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축복의 조건 (삼하 12:1-14) /서정호목사
따뜻한 손
늘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다니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강의를 할 때나 길을 걸을 때나 환자를 진찰할 때나 그는 늘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는데 그가 겨울이면 따뜻한 물주머니를 주머니에 넣어 만지작거려서 손을 덥히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선생님은 왜 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십니까?"하고 물었더니 의사는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나의 환자들은 대부분 암 환자들입니다. 몸도 마음도 어찌 보면 추위를 많이 타지요. 따뜻한 의사의 손은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늘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환자를 배려하는 의사의 사랑이 서늘해진 계절의 문턱에서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구원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미도 축복 받은 우리들이 몸도 마음도 영혼도 차가운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사랑의 손, 구원의 손을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LA 같은 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풍경 가운데 하나가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차가 서 있으면 흑인들이 다가와서는 시키지도 않은 차 앞 유리를 물걸레로 닦아줍니다. 그리고는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닦지 말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아니하고 유리를 닦습니다. 그리고는 닦은 값을 내라는 것입니다. 얼마라고는 말을 안 합니다만 대개 일불 정도 주면 고마워하면서 이들이 하는 인사가 있습니다. "God bless you!" 우리 식으로 변역을 한다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하는 인사말입니다.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복을 빌고 있습니다. 거지로부터 복 많이 받으라는 축복 기원을 받으면 기분이 야릇합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는 앞으로 하나님 앞에 축복받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현재 나에게 주어진 것을 축복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먼 훗날 나에게 축복해 주실 것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나에게 축복하신 것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도 살면서 현재 나에게 축복을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미래의 축복에 너무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래에 어떤 축복을 나에게 주실까? 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앞으로 나에게 주실 축복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축복을 누리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나누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축복을 단지 미래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사건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 이미 주어진 축복에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말할 수 없이 많은 복, 셀 수 없이 많은 복을 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복을 누리면서 기쁨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받을 복을 생각하기보다는 오늘 나에게 주신 복을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축복 받은 내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가장 큰 축복은 나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 주신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만약에 아직도 내가 구원받지 못해서 복음의 빛 가운데 살지 못하고 세상의 길을 걸어가고 있거나, 세상에서 방황하는 인생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내가 얼마나 축복 받은 사람인지 모릅니다. 앞으로 하나님께 받을 축복도 있겠지만 내가 오늘도 구원받은 백성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축복의 기초 위에 또 어떤 축복을 받고 살고 있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복 받기를 원하는데 복은 어떤 사람이 받을 수가 있습니까? 진정한 축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남에게도 복을 나누어주는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빼앗기는 것은 손해 보는 일이요, 바보 같은 인생이지만, 남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은 참된 축복이요, 지도자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빼앗기는 삶이 아닌 기쁨으로 베푸는 인생
우리는 우리 자녀가 억울하게 빼앗기는 삶이 아니라 기쁨으로 베푸는 인생이 되도록 기도하고 양육해야 합니다. 어느 성도는 자기 자녀들에게 항상 도시락을 두 개씩 싸서 학교에 보낸다고 합니다. 한 개는 자신이 먹고 다른 한 개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결식아동에게 주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남에게 베풀고 주는 습관을 훈련시키는 부모는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을 누구보다 많이 이끌어 내는 부모입니다.
어느 분의 간증입니다. 언젠가 우산을 가지고 학교에 간 자기 아이가 비를 흠뻑 맞고 왔습니다. 이유인즉 자기 친구가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자기보다 집이 더 멀다고 그에게 우산을 빌려주고 집이 가까운 자신은 비를 맞고 왔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혀서 야단을 치고 싶었지만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보람을 느끼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 딸아이 앞에 오히려 자기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주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이 나옵니다. 이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일개 목동에서 일약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고 복 받은 사람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받은 하나님의 축복은 가문의 번영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의 자녀의 수가 무려 19명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 가문이 번영했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 사람의 신앙은 그 가정 전체의 축복과 가문의 축복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십계명에도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고 하였습니다. 또 다윗이 받은 복은 건강의 복입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건강이란 대단히 중요한 것만은 틀림없는데 이 건강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물질적인 번영의 복도 받았습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을 볼 수 있는 사건은 삼상 24장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을 할 때에 다윗이 굴속에 숨어 있는데 사울이 그 굴에 들어와서 그의 발을 가렸습니다. 이 때 안쪽에 있던 다윗이 가만히 접근하여 그의 옷자락을 베어 왔습니다. 사실 사울 왕을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얼마든지 죽일 수가 있었는데 다윗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삼상 24:10)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를 자기는 결코 해칠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사람을 대적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의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내려 주십니다.
사랑의 사람
다윗은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그는 자기 자녀를 지극히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에게는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역의 칼을 뽑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다윗이 아들의 칼을 피하여 왕궁을 버리고 광야로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죽이려고 칼을 뽑아들고 달려드는 그 아들 압살롬이 죽었을 때 다윗은 얼마나 슬퍼하며 울었는지 모릅니다.
의리의 사람
다윗은 의리의 사나이었습니다. 친구 요나단이 죽은 후에 그 친구의 아들 무비보셋을 마치 자기의 친자식처럼 보살펴 주고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윗은 원수까지도 사랑한 사람입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괴롭히며 저주까지 하였지만 그를 사랑하여 살려 주었습니다.
겸손의 사람
다윗은 본문에서 나단의 책망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겸손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첩경이며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독일의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는 연주를 할 때마다 청중 가운데 세계 최고의 음악가가 앉아서 듣고 있다는 자세로 임했다고 합니다. 최고의 음악가에게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만큼 겸손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연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덕에 바흐는 오늘날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며 최고의 음악가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바흐의 자세는 모든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모델이 됩니다. 업무를 할 때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발휘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대충 했다가는 엄청난 망신과 함께 따끔한 질책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한 발 더 나아가 현재 내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내려다보신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야말로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는 성경말씀을 온전히 실천하는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일한다는 생각을 하면 절대적으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세로 임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바흐처럼 그 분야의 최고의 사람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우리 힘으로 올라가려고 발버둥 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겸손하게 일할 때 서서히 높임을 받게 되는 것은 성경의 원리인 동시에 현실에서 언제나 확인할 수 있는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회개의 사람
다윗은 나단의 책망을 듣고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뉘우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철저한 회개는 방향을 바꾸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방향이 바뀌고 삶의 자세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인생철학이 바뀝니다. 다윗은 다시는 그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회개한 사람입니다.
순종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이 천막인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여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드리려고 마음을 결정하고 준비를 다했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를 않았습니다. 이때 다윗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철저한 준비만 갖추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 솔로몬이 쉽게 성전을 아름답게 지어 봉헌할 수가 있었습니다. 순종은 바로 복 받는 제일 우선순위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이 오늘의 아브라함을 낳았고, 이삭을 낳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하면 언제나 손해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은 망합니다.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주님을 의지하여 다윗과 같은 삶을 살 때 우리도 다윗이 누렸던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독수리의 노래, 타조의 노래
많은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 하나님에게 할 의무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독수리나 타조가 노래했다는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커다란 새나, 커다란 짐승은 노래를 안 합니다. 그러나 카나리아가 노래하는 것 들어봤습니까? 또 종달새나 자그마한 굴뚝새가 노래하는 것 들어보셨지요?
작은 새들이 아름답게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명예나 지위가 너무 높아져서 덩치가 크고 재물이 많고 학식이 많은 사람들, 비대해져 있는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 내기를 좋아하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 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높은 사람들이나 돈이 많은 부자들은 하나님 찬양을 별로 안합니다. 우리가 높아지고 일이 많아지고 바빠지면 하나님 찬양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그러나 새도 작은 새가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늘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박한 사람들이 진정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은 마지못해 뒤따라가는 패잔병이 되어서는 안 되고 무엇이든 앞서 이끄는 선봉장이 되어야 합니다. 행복은 추구하고 노력하는 만큼 얻어집니다. 결국 사람의 태도 및 자세와 상당히 관련이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심지학자들은 행복은 환경적 여건과는 10% 정도만 관련이 있고, 나머지 90%는 본인의 마음 및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행복은 절대로 환경에 있지 않고 사람 됨됨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명성이나 부는 대충 세워도 좋지만 성품이나 자세만은 확실히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성공보다 성품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자기의 책임 의식을 항상 느껴야 합니다. 책임 의식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은 머리에 두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나안의 축복을 소원하기 전에 사람이 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참되고 책임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축복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받는 은혜가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은혜를 받았든지 이것을 잘 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이러한 때 일수록 없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 가지고 감사하게 여기고 기쁨으로 여기며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인생을 즐기려면 자신을 돌아보고 그동안 나에게서 즐거움을 빼앗아간 이기심, 분노, 두려움 세 가지 적을 물리쳐야 하고, 슬프기 때문에 기뻐할 수 없다는 핑계를 '슬픔을 경험하지 않고는 기쁨을 경험할 수 없다'고 하며 고난을 즐기는 법을 가지며 살고 마음 밭을 가꾸고, 자족함을 배우고. 작은 일 가운데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인생을 즐기고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 가진 것이 있고, 또한 갖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현재 자신에게 없는 것을 구비하려는 노력은 매우 소중합니다. 돈, 지식, 지혜, 건강, 의식 수준 등에 있어서, 더 나은 상태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자신이 성장해 가지만 이 때 꼭 유념해야 할 일은 현재 자신에게 있는 것을 잘 활용하고 누리는 일입니다. 그럴 때 만족과 감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빠진 채, 없는 것을 채우려는 노력만으로 인생을 살게 되면, 그 인생은 매우 고단하게 되고 만족과 감사가 없이, 늘 결핍감으로 허덕이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성장을 위해 부족한 면을 채우려 노력하는가 하면, 한편 현재 있는 것을 잘 활용하고 누리는 것 이것이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자신에게 현재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현재 자신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현재 가진 것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기도의 응답도 좋지만 그 보다도 기도 자체가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기도 많이 하시는 분은 기도를 통해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누려왔고 앞으로도 누릴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주인공
가장 아끼는 작품이 어떤 작품인가 하는 질문에 어느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부터 쓸 작품입니다”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은 오늘과 함께 펼쳐질 시간이요, 오늘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노력 없이 좌절하거나 내일로만 미루는 일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내가 헛되이 보내는 오늘은 어제 죽은 이의 갈망하는 내일이었다.” 우리는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따라서 오늘을 값지게 가꿔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조금 부족하다 해서 자학하거나 늦었다고 포기하는 사람은 오늘을 살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제가 지금부터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너무 늦지 않았겠습니까?”하고 스스로 절망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어느 시점을 두고 늦었다고 운운합니까? 우리의 인생에서 오늘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가장 중요하고 귀한 시간은 바로 지금부터니까 말입니다.
이미 받은 축복을 감사하면서 앞으로 전개해나가시는 우리를 향해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미래적 축복을 위해 축복을 나누면서 누리시기 바랍니다. 받은 축복을 누리는 것은 나누는데 있습니다. 구원의 축복을 누리시는 지름길은 구원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새생명 잔치를 앞두고 전교인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태신자를 위해 전도에 진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모두가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큰 강물도 작은 물방울로부터 시작되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세계도 갑자기 변화되는 일은 없고, 세계의 변화도 우리의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큰 변화는 잃어버린 영혼 한 사람을 구하고 상심한 영혼을 위로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사명감을 가지고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서 정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