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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7 : 1~18 )
1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이었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비라 그는 무사이어서 길르앗과 바산을 얻었으므로
ㅇ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이었고 - 이 구절이 구태여 여기에 왜 기록되었는지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2가지 견해가 있다. 즉 (1)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각각 별개의 지파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는 견해, (2) 에브라임이 실제 장자가 아닌데도 야곱으로부터 장자권을 부여받아(창 48:14-20) 먼저 기업을 받았지만, 실제로 장자는 므낫세라는 점을 말해주기 위해서라는 견해(pulpit Commentary) 등 이다. 이 두 견해중 후자의 견해가 더 일리가있다.
ㅇ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비라 - 여기서 '마길'(Machir)은 므낫세 지파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대상 7:14-19에 기록된 족보에 의하면, 마길의 모친 곧 므낫세의 처는 아람여인이었다. 후일 가나안 정복시 이들 마길의 후손들은 바산과 길르앗 지역을 할당받았다(민 32:40). 그리고 '길르앗'(Gilead)은 므낫세의 손자이자 마길의 아들로서, 부친 마길의 가계와 더불어 길르앗 가계를 이룸으로써 므낫세 지파를 형성한 자이다. 그런데 본래 '길르앗'이 아람지역과 가나안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 이름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마 그의 이름은 아람 여인인 조모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ㅇ그는 무사이어서 길르앗과 바산을 얻었으므로 - 여기서 마길은 마길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길르앗과 바산을 차지한 자는 마길 혼자가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무사(武士)는 히브리어로 '이쉬 밀하마'로서, 직역하면 '전쟁의 사람'(a man of war; KJV, RSV)이다. 모세 오경에는 마길 자손이 무사라고 한 구절이 없지만, 민 32:39에 그들이 길르앗을 쳐서 아모리 족속을 정벌할 정도로 용맹했음이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여호수아서 저자가 이말을 한 것은 민 32:39에 근거하였던 것 같다.
ㅇ길르앗과 바산을 얻었으므로 - 므낫세의 지파중 마길의 후손들이 길르앗과 바산을 쳐서 그곳에 살던 거민들을 쫓아내고 그곳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얻은 사실에 대해서는 13:29-31;민 32:39, 40;신 3:13-15에 보다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즉 마길 가족과 길르앗 가족으로 형성된 므낫세 반(半) 지파는 이미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았던 것이다(13:29-31).
2 므낫세의 남은 자손을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이니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남 자손 이며
ㅇ므낫세의 남은 자손 - 요단 동편에서 길르앗과 바산 땅을 기업으로 얻은 므낫세 반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반(半) 지파를 가리킨다. 이들은 도합 6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요단 서편의 가나안 중부 지역에서 기업을 얻었다. 이와같이 한 지파가 둘로 나뉘어 두 곳을 기업으로 얻은 지파는 므낫세 지파뿐이다.
ㅇ제비를 뽑았는데 - 제비 뽑는 방식에 대해서는 14:2 주석을 참조하라.
ㅇ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스미다의 자손이니 - 므낫세의 남은 자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는데, 이들 자손은 길르앗의 여섯 아들 곧 아비에셀, 헬렉, 아스리엘, 세겜, 헤벧, 스미다의 자손인 6가족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므낫세 지파는 도합 3대(代)에 걸친 8가족으로 구성되었다. 즉 1대는 므낫세의 아들인 마길 가족이며, 2대는 마길의 아들인 길르앗 가족이고, 3대는 길르앗의 여섯 아들들의 가족이다. 이중 마길 가족과 길르앗 가족은 요단 동편의 바산과 길르앗 지역을 이미 기업으로 얻었다(13:29-31). 따라서 이제 6가족만이 남았던 것이다(민 26:29-34).
3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 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ㅇ헤벧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 - 슬로브핫의 아버지는 헤벧, 그 아버지는 길르앗, 그 아버지는 마길, 그 아버지는 므낫세이기 때문에 이와같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민 27:1에도 이와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순서는 여기와는 반대로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벧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ㅇ아들이없고 딸 뿐이요 - 길르앗의 6아들 중 5번째 아들인 헤벧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었고 딸만 5명있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관례대로 한다면 슬로브핫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그 이름이 끊김은 물론 기업도 받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의 적극적인 요구로 여성 상속법이라는 새로운 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민 27:1-11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곳을 참조하라.
4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방백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기업을 그 아비 형제 중에서 주므로
ㅇ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방백들 - 여기서 방백은 곧 이스라엘 각 지파의 족장들로서, 요단 서편의 기업 분배에 참여한 10지파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이들의 명단은 민 34:16-29에 나타나 있다). 따라서 기업 분배는 종교적 대표자인 아론의 아들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정치적 대표자인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그리고 각 지파의 대표자인 10명의 족장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14:1 주석 참조.
ㅇ여호와의 명령을 따라...기업을...주므로 - 여기에는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방백들 앞에 나아가 과거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민 27:6-11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그들의 기업을 요구했고, 또한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족장들은 그들의 이 요구에 따라 그녀들에게도 기업을 주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기업 상속권은 딸에게는 없고 아들에게만 있었다. 즉 딸은 시집을 가면 다른 지파, 다른 가계에 속하게 되므로 기업을 상속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의 가계에 아들이 없기 때문에 기업을 얻지 못하게 될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비의 이름을 지파 내에서 보존코자 하는 충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에게도 기업을 줄 것을 요구하게 되었고(민 27:1-4), 결국 허락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업을 분배받는 대신 한가지 조건이 부여되었다. 그 조건은 그들이 반드시 자기 지파 내에서만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민 36:6-9). 그 이유는 분배받은 기업의 땅을 같은 지파 내에서 계속 보존시키기 위함이었다.
5 요단 동편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ㅇ요단 동편 길르앗과 바산 외에 - 요단 동편의 길르앗과 바산은 마길 가족과 길르앗 가족으로 형성된 므낫세 반(半)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어졌다(13:29-31). 그러나 그외 남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에서 그 기업이 주어졌다.
ㅇ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 이를 직역하면 '므낫세에게 할당된 몫이 열 분깃으로 나뉘었으니'이다. 즉 헤벧을 제외한 므낫세의 남자 자손은 다섯이고(2절), 또 헤벧의 아들인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섯이기 때문에 합치면 모두 열 분깃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슬로브핫의 다섯 딸은 슬로브핫이 얻을 한 기업을 잇는것이기 때문에, 다섯 딸의 기업 전체는 다른 남자 자손들 중의 하나의 기업과 동일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6 므낫세의 여손들이 그 남 자손 중에서 기업을 얻은 까닭이었으며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에게 속하였더라
ㅇ므낫세의 여손들이...기업을 얻은 까닭이었으며 - 5절에서 므낫세 반(半) 지파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즉 다섯 남손(男孫;2절)뿐 만 아니라, 다섯 여손(女孫)들도 기업을 받았으므로 도합 열 분깃이 되었다는 것이다.
7 므낫세의 경계는 아셀에서부터 세겜 앞 믹므닷에 미치고 우편으로 가서 엔답부아 거민의 땅에 이르나니
ㅇ아셀 - 아셀 지파에 속한 지역이 아니라, 므낫세 지파 남부 경계선에 위치한 지역이다. 오놈(Onom)에 따르면 이곳은 오늘날 야실(Yasir) 성읍으로, 나불루스(Nabulus)에서 베이산(Beisan)에 이르는 도로상에 위치한 거대한 폐허지라고 한다(Keil & Delizsch, Vol. 2. p. 180).
ㅇ세겜 - 팔레스틴의 주산맥인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있는 한 성읍으로 예루살렘 북쪽 약 58km 지점 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일찍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하란을 떠나 이곳에 도착했을 때 단을 쌓았고(창 12:1-7), 야곱의 딸 디나가 욕을 당한 결과 '디나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며(창 34장), 또한 요셉의 뼈가 이곳에 장사되었다(수 24:32). 그리고 가나안 땅 분배시에는 처음에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수 17:7-9), 나중에 레위 지파에게 할당되어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수 20:7). 또한 그후에 이스라엘 열지파가 유다에게서 분리하여 여로보암을 이곳에서 왕으로 삼았으며(왕상 12:1-25), 후에 사마리아 지역의 수도가 되었다(요 4:5). 오늘날의 지명은 '나불루스'(Nabulus)이다.
ㅇ믹므닷 - '믹므다'로도 표기된다. 16:6 주석을 참조하라.
ㅇ엔답부아 - '답부아'(Tappuah, 능금, 사과)로도 표기되는데, 특별히 '엔답부아'는 므낫세 지파에게 속한 곳임을 암시한다. 16:8 주석 참조.
8 답부아 땅은 므낫세에게 속하였으되 므낫세 경계에 있는 답부아 읍은 에브라임 자손에게 속하였으며
ㅇ요단 동편 땅에서 므낫세 지파는 르우벤과 갓 지파의 땅보다 더 넓은 땅을 할당받은 바 있다(13:8-31). 그런데 요단 서편에서 나머지 므낫세 지파에게 배당된 땅도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된 기업의 2배 가까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두번째 인구 조사에 의하면 에브라임 지파는 32,500명, 므낫세 지파는 52,700명으로 계수되었다(민 26:34-37). 물른 인구비례에 따라 기업을 분배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민 26:53, 54; 33:54), 그래도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된 땅은 인구에 비해 너무 넓었다. 따라서 형평(衡平)의 원칙에 따라 므낫세 지파의 기업 중에는 '답부아' 성읍과 같이 에브라임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들도 있었다(9절;16:9).
9 또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 그 시내 남편에 이르나니 므낫세의 성읍 중에 이 성읍들은 에브라임에게 속하였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그 시내 북편이요 그 끝은 바다며
ㅇ또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그 시내 북편이요 그 끝은 바다며 - '가나 시내'(Brook Kanah)는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나누는 경계선의 일부로 그 남쪽은 에브라임 지파가, 그 북쪽은 므낫세 지파가 각각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가나 시내 남쪽에는 원래 므낫세 지파의 기업에 속한 성읍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다시 에브라임 지파에게 속한 것으로 재조정되었다(16:9). 다시 말해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가 가나 시내 위로 약간 올라와 원래 므낫세 지파의 기업이었던 일부 성읍들이 에브라임 지파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절인 10절에 보다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한편 여기서 '바다'는 '지중해'를 가리킨다.
10 그 남편은 에브라임에 속하였고 북편은 므낫세에 속하였고 바다가 그 경계가 되었으며 그들의 땅의 북은 아셀에 미쳤고 동은 잇사갈에 미쳤으며
ㅇ북은 아셀에 미쳤고 동은 잇사갈에 미쳤으며 - 아셀 지파의 기업은 19:24-31에 기록되어 있고, 잇사갈 지파의 기업은 19:17-23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므낫세 지파의 북쪽 경계선은 아셀 지파와 접하고 있었으며, 동쪽 경계선은 잇사갈 지파와 접하고 있었다. 보다 상세히 말하자면 지중해 방향의 북서쪽 일부 가아셀 지파와 접하며, 요단 강 방향의 북쪽 및 동쪽 일부, 즉 므낫세 지파와 북동쪽이 잇사갈 지파와 접하고 있었다. 17:13 주석 지도를 참조하라.
11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곧 벧 스안과 그 향리와 이블르암과 그 향리와 돌의 거민과 그 향리요 또 엔돌 거민과 그 향리와 다아낙 거민과 그 향리와 므깃도 거민과 그 향리들 세 높은 곳이라
ㅇ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 잇사갈 지파의 기업 내 뿐만 아니라 아셀 지파의 기업 안에도 므낫세 지파에 속한 성읍들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아셀과 잇사갈 지파의 기업 분배는 므낫세 지파의 지경이 확정된 연후에야 이루어졌다(19:17-31). 그러므로 본 기록은 시간 순서에 따른 기록이 아니며, 단지 므낫세 지파의 기업을 전달하기 위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앞선 기록(16:9)에서, 우리는 므낫세 지파의 기업 중에도 에브라임 지파의 성읍이 있음을 살펴보았는데, 이제는 아셀과 잇사갈 지파의 기업 중에도 므낫세 지파의 성읍이 있음을 본다. 이처럼 이스라엘 각 지파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지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과 필요에 따라 시간을 두고 상호 재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은 서로 연합하여 상부 상조해야 할 공동체임을 보여 준다.
ㅇ벧 스안 - '조용한 장소', '안전한 집'이라는 뜻으로 야룻(Jalud) 게곡에 있는 성읍이며 중요한 요새이다. 이곳은 이스르엘 골짜기 계곡과 요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성읍은 잇사갈 지파의 경내에 있었으나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된 곳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 거민들이 철 병거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16절), 이 성읍 서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이곳은 특히 길보아 전투에서 패한후 사울의 시체가 이곳 성읍의 벽에 매어달린 곳으로 유명하다(삼상 31:10;삼하 21:12). 그렇지만 훗날에 정복되어 솔로몬의 12관장 가운데 한 사람인 바아나에 의해 관할받았다(왕상 4:12). 구약 시대에는 '벧산', 또는 '벱산'으로 표기되기도 했으며(삼상 31:10-13;삼하 21:12-14), 신약 시대에는 '스키토폴리스'(Scythopolis)라고 명명되었다. 오늘날의 지명은 '베이산'(Beisan)이다.
ㅇ이블르암 - 벧스안, 다아낙, 돌, 므깃도 등의 도시와 함께 에스드렐론 평야와 이스르엘 계곡을 통과하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가나안의 동과 서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지리적으로는 잇사갈과 아셀 지파의 경내에 속하지만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원주민들은 정복당하지 않고 게속 남아 있었다. 한편 이곳은 '빌르암'으로 불리기도 한다(대상 6:70). 이블르암에 있어서 특기할 만한 사건은 유다 왕 예후에 의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왕하 9:27). 이곳은 현재의 '길벱 벧라메'(Khirbet belameh) 지역으로 추정된다(Keil).
ㅇ돌 - 가이사랴에서 북쪽으로 약 12.8km 지점의 갈멜 산 남쪽에 위치해 있다. 팔레스틴 해안을 따라 자주빛 물감의 원료가 되는 조개가 많았기 때문에 아주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해 있었다. 오늘날 '톨투라'(Tortura)로 추정된다. 11:2 주석을 참조하라.
ㅇ엔돌 - 시 83:9, 10에 따르면 기손(Kishon) 시내 부근으로 다볼 산 남쪽 약 6.5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므깃도(Megiddo) 전투지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또한 이곳에서 바락(Barak)은 시스라(Sisera)와 야빈(Jabin)을 패퇴시켰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사울 왕의 군대가 이곳 부근에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이다(삼상 29:1). 당시 사울은 최후의 전황(戰況)이 어찌될지 몰라 이곳 엔돌의 신접한 여인의 도움을 구하기도 하였다(삼상 28:7). 오늘날 이곳은 '엔돌'(Endor)이란 곳으로, 여전히 그 이름이 남아 있다.
ㅇ다아낙 - 이스르엘 계곡 남쪽에 있으며 샤론 평야에서 내륙을 이어주는 해안 길인 '비아 마리스'(Via Maris)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의 지명은 '타아낙'(Taanak)이다. 12:21 주석 참조.
ㅇ므깃도 - 애굽으로부터 다메섹으로 이어지는 주요 대상로(隊商路)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레윤'(Lejun)으로 추정된다. 12:21 주석 참조.
ㅇ세 높은 곳 - 산지(山地)에 위치하고 있는 세 성읍 곧 엔돌, 다아낙, 므깃도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벧스안, 이블르암, 돌은 평지에 위치하고 있었다(Fay, Lias).
12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ㅇ므낫세 자손이...쫓아내지 못하매 - 에브라임 지파도 그들의 기업에 속한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16:10). 이러한것은 가나안 거민을 반드시 진멸시키라는, 신 7:1-5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한 범죄행위였다. 왜냐하면 각 지파는 이미 그들에게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이제 믿음으로 용감히 정복하여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만 신앙적 나태에 빠져 현실의 안일만을 추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ㅇ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거하였더니 - 여기서 '결심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알'은 '적극적으로 일에 착수하다', '감히...하다'의 뜻으로, 가나안인들이 필사적으로 그들의 땅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려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므낫세 지파가 안일과 나태에 빠져있을 때 그들은 더욱더 그들의 삶의 터전을 사수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향후 올무와 덫에 걸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23:13).
13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ㅇ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 흔히 학자들은 이때를 이스라엘 역사의 전성시대인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시대로 이해하고 있다(왕상 9:15, 16). 즉 이 시대에 이르러서야 가나안 정복이 실제적으로 완전히 성취되게 된 것이다.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ㅇ요셉 자손 -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지파를 가리킨다. 이에 대해서는 17절에 분명히 설명되어 있다.
ㅇ큰 민족이 되었거늘 - 여기서 '큰'은 수적인 많음 뿐만 아니라, 능력의 탁월함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요셉 자손, 곧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들 중 그 자부심이 대단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후일 사사 시대에 기드온과 입다의 행동에 에브라임 지파가 당당히 항의하는 그 위세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삿 8:1-3;
12:1-6). 결국 이러한 의식은 솔로몬 사후 남북 분열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에브라임 지파는 북왕국 이스라엘 10지파의 주도 지파가 되었다(삼하 2:1-11;19:41-43). 따라서 왕국 분열 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은 에브라임 지파를 북 왕국 이스라엘의 10지파와 종종 동일시하여 명명하기도 했다(사 7:2;11:13;렘 7:15
;31:9;겔 37:16;호 7:8 등).
ㅇ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주심은 어찜이니이까 - 여기서 요셉 자손이 기업 분배 문제를 놓고 여호수아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불만의 내용은 자신들은 두 지파인데도(16:1 주석 참조) 왜 다른 한 지파씩과 동일하게 한 제비, 한 분깃의 기업만을 받게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일견(一見) 그들의 이러한 불만은 그럴듯한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불만은 지나친 욕심에서 기인하고 있음이 곧 드러나게 된다. 즉 모세 시대에 모압 평지에서 행한 제 2차 인구 조사에 따르면(민 26:51 주석의 도표를 참조하라), 므낫세 지파의 인구는 52,700명이었고, 에브라임 지파의 인구는 32,500명에 불과했다. 그중 므낫세 지파의 반(half)은 요단 동편 땅에서 이미 넓은 기업을 분배받은 터였으므로(13:29-31), 실제 요단 서편에서 분배받을 요셉 자손의 인구 수는 도합 60,0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숫자는 유다 지파의 76,500명, 단 지파의 64,400명, 잇사갈 지파의 64,300명, 심지어 스불론 지파의 60,500명에 비교해도 결코 많지 않은 숫자였다. 그러나 요셉 자손이 분배받은 땅의 넓이는 그들 지파들 보다도 훨씬 넓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요셉 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요단 서편의 중심부로서 비록 산지가 있다하나 그리 높지 않았으며, 땅은 가장 비옥한 양질의 옥토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산술적 논리에 근거한 요셉 자손의 이러한 불만은 지나친 욕심에서 나온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Keil & Delitzsch, Vol. 2. p. 182-183). 한편 여기서 한 제비 한 분깃이라는 말은 '제비'(고랄)를 한번 뽑아, 그 결과 측정되어 분베된 기업 곧 '분깃'(헤벧)을 가리킨다.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찐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ㅇ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 요셉 자손들이 부당하게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그들을 일방적으로 꾸짖지 않고 오히려 타이르고 권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여호수아의 자세에서 유능한 지도자로서의 그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ㅇ에브라임 산지 - 11:16, 21에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 산지'와 동일한 산지이다. 11:16 주석을 참조하라.
ㅇ브리스 사람 -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부분과 9:1-2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 부분을 참조하라.
ㅇ르바임 사람 - 12:4 주석 참조.
ㅇ개척하라 - 18절에서 다시 한번 반복되는 이 말은 히브리어로 '베레타'인데, 그 뜻은 '나무를 자르다'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삼림(森林)을 개간하여 초지로 만들라' 또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16 요셉 자손이 가로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 스안과 그 향리에 거하는 자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ㅇ요셉 자손이 가로되 - 요셉 자손의 두 지파는 여호수아의 올바른 권고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더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변명을 하고 있다. 즉 그들이 생각할때 에브라임 산지는 별로 쓸모없을 것으로 판단하였고, 또한 비옥한 이스르엘 골짜기는 철 병거로 무장한 가나안 거민들 때문에 차지하기를 두려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요셉 자손들의 무기력한 자세는 그들의 조상인 요셉과는 신앙적으로 퍽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ㅇ벧 스안과 그 향리 - '벧 스안'(Bethshean)에 대해서는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그리고 '향리'(鄕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노트'는 직역하면 '딸들'(daughters)이란 뜻인데, 즉 이는 주요 성읍 주변에 형성된 요새화되지 않은 촌락을 가리킨다.
ㅇ이스르엘 골짜기 - 에스드렐론(Esdrelon) 평야로 알려지고 있는 이 골짜기는 오늘날에는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지만 당시에는 그곳 전체가 비옥하였다(Von Raumer). 위치상 동쪽으로는 길보아 산, 서쪽으로는 갈릴리 고지대, 남쪽으로는 갈멜 산지와 에브라임 산지로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갈릴리에 미친다(Keil & Delitzsch, op. cti.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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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철병거가 있나이다 - 당시 벧 스안에서 므깃도에 이르는 가나안 북부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가나안 족속들은 이미 철병거를 갖고 있었다(11:4). 따라서 아직 청동기 문화권 속에서 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위세에 눌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나타나신바,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으로 무장하였다면, 조금도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의 '철병거'(iron chariots)는 바퀴예 날이 선 철제 제품의 철병거는 아니다. 그러한 본격적인 철병거는 고레스(Cyrus)시대 이후로 근동 지역에 도입되었기 때문이다(Wilkinson). 여기서는 단지 목재로 짜여진 전쟁용 병거에다 철을 몇 군데 덧입혀 씌운 것을 가리킨다(Ibid).
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일러 가로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찌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ㅇ네가 능히 그를 퐈아내리라 -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들의 비신앙적 요구를 다시 한번 권면과 격려로써 응답해 주었다. 즉 여호수아는 그들 지파의 크고 강함을 십분 인정하면서, 그렇기에 그들이 기필코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었던 것이다. 사실 여호수아가 보기에는, 비록 가나안 거민들이 아무리 철병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그들 지파에게 있기만 하다면 능히 그들을 진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의 숱한 전쟁을 통해 체득한 생생한 산 경험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의 요구에 떳떳이 신앙의 권면으로 일관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