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담배 이야기◑
담배가 언제 이 땅에 들어왔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인조실록>에서는 광해군의 치세인 1616년~1621년 경이라고 말한다
남쪽에서 온 풀이라 해서 남초 (南草)라고 하고
남령초 (南靈草) 혹은 왜초 (倭草) 라고도 했다
이외에도 담파, 담박고, 담파고라고 했는데
이 식물이 조선 곳곳으로 퍼지는 데는 20년이 채 안 걸렸다
임금과 신분 높은 어르신은 물론
장돌뱅이, 농민, 여자들까지 담배에 푹 빠져 버렸다
폐해는 분명 심각했는데, 인조와 영조 시대에
관리들의 불량한 근무 태도를 비판하면서 나온 말이
“관리들은 관청에서 담배만 피우며 놀다 돌아간다” 라는 것이었다
널리 유행할수록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지는 법
흡연 반대자들은 담배의 각종 폐해를 주장했다
이를테면 곡식을 심어야 할 밭에 담배를 심어
밥은 없어도 담배는 있는 웃지못할 상황이 있고
남녀노소가 서로
담배를 태우다 보니 풍기가 문란해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게다가 아낙네들이
음식을 만들다가 담뱃재를 떨어뜨리는 일도 있었다
“다 된 밥에 재 빠트린다” 라는 속담에서 말하는
“재”가 장작불 재가 아니라 담뱃재를 가르켜 한 말인 것이다
숙종 때는 나라의 제사 때 올리는 과자가
담뱃진 투성이인 게 발각되어 왕이 몹시 화를 내기도 했다
한편 담배 예찬론자로는 골초인 장유가 있었고
이옥은 담배의 백과사전인 (연경)을 썼으며,
대학자 정약용도 담배를 즐기며 이런 詩를 적었다
담배가 새로 나왔으니
귀양살이 하는 손님에게 제일 좋은 친구구나
가늘게 빨아들이면 향기가 물씬하고
슬며시 내뱉으면 실처럼 하늘거리는구나
나그네 잠자리가 언제나 편하지 못하니
봄날이 지루하기만 하다
예나 지금이나 담배는
온갖 해악으로 지탄받는 동시에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인조실록>에서는 담배를
“몸에 나쁜 것을 알고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어 요망한 풀이라 일컬었다” 라고 하니
요즘 금연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십분 동감할 말이다
목이 마를 때 한 방울의 물은 단 이슬 같지만
취한 듯 잔을 더하는 것은 마시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명심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