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윤서하는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으며 창밖을 응시했다.
거리가 비어 있었다. 단순히 이른 아침이라서가 아니었다. 무언가 달랐다. 십 년 넘게 이 도시의 뒷골목과 권력의 냄새를 맡아온 그의 직감이 조용히 경보를 울렸다.
까마귀 한 마리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전선 위에 내려앉지도 않고, 그냥 지나쳤다. 그 자체가 이상했다.
'까마귀는 반드시 앉는다. 날아가는 까마귀는 무언가를 피한다는 뜻이다.'
그가 이 사무실 창가에서 밤을 보낸 이유는 하나였다. 사흘 전 익명의 의뢰인이 남긴 봉투 한 장. 안에는 사진 한 장과 쪽지 하나만 들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넓은 거실이 담겨 있었다. 호화로운 인테리어, 금빛 조명, 그러나 그 방 안을 가득 채운 것은 가구가 아니었다. 운동기구들이었다. 역기, 러닝머신, 줄줄이 늘어선 기계들. 마치 누군가가 권력의 공간을 체력 단련소로 바꿔놓은 것처럼.
쪽지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이 방의 주인을 찾아라. 그것이 전부다.」
그의 오랜 정보원, 전직 국회 보좌관 출신의 박형식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주위를 살폈다.
"요즘은 이런 자리도 조심해야 해요."
윤서하는 사진을 테이블 위에 밀어놓았다.
"이 방. 본 적 있어?"
박형식의 눈이 잠시 굳었다가 풀렸다. 그 찰나가 충분한 대답이었다.
"어디서 난 거예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깥에서 차 소리가 지나쳤다.
"윤 선생도 알잖아요. 지금 이 나라에 야당이 어디 있어요. 형식적인 이름만 남아 있지. 의석도 없고, 목소리도 없고. 여당과 위성정당이 모든 걸 채우고 있어요. 세금도, 방송도, 심지어 반대 의견이 나와야 할 자리까지."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외면해 왔다. 그것이 지금 이 도시의 병이었다.
"그 방의 주인이 그 시스템의 설계자야?"
박형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를 흘렸다.
"MIGA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어요?"
그러고는 가버렸다.
윤서하는 사무실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잠들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그는 그 방 안에 서 있었다.
실제보다 컸다. 천장은 보이지 않았고, 운동기구들은 끝없이 이어졌다. 누군가 이 기구들 하나하나를 정성껏 배치한 것이 분명했다. 마치 전시물처럼. 마치 권력을 증명하듯.
벽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엄마의 낮은 목소리. 일상의 소리였다. 그러나 그 방 안에서 들으니 이상하게 슬펐다. 화려한 겉껍데기 뒤에서 무너지고 있는 진짜 삶의 소리 같았다.
'권력은 항상 이렇게 생겼다. 자신은 넓은 방을 차지하고, 진짜 삶은 벽 너머로 밀어낸다.'
핸드폰 진동 소리에 그는 눈을 떴다. 발신자 표시 없음.
"MIGA의 뜻을 알고 싶으면 오늘 밤 11시, 국회 뒤편 골목."
전화는 끊겼다.
윤서하는 책상 위에 펼쳐놓은 자료들을 다시 훑었다. MIGA. 어디선가 본 단어였다.
검색을 거듭하던 중 그는 그날 아침 해외 뉴스 하나를 발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이란과의 합의는 무조건 항복 외에는 없다. 그러나 항복 이후, 우리는 이란을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나은 나라로 만들 것이다. MIGA — Make Iran Great Again.」
그는 기사를 읽으며 손가락을 멈췄다.
강경한 군부가 권력을 쥔 나라. 핵 개발과 반미 노선. 그러나 미국이 겨냥하는 것은 정권의 형태가 아니라 정책이라는 것. 전환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 논리 구조가 낯설지 않았다. 무너진 체제를 다시 세운다. 적을 항복시킨 뒤 손을 내민다. 파괴와 재건을 동시에 제시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이 암호였다. MIGA는 이란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사진을 다시 꺼냈다. 그 방. 권력의 공간을 운동기구로 채운 남자.
누군가 이 나라에도 같은 공식을 적용하려 하고 있었다.
골목은 어두웠다.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다 꺼졌다 반복했다.
윤서하가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기다리자, 발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였다. 오십 대 초반, 짧은 머리, 정부 배지를 달고 있지 않았지만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
"탐정이 맞죠?"
"그 방 사진을 보낸 사람이 당신이야?"
여자는 주위를 한 번 살폈다.
"저는 기획재정부 전 사무관이에요. 그 방은 현 여당 핵심 실세의 개인 공간이에요. 표면상으로는 그냥 취미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다르죠."
"뭐가 다른데?"
"거기서 모든 예산이 결정됩니다. 국가 세금 배분, 언론 지원금, 위성정당 자금. 회의록도 없고, 기록도 없고, 다 그 방 안에서 그 사람 머릿속에서 결정돼요. 나라 전체가 한 사람의 운동기구처럼 움직이는 거예요."
윤서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MIGA는?"
여자의 표정이 굳었다.
"그 사람이 꿈꾸는 그림이에요. 무너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 뒤, 자기가 다시 세우는 영웅이 되는 시나리오. 항복을 강요하고, 그 다음 손을 내밀어 재건을 약속하는 것. 트럼프가 이란에 쓰는 방식을 그대로 국내에 적용하려는 거예요."
가로등이 다시 깜빡였다.
"증거가 있어?"
여자는 코트 안쪽에서 USB 하나를 꺼냈다.
"이게 전부예요. 이걸 세상에 꺼내면, 그 방의 주인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아마 진짜 재건이 시작될 수도 있어요."
윤서하는 USB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 방의 주인을 알아냈다. 증거도 손에 쥐었다. 사건은 해결됐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너진 체제를 폭로하는 것과, 새로운 체제를 세우는 것은 다른 일이다.
강경한 자는 쉽게 무릎을 꿇지 않는다. 군부가 권력을 쥔 나라처럼, 수십 년 쌓인 구조는 하룻밤에 허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벼랑 끝에 문 하나가 있다면, 그 문을 여는 것이 탐정의 역할이었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까마귀 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이번에는 날아가지 않았다. 전선 위에 앉아 있었다.
'머무는 까마귀. 이제 피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윤서하는 USB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저널리스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길이 열리기를,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전화가 연결되는 신호음이 새벽의 공기를 가르며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