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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200130901 칠정교회 주일예배 설교
경남 산청군 단성면 창촌리 633-1
조한우 목사 010 - 8722 - 9185
누가복음 14장 1절, 7절로 14절 말씀
하늘 영광 Vs 땅의 영광
지난여름에 얼마나 더웠는지, 하여튼 여름나기에 고생들이 참 많으셨습니다.
노재덕 집사님께서는 여름 내 집 뒤에 있는 냇가 다리 밑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셨다는데, 아침에 나가시면 저녁이 될 때까지 다리 밑에 앉아서 흐르는 물에 몸을 담그고 그렇게 더위를 피하셨대요.
금년 더위는 정말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통계를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마는 몇 십 년만의 더위였다고 그러는 것 같던데, 아마 모르긴 해도 앞으로는 점점 더 더워질 것 같습니다.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이 되기 때문에 그러는 건데요, 오죽하면 설국열차 같은 영화가 나오겠어요?
자연이 파괴되면 우리 인류에게는 큰 재앙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이 자연을 잘 보전하고 다스려서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더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평안으로, 안전으로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게 해 주신 우리 하나님께 박수로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리시겠습니다.(할렐루야!)
모든 영광은 다 주님께만 돌려야 합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분봉왕 헤롯이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서 연설을 하는데, 아마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것이 대단했었나 봅니다.
백성들이 왕을 높여서 하는 말이, “임금님의 목소리는 인간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임금님의 목소리는 마치 신의 목소리와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사람이 좀 겸손해져서 ‘아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나는 부족하고 죄가 많은 인간인데, 어찌 나를 하나님께 비유하느냐? 옳지 않다!’라고 했으면 좋았을 건데, 광장에 모인 백성들이 모두 다 헤롯 왕을 찬양하고 왕이 최고라고 그러니까 그만 헤롯 왕이 교만해져서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못하고 자기가 그 영광을 받아 먹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도행전 12장 23절 말씀에 보면,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옛날에 우리가 썼던 개정성경에는 ‘충이 먹어 죽으니라!’ -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저 북한에 김일성이나 김정일이나, 지금 새로운 지도자가 된 김정은이 같은 인간들도 수만 명씩 광장에 모여서 퍼레이드를 하고 카드섹션을 하고 깃발을 흔들면서 막 울더라고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고요. 사람들은 말이죠, 누군가가 환호하고 갈채를 보내주면 그것에 빠져서 모든 영광을 자기가 받으려고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중에 매슬로라는 학자가 있는데, 인간은 누구나 칭찬을 듣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답니다.
그래서 칭찬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훨씬 더 자신감을 가지고 멋진 사회인으로 성공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칭찬받지 못하고 늘 학대받고 꾸지람 받고 자란 아이가 이 다음에 뭘 하겠어요?
마음속에 분노와 굴욕감이 가득 차 있다가 결국에는 사고를 치고 마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는 남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도 한두 번이고, 그것도 어느 정도 자기에게 합당한 칭찬이나 격려라면 모를까? 과분한 칭찬이나 격에 맞지 않게 추켜세울 때에는 알아서 처신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이건 센스예요.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1절이 배경이 되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누가복음에는 안식일 논쟁이 세 번 나옵니다.
누가복음 6장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에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훑어 먹은 얘기는 다 아시죠?
예나 지금이나 파파라치들이 있어 가지고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든지 잡아서 죽이려고 설치는 무리들이 있었는데요,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어떤 바리새인이 보고 있다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서 까먹는 것을 보고서는, 안식일에 일을 했다 이거죠.
옛날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아주 철저하게 지켰거든요.
안식일에는 일을 하면 안 되는데, 왜 예수의 제자들은 일을 하느냐 그 말입니다.
안식일을 안 지켰다는 거예요.
손으로 밀 이삭을 비벼서 까는 것도 일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남의 흉을 잘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철저한 위선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벌써 그들의 속을 다 들여다 보시고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서 도망을 다닐 때에 자기와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한 일을 성경에서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너무 너무 배가 고파서 굶어 죽게 생겼을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성전에 바쳐진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그리고 자기와 함께 사람들에게도 주어서 먹게 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이 진설병은 원래 제사장만 먹게 되어 있는 것인데, 제사장이고 뭣이고 우선 사람이 먹고 살아야 지 안식일이라고 꼼짝 않고 죽으란 말이냐?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우리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할렐루야!)
누가복음 13장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서 앓고 있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온 몸이 잔뜩 꼬부라져서 조금도 펼 수 없는 그런 병에 걸린 여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고 얼마나 불쌍하게 여기셨던지, 그 여자를 불렀습니다.
그 여자가 자기를 부르시는 예수님을 보고서는 너무나 기뻐서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안수하시고는 선포하셨습니다.“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할렐루야!)
그 여자가 예수님의 안수를 받고 나서 곧 바로 병이 나아서 꼬부라졌던 몸이 다 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때도 회당장이 예수님께 나와서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예수님,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는 건 이거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안식일엔 쉬어야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십계명을 어긴 것 아닌가요? 아니, 엿새 동안은 뭘 하고 있다가 왜 하필이면 오늘 병을 고친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유대인들을 싸잡아서 꾸짖으셨습니다.
“이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도 안식일에 집에서 기르는 소나 나귀를 풀어다가 물을 먹이지 않느냐? 안식일이라고 짐승들을 굶기겠느냐? 하물며,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풀어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예수님의 한 마디에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 넣으려던 사람들은 얼굴이 새빨개져 가지고 도망을 가 버리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들을 보면서 기뻐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누가복음에 나오는 세 번째 안식일 논쟁 중에 마지막입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백성들의 장로들은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언제나 껄끄러운 거예요.
자기들처럼 형식적이고, 가식적이고, 겉으로만 그런 척하는 그런 외식하는 신앙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의 신앙은 진실하셨고, 참신하셨고, 꾸밈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보기에는 아니꼽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배도 아팠을 것이고, 더 나가서는 자기들의 위선이 드러나게 될까봐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든지 없앨 궁리만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 예수님이 어떤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하시러 가셨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파파라치들이 파리떼처럼 또 몰려 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하필이면 거기에 수종병 든 사람이 한 사람이 있었던 겁니다.
전에 쓰던 개역성경에는 고창병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었는데, 고창병이 아니라 수종병이 맞습니다.
온몸에 물이 차서 몸이 퉁퉁 붓는 병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눈치가 없으셨겠어요?
‘오늘이 안식일인데, 예수가 저 수종병 든 환자를 그냥 지나치실 리는 없을 것이고,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자!’
여기 저기 숨어 있는 몰래 카메라를 예수님은 벌써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아예 공개 토의에 부쳐버리셨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한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당신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니 잘 알겠군요.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까? 합당하지 않은 일입니까?”
그랬더니 아무도 대답을 못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수종병 든 사람 불러다가 고쳐 서 돌려 보내시고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건져주지 않겠습니까?”
자기 집 막내 아들이 우물에 빠져서 불과 1, 2분 뒤에는 꼴깍꼴깍 죽을 건데, ‘오늘은 안식일이니까 오늘은 일을 해서는 안 되지! 그러니까 대여섯 시간만 더 기다려라! 안식일이 ‘땡’하고 끝나면 그때 꺼내주마!’라고 말을 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소가 당장 우물에 빠졌는데, 안식일이라고 안 꺼내주겠어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이 입도 뻥긋 못했습니다.
지금도 많습니다.
함정을 파 놓고서는 어떻게든지 모함하고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도처에 수두룩하게 깔려 있어요.
신천지 이단 사람들도 있고요, 또 여러 가지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서 음해하려는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율법에 젖어서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율법주의자가 되고 마는 거예요.
나는 옳은데, 남이 하는 일들은 사사건건 눈엣가시처럼 보여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경계하시면서 오늘 이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특별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허영심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처럼 겸손해야 되는 거예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할렐루야!
누가복음 14장 7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은 허영심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겸손하라는 말씀이예요. 분수를 알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식사를 하러 가셔서 보시니까, 거기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왔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청함을 받고 온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보니까, 죄다가 한 결 같이 서로 높은 자리에만 앉으려고 하는 거예요.
유대인들의 잔치 상을 보면 ‘ㄷ’자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ㄷ’자의 한 가운데 앉는 사람이 제일 높은 자리에 앉는 거예요.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지위에 따라서 순서대로 앉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상석에 앉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어쩌면 그 문제 때문에 서로 언성이 높아졌거나, 어쩌면 서로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을 벌이려는 사람도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보다 못해서 한 마디 하신 거 아니겠어요?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고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얼마나 창피한 일이예요?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저 맨 끝자리에 가서 앉아있었다고 하면, 주인이 와서 그럴 것 아니겠어요?
‘아니, 왜 여기에 앉아계세요? 어서 저 위로 올라오시죠!’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소개를 하지 않겠어요?
‘여기 계신 이 분은 보통 분이 아니십니다. 여기 계신 이 분은 이런 이런 분이십니다.’라고 소개를 하면서 높여주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할렐루야!)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것이 글쎄 모르겠어요. 겸손이 구원하고는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때 가서 우리 주님께 여쭈어봐야 알겠지만, 아무튼 구원도 겸손한 자들이 받게 되지 않겠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저 무조건 양보하고, 무조건 겸손하고, 무조건 낮은 자리에 앉고!(할렐루야!) - 이것이 센스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그래야 되요.
그런데 그게 낮은 자리에 있을 때에는 누가 그러라고 그러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지만,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 가 봅니다.
우리 같이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나, 여러분들처럼 가진 것 없고,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가서 앉을 자리가 뻔한데 말이죠.
어느 정도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이 생기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목이 뻣뻣해지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되어서 안하무인격이 되고 맙니다.
가끔 공식적인 자리에 가서 보면, 인사를 하면서 일어서지도 앉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청하면 떡하니 앉아서 등을 뒤로 젖히고서 손을 내밀어서 아주 거만하게 악수를 합니다.
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아이고, 혹시라도 내가 저러지 않아서 참 다행이구나. 선생님, 계속 그러고 계세요. 그렇게 사시면 결국 바리새인 따라서 땡땡으로 가게 될 텐데… 그냥 계속 쭉 그렇게 사세요!’ 그러고 말아요.
따라해 봅시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아멘?)
7절부터 14절까지 말씀은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말씀이었고요, 그 다음에 12절부터 14절 말씀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어떤 자세로 잔치를 베풀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데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보통 생각에는 그렇잖아요?
내가 한번 사면 너도 한번 사야 되는 것이고, 내가 한 번 얻어 먹었으면 또 언젠가는 내가 또 한 번 대접을 해야 되는 것이고 말이죠.
그러나 대접할 때에는 받을 생각하고 대접하지 말라는 말씀이예요.
그래서 대접할 때에는 대접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대접하지 말고, 아예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자기들은 얻어먹고서도 갚을 능력이 없으니까 그걸 누가 대신 갚아주신다고요? -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내가 한 번 샀으니까, 너도 한 번 사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복을 받아요? 못 받아요?
복을 받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 땅에서 다 받아먹었는데, 어디 가서 복을 받을 거예요? 베풀고 싶은 마음이 있거들랑 누구에게 베풀라고요?“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라! 그러면 그 사람들이 그 은혜를 갚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상급이 하나님께로부터 너에게 내려 오리라!” 할렐루야!
얼마나 좋아요? 복 받기 쉬워요? 어려워요? 복 받기 정말 쉽습니다.
베풀고 받을 생각만 안 하면 되는 거예요.
요즘 이제 선선해지면서 결혼 시즌에 접어들었습니다.
해마다 우리나라는 봄 가을로 결혼식이 많이 있는데요, 결혼식에 가면 축의금이라는 것을 내잖아요? 장례식에도 가면 꼭 부의금이라는 걸 냅니다.
그러면 자기가 낸 것을 꼭 적어두더라고요. 그걸 보고 치부장이라고 그러나요?
나중에 자기가 부조금 낸 것은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자기가 받은 걸 기록해 두는 건, 글쎄요… 그건 잘 하는 일 같아요.
그런데 부의금 내고 적어두고, 축의금 내고 적어두고, 그러다가 나중에 ‘나는 네 일에 가서 부조금도 내고 그랬데, 너는 왜 우리 집 일에 안 왔느냐?’라고 하면서 섭섭해 하고 그러는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부조를 해도 적어 두지도 않아요.
내 생각으로는 집안 경조사 때에도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안 받아도 될 만큼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적어도 ‘내가 부조했으니 너도 해야지!’라는 생각은 안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복을 받으려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 집에서는 십년 전에 만원을 했는데, 난 3만원 했다. 억울하다!
요새 3만원짜리 봉투가 어딨어요? 최하가 5만원이고 쫌 안다 싶으면 10만원이고 그런데 말이죠.
잔치를 베풀고도 받을 생각 안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13절 말씀에,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사랑하는 칠정교회 성도 여러분!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대가를 바라고 삽니다.
‘내가 이만큼 해 주었으니까, 나에게도 이만큼은 보답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그럽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지금까지 수십 년을 예수를 믿었으니까, 나에게도 뭔 보답이 좀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느냐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사람들에게만 섭섭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 섭섭해 하고 하나님께 섭섭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우리 주님께서는 아무 대가도 원하시지 않으시고 우리들을 위하여서 몸 버려 피 흘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들에게 뭘 달라고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셨어요.
우리들에게서 받을 것이 없으셨던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땅의 영광을 구하시겠습니까? 하늘의 영광을 구하시겠습니까?
땅의 영광은 잠시 잠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영광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다가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귀한 말씀으로 영원한 하늘 축복을 체험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