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잎밥은
24절기 중 열네 번째에 해당하는 처서가 엊그제 지났다. 더위가 그친다는 의미로 이맘때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라고 했던가. 기온은 떨어질 줄 모르고 뜨거운 햇살을 비추고 있다. 글쓰기 강좌를 수강하면서 만난 이들과 인연을 이어간다. 한 달에 한 번 시간을 내어 사전에 정한 장소에 모여 자신이 쓴 글이나 읽은 책의 내용을 공유한다.
오늘은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길을 나서기로 했다. 도시 철도 입구에서 회원들을 태우고 한산한 산업 도로로 접어들었다. 목적지는 터널을 지나기 전 샛길로 들어섰다. 여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승용차 문을 여는 순간 밀려오는 열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얼굴이 달아오른다. 주차장 오른편으로 오르는 길옆에는 성인 몇 아름이 넘을듯한 소나무 한 그루가 위엄 있게 가지를 펼치고 있다. 소나무 둘레에는 앉아 쉴 수 있는 자리가 둘려 있다. 먼저 자리한 사람들이 두세 명씩 모여 사진을 찍는다.
소나무 아래 계단식 논에 연밭이 들어서 있다. 연꽃이 진 곳에는 물 조리개 모양의 연밥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연분홍 꽃은 군데군데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점심은 연잎밥이다. 식당 출입문을 향해 일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분위기가 야릇하다. 식당에 드나드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안내판이 길을 막아선다. 입구 가까이 다가가 안내문 확인을 해 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기 휴무일이다. 몇 번 찾아온 집인데 미처 챙기지 못했다. 회원들에게 맛있는 밥을 대접하겠다며 멀리까지 찾아왔는데 계획이 틀어졌다. 근처 식당을 찾아 나서는데 연잎밥 집은 보이지 않는다.
차를 몰아 마을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오늘 점심을 언제쯤 먹을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된다. 하는 수 없이 왔던 길을 거슬러 밥집을 찾아 나섰다. 처음부터 가기로 되어있는 연잎밥 집 맞은편 추어탕 집을 들어선다. 구릉지에 올라앉은 듯 창문 너머 초록이 눈에 들어오는 사방이 탁 트인 식당은 가슴을 활짝 열게 만든다. 단일 메뉴다. 주문한 음식이 식탁에 올려졌다. 향신료를 넣고 한 숟가락 입에 넣는데 국 맛이 예사롭지 않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지만, 오늘 선택한 점심밥은 오히려 흥을 돋운다. 경상도식 추어탕이다. 우거지가 듬뿍 들어간 맑은국이 전부인데 숟가락이 멈추지 않는다. 함께 자리한 회원들은 집으로 가져갈 국을 몇 개씩 포장 주문한다.
든든한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터널 옆 산자락에 자리한 카페는 주변과 어울려 자연 속 휴식처인 양 다가왔다. 건물 속 갖가지 조형물은 실물을 연상케 한다. 다양한 나무가 숲을 이루어 오밀조밀하게 꾸민 정원을 옮겨 놓은듯하다. 산책하는 길은 카페 층마다 연결되어 있다. 흙바닥에서 달아오른 열기는 냉방 장치가 있는 실내로 몸을 끌어들인다. 한바탕 둘러보는 재미는 뒷전이 되었다. 자리가 가끔 비어있는 삼 층에서 은은한 조명을 배경 삼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맛본다. 기다란 테이블이 자리한 위층은 빈자리 없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오히려 아래층이 조용해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와 가족들의 기쁨과 아픔을 풀어 놓는다. 많게는 여든을 넘긴 이와 이순의 나이 차를 불문하고 박수 소리와 한숨을 내쉬는 기운이 교차한다.
담소의 자리가 전통적인 우리의 사랑방에서 현대식 거실로 바뀌었다. 그리고 어느새 카페로 탈바꿈하였다. 차 문화를 즐기기보다 시대를 이끌어 가는 모양새를 보인다. 인생의 높낮이는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 가는 것이라 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느 집이든 마주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자신의 안녕과 가족의 행복을 기원한다.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하였던가. 도심에서 가지지 못한 부모의 정을 연밭에서 모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