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역대 24,18-22; 로마 5,1-5; 마태 10,17-22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대전가톨릭대학교 기숙사에서 대성당으로 향하는 복도에 김대건 신부님의 초상이 걸려 있습니다. 신학생 때에 거기를 지나다닐 때, 속으로 늘 기도했습니다. 당신 닮은 사제되도록 빌어달라고.
2009년부터 신학교 교수로 살면서 같은 복도를 지나다니면서,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닮으려니까 너무 겁이 났습니다. 스물여섯 살에 돌아가셨어요. 김대건 신부님의 생애에 대해 많이 아시겠지만,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열여섯의 나이에 동료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7개월 동안 걸어서 마카오에 도착하셨고, 8년 8개월 뒤 한국 최초의 사제로 서품되셨습니다. 보름 뒤 배를 타고 한국으로 입국을 시도하셨다가 배가 표류하여 한 달 만에 제주도에 도착하셨고, 다시 보름 뒤에 강경 나바위에 도착하셨습니다. 다섯 달의 사목 생활 뒤에 체포되셨습니다. 백일 뒤 새남터에서 군문효수 형으로 순교하셨습니다. ‘군문 효수’란 목을 베어 군문 앞에 매단다는 뜻입니다.
절두산 성지에 가면 김대건 신부님의 상이 있는데요, 발이 닳아서 번쩍번쩍 빛납니다. 수험생 엄마들이 김대건 신부님 발 만지시며 기도하신데요. 음… 과연 김대건 신부님은 한국에서 거의 최초로 서양식 교육을 받으신 유학파이시고, 공부도 잘하셨지요. 그런데 그것 외에 다른 것도 신부님 본받게 해 달라고 기도 할 수 있을지… 좀 의문입니다.
우선 유학 가시는데 7개월을 걸어서 가셨구요. 도착하시자마자 마카오에서 발생한 민란으로 인해 필리핀에서 세 달간 피난 생활도 하셔야 했습니다. 입국과 피난의 과정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함께 갔던 동료 최방제 신학생은 열병으로 사망했습니다. 2년 뒤에 또다시 민란이 일어 다니 마닐라로 7개월간 피신하셨습니다. 다 배로 다니셨죠. 조선 입국을 위해 네 차례 탐색을 하셨고, 그 중 두 차례 입국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을 유학 보냈다는 죄목이 발각되어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거지꼴로 탁발을 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지만, 당신의 입국 사실이 알려지면 또 다른 박해가 일어날 것이 염려되어 처음 오셨을 때는 어머니도 만나지 못하고 되돌아가셨습니다. 두 번째 오셨을 때는 어머니와 며칠 상봉을 하셨는데 그 후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셨습니다.
주교님께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부탁을 드립니다. “저의 어머니 우르술라를 주교님께 부탁드립니다. 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떨어져 있던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만 만나보았을 뿐인데 또다시 갑작스럽게 잃고 말았습니다. 슬픔에 잠긴 저의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시기를 주교님께 간절히 바랍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하느님을 열심히 믿으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그 보상을 주시리라고 기대했습니다. 상선벌악의 하느님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믿음과 희망은 대단한 것이지만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르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래로 순교자들의 기도는 바뀌었습니다. 이제 순교의 순간에 누구를 가장 본받아야 하는지 목표가 명확해졌습니다. 용서가 정말 자신의 것이 되는 순간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가장 닮게 되는 순간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박해를 받을 때에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박해를 면할 것이다’가 아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박해는 받을 것이고, 오해는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교는 박해를 각오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해부터인가 신학교 복도를 지나며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닮은 사제 되게 해 주소서.” 그리고 또 하나의 기도를 덧붙였습니다. “신학생들이 모두 김대건 신부님을 닮은 사제 되게 해 주소서.”
그들이 모두 박해받게 해 주소서. 어려움에 처하게 해 주소서. 그 어려움 한 가운데에 하느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본받게 해 주소서. 용감히 자신의 피를 흘리게 해 주소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주게 해 주소서. 돌아올 몫 때문이 아니라, 바로 당신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게 해 주소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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