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이동민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라고 했더니 택배가 왔다 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는 부리나케 안 방으로 들어가서 반바지를 긴 바지로 바꾸어 입었다. 아내는 후다닥거리는 나더러 점잖은 손님이 오는 것도 아닌데 유난을 떤다면서 못마땅하다는 투다.
금년 여름은 너무 덥다. 한낮이면 거실에 조용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아이들이 버려두고 간 옷 중에는 반바지가 여러 개다. 나는 한 번도 반바지를 산 일이 없는데도 구석구석에 반바지가 널려있다. 여름이래도 긴 바지로 잘 견뎌냈으나 금년 여름은 너무 덥다.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부부가 살다 보니 혼자서 집을 지킬 때가 많다. 나 혼자 있는데 뭐 어때, 하고는 반바지를 꺼내 입었더니 다리가 시원했다. 다리뿐 아니고 온몸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렇더라도 쓰레기를 버리러 가거나 손님이 문을 두드리면 긴 바지로 바꾸어 입고서야 문을 열었다. 이제는 반바지의 시원함에 중독되었다. 집사람과 단둘이 있을 때는 덥지 않은 아침인데도 침상에서 일어나면 반바지를 입는다.
어릴 때 시골의 어른은 아무리 더운 여름이더라도 윗도리를 벗거나 다리를 드러내고 다니는 사람을 ‘상놈’이라면서 낮추어 보았다. 젊은 사람이 파자마를 입고 집 앞을 어슬렁거렸다. 도시에서는 몰라도 시골에서는 파자마를 입는 사람이 없을 때였다. 아마도 도시물을 먹었다고 조금은 뽐내려 그랬는지 모른다. 잠옷 바람으로 돌아다닌다고 동네 어른이 ‘골목이 네 놈의 안방이냐?’ 며 호되게 꾸짖는 것을 보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모습이 나에게는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머니는 세상이 ‘망하려나’ 라는 말을 잘 했다. 남자가 아이를 안고 가고, 젊은 엄마는 뒤따라 가는 것도 나무랐다. ‘정신줄이 나간 사나(사내의 사투리로 어머니는 젊은 남자를 이렇게 불렀다.)가 어른 눈이 안 무서운지 동네 길에서 아이를 안고 가고 기집(어머니는 젊은 부인을 이렇게 말하곤 했다.)은 빈손으로 쫄랑거리면서 따라가더라고 했다. 그리고는 ‘세상이 망할려나.’ 하곤 했다. 수련의 때는 교수님이 여름이래도 넥타이까지 멘 정장 차림을 하라 했다. 복장을 단정히 하고 진료를 하는 것이 도리라고 했다. 여름날에 진료를 하면서 넥타이를 푼 것은 거의 40대 였으리라.
유난을 떤다는 집사람의 빈정거림에도 반바지를 긴 바지로 바꾸어 입는 것은, 그럴 때마다 ‘상놈’이라는 말이 뇌리에 남아 있기 때이다. 어머니가 한 말이 귓가에서 맴돌기 때문이다. 힘센 남자가 아이를 안고 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어머니는 세상이 망하기나 하는 듯이 말했다. ‘엄마, 요즘은 세상이 바뀌었어’ 내가 슬쩍 말을 건네면 화를 낸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이 지켜야 할 범절이 있단다.
김홍도가 남긴 그림에는 보리타작을 하는 일군이 허벅지가 드러나도록 바지 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웃옷까지 벗은 체 활짝 웃고 있다. 갓에 도포를 입고 장죽을 문 양반은 비스듬히 누워서 일군을 바라보고 있다. 웃음기라고는 없다. 보리타작 철이라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신발을 얌전히 벗어둔 탓에 버선을 신고 있는 발도 보인다. 얼마나 더울까?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만약에 그 양반에게 ‘더운데 옷을 좀 벗어시지요’ 라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까. 상상을 해본다. ‘상놈이나 할 짓을 나더러 하라고?’ 어머니처럼 세상이 망했다는 듯이 말할 것 같다.
길에서 만난 요즘의 젊은이들은 반바지가 아니고 속옷만큼이나 짧은 바지를 입고 다닌다. 바지만이 아니고 윗도리도 마찬가지이다. 속옷인지 겉옷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런데도 눈에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요즘 젊은이는 으레 그려니 여기고 무심코 지난다. 그러나 나만큼 나이를 든 사람이 짧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걸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다리로 눈길을 보낸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속으로 중얼거린다. ‘별로 보기 좋은 다리도 아니면서’ 젊은이에게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의 심사를 노인에게는 왜 가지는지 모르겠다.
김홍도 그림에 나오는 양반님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 ‘선비님, 너무 덥지 않습니까? 옷을 벗으시면 안 됩니까?’라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사람은 나름대로 살아가는 자기의 방식이 있지. 그건 자기가 멋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저 일꾼이라면 옷을 훌렁 벗었겠지.’
나도 반바지로 나돌아다니고 싶지만 내 멋대로 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 있었구나. 노인네의 삶은 젊은이와는 다른 방식이 있구나. 어머니처럼, ‘세상이 망하려나’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살도록 하자.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너무 재미있는 글^^잘 읽었어요~~옆에서 누군가 얘기하는 것처럼 재미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