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냉동고추를 해동해 말린 건고추.
창고 밖에서는 주문이 들어온 물량을 화물트럭에 옮겨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운반작업을 맡은 작업반은 “매일매일 주문량이 꾸준하다”며 “대기업이나 대형음식점 등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고춧가루로 빻아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건고추를 유통하고 있다는 이 업체는 현재 취급량의 대부분을 중국산 냉동고추로 채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문량에 맞춰 중국을 수시로 방문해 냉동고추를 수입하고, 국내에 들여온 냉동고추는 건조시설을 갖춘 산지업체에 보내 해동한 뒤 말려 건고추 형태로 유통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냉동고추를 수입해 건고추로 변칙 판매하는 수입업자만 100명이 훨씬 넘는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업체 관계자는 “중국에선 <금탑> <익도홍> 등 한국 수출을 겨냥한 고추품종 재배가 크게 늘고 있다”면서 “한국 수출이 꾸준하다보니 전체 재배 품종의 70% 이상이 한국에서 들여온 품종이고 나머지가 중국 품종일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산 냉동고추는 꼭지가 없어 말린 뒤 곧바로 건고추나 고춧가루로 유통시킬 수 있다”며 “인건비가 적게 들고 김치공장이나 식자재업체에서도 중국산이나 베트남산 매운 고추와 섞은 고춧가루를 많이 찾아 수요에 맞춰 냉동고추를 수입해 팔고 있다”고 밝혔다.
냉동고추 수입업체들이 이처럼 국내 수요에 맞춰 물량을 수입해 유통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들이 냉동고추를 선호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정상관세에 비해 관세가 턱없이 낮아 높은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 수입되는 건고추와 고춧가루, 냉장고추 관세는 270%이지만 냉동고추는 10분의 1 수준인 27%에 불과하다. 흔히 ‘다대기’로 불리는 다진양념인 혼합조미료·기타소스 관세도 45%에 불과해 건고추 수입량의 90% 이상을 50% 이하 낮은 관세품목이 차지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건고추업계 안팎에선 “돈을 벌려거든 냉동고추를 만져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을 정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분석자료를 보면 2016년 10월 기준 민간업체의 중국산 냉동고추 도입단가는 600g당 630원이었다. 여기에 국내 건조비와 가공비를 합한 판매원가는 4240원으로 국내산 10월 평년가격(7258원)의 58%수준에 불과했다. 업계 얘기가 근거 없는 말은 아닌 셈이다.
◆냉동고추 수입 급증, 생산기반 붕괴=시세차익이 눈에 보일 정도로 크다보니 냉동고추 수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반면 냉동고추에 치여 국내 건고추 재배면적과 생산량은 매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고추 수입량은 10만5622t이었다. 이 중 냉동고추 수입량을 건고추로 환산한 물량은 3만7595t으로, 전체 수입량의 35%를 차지했다. 지난해 국내 총생산량(9만8000t)에 비춰보면 38%에 해당하는 엄청난 물량이다.
2000년 고율관세인 건고추 대체품목으로 수입이 허용된 이후 냉동고추 수입량은 연평균 20.4% 증가했다. 실제로 관세청에 따르면 냉동고추 수입량은 2000년 6080t에서 2005년 8만576t, 2010년 17만489t, 2015년 18만795t으로 급상승했다.
냉동고추 수입량 증가로 매년 10만t 안팎 수입되는 외국산 건고추 수입실적 중 냉동고추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냉동고추를 포함한 외국산 건고추 수입량이 지속적으로 늘면서 국내산 건고추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농식품부가 올 상반기 내놓은 식품산업 분야별 원료소비 실태조사를 파악한 결과 국산 고춧가루 사용비율은 2014년 기준 17%에 불과했다.
국내 생산기반도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외국산 고추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서 국내 재배면적은 2000년 7만5000㏊에서 2005년 6만1000㏊, 2010년 4만5000㏊, 올해는 3만2000㏊까지 쪼그라들었다.
생산량도 같은 기간 19만4000t에서 16만1000t, 9만5000t, 8만2000~8만8000t(추정)으로 감소 추세다.
홍석우 한국고추산업연합회 사무장은 “냉동고추는 관세체계 분류상 녹은 후 신선상태로 사용돼야 함에도 거의 대부분이 고춧가루로 사용되고 있다”며 “현 수준으로 중국산 냉동고추가 지속적으로 국내에 반입돼 유통된다면 국산 건고추는 머지않아 국내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홍기 기자 hgsung@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