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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The House of Rothschild)1
유럽역사에 빠지지않는 정상배 가문입니다
다음은 로스차일드가문의 행적입니다 유럽역사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독일계 유대금융 자본 로스차일드 가문은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유럽전쟁사에그 이름이 한번도 빠진적이 없습니다
지금 미국이 최대금융위기를당하고있지만 이 로스 가문의 은행들(뱅크오브 아메리카/체이스맨하튼은행)은 아직 쟁쟁 합니다
이들의 중심세력이 활동하여 미국의 세계원조 중 이스라엘이 가장 많이 받는나라로 만든 저력과 영향력을 발휘하고있습니다 이 가문중심으로 만들어진 세계유대인 경영지침인 시온 의정서도 이들의 작품 입니다
미국이 유엔에서 이스라엘에대한 불리한 안건에대해 거부권행사를 할수있도록 지속적으로 정책을 지원하고 로비하며 미국정재게를 쥐락 펴락하고있습니다 이들은 뉴욕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공중파 방송몇개 폭스 채널 MGM영화사 등등을 소유하고있어 이런 매체를통한 조직적으로 유대입장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헐리우드 영화산업을장악하고있는 이들은 자신들에 불리한 입장이 전개되면 모든것을 동원하여 이를저지합니다 자신들의 홀로코스트를 더욱미화하는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거대한 영화로 만들고 에수의 고난을 그려 유대교 제사장들의 탐욕으로 희생된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린 종교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 12시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고난을 적나라할 만큼 생생하게 묘사해서 일대 충격파를 던진 작품이었다.
멜 깁슨이란 영화배우 출신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특이한 현상이 하나 있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극렬하게 이 영화를 비판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오랫동안 애를 써서 선의적 이미지로 포장시킨, 감추고만 싶었던 유대민족의 어떤 정체를 이 영화가 여지없이 폭로했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로 대표되는 영미 거대 금융 자본은 물론이거니와, 할리우드가 유태계 손아귀에 장악되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제작자, 감독, 영화배우 등 수많은 실력자들이 유대인들이다. <영광의 탈출>이니 <쉰들러리스트>와 같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 영화가 끊임없이 제작되고 방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정계의 핵심인물인 각료몇몇을 포진시키고 있어 중동외교를 일사천리로 진행시키는 이스라엘 로비단체인 APIAC를 직접지원하고있을 정도입니다
로트실트 가문(Familie Rothschild,/ Rothschild family)
독일-유대계(German Jews) 혈통의 국제적 금융 재정 가문. 오스트리아와 영국 정부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았다. 로트실트 가문은 워털루 전투로 상당한 부를 쌓으며 발전을 했다. 로트실트 가문에서는 전쟁이 발발할때 산업 스파이를 보내어 프랑크푸르트-파리-런던-빈-나폴리로 이어지는 정보망을 구축했다.그들은 정부의 정보 즉 워털루 전투가 영국군이 이겼다는 정보보다 1일이나 앞선 날에 사람들을 향해 영국군이 졌다하며 소리쳐 정보(거짓 정보)를 알려주었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덜 손해보기 위해 영국 국채를 팔기 시작해 영국 국채가 이전의 5%밖에 안되는 상황 이였을때, 로트실트 가문은 그 즉시 모든 국채를 사들였고 그 다음날 영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프랑스군이 패배 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로트실트 가문은 20배나 되는 이득을 챙겼다.(또한 살로몬 드 로트실트는 미국남북전쟁때 군수물자를 지원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이들은 4아들을 유럽전역에 은행을 설립 로트실트 은행 사업은 유럽의 산업화 동안 국제적 융자로 높이 발전했고 세계 전역을 걸쳐 철도사업을 후원할때 철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리고 수에즈 운하 계획을 지지하여 공장에 자금조달을 해주었다.대다수의 사업은 직접적으로 로트실트 가문의 해상보험을포함한 자본으로 이루어진다.(1824년)
로스차일드 4아들
암셀 메이어 로트실트 (1773–1855): 프랑크푸르트
살로몬 메이어 폰 로트실트 (1774–1855): 빈
네이선 메이어 로트실트 (1777–1836): 런던
칼 메이어 폰 로트실트 (1788–1855): 나폴리
제임스 메이어 드 로트실트 (1792–1868): 파리
로스차일드가문은 프랑크푸르트를 기반으로한 금융업자가문입니다. 독일 출신이며 이름자체가 독일식 유대이름이니 원래 발음은 로트실트로 로스차일드란 영국식으로 읽은 것입니다.
전유럽을 돈으로 휘어 잡은 거부 유대인 가문입니다. 이 가문을 크게 일으킨 사람은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입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게토출신으로 고리대금업으로 출발하여 거금을 모아 로트실트, 즉 로스차일드 은행을 설립하고 빈, 런던, 파리, 나폴리 등지에 지점을 개설하고 아들들을 지점장으로 보내 전 유럽을 잇는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 후 각국정부, 권력층과 밀착하여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행사하였습니다.
유럽에서 큰전쟁이 있을 때마다 로스차일드의 돈은 중요한 역할을 하여 그의 돈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유럽역사가 뒤바뀌곤 했습니다. 영국의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금융업에서 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꿰뚫은 인물입니다.
워털루 전투가 벌어졌을때 그는 통신원을 매수하여. 영국군과 연합군은 승리했지만 런던에는 패전소석이 알려졌고 런던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 런던의 주식가격은 무려 90%나 폭락했습니다.
로스차일드는 이 주식들을 휴지가격으로 사들여 런던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던 모든 주식의 62%를 쥘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로스차일드가는 1875년 수에즈운하 건설에도 융자해주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정부에 돈으로 압력을 넣어 유대인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벨푸어 선언을 유도했습니다.
2차대전 뒤 이스라엘 건국에도 로스차일드는 거액을 융자했을 뿐더러 동유럽과 남미에도 진출하여 세계 금융시장과 산업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는 3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금융 부호로 많은 정치적 사건에 음성적으로 연루되어 왔습니다. 영국 수상 디즈레일리가 수에즈 운하를 사기 위해 대금을 빌리기 위해 찾아간 곳이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대영제국을 담보로 걸겠다"는 약속을 하고 돈을 빌려 수에즈 운하를 사들인 것은 유명합니다. 그 외에도 2차 대전 때는 망명하는 유럽 왕실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주어 뒤에서 조종해왔었고. 지금은 지나친 유럽중심주의적인 판단으로 미국 진출을 하지 않은데다 창업주 이래로 특출난 경영인이 나오지 않아(아마도 근친결혼 때문인듯)영향력이 다소약해졌지만 록펠러보다 분명히 약해지기는 했습니다. 역사가 오래되고 세계사에 음성적영향을 미쳤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예전만은 못 한듯 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불문율 중 하나가 '딸과 사위는 은행에 발을 들일 수 없다'
그만큼 혈족중심의 경영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보수적 집단으로써 유대인 배척운동에 대적하기위헤
이 가문은 공개적으로 시오니스트를(유대주의자운동)지원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사업에는 적도 동지도 없다고
누구에게도 끈을 놓치 않고 유대관계를 형성하고있습니다 .
유대금융자본이 유럽전쟁사에 관여한 사건
1.유대인재력 로스차일드 가문 영국- 나포레옹전쟁당시 폭리 주식매점독점 이권확보
2. 로스차일드가문 스웨즈운하 건설공사비용 영국에 지원
3.노일전쟁지원 석유개발권 흑해연안 약속
4.영국외상 발포어 발포어선언을 로스차일드은행가문에 이권및 국가건설지원 약속
5.로스차일드 시오니즘 동맹체 결성
6.영국 동인도 상권일부 로스차일드가문에 제공
7.로스차일드가문 2차대전중 영국에 전쟁비용 지원 (영국 전함 건조비용과 전투기생산비용 )
8.전후 팔레스타인 영토 구분 영국에 요구
9.시오니즘 유엔에 대표단 파견 독립지지약속
10.로스차일드가문 벤구리온에 팔레스타인 건국비용지원
록펠러 가문은 정통적인 석유업자 입니다 로스 가문보다 열세 였으나 2차 대전이후 석유업으로 화황을 누렸고
이들은 서로 업종구분을 명확하게하여 서로 중복된 사업을 하지 않기로 맹약한 가문들입니다 단 은행업종에서 현재 체이스맨하튼은행지분은 정부의 반독점법에관련하여 부득이하게 록펠러가 맨하튼 은행을 인수하여 로스의 체이스와 합병 현재 이은행은 록펠러 지분이 40%를차지 하고잇으며 BOA지분도 록펠러가 대부분 확보한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시대의 영광이 경영기법의 변화와 경영패쇄성으로 21세기에 도퇴되어가는공룡과 같습니다
다음은 로스차일드를알고저 하면 시온의정서를이해하셔야 할듯해서 같이 올립니다
시온 의정서(세계경영지침)
유대인의 세계경제 장악 현황
유대인들은 시온 의정서에서 전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식량, 연료, 언론사를 소유하자고 하는데, 실제로 이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은 유대인 소유입니다.
세계 5대 메이저 식량 회사 중 3개가 유대인 소유입니다.
세계 7대 메이저 석유 회사 중 6개가 유대인 소유로 '엑슨', '모빌', '스탠더드', '걸프'는 록펠러 가문 소유이고,
'로열 더치 셀'은 로스차일드 가문 소유이며, '텍사코'는 노리스 가문 소유입니다.
영국의 '브리티시 패트롤리엄'(BP)도 국책회사이지만 유대계 자본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유대인 소유의 언론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통신사 - AP, UPI, AFP, 로이터
신문사 - 뉴욕 타임즈(사주인 아서 옥스 설즈버거가 유대인), 월 스트리트 저널(사주인 앤 드류 스타인이 유대인)
방송사 - NBC, ABC, CBS, BBC (유대계 자본이 소유함)
미국 월 스트리트는 유대인이 장악했고, 동남아 경제 위기를 일으킨 조지 소로스와 같은 헤지펀드의 50%가
유대인 자본입니다.
유대인 인구는 1400만명으로 전 세계의 0.4% 이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30%가 유대인입니다.
미국에선 유대인이 580만명으로 3% 이지만, 100대 기업의 40%가 유대인 기업입니다
대표적인 유대인 재벌인 로스차일드와 록펠러 가문은 엄청난 수의 은행, 석유, 항공사 등을 가지고 있고,
두 가문이 소유한 체이스 멘하튼 은행은 단독으로 세계 경제 공황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언론을 통제해 자신들이 세계 100대 부자 같은 것에 끼는 것을 막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이 알려지면 전 세계가 동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손 꼽히는 부자인 빌 게이츠의 재산이 600억 달러 정도 인데 반해 이들이 실제 소유한 재산은 수천조 달러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의 재산은 이들 재산의 10만분에 1도 안되며, 이들에 비하면 빈민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들이 미국, 유럽, 러시아 등으로부터 끌어 모은 금은 스위스, 제네바 등지의 귀금속 보관소에 보관되
있는데 스위스에 있는 금만도 4700조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기로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2차 대전 이 후 몰락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런던에 City of London이라는 치외 법권 지역이 있어,
국제 금융가들이 이 곳에 있는데 세무 조사를 받거나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따라서 이들은 상속세를 내지 않기 때문에 부가 대대로 세습될 수 있습니다.
이 시온의 의정서는
반유태주의 측에서는 이것을 유태인의[세계 정복 강령]이라 하며
유태인 측에서는[금세기 최대의 위서]라고 하여 애써 부정해 왔다. 하지만 그러한 논쟁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각국마다 계속 번역판이 거듭하여 날개라도 돋힌 듯 팔렸다. 스위스에서는 소송 사태에까지 번졌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1920년 [인터내셔널 쥬우(국제적 유태인)]이라는 책을 발간하고 국제적인 유태인 세력에 용감하게 도전을 했었으나, 결국 역부족으로 무릎을 끓고 만 일막도 있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 로젠버그의 [20세기의 신화]에 나타난, 나치스 독일의 극단적인 반유태주의의 바닥에도 이것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껏 이 [시온의 의정서]의 저자는 불명인 채, 짙은 수수께기에 감싸여 있다. 그 성립에서 유포의 경로, 파문과 논쟁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시온의 의정서]가 眞 僞 어느 쪽이든 간에 근래 유태인 문제의 원점으로서의 의의를 지니는 데 대해서는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고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파문, 영향이 거의 전세계적 규모로
퍼젔고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에까지 관련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첫댓글 바쁠때는 댓글만이라도 읽고 가고 싶은 데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본글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오늘에야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