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쫓는 은사를 깨닫기
귀신을 쫓는 은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한 은사는 결코 아닙니다.
대중 집회에서 귀신에게 명령하여 내어 쫓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귀신의 정체가 드러나고 축사하는 사람에게 꼼짝하지 못하다가 명령하면 겁에 질려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축사가 간단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이 갑자가 귀신 들린 모습을 하고 그 입에서 귀신 소리가 나오면서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축사하는 사람을 두려워하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땅에 꼬꾸라지는 모습을
우리는 대중 집회에서 흔히 목격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진정한 축사의 모습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귀신의 정체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귀신은 그렇게 간단하게 쫓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방법을 통해서 쫓을 수 있는 귀신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귀신들은 그런 단순한 방법으로는 쫓아지는 것이 아님을 우선 알아야 합니다.
귀신은 마귀의 낮은 계급에 속하는 무리들입니다.
이들은 천상의 계급 가운데 가장 낮은 계급인 천사들과 같은 부류에 속한 무리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타락해서 귀신이 되었지요.
이 귀신은 지역을 장악하는 ‘지역 귀신’과 사람의 육체를 장악하는 ‘육체 귀신’으로 크게 나뉩니다.
축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이 두가지 귀신을 다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있지만
때로는 어느 한 가지만 다루는 사람도 있습니다.
축사의 은사가 임한 사람이 그 사실을 깨닫게 하는 증거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영적 감각이 예민해져서 도처에서 귀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됩니다.
감각은 신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있는데 이 두 가지를 통해서 깨닫게 하십니다.
신체적 감각이란 귀신이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장소에 들어가면
소름이 끼치고 거북하거나 악박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헛구역질이 나거나 소름이 끼쳐 닭살이 돋고 피부에 전기가 흐르는 느낌을 받습니다.
시궁창 냄새가 나고 역겨워지며, 중압감을 느껴 답답해집니다.
몸으로 느끼기 시작하면서 몸이 괴로워지고 피곤해집니다.
도처에 귀신들이 있으므로 그런 곳에 갈 때마다 몸으로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달갑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집중적으로 이런 형태의 느낌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자신에게 귀신을 쫓는 은사가 임했음을 깨닫게 하려는 주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소름이 끼치고 닭살이 돋고 심하면 정신이 혼미해지며, 어지러움을 느끼고 전신이 전율하는 진동을 느끼며,
두려운 생각이 들고 공포가 밀려들어옵니다.
이런 일을 처음 경험하는 초보 축사자에게는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이물감을 느끼고 때로는 쑤시고 아프기도 합니다.
이런 육체적 증상과 더불어 정신적(영적) 증상도 나타납니다.
수시로 검은 물체가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아주 불쾌한 기분과 함께 때로는 섬짓한 기분이 들면서 자신의 주변에 검은 존재가 접근하는 것을 느낍니다.
귀신 들렸거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 주변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거나 느끼게 됩니다.
역겨운 냄새가 나고, 눈에 귀신의 형상이 보입니다. 이런 환상을 보면 절대로 즐겁지 않습니다.
수시로 자신의 주변을 배회하는 악한 영들을 느끼거나 보게 됩니다.
마귀의 시험이 들어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이 받고 있는 악한 영의 영향을 그대로 느끼게 됩니다.
당사자는 모르지만 축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느끼고 알지요.
그들이 생각하는 생각의 근원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알게 되며, 그 생각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어 불쾌해집니다.
마귀의 시험에 들어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겪게 될 문제에 대한 느낌이 전달되지요.
이런 형태의 영적 느낌은 축사자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불쾌한 생각과 냄새들로 인해서 정신적으로 피곤해지고 몸으로 느껴지는 소름으로 인해서
결코 축사가 달가운 은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환상에 귀신의 모습이 나타나고 그들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축사하는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의 한계를 알게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의 한계가 넘어서는 악령의 대상에 대해서는 느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귀가 들을 수 있는 데시벨의 한계가 있는 것처럼 초음파는 우리의 청각이 감지하지 못하지요. 이와 같은 이치로 인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 안에서 귀신의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제가 축사하는 곳에 일반 성도들을 데리고 가서 귀신의 존재를 목격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저와 동참한 사람들은 귀신으로부터 오는 어떤 느낌도 깨닫지 못합니다.
간혹 달아나는 귀신이 그들의 몸 속에 피해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그들은 심한 고통을 느낍니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을 위협해서 저에게 겁을 주려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 경우 함께 참여한 사람들은 귀신으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게 되어 귀신의 존재를 몸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축사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신호를 깨닫는 기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은 이후에 축사 사역을 본격적으로 행할 때 유효하게 사용되는 기능들이므로
초보 시절에 거치는 이런 경험을 더욱 풍성해지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귀신을 쫓는 일은 편하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은사가 다 그렇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보기에 화려해 보이지만 그것을 전문적인 영역에서 감당하게 되는 사역자에게는
엄청난 노력과 헌신이 필요한 일입니다.
축사자는 악한 영과 마주치는 전쟁판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해서 감당해야 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귀신은 다양하고 복잡한 통로를 통해서 그 사람에게 침투했으므로 쉽게 떠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수단을 다 해서 사역자를 속이려고 합니다.
그 속임수는 교묘해서 익숙하지 않으면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나가는 귀신은 없습니다.
단 한마디의 명령으로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바탕을 포기하고 쉽게 달아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끈질기며 자신들이 쫓겨나면
물없는 사막과 같은 고통스런 환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달아나는 것처럼 속여서 잠시 그 위기를 모면하려고 합니다.
축사자가 끈질기게 쫓아내지 않으면 그들은 다시 돌아오게 되고
그 형편은 처음보다 더 심하게 망가지는 것입니다.
대중 집회에서 귀신은 쉽게 달아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다시 돌아옵니다.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숙주를 찾기보다는 이미 만들어놓은 숙주에게 다시 돌아오는 일이 더 쉽기 때문입니다.
축사자는 이런 귀신들의 간교하고 끈질긴 속성을 깨달아야 하며,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힘들고 어려운 축사과정을 거치게 하십니다.
복잡하게 얽힌 그들의 침투 경로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성공적인 축사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원망과 상처를 통해서 들어온 귀신들은 그들의 발판이 견고하기 때문에 쉽게 나가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통로가 되어준 쓴뿌리와 원망과 상처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되지요.
이런 통로를 통해서 들어온 귀신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주님은 축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이런 부분에 대한 지식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다양하고 폭넓은 영적 경험들을 거치게 하십니다.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경험하는 초기의 수단들은
자신이 이후에 다루어야 할 귀신들의 등급과 속성들에 대한 이해를 얻게 하기 위한 주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이 경험들은 처음 겪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힘들고 두렵고 불쾌한 것들입니다.
하루 종일 귀신들만 보인다면 여러분을 어떻겠습니까?
세상이 온통 귀신 천지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축사 사역의 선구자라고 할 정도의 귀신 쫓는 일만 전문으로 행하였던 김기동목사의 경우에
그의 사역은 오로지 귀신들 뿐이었습니다.
병도 귀신으로 말미암았고 귀신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오는 모든 환자들은 다 귀신들려서 생긴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온통 귀신천지였고 모든 병의 근원이 귀신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당시 영적 지식이 오늘날과 같지 않아서 그는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그
는 오늘날에야 이해되는 것이지만
귀신을 매개로 해서 불신자들을 주님에게로 이끄는 ‘복음 전하는 자’의 직분을 가진 사람이었지요.
전도자는 말씀을 가지고 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처럼 능력을 가지고 전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단순하고 무지한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복잡하고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룰 수 없는 것입니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복잡한 조직신학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단순하고 명료해야만 불신자들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주로 보여주는 능력을 위주로 하는 것이지요.
그런 역할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이런 일에 이해가 부족한 그는 그 범주에서 벗어나
조직신학적으로 마귀론에 접근해서 결국 씼을 수 없는 오류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온통 귀신만 보이는 그에게는 귀신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장사를 하게 되면 초보시절에는 자신이 다루는 물건만 눈에 보입니다.
신발장사는 사람들이 신고 다니는 신발만 보이고, 옷장사는 옷만 보이며, 안경장사는 안경만 보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축사자는 오로지 귀신만 보이기 때문에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 달갑지 않은 대상이 날마다 눈에 보이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이것은 마치 의사들이 눈만 뜨면 환자만 보이고 날마다 피를 보면서 지내니까
참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과 같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와 같이 축사자는 날마다 귀신들만 만나기 때문에
주님에 대한 헌신하는 마음과 귀신들린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로 계속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중 집회에서 귀신을 들어내고 명령하여 쫓는 일은 축사사역의 본질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그 일은 엄격히 말하면 축사사역이 아니라 능력 행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집회에서는 “나가라”라는 말 한 마디에 귀신들린 사람이 쓰러지면서 귀신이 나가는데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주눅들 필요는 없습니다.
축사 사역은 전문가 사역입니다.
귀신의 정체를 알아야 하고 그 침투 경로를 알아야 하며 어떤 능력을 가진 존재인지를 파악해야 하며
환자의 상태와 가족력과 과거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들어온 귀신의 발판이 되는 죄와 상처와 분노와 쓴뿌리와 교만 등과 같은
문제의 본질을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치유하지 않으면 귀신은 떠나가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명령했다고 해서 다 달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은 겁쟁이가 아닙니다. 치유가 제대로 되어 발판이 제거되었을 때 그 명령에 굴복하여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축사의 은사를 처음 받은 사람들은 우선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하고 그 비중을 파악해야 하며, 그 기능들을 하나씩 익히는 오랜 인내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글쓴이 : 장봉운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