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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위스와 독일의 종교개혁 모티브와 신촌 문화 운동
우리는 앞장에서 인문주의가 종교개혁에 미친 영향과 한국교회의 상황을 다소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인문주의가 스위스와 독일의 종교개혁의 태두였던 쯔빙글리와 루터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해석, 적용되고 있음을 보았다. 본 장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종교개혁의 현장에서 주는 모티브를 어떻게 우리 시대와 사회속에 접목할 수 있는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쯔빙글리의 개혁운동은 ‘도시’를 기반으로 하였고 루터의 개혁운동은 ‘대학의 신학부’에서 시작된 것을 모티브로 삼아서 연세대 신학부 출신인 필자가 소위 대학도시인 ‘신촌’에서 진행하고 있는 ‘문화 운동’의 사례를 전파하고자 한다.1)
2-1. 창천교회 문화쉼터와 신촌 문화 만들기
1997년 10월 9일은 한 문화사역자의 일지에 기록되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였다.
1997년 10월 9일 시월의 이야기 : 착한 노래 만들기.
출연 : 연세 음대 피아노 3중주팀. TADOO. 이상협, 박상수, 유명종, MAY. 새하늘 새땅.
...닫는말.
떨어져 있는 낙엽들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습니다.
흙과 더불어 새로운 생명을 키울 것입니다.
결국 이 땅의 좋은 문화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4)
1995년 창천교회에서 시작된 “대학가 앞에 자리잡은 교회로서 젊은이들에 대한 선교사명을 인식하고 준비해온5)” 문화쉼터는 필자가 알기론 신촌에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문화행사 중 가장 장기적으로 꾸준히 이어온 지역문화 운동이다. 문화쉼터는 1993년 10월 7일 창천교회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목요쉼터’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처음의 의욕과 생각과는 달리 그 한계점, 즉 단순히 교회자체에서 기독교 연에인들을 초청하는 형태로 운영하는 데서 오는 준비 부족, 전문성 부족 등을 깨닫게 되었고 이에 1995년 4월 27일부터 ‘목요쉼터’를 문화쉼터로 확대 개편하고 전문기획인(광야기획)에게 기획, 제작, 공연 운영을 맡기게 되었다.6) 한 지역교회가 연간 1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10년 이상 꾸준히, 그것도 직접적인 선교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교회 본당을 개방하여 일반 대중가요, 영화, 세미나, 대담, 뮤지컬, 연극, 공개방송 등을 한 예는 한국 교회에서 찾기 힘들 것이다.
문화쉼터의 존재의미는 여러 각도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교회와 지역사회, 그리고 대학과 청년 문화 활동가, 공연자들을 잇는 ‘다리’로서 그 의미.
둘째, 신촌이라는 대학과 상업지구가 대로를 사이에 두고 엄청난 단절을 형성하는 특수한 지형 속에서 마치 하나의 오아시스와 같은 ‘쉼터’의 기능으로서의 의미.
셋째, 오래된 교회의 전통적 인식의 틀을 깨고 신,구의 조화를 이루고 교회문화에 역동성을 제공하였다는 의미.
넷째, 이를 통해 주목받지 못했던 대학, 청년부의 부흥과 성장을 가져왔다는 의미 등...
문화쉼터는 기독교 문화공연의 일반적 경향에서 좀더 진행하여 다소 무거운 사회적 주제들을 공연의 장으로 끌어들이기도 하고 지역사회, 문화적 운동을 태동시키기도 하는 등 단순한 공연의 장으로서의 기능 이상을 하였다. 즉, 사회, 문화적 내용을 담아내기 위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간 것이다. 문화쉼터 운동은 앞에서 언급한 15세기 ‘인문주의’적인 영향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운동의 흐름이 1997년 연세대학교 기독총학생회의 태동으로 인해 만나게 된 것이 위에서 언급한 “신촌 문화 살리기” 콘서트이다. 1997년 연대 총학생회는 ‘신 대학로를 꿈꾸는 문화촌’ 이라는 주제로 5월 대동제를 기획하고 10월에는 신촌 지역에 있는 기독 문화 단체인 낮은 울타리와 창천교회 문화쉼터 팀과 연대하여 3일에 걸친 ‘신촌 문화 살리기’ 행사를 진행하였다. 기존의 학생 운동과의 차별화 전략을 꾀하면서 시작된 연대 총학의 문화운동은 주관하는 이들의 성향상 기독성을 배제할 수도 총학의 성격상 직접적으로 강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7) 그해 가을의 행사는 지난 1년간 기독 총학의 정체성 확립과 운동의 기술을 익히는 과정 속에서 맺어진 열매와도 같았다. 많은 대중들이 호응하는 행사는 아니었지만 지역사회 속에서 학생단체와 사회단체, 교회가 어우러져서 하나의 행사를 기획, 주관하는 일은 작지만 유의미한 것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필자는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문화만들기’라는 팀을 결성하여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낮은울타리, 창천교회 문화쉼터팀과 함께 4년간 매년 가을에 ‘신촌 문화 만들기’8) 행사를 3일에 걸쳐 진행하였다.
이 행사는 대학생 팀과 지역교회 문화사역팀, 그리고 지역사회 단체9)가 함께 어우러져서 다소 간접적인 형태로 신촌이라는 지역에서 문화 행사를 하였다는 데에 그 의미를 가진다. 대부분 문화행사가 대학이면 대학내에서, 기업이면 기업자체적으로, 교회면 교회 내에서만 행사를 진행하거나 주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와같이 다양한 주체가 연대할 수 있는 장이 신촌에서 마련된 것 자체가 의미를 지닌 것이다.
하지만 문화쉼터에서 제시되었던 보다 내용성 있는 문화적 콘텐츠를 담아내기엔 다소 한계성을 보이면서 4년만에 ‘신촌 문화만들기’라는 이름으로서의 행사는 종료된다.
2-2 아름다운 신촌 한조각 나눔 축제10)
2001년이 되어 세 팀으로 연합하였던 연합의 구도는 낮은울타리의 이탈로 인해 두 팀으로 재편되었고 학생모임이었던 ‘문화만들기’는 1999년도에 ‘새벽이슬’이라는 신생 학생 선교단체와 연합하면서 ‘새벽이슬’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문화쉼터’ 팀과 연합하여 행사를 계승하게 되었다. 문화만들기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논의를 거듭한 결과 문화행사에 ‘내용’을 담기 위하여 명칭을 ‘한조각 나눔 축제’로 개편하고 모토는 ‘아름다운 신촌’으로 삼았다.
자발적이고 부담없이 함께 나누는 행위를 통해 신촌이 고향과 같은 푸근한 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지역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한조각 나눔 축제는 전년도 4회 신촌 문화만들기 행사를 주관했던 ‘문화쉼터’ 팀과 ‘새벽이슬’ 팀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낮은울타리는 기업사정으로 인해 단순 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신촌 민들레 영토, 꿈이 있는 뜰, Promise Keepers, 토탈 웨딩 로뎀나무, 홍대 거리미술전 기획단, 신촌클럽 등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구청과 지역 주민, 기업등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동참하는 등 참여 단체와 행사 내용에 있어서 확장되어 진행하게 되었다.
이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데 어떠한 동기가 작용했는지 공동위원장이었던 김재욱 당시
창천교회 사무국장의 글을 인용해 본다.
“지금 신촌에 조금 무모해 보이는 일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씩 나누면 많은 사람들이 풍성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사람들을 모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아직 무엇을 나눈것도 아닌데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사람들 마음속에 무언가 따뜻한 기운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 기운은 가슴 벅찬 무엇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사람들이 참 외롭게 살아왔었구나하는 생각과 이어서 참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이 모임을 ‘아름다운 신촌 한조각 나눔축제’라 새롭게 이름짓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도 어떤 분들은 무슨 목적이 있냐고 하시면서 슬쩍 미심쩍은 표정을 짓습니다. 우리가 ‘그냥 신촌을 좋아하고 참 낳은 사람들이 사는 이 신촌이 더 좋은 곳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서 하는 건데요’라고 말하면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더 가늘어지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는 이렇게 다시 묻고 싶어집니다. ‘돈을 벌자는 것도 이름을 내자는 것도 아니면 이런 일은 할 수 없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 일은 돈을 벌자는 게 아닙니다. 이름을 내자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의 것을 내어놓아야
한조각나눔축제현장,(신촌창천공원. 2005년 10월)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 나누어주십시오. 그것이 공간이든, 물질이든, 음식이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거기에 마음을 담아 나누면 그것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서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고 희망이 되고 기쁨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꿈꾸어보지 않겠습니까?“11)
우리는 신촌이라는 상업성이 만연한 지역에서 어떤 ‘내용’을 담아낼까 적잖은 고민을 하였다. 창천교회 문화쉼터 팀도 이미 5년동안 신촌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본인도 1997년 이후 4년간 신촌지역에서 축제를 기획, 진행하면서 신촌지역의 정서와 문화적 상황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과정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신촌이 대학가이자 대학문화의 장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떨쳐버려야만 했다. 신촌에서는 더 이상 생산적인 문화가 발생하지 않는 곳이었고 대학은 대학대로, 지역사회는 지역사회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각자의 영역에서 존재할 뿐 서로 소통하거나 어떤 생산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 아니었다. 신촌은 생존과 현상 유지를 위한 몸부림의 장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나눔’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신촌은 8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지로서의 명성을 날렸으며 90년대 이후 상업적 소비문화로서 비난의 대상이었다. 대학의 문화적 환경이 변화하여 더 이상의 학생운동의 이슈가 지역사회로 흘러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신촌 지역 상인들은 아직도 80년대의 학생운동과 90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전략에서 나온 상업성에 대한 혹독한 비판으로 인해 마음이 닫혀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상인들의 연세대에 대한 애정은 일부에서 연세대를 위한 발전 장학금을 지원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었다. 상권 활성화와 관계없이 특급 상권이라는 명목속에서 임대료는 나날이 치솟고 그 속에서 신촌의 문화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그룹들은 점점 홍대로 또는 대학로로 거쳐를 옮겨갔다. 끝으로 대학은 더 이상 지역사회와의 교류에 대한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한채 국제화 시대의 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리는 스쳐지나는 수많은 각기 다른 목적과 방향을 가진 시민들로 채워지고 있지만 정작 그 지역속에는 돈이 없으면 통로 이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공간들로 채워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간속에 단 3일이지만 의미있는 내용을 채우고 의미없이 오가는 이들이 잠시 멈춰서서 신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또한 21세기 자본이라는 거대한 문화속에서 자본의 논리에서 다소 벗어난 행사들을 통해 삶의 본질적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코드인 ‘나눔’을 신촌의 문화적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어찌보면 매우 상투적이고 일상적인 언어이지만 개혁은 원래 없던 것에서 새로운 것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고 있는 일상이나 과거의 재발견속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들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하여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서대문구청으로부터 문화예산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지원 속에서도 일년에 한번 하는 문화적 행사는 그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그 가운데 한조각 나눔축제의 취지에 공감하는 지역 복지 단체의 실무자들과 연대가 형성되면서 행사 프로그램의 일부가 상설화 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세브란스 사회복지팀, 이대 복지관, 아름다운 가게 내 움직이는 가게, 신촌 아름다운 책방 등이 연결되면서 초기의 기독교 단체 중심의 연대에서 보다 지역사회와 나눔이 중심이 되는 복지단체들과의 연대로 확장되게 되었다. 그중 이대 복지관에서 지역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한 ‘아름다운 밥상’ 행사를 신촌 지역에 있는 가게들과 연결하여 월 1회씩 10여 가정에게 무료 외식 봉사 프로그램을 실시하였고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다.
또한 신촌 지역 문화의 소통과 생산의 구조가 단절된 상황 속에서 단순한 공연 프로그램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인식하여 행사 전에 ‘신촌 지역 문화 포럼’을 실시하여 지역 상인들과 학생들, 문화활동가들이 함께 신촌의 문화에 대하여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도 하였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문주의는 고전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그 목적은 고전 그 자체에 있기 보다도 그 시대의 사회, 문화적 현상의 변혁에 있었다. 우리가 살고 인식하는 지역의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하여는 지역사회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의지와 시도가 필요하다. 신촌 문화만들기에서 시작된 신촌 지역 문화 축제는 단순한 이벤트가 시행되는 ‘축제’에서 지역사회 변혁 프로그램으로 전환되게 되었고 그 결과 의미있는 실험이 계속 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2-3 서대문 - 신촌 어울림 축제12)
2007년 1월 서대문구청에서 의미있는 제안이 필자에게 들어왔다. 그간 신촌 일대 지역 축제가 총5개가 매년 시행되었는데 한조각 나눔축제와 같이 의미를 담아내는 행사이기 보다 일회성 동네 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를 통합하여 지역축제의 본래적 의미를 회복하고 진정한 주민 자치의 장으로 만들어 보기 위한 통합논의에 참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한조각 나눔축제의 위원장 자격으로 통합논의에 참여하였다.
서대문구 관내 지역주민 및 상인들이 중심이 된 축제는 총 4개로서 신촌 권역에는 창천동13) 주민이 중심이 된 ‘새터 문화축제’, 대신동14) 주민 축제, 북아현동 웨딩타운 축제, 가구거리 축제가 있었다. 모두 지역 주민과 상인들이 중심이 된 축제였다. 한조각 나눔축제는 유일하게 지역 주민들이 아닌 연대학생들, 지역 교회 문화단체, 지역 활동가, 복지단체 등으로 구성된 축제였기 때문에 어찌보면 어울리지 않는 구성이었다. 하지만 서대문구 문화과 실무자들은 한조각 나눔축제의 취지와 열매들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는 터라 지역축제의 통합에 지역 이익단체들이 아닌 우리에게도 기회를 열어준 것이다.
처음부터 다소 이질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가운데 각 지역의 주도권 경쟁과 상이한 이해관계로 인해 통합의 논의는 자꾸 공전되었고 축제의 통합된 명칭을 정하는데만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치열한 기싸움이 펼쳐졌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필자가 통합축제 5인 위원장중에서 가장 젊고 실질적인 문화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원인이 되어 총무를 맡게 되었고 한조각 나눔축제를 함께 만들어온 사람들이 보다 넓은 지역에서 많은 예산으로 행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전보다 보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과제와 아직도 넘어야할 많은 난관이 있지만 이렇게 통합 축제를 통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되어지고 함께 우리가 지향하는 지역 문화운동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형성된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섭리라고 생각한다.
신촌 지역운동을 시작한지 10여년 만에 지역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지역 주민들과의 만남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이 열리게 된 것은 신촌 지역 문화운동의 2기가 시작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의 신분이 목사인데 목사가 지역 문화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는 것에 많은 지역 주민들이 의아해 하면서도 현재까지는 신뢰를 보내고 있다. 교회가 그동안 지역사회 속에서 적극적인 조화를 이루기보다 어느 정도 선을 유지하면서 선교적인 부담을 지역민들에게 은근히 주고 있는 상황 속에서 또 다른 모습의 기독교를 보게 된 것이다.
필자가 지역 사회 여론을 주도하는 주민들의 면면을 보니 비기독교인들이 더 많았다. 주민자치위원장, 상인회장, 번영회장 등 지역사회의 일에 생업을 재쳐두고 발벗고 나서는 분들이 대부분 지역교회와의 관계가 소원하거나 크고 작은 상처를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기독교 선교와 기독교 대학의 요람인 신촌지역에는 수많은 선교단체의 지역본부와 500명이상의 중대형 교회들이 각 동마다 있다. 또한 동마다 ‘교동협의회’등이 구성되어 있어 지역 주민들과 목회자들의 만남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교회 증축, 건축시 야기되는 민원의 문제, 주자창 사용 문제 등 동네 현안에서 교회관련 문제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창천교회의 문화쉼터 사례는 신촌 지역교회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대다수의 지역교회는 교회 행사 외에 교회공간을 개방하는 것조차 인색한 실정이다. 물론 대형 주민행사나 지역사회 주민들을 위한 식사 봉사 등 몇몇 복지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도 하지만 일반 복지는 동사무소와 지역 복지단체에서 많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입지가 그리 큰 것은 아니다.
교회가 자기만의 성을 쌓고 있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더 이상 복음의 확산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교회의 지역사회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구성원들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하여 보다 열린 자세에서 지역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실로 중대형 교회는 이미 지역기반을 벗어난 상황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성도들은 교회와 그 지역과의 상관관계를 많이 의식하지는 않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로 지적된다. 그리고 지역교회 내에 지역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주로 교회 부교역자들이 지역 행사나 일에 실무선에서 참여하게 되는데 대부분 지역연고가 없는데다가 임기도 짧아서 지역사회를 알아가는 데에 한계가 있다. 교회에서는 지역사회 담당자를 지역출신 장로나 집사 중에서 임명하고 적극적으로 지역 사회와 소통하면서 피상적인 지역사회 공헌에서 보다 적극적인 지역 사회 참여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번 어울림 축제를 기획하면서 지역 사회의 입장을 어느 정도, 때론 보다 많이 수용하고 지역안배에 신경을 쓰며 진행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보다 확장된 지역 운동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향후 신촌 지역에서 문화가 생산되기 위한 몇 가지 기반으로 ‘신촌 문화 네트워크’를 조성하고 지역 문화와 주민들 돕기 위한 ‘서대문 사랑 나눔 펀드(가칭)’를 준비하고 있다. 각자 개별 단체 프로그램을 넘어서 지역 사회를 위한 연대 프로그램 개발과 지역의 문화생산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고 그 속에서 복음적 신앙을 가진 이들이 활동하고 신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데 기여한다면 신촌은 말 그대로 ‘새로운 동네’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본 장에서 지역사회의 문화변혁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교회 내에서, 그리고 연세대 학생들과 대학 내의 복지단체들이 대학현장을 넘어 지역사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싶다. 우리가 모티브로 삼은 쯔빙글리의 지역 속에서의 개혁운동과 루터의 대학 내의 개혁운동이 신촌이라는 지역 속에서 유사하면서도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신촌은 전통적인 대학 도시로서의 기능은 많이 상실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대학과 지역사회의 상업적이고 세속적 문화가 공존하는 장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지역에 있는 교회의 문화프로그램과 대학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대학생, 활동가 등이 함께 지역 주민, 상인들과 어울리게 되는 장은 21세기 한국교회의 문화변혁의 새로운 대안들을 제시하는 한 예로서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겠다.
2-4 부흥을 여는 도구로서의 지역 문화운동
필자는 앞에서 부흥의 도구로서의 문화를 언급하면서 루터의 인문주의적 방법론의 사용을 언급하였다. 인문주의적 방법론은 루터에게 말씀과 기독교 고전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고 그것이 루터 자신에게 풀 수 없었던 ‘속죄와 은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쯔빙글리는 당시 사회문화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인문주의적인 방법과 사고의 틀을 사용하였다. 이와같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병폐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필자는 1장에서 ‘인문주의’의 부활을 언급하였다. 인문주의는 오늘날 ‘인문,사회,문화인류, 미학’적인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보다 단순화시키면 교회가 사회, 문화적 현상에 대하여 말씀을 근거로 하여 해석하고 그 해법이나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15)
앞에서 언급한 창천교회의 문화쉼터 사례는 지역교회의 대학, 청년부의 부흥으로 이어졌다고 하였다. 실재로 1995~1999년까지 창천교회에 등록한 신입교인 수의 평균은 매년 250명 가량인데 그중 약 70%가 대학, 청년이었다.16) 이와같이 교회가 특별한 조건을 내걸지 않고 지역 사회문화를 위한 행사를 지속할 때 이것이 오히려 교회의 진취성과 젊은 이미지로 부각되는 반사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물론 교회에서 이를 기획할 때 ‘선교’적 관점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방법론’에 있어서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방법론을 채택함으로서 시대를 앞서가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지역축제는 즐거운 행사이다. 서대문-신촌 어울림 축제는 단지 일회성 이벤트 중심의 축제를 지양하고 다양한 복지, 문화 프로그램을 접목시켜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행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상업 문화를 중심에 내세우기보다 지역 사회가 그 지역을 섬기는 ‘지역의 사회공헌’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분열되고 나누어진 행사를 통합하고 각 계층과 단체가 연대할 수 있는 연합과 연대의 장을 제공함으로서 신촌이라는 공간이 큰 ‘어울림’과 ‘나눔’의 장으로 변환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럴 때 지역사회는 건강한 문화 발전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됨으로 인하여 젊은 문화의 거리와 상권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의 진리이다. 우리가 말씀을 우리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한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 갱신되고 부흥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로마서 15장 말씀과 같이 이웃을 기쁘게 하고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행사를 기획, 진행하고 이를 장기적으로 지속한다면 지역사회에서 분명한 반응이 오게 될 것이다. 필자는 본장에서 창천교회라는 지역교회의 문화사역의 방법과 필자와 함께 한 이들이 신촌에서 실험하고 있는 지역문화 운동의 방법을 제안하였다. 각 교회와 그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에서 이러한 문화적 ‘툴’을 활용한다면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다. 즉, 각 지역과 교회가 처한 상황을 잘 분석하고 이에 맞는 지역문화 운동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는 없겠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면 분명히 지역사회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고 선한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