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세력에서 구원하라 (잠 24:11-12)
11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이 이 시간에 “악의 세력에서 구원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가리킵니다. 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의 근원은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합니다. 지도층의 이런 정신이 있었기에 로마라고 하는 강력한 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비극은 권력자, 지식인, 가진 자들이 있지만 이기주의에 빠져 이 거룩한 책임을 망각하거나 그 힘을 이용하여 도리어 악을 행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악인 당사자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거니와 또 악인들에게 당할 때 구원하지 않고 방관한다면 방관하는 자 역시 악인과 똑같이 그 행위대로 보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했습니다.
먼저, 본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11절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여기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는 불의한 자에게 억울하게 죽음의 위협에 처해진 자를 의미합니다. 살육 당하게 된 자 역시 남으로부터 압제를 당하는 연약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본 절은 자신의 생활을 돌아볼 뿐 아니라 선한 싸움을 해서라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이 문구에는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중국에서 두 살배기 여아가 길에서 두 번이나 차에 치이고 바퀴에 깔렸지만 행인이 18명이나 못 본 척 무심히 지나쳐버린 사건이 알려지면서 중국인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지금 많은 중국인들은 다른 사람을 도우려다가 오히려 곤경에 처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기 때문에 보고도 도우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예로 도로에 쓰러져 있던 한 노인을 도와주었더니 그 노인이 도운 사람의 손을 놓지 않고 외쳐대 도리어 고소를 당하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자랑할 것 없는 나라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전화로 신고해서 도와야지 직접 돕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에 지갑이 떨어져 있다고 주워서 전달하는 시대도 지났습니다.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범죄자를 기본으로 사회법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일반인은 살기가 매우 불편합니다.
그러나 방법은 달라도 도우라는 성경 말씀은 변치 않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유는 귀찮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통사고가 나고 목격자들이 증인으로 불려 다니거나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모른다고 회피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그들에게서 구하는 일을 회피하는 것은 그들만큼 악하다. 그래서 12절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지혜와 성령의 감동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거나 우리에게 관계된 이웃 사회 나라 민족 세계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2. 좁게 생각하면 자기 신앙적 책임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롬8:6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했고, 13절에는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그랬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육신의 생각이 우리 심령을 죽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는 자는 멀리 있는 것보다 바로 자기가 더 시험에 빠뜨립니다.
막9:42에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하셨는데 최고의 피해자는 자기 심령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세상 욕심 버리지 못하고 신앙생활에 게을러 날마다 자기 심령을 실족시키는 자는 바로 자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자맷돌 목에 매어 깊은 바다에 빠지듯 깊은 시험의 수렁에 빠지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연자 맷돌 매지 않아도 자동으로 매고 있습니다. 신령한 차원에서는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육신의 소욕과 생각에서 자기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후10:5에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했습니다.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의 피의 호소는 지금도 우리에게서 들리고 있습니다. 나의 육신적인 생각이 내 영혼을 죽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왕의 횡포 역시 지금도 우리 안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지 않으려는 우리 육신적인 교만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사1:5-6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 라고 탄식했습니다.
3. 또한 영적지체를 위한 책임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유1:23에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여기 불은 지옥불이 아니라 불 같은 시험 혹은 이단이 장차 들어갈 지옥 불을 생각하면서 경고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단에 빠진 자들을 포기하지 말고 구해야 합니다. 이단 교주는 성령훼방죄를 중히 졌고 이미 화인을 맞은 자이므로 말을 듣지 않겠지만 말씀을 몰라 미혹에 빠진 자들 중에는 하나님의 택한 자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는 것은 믿는다면서 아직도 세상에 끌려 다니는 성도가 있다면 말씀과 기도로 도우라는 말입니다. 나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 그리고 주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을 향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사탄과 세상에 끌려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거기서 그들을 구원해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먼저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고전9:16에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했습니다.
겔3:17-18에 에스겔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 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
독일의 히틀러를 반대하여 정치적인 투쟁을 하다가 8년이나 감옥 생활을 한 사람은 독일의 고백교회 지도자 마틴 리뮬러 목사님이십니다. 이 분은 “이 나라를 건지려면 히틀러가 죽어야한다. 저 히틀러는 적그리스도다. 2차 대전을 일으킨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8년 동안 감옥에 갇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는 히틀러에게 원한을 품고 많은 고생을 하다가 2차 대전이 끝난 후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원수를 갚아야지 생각했으나 히틀러는 이미 죽었습니다. 마틴 리뮬러는 '전쟁 책임 고백서'를 쓰면서 전쟁 책임은 히틀러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책 출판 후 그는 7번이나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문을 받고 있는 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너는 어찌하여 예수를 믿지 않고 큰 죄를 범했는고?”그러자 죄인의 대답이 “하나님,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어서 가까이 가 보니 히틀러였습니다.
비록 꿈이었지만 “히틀러가 저렇게 된 것은 바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전도하지 않아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라고 생각하고 회개한 후 책의 내용을 바꿨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전쟁의 책임은 전도하지 않은 내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전도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그 영혼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후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복 주신 원리나 전도의 원리나 같습니다. 사랑하면 번성합니다. 사랑하면 땅에 충만해집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진정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면 전도할 말도 다 생각납니다.
그래서 계2:4-5에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말씀에서 사랑이 곧 전도의 방법이라, 부흥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기도하고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자기 혹은 타인 혹은 영육 간에 끌려가는 그들을 위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 가지고 목숨 걸고 악의 세력에게서 구원해 내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