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산에 올라 경인년 여명을 장식하다
1월 16일 토요일 충북협회 금년도 첫 산행, 고향이 충북이면서 아직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충주 계명산(鷄鳴山)(해발 775미터)을 오르고 난 감회가 남다르다. 계명산의 옛 이름은 계족산(鷄足山. 산 이름이 이렇게 불리 운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 산에 지네가 많았는데 충주가 백제의 영토였을 때 마고성주(南山城)의 딸이 산기슭에서 지네에 물려 앓다가 회복을 못하고 죽게 되자 지네를 퇴치하기 위해 고심하던 마고 성주가 심항산 마루에서 치성을 드리던 중, 꿈 에 신령이 나타나 지네는 닭과 상극이니 산에 많은 닭들을 방목 하면 지네가 근절될 것이라 해 그대로 했더니 지네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 후로 이 산을 계족산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현대에 이 고장 아끼는 사람들은 충주 지방에 큰 부자가 안 나타나는 원인은 계족산이 닭발 형상이고 이름조차 계족이라 닭발은 땅을 파 헤치는, 분산을 뜻한다 하여 1958년 여명을 알리는 계명(鷄鳴) 산으로 개칭한 것이다.
산행기점은 충주시 용탄동 용골, 용탄동 민마루, 종민동 하종마을, 계명산휴양림, 안림동 마즈막재 등 여러 곳이 있으나, 해발120m에서 시작되는 급경사 구간인 충주댐 방향(용탄동 용골, 용탄동 민마루, 종민동 하종마을)을 피하여 일반적으로 계명산과 남산(금봉산) 사이의 해발240m ‘마즈막재’ 안부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수월해 여기서부터 산행을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마즈막재’는 일제침략기에 마즈막고개 너머에 사형장이 있었는데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이 “살아서 마지막으로 넘던 고개”라는 한 서린 사연이 깃든 곳이다. 고갯마루 왼쪽 등산로 입구를 나타내는 표지판을 지나 조금 오르다보면 오른쪽에 ‘대몽항쟁전승기념탑’ 이 보인다. 고려 고종 40년(1253년)충주에서 있었던 몽고군과의 70일 전투에서 승리해 삼남 일대를 지켜낸 김윤후 장군과 전사자들의 혼을 기리기 위한 탑이다.
오르다보면 초입에서 느꼈던 산행 코스의 원만함이 갈수록 가파른데 놀라게 된다. 정상이 저만치 보일듯하면서도 막상 올라보면 천만의 말씀이다. 약 30분쯤 오르면 주능선이 나타나고 여기서 부터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다시 1시간쯤 외길 등산로를 따라 오르니 해발 775미터 정상, 나뭇가지 사이로 충주시 외곽을 돌아 흐르는 달래강(일명 달천)과 충주시가지, 충주호의 모습이 멀리 월악산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지등산 관모봉, 뒤로 인등산과 천등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월악산 영봉이 어렴풋이 반긴다.
날씨가 풀린 탓인지 정상은 비교적 따뜻했다. 삼삼오오 점심을 들고 북쪽 능선을 타고 잠시 내려가니 갈림길,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 종민동 하종마을로 하산했다.. 산행시간은 약 3시간 30분쯤 소요됐다. 힘은 들지만 한번쯤 도전해 볼만한 산이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계명산 제1봉
역사가 살아숨쉬는 대몽항쟁전승기념탑
정상에 엿이라도 붙여 놓았는지 열심히 산을 오르는 회우들
정상에서 삼삼오오 점심을 들다
서둘러 하산 채비를 하는 회우들
안병길산악회회장(중앙)과 홍정식 원로회우(우 84세)
그 이름도 다정한 이종락(좌) 강신용(우)친구
중앙엔 정운종도 보이네요.
눈덮인 하산길
3시간 30분 종주,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
첫댓글 전망이 그만인 계명산을 오르셨군요. 날씨까지 청명해서 충추호가 손에 잡힐듯 합니다. 정력이 대단합니다. 추카추카.
새해 벽두 고향의 명산을 오른 정 형의 건강과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지용우 회장님 그리고 이성희 형 감사합니다. 올해는 언제 대포 한잔 했으면 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