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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배에 최선을 다하라 하십니다.(요4:19-26)
2012, 8/19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요4:19-26절 말씀으로“예배에 최선을 다하라 하십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이 말씀, 선포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충만하길 원합니다.
요즘도 열대야인지 무덥고 습한 기온 때문에 잠자리가 편치 않습니다.
그래도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하고, 좋은 말만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앞뒤,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십니다.
첫째로, 예배는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20절)
둘째로, 예배드릴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23절)
셋째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 예배입니다.(24절)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백성이 된 이후로 예배는 우리 신앙의 전부라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태어나 출생예배를 시작으로 죽으면 하관예배까지, 죽고 나서도 추도예배와 천국에 가서도 예배는 영원토록 계속됩니다.
왜 예배가 이처럼 우리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요?
예배는 우리하나님 은혜에 감사한 사람이, 바로 오늘, 신령과 진정으로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예배의 의미를 잘 깨닫고 하나님께 열납되는 예배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예배해야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배는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20절)
본문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아멘.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성전을 찾아 성전을 정화하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시다 사마리아수가성의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 우물이란 환경에 맞게 생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말씀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에 대한 여인의 인식이 처음 유대인나그네에서→ 선생으로→선지자로→그리스도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9절의“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에서 ‘보니’(데오로)라는 뜻은 한 번에 아는 것이 아니라 면밀하게 관찰한 결과 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범상치 않는 말씀과 또 자신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주님이 선지자임을 깨닫자 여인은 대화의 주제를 바로 예배로 옮겨갑니다.
20절입니다.“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했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여러분!!! 지금 이 여인이 주님께서 메시야임을 깨닫고 가장 먼저 무엇을 합니까? 바로 예배할 장소를 찾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예배에 가장먼저 관심갖는 것이 정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배란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누가 예배하라 마라 강요하고 사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예배를 사모하고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배고프면 밥을 먹고 목마르면 물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개가 새끼를 많이 낳은데 참 예쁘죠? 그런데 어린새끼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어미를 찾고, 젖을 빨아 먹습니다.
만약 어미 곁으로 오지 않는다면, 그래서 젖을 빨지 못하다면 새끼는 죽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난 사람도 반드시 어미 품으로 찾아가서 젖을 먹어야하는데 어미 품을 찾는 것이 예배이고 젖 먹는 것이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가 무엇입니까? 예배란 구원받은 백성이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 나를 온전히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아들을 죽여서까지 나 같은 죄인을 살리셔서 당신의 자녀 삼으시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죽음이후, 천국까지 책임져 주시는 그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시간, 그 시간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수가성 여인이 가장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갈망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 예배 때문에 목숨을 초개처럼 던졌습니다.
북한을 공산화할 때 믿는 사람들을 색출하기위해 예배를 목숨처럼 여기는 신앙을 이용하여 주일이나 수요일 밤에 모임을 가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포기할 수 없어 기꺼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감수했습니다.
⦁또 어떤 신병은 자대배치를 받고 중대장을 찾아가 자기는 예배드리지 못하면 못산다고 하여 고참들 눈치 안보고 예배드렸다는 사람도 있고⦁또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불이익을 감수하고 사장에게 주일성수를 말하여 오히려 성실함을 인정받아 승진한 사람도 있고,⦁또 어떤 사람은 아는 사람들에게 주일성수를 선포하여 가족행사나 모임들에서 열외될 수 있었답니다.⦁또 어떤 사람은 강원도 철원 근처에서 인천까지 4년 동안 한주도 빠지지 않고 예배에 성공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배의 의미를 알고 있었고 예배를 통해 나를 드린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모세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주신불외 다른 불로 제사하다 예배 무시 죄로 죽임을 당합니다.(레10:2)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예배를 무시하다 죽임을 당합니다. 삼상2:17절에“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나를 돌아보면서 잘못한 것들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시간입니다.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 하나님자녀들은 본능적으로 예배를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에 설레임이 없고, 회개가 없고 헌신이 없고 기쁨이 없다면 그래서 억지로 마지못해 예배한다면 거듭난 사람, 성령의 사람은 아닐 겁니다.
초대교회식구들은 교회모이기를 힘썼고 예배하고 교제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창세기는 예배의 대상을 말씀하고, 출애굽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에게 예배받기위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내용을 말하며, 레위기는 예배드리는 원리와 방법을, 역사서는 예배 잘 드리는 사람에게 복을, 반대의 사람에게 화를 주시는 내용이며, 시가서는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인가를, 선지서는 예배에 실패한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당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온통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 제1문에 ‘인생의 제일의 목적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것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사43:21절 말씀에“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도 곧 예배를 받기 위함이랍니다.
여러분!!! 오늘 교회 나올 때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는지요?
아무런 준비도 감동도 없이 그냥 의무방어전 치루 듯이 나온 건 아니시겠지요?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거나, 상상으로 계속 일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늦게까지 잠을 안자다 부족한수면 보충하러 나온 건 아니시겠죠?
예배에 집중하지 못한 것은 우리영혼을 죽이려는 사단의 작업이고, 이것은 영적인 문제라고 주님이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인터넷 갓피플 닷컴에서 네티즌 2,190명을 대상으로‘예배에 지각하는 이유’를 설문조사를 했는데 최근 6개월간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22.7%, 나머지 77.3%가 한번 이상은 지각했습니다. 지각한 이유에서①일어나기 싫어 딩굴다가 24,6%, ②교회 나오기 위해 준비하다가 20.9%, ③습관적으로 16.6%, ④예배가 기대되지 않아서 2.5%입니다. ·
흥미로운 것은 교회가기 위해 준비 때문에 늦는다는 사람이 2번째로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배하러 오는 걸까요? 예배를 받으러 오는 걸까요?
우리는 구원받은 천국백성이고, 하나님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사마리아여인처럼 예배가 우리 삶의 우선순위기 돼야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예배를 사모하면 복을 받는다. 이런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예배는 복의 문제 이전에 구원받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예배보다 더 바쁜 것도 없습니다. 일주일이 168시간입니다 그중 주일 4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양보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여러분 의지로 불가능한 것까지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맘만 먹으면 지킬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그 어떤 사람, 어떤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 희락교회 여러분모두가 예배에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예배드릴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23절)
본문2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아멘.
오늘 수가성 여인이 주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예배에 관심을 갖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고 싶은데 어디서 예배해야할지 몰라 예배장소에 대해 주님께 질문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그리심산에서 예배해왔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만 예배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어디서 예배해야 맞습니까?’
여러분!!! 어디서 예배해야 맞을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여인이 말한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바벨론포로에서 1차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할 때 일단의 사마리아인들이 성전재건에 참여케 해달라고 찾아왔지만 스룹바벨이 거절합니다.(스4:1-6)
그래서 저들은 별도로 B.C.322년경에 사마리아 그리심산에 성전을 건축했는데 이 때문에 남쪽 유대인들의 미움과 갈등은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그러다 B.C.129년 하스모니안 왕조 힐카누스에 의하여 이 성전이 파괴되어 형체는 사라졌지만 그리심산'에서 예배행위는 이때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Josephus).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여인은 예배장소에 대한 해결책을 주님께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이 엉뚱합니다.“이 산도 말고 예루살렘도 말고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눈에 보이는 예배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나를 통해 예배하는 것이고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봉창 뚫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육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그렇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정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 때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유대인들은 성전예배, 예루살렘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진짜예배라고 생각했고 사마리아인들도 장소는 달라도 성전예배만을 고집했습니다.
이 여인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주님께 질문했지만 주님은 장소개념을 벗어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성전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배의 장소는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이제 예수그리스도 당신으로 장소가 바뀌어야함을 밝히는 것입니다.
요2:19-21절 말씀에“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성전이 뭐하는 곳입니까?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이 성전으로 오셨기 때문에 성전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자마자 하나님계신 지성소를 가로막던 휘장이 찢어진 것에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 통하면 성전이 없고 제사가 없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에게 이 부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 주님과 하나 되어 예배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주님 안에 거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고, 또 주님 안에 거한 사람은 예배를 사모하며 소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예배의 사람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 예배입니다.(24절)
첫 번째 논거에서 누가 예배할 수 있는가를 말씀했고, 두 번째는 어디에서 예배할 것인가 말씀했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배할 때 하나님이 감동하실까요?
본문2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아멘.
하나님이 기뻐하고 감동하는 예배는 영으로 드리고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유대인들의 예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들의 예배는 모양은 갖췄지만 지극히 형식적인 예배로 신령이 빠져버렸습니다.
다시 말해 형식에 치우쳐서 영이신 하나님을 영으로 예배하지 못한 것입니다.
저들은 회칠한 무덤의 예배, 겉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속은 썩어서 냄새나는 예배를 했던 것입니다. 온몸과 마음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어 예배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사마리아사람들도 일찍이 이민족과의 빈번한 교류와 혼혈정책 때문에 선민의식이 사라져 말씀대로 살며, 말씀대로 예배하지 못했습니다.
본문의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원어적 의미가(알레데이아) 성실, 정직으로 예배하는 것과 하나님에 대해 명백하고도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예배하라는 겁니다.
사마리아인들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우상숭배로 봤습니다. 하나님이 정한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기뻐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분별력을 있어야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과 신령으로 예배하는 것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최근에 여러분의 예배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적이 있으신지요?
선포되는 하나님말씀에 소름이 돋아 전율을 느끼며 말씀에 사로잡혀본 적이 있는지요?
또 찬양에 감격하고 은혜에 감사하여 눈물로 죄를 고백해보신적이 있으신지요?
이런 경험이 있었다면 여러분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맡겨준 사명감당하며, 어떤 희생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예배, 그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현실은 그렇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해진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준비도 없이, 사모함도 없이 예배하거나, 거슬리는 말씀에 애써 귀를 막고, 하나님이 자꾸만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강아지 아픈 것에는 눈물 흘리면서 자기 영혼을 위해서는 눈물이 메말라갑니다.
개를 위해서는 수십만원을 써도 하나님 위해서는 단 몇 천원도 아까워합니다.
나를 살리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개만도 못하면 안 되지 않잖습니까?
이런 예배가 바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의 예배였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예배가 형식적인지, 억지인지, 영적교감이 이루어지며 주님과 하나 되는 예배인지 아닌지 다 아십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드리는 이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길 원합니다.
예배는 항상 생방송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다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예배에 구경꾼이 되지 마시고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십시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래야 내 영혼이 삽니다.
여러분!!! 예배를 비롯한 각종의무는 내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입니다.
예배의 문제, 신앙의 문제를 여러분들이 판단하고 결정하려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은 참 많이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그 관계를 지속하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 복된 자리로 나가야합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모든 것이 성공이고, 예배에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입니다.
오늘 주님 말씀대로 예배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만들어 믿음 안에서 행복한 삶 만들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예배에 대하여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예배는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20절)
둘째로, 예배드릴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23절)
셋째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 예배입니다.(24절)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구속의 사랑이 진정한 예배의 본질이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예배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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