민이 세계 시민으로, 세계 시민이 지구생태 시민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공동체적 시민이 각성하고 생각하고 행동(세계 참여)하는 것이 곧 인간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세계에 대한 사랑을 회복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타자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고 그들과의 공통의식을 느끼고 그들을 환대하고 그들과 연대하는 것은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그렇게 주체는 거듭나게 됩니다.
다른 한편 공동체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온통 상품이 주변을 감싸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시장에 던져진 개인의 삶이 풍요로울 수는 있을지언정 행복할 리 없지요. 과잉욕망과 결핍으로는 근원적 고독을 치유할 길이 없습니다. 소외와 고립을 치유하는 길은 자연과 타자와 소통하여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에 의해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공동체를 파괴하며 비용을 외부화 하였던 자본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고 비용을 청구해야 합니다. 인간이 공동체적 존재임을 받아들인다면 자본축척이 구조적으로 공동체에 대한 착취의 결과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형태의 가족과 다른 형태의 국가와 다른 형태의 지구 공동체를 발명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미 지역을 토대로 한 협동조합이나 유기농, 지역순환 경제 등 다양한 자립과 순환의 시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최근 코로나 19를 겪으며 더욱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기본소득의 실현을 통해 지역경제의 복원하는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지난 여름 지원된 재난지원금이 지역에서만 지출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는 지역화폐의 가치와 필요를 체감하였습니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는 맹자의 말처럼 건강한 정치란 결국 지역의 건강한 경제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경제라는 말 자체가 지역 공동체의 자급자족과 순환하는 살림살이를 의미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추첨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구생태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디가 꿈꾼 70만 마을공화국의 인도는 오래된 미래입니다.
너무 거창하고 추상적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2018년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 등교거부와 의사당 시위를 알 것입니다. 툰베리는 2018년 인천에서 열린 IPCC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인용하며 인류가 지구의 온도를 산업화 이전 1,5도 이내로 유지해야 하고, 2030~2050년 사이 도달할 한계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기후위기에 따른 비상행동을 즉각적 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묻습니다. ‘어떻게 감히? 이 모든 것을 알면서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감히!’
저는 그녀의 자각과 활동이 바로 깨어난 지구시민의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100 전쟁의 종식에 결정적 기여를 한 잔 다르크를 알 것입니다. 툰베리에게서 잔 다르크의 보는 것은 제 착각일까요?
마지막으로 예전 저희 집 마당의 돌틈에 핀 겨울 민들레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겨울 민들레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꽃대궁이 짧아요. 낮에 잠깐씩 드는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밤의 냉해를 피해 저렇게 낮게 겨울에도 피곤합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일까요? 저는 이런 것들에 위안을 받습니다. 생명은 어디서나 최선을 다해 경이롭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숭고하고 의연한 것들이 얼마나 평범합니까?
생태학에서는 niche(생태지위)라는 말을 씁니다. 저마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하며 지구의 생태그물이 짜여있습니다.
처음 제가 코로나19의 이미지를 보여드리면서 그것이 꽃가루를 닮았다고 말씀드렸지요? 그것 또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생명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또한 말이 혼란한 세상에서 공자의 정명사상처럼 왜곡된 경제와 민주주의의 뜻을 바로 찾고, 시민의 각성으로 다시 공동체를 회복해 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를 통해 지구자본주의 문명은 생태민주주의 문명으로 대체되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솝우화에 허풍선이 이야기가 나오지요. 한번은 시장에서 한 허풍선이가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답니다. ‘내가 로도스 섬에 있었을 때, 나는 가장 빠르게 뛰었다’고. 그러자 한 사람이 외쳤답니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거기가 아닌 지금 여기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