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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무덥다.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더운 날씨다. 북쪽은 장마비가 연일 내려 축축하다고 하는데 남쪽 대구는 뜨거운 태양에 지글거리는 더위가 대지의 숨통을 짓누르고 있다. 연일 35도 내외 밤에도 30도가 넘은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다.
이럴 때 밖으로 눈을 돌리면 욱어진 숲속 물소리가 나는 계곡을 찾아 나서면 더위에서 벗어 날수가 있다. 언제가 가려고 미루어 놓은 해인사 소리길도 더위를 잊기에 좋은 코-스 일 것이다.
이런 한여름에는 크게 볼만한 꽃들이 별로 없다. 그런데 배롱나무는 우리 눈을 끄는데 모자람이 없다. 일명 목백일홍이라고 부르며 꽃이 백일동안 이나 오래피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꽃 하나가 백일동안 피어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꽃들이 연속적으로 피어서 백일간 지속되어 피는 것이다. 배롱이라는 이름도 백일홍이 연음이 되어 배롱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 중국남부가 원산으로 중국에서 들어온 나무이다. 중국에서는 百日紅, 백양수(怕痒樹, 怕癢樹) 또는 자미화(紫薇花)라고도 한다. 자미화는 꽃이이 자주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당(唐) 나라 때 이 나무를 행정관청의 하나인 중서성(中書省)에 많이 심었는데, 중서성의 별명이 자미성(紫薇省)이라 불렀기에 ‘자미성에 많이 심은 꽃나무’란 뜻으로 자미화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 나무의 수피가 떨어지고 없어서 매우 미끄럽게 보인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원숭이도 미끄러지는 나무 즉 사루스베리(猿滑)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지방에 따라 이름이 달리 부르는데 조금만 간지럼을 주어도 오래 동안 흔들린다고 하여 간지럼나무라고도 하며 제주도 방언으로는 “저금하는 낭” 간지럼을 타는 나무라고 한다.
꽃은 무더위가 다지나가는 8월이지나 9월까지도 피어난다. 빨간색, 흰색 그리고 핑크색이 있으며 꽃말은 “참고 견디는 것” 또는 “웅변”이라는 뜻을 가진다.
나무가득이 꽃을 피운 배롱나무를 보면 붉은 구름이 땅위에 내려앉은 것처럼 보인다고 한 시인도 있다.
盛夏綠遮眼(성하록차안) 나무의 푸르름이 눈을 가리는 한여름에도
此花紅滿堂(차화홍만당) 백일홍의 붉은 꽃은 집안에 가득하다.
<작자 미상>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못가는 것인데,
爾獨百日紅(이독백일홍) 너만은 왜 백일홍이냐,
莫誇百日紅(막과백일홍) 백날의 아름다움을 뽐내지 마라라,
岩上千年松(암상천년송) 바위위에 천년을 넘긴 소나무가 있는 것을.
花笑欄前聲末廳(화소난전성말청) 뜰에 피는 꽃은 즐겁고 웃음을 띠어도 소리를 내지 않으며
鳥啼林下淚難看(조제임하누난간) 숲속에서 우는 새는 슬퍼도 눈물을 보이는 법이 없다
이시를 두고 꽃과 새가 식물과 동물로 대조되고, 뜰앞과 숲속이 대가 되며, 소리와 눈물, 그리고 들을 수 없다는 것과 볼 수 없다는 것이 서로 대가 되어서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시다라고 임경빈은 평가하였다.
백일홍운(百日紅韻), 계곡(谿谷) 장유(張維)
滿樹如堆錦(만수여퇴금) 뜰에 가득 꽃나무 비단 겹쳐 펼쳐진 듯
繁英次第紅(번영차제홍) 온갖 꽃들 붉은 망울 차례로 터뜨리네
京華稀見汝(경화희견여) 서울에선 보기 드문 너의 고운 모습
偏憶在南中(편억재남중) 남쪽 지방의 추억 자꾸만 떠오르네
백일홍(百日紅),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衆卉莫不花(중훼막불화) 온갖 초목들 모두 아름다운 꽃이 있지만
花無保全月(화무보전월) 한 달 가는 꽃 없다는데
爾獨紅百日(이독홍백일) 너 홀로 백 일 동안 붉어
爲我留春色(위아류춘색) 나를 위해 봄빛을 남겨주누나
목백일홍(배롱나무) 牧隱 李穡
靑靑松葉四時同 (청청송엽사시동) 푸르고 푸른 솔잎은 사시에 늘 푸르네
又見仙葩百日紅 (우견선파백일홍) 신선의 꽃봉오리 백일동안 핀 것 또 보네
新舊相承成一色 (신구상승성일색) 옛 것과 새 것이 서로 이어 한 색으로 바뀌니
天公巧思儘難窮 (천공교사진난궁) 조물주의 교묘한 생각 헤아리기 어려워라.
꽃에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붉은색 꽃은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이거나 순결한 피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 아름다운 청년 아도니스를 사랑하게 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죽어가면서 흔 린 피에서 피어난 꽃이 붉게 피어난 아네모네요, 아폴론의 총애를 받은 미소년 히아킨토스가 흘린 피에서 빨간 히아신스가 피어났다고 한다. 옛날 페르시아에서 나이팅게일 새가 하얀 장미에 홀딱 반해 날개를 펼쳐 품으려다가 가시에 찔려 피가 흘렀는데 그 피가 흰장미를 붉게 물들여 붉은 장미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주왕산에 피어나는 수달래꽃은 중국 당나라 때 왕이 되고자 했다가 실패하고 군사들에게 쫓겨 이곳까지 왔다가 적의 화살을 맞고 숨진 주도(朱鍍)가 흘린 피가 꽃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빨간 백일홍나무에도 다음과 같은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전하고 있다.
옛날 어느 평화로운 어촌에 어느 날 목이 세 개 달린 이무기가 나타나 매년 처녀 한 명씩을 제물로 받아 갔다. 그 어느 해에 멋지게 생긴 한 장사가 나타나서 제물로 선정된 처녀대신 그녀의 옷을 갈아입고 제단에 앉아 있다 이무기가 나타나자 칼로 이무기의 목 두개를 베었다. 처녀는 기뻐하며 "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죽을 때까지 당신을 모시겠습니다."하자 "그 장사는 아직 이무기의 남아 있는 목 하나를 더 베어야 한다며, “내가 성공하면 흰 깃발을 달고, 내가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달 것이다”라고 하면서 배를 타고 나갔다. 처녀는 백 일간 기도를 드렸는데, 마침내 백일 후 멀리 배가 오는 것을 보니 붉은 깃발이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낙담한 처녀는 그만 자결하고 말았다. 그러나 장사는 이무기가 죽이고 온 것이고, 이무기가 죽으면서 뿜은 붉은 피가 깃발에 묻어 빨갛게 되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그냥 달고 온 것이었다. 그 후 처녀의 무덤에서 붉은 꽃이 피어났는데 이 꽃이 백일 간 기도를 들인 정성의 꽃, 백일홍이란다.
백일이라고 꼭 백일을 의미할까? 아마도 한없이 이어지는 무한한 날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붉디붉은 꽃, 사랑을 대변하는 정열일 것이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 배롱나무를 표현하기를
“비단 같은 꽃이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 사람의 혼을 빼앗는 듯 피어 있으니 품격이 최고이다“ 라고 하였다.
백일홍 성삼문
昨夕一花衰(작석일화쇠)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떨어지고
今朝一花開(금조일화개) 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는 것을
相看一百日(상간일백일) 서로 일백 일이나 바라보니
對爾好銜杯(대이호함배) 너와 더불어 한잔 하리라
배롱나무를 인상 깊게 본 것은 밀양 표충사에서였다.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활짝 핀 배롱나무가 좌우에서 맞이하고 본격적인 경내로 들어가는 수충루 계단 앞 좌우에서도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며 영각 입구에는 수 백 년은 조히 됐을 아주 큰 배롱나무가 연륜을 뽐내고 있다.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역임한 효봉(曉峰) 큰스님이 말년을 보내고 입적하신 만일루 경내 담장 옆에도 한 그루 배롱나무꽃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유난히 표충사에 배롱나무가 많은 것은, 배롱나무가 껍질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서 이 나무가 껍질을 다 벗어버리듯 스님들 또한 세속을 깨끗이 잊기를 바라는 뜻에서 사찰 내에 백일홍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다만 같은 표충사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절이 아니라 고려를 세울 때 왕건을 대신해서 순절한 충절공 신숭겸 장군을 기리는 사당인 대구시 동구 지묘동의 표충사 앞에는 조선시대 선조 40년인 서기 1607년에 경상도 관찰사 류영순이 표충사(表忠祠)를 다시 세우고 나서 심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배롱나무가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어 이 나무는 적어도 4백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에 있는 표충사 사당은 원래 신숭겸 장군이 왕건처럼 보이기 위해 변장을 했다가 적의 칼에 찔려 죽음에 그 때 입었던 피 묻은 옷과 그 곳에 피를 흘렸던 곳의 흙을 모아서 단을 쌓았던 곳이어서, 나중에 다시 표충사로 재건을 하면서 배롱나무를 심은 것을 보면 배롱나무에 충성을 위해 흘린 피를 의미하는 뜻이 담겨 있음에 틀림없다.
부처꽃
표충사라는 절에서 스님들이 속세의 껍질을 훌훌 벗어버리라는 뜻에서 배롱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사람들은 이런 배롱나무를 절에서 자주 보면서도 이 배롱나무꽃이 ‘부처꽃과’에 속한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부처꽃은 긴 줄기를 따라 잎이 돌라가면서 나고 위로 올라가면서 분홍빛 꽃이 피는 풀인데, 배롱나무꽃도 외관상으로는 이 꽃과 흡사한데 나무에 피는 것이 다르다. 스님들이 절에 배롱나무를 심을 때에 그런 생각까지를 하고 했을까 생각해보지만 아무튼 이름만으로 보면 배롱나무가 절에 많이 심어질 필요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나비의 종류 가운데 부처나비라는 것이 있어서. 이 나비도 부처님의 고향인 인도에서 자주 발견돼서 그런 이름을 서양의 식물학자로부터 얻었다고 하는데, 배롱나무꽃도 부처꽃과에 속한 것으로서 벌써 부처님을 모시는 절간에 많이 심어질 운명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겠다.
배롱나무로 유명한 곳은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이 있다. 병산서원은 서원을 들어서자 마자 대하게 되는 만대루(晩對樓)라는 누각으로 유명하다. 유생들이 눈 앞의 낙동강과 병산을 마주보며 우주와 인생을 강구하는 이 강학공간을 오르는 길 옆과 그 앞, 그리고 사당인 존덕사 앞 등 사원 주변을 돌아가며 72그루의 배롱나무들이 심어져 꽃을 피우고 있다. 해마다 7월에서 10월까지는 이 배롱나무꽃이 활작 피어 전국의 사원가운데 가장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수령 390년이 된 배롱나무는 2008년 봄에 안동시에 의해 보호수로 지정되었는데 높이가 8미터를 넘는다. 특히 서원 만대루에 올라 눈 앞의 병산과 낙동강을 바라보는 그 산수화 속에는 서원 주변에 활짝 핀 배롱나무 꽃이 더해져서 끝없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왜 이 병산서원에 유독 배롱나무들이 많을까? 병산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류성룡(柳成龍)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자리로서 1614년경 사당인 존덕사(尊德祠)를 건립하면서 후손 류진(柳袗)이 배롱나무를 많이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 심은 배롱나무 6그루가 현재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존덕사를 세우면서 유성룡의 후손들은 선조대왕이 유성룡의 재주와 공로를 인정하고 그에게 내린 특별한 은혜를 이 배롱나무 꽃으로 상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임금에 대한 일편단심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당시에는 껍질이 없는 맑고 투명한 배롱나무의 줄기 표면에다가 곧게 올라가는 자태가 곧 물욕에 빠지지 않는 선비들의 몸가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기에 굳이 이 병산 서원만이 아니라 전국 어느 서원이건 기후가 허락만 한다면 이 배롱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그 대신 선비들의 청렴함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아무리 양반이라도 집 안채나 여염집에는 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배롱나무는 부산 양정동 동래정씨의 묘역에 있다. 약 800년 전 고려 중엽 때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동래 정씨의 시조 정문도공(鄭文道公)의 묘소 앞 양쪽에 심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수령이 800년은 족히 된 그야말로 가장 오래된, 가장 당당한 나무이다. 이 배롱나무가 이미 1965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데, 벌써 고려시대에도 무덤 주위에 이런 배롱나무를 심었다는 것을 이 나무로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보다 앞서서 편찬된 ‘보한집’에 배롱나무를 뜻하는 자미화가 언급된 점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그 이전에 이미 배롱나무가 들어와 있었다는 뜻이 된다.
앞에서 배롱나무는 줄기 껍질이 없다고 했는데, 이럴 정도로 줄기 표면이 매끈하고 매끄러워 마치 간지럼을 잘 타는 여인의 피부처럼 보인다. 실제로 나무 줄기 표면을 손톱으로라도 긁으면 가지와 잎이 간지러운 듯 흔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간지럼나무'라고도 부른다. 일본에서는 원숭이조차도 미끄러지는 나무라 해서 '사루스베리(猿滑)'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자미화(紫薇花)'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자미화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 한자의 뜻만을 생각해서 중국에서는 꽃의 색갈을 붉은 것으로가 아니라 자주색으로 보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그것은 틀린 것이고, 당(唐) 나라 때 이 나무를 행정관청의 하나인 중서성(中書省)에 많이 심었는데, 중서성의 별명이 자미성(紫薇省)이라 불렀기에 ‘자미성에 많이 심은 꽃나무’란 뜻으로 자미화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아무튼 동양 삼국이 저마다 나무나 꽃의 특색을 살려서 이름을 지어, 이처럼 서로 다른 이름을 갖게 된 것도 특이한 사례라 하겠다. 재미있는 것은 지역에 따라서는 줄기의 매끈한 모양새가 마치 살이 없이 뼈만 남은 것처럼 보이고, 붉게 피어나는 꽃은 피가 연상된다 하여 집안에 심지 않기도 하였다는데 제주도가 바로 그 사례이다.
아무튼 배롱나무는 그 나무줄기가 갖고 있는 깨끗한 이미지와 꽃의 화려함과 끈질김, 강인한 생명력과 차가운 도덕성 등으로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 꽃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식재돼 사랑을 받았는데, 그런 배롱나무 사랑이 중국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더 강했음이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배롱나무꽃 조선윤,
화무십일홍이요
열흘 붉을 꽃 없다지만
석 달 열흘 피워내어
그 이름 백일홍이라
뜨거운 뙤약볕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꽃봉오리 터지던 날
진분홍 주름치마 나풀거리며
살랑이는 바람결에 살포시
미끈한 속살 내비치는
한여름의 청순한 화신이여!
배롱나무꽃 도종환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요즘 남쪽지방을 여행하다보면 길가 곳곳에서 선홍, 진홍을 터트리며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배롱나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 배롱나무가 가로수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산림청이 지난 4월 조사한 데 따르면 지난해 심은 가로수 역시 전체 25만여 그루 가운데 벚나무가 12.7%인 3만1,700그루로 가장 많았지만 그 뒤 이팝나무, 무궁화에 이어 배롱나무가 4위로 애용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가로수가 점차 꽃이 있는 화목류 수종으로 변화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이 가운데 배롱나무에 대한 사랑이 근래에 부쩍 커졌음을 알게 하는 주요한 증거자료인 셈이다.
우리네 정원에 수많은 화목들이 심어지고 길러지며 다 자신이 갖고 있는 덕목을 자랑하지만 겨우내 허연 속살을 드러내며 앙상한 가지만을 보여주는 배롱나무들은 한 여름 모든 수목이 더위에 지쳐 꽃을 피우지 못하고 헐떡이고 있을 때에 홀로 계속 피처럼 진한 생명력을 발양한다는 데서 배롱나무꽃은 여름을 대표하는, 여름을 이기는 꽃(夏勝花)으로서 결함이 없다. 그러기에 좋은 나무는 곧 그들의 기운과 덕을 통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우리가 꽃이나 나무를 보며 단순히 보는(看)데 그치지 않고 그 깊은 뜻까지를 아는(觀)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옛 사람들이 꽃나무를 애써 길러 우리들의 삶을 이끌었듯이 오늘날의 사람들도 꼭 그것이 오래되어서만이 아니라 바로 그런 좋은 덕성을 가르쳐주는 것이기에, 이런 나무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어서 사람들이 쉽게 그것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꽃을 보고 그 깊은 뜻을 우리가 알고 배우며 이를 삶에 조금이라도 구현해보는 것이리라.
[출처] 백일홍, 여름 내내 붉을 수 있는 그 기개 |작성자 동산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