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타반의 말씀 사랑♡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우리의 일치하고픈 주님의 마음이 읽혀집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백성에게 내어줄 빵이 곧 당신 살이라는 말씀에 유다인들은 충격을 받아 서로 논쟁을 벌입니다. 육의 귀와 육의 마음으로는 예수님 말씀에 담긴 참 뜻을 좀처럼 알아듣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머무름"
먹는 것이 그 사람을 이룹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이 우리의 뼈와 살을 이룰 뿐만 아니라 정서와 인성에까지 영향을 미치지요. 예수님은 당신을 먹는 행위를 머무름으로 연결하십니다.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이는 존재 안에 스며든 그 살과 피로 인해 그분의 일부가 되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물러 그와 하나가 되어 주십니다. 머무름이 일치라는 궁극의 차원으로 심화됩니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7)
당신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표현은 내 존재와 삶의 의미가 곧 당신이라는 진심의 고백이지요. '말미암음'은 참으로 강한 결속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근원이시고 원동력이시듯,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모시는 이는 철저히 예수님으로 인해 존재하고 사랑하며 움직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존재와 행위의 이유가 되시는 겁니다.
"머무름과 말미암음"으로 우리는 온전히 주님과 하나가 됩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머무르심으로 우리 또한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아가지요. 천상 예루살렘의 혼인 잔치에 이르기까지 불완전하나마 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일치의 은총입니다.
제1독서에서 예수님은 사울에게 이 일치의 관계로 당신을 계시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4)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5)
새로운 길에 들어선 이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 선 사울이 그 일을 자청해 수행하기 위해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충격으로 땅에 엎어져 누구신지를 묻는 사울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시지요.
예수님은 신앙 때문에 박해받는 이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십니다. 당신에 대한 믿음 때문에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는 이들 안에 당신이 계시고, 또 당신 심장 안에 그들을 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서로 일치한 두 존재는 그 무엇으로도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위협도, 박해도, 죽음도 이 일치를 무너뜨리기는 커녕 더 견고히 만들어 줄 뿐이지요.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사도 9,15)
다마스쿠스에 사는 주님의 제자 하나니아스에게 주님께서 이르십니다. 사울의 악명을 들은 터라 그에게 가기를 주저하는 하나이아스에게 예수님은, 사울 역시 예수님과의 머무름, 말미암음의 관계로 초대받은 사람임을 밝히십니다.
선교는 교인의 수를 늘이는 활동이기 이전에, 누군가를 주님과 머무름, 말미암음 관계를 맺는 은총으로 초대하는 선행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그분으로 말미암아 사는 이는 다른 이에게도 그 행복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될 테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가 주님으로 인해 울고 또 웃는 것처럼 주님 또한 우리로 인해 울고 웃으십니다. 그분을 모시는 우리가 그분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그분으로 말미암아 사랑하며 살아가는 벗님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그 사랑 안에 깊이깊이 잠기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