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중 구속·뇌물·특혜대출 줄줄이 비상근 명예직인데 실권은 막강 연 수천억 농지비, 회장 손아귀에 이재명 대통령, 농협 겨눠 작심발언
그래픽=Gemini 생성 이미지
사법당국이 연이어 농협을 들여다보고 있다. 회장 개인 수사와 회사 시스템 수사 두 갈래로 동시 사법 당국의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13일에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농협중앙회 본관을 압수수색했다. 이튿날인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농협 정상화를 직접 주문했다. 농협의 사법리스크는 다른 금융지주사와 다르게 거버넌스에 관련이 깊다는 특징이 있다. /편집자주
지난 13일 농협중앙회 본관 압수수색은 임직원 변호사비 3억2000만원 공금 대납 사건의 강제수사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본인도 별건으로 1억원 뇌물 수수 혐의 피의자 신분이다.
회장 자리에 앉은 사람이 사법 수사 대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8년 이후 농협중앙회장은 7명이 거쳐갔고 그 가운데 6명이 임기 중 또는 퇴임 후 형사 처벌을 받거나 사법 수사 대상에 올랐다. 직접 형사 처벌을 면한 회장은 24대 이성희 한 명뿐이다.
◇ 일곱 차례 반복된 사법리스크 패턴
19일 농협 및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회장 자리에 누가 앉느냐가 바뀌어도 사법 수사가 따라붙는 패턴은 30년 동안 끊기지 않았다.
한호선 14·15대 회장(1988~1994)은 비자금 의혹으로 1994년 임기 중 구속됐다. 원철희 16·17대 회장(1994~1999)도 임기 종료 후 회장 재임 시절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돼 2003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그 사이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됐던 국회의원직도 잃었다.
정대근 18·19·20대 회장(1999~2007)은 더 무거운 사례였다. 2005년 양재동 농협 부지를 현대자동차에 매각하면서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로 2007년 11월 30일 대법원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1300만원이 확정됐고 같은 날 농협법에 따라 회장직을 잃었다.
같은 기간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세종캐피탈 측으로부터 50억원을 받은 혐의는 2008년 별건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수사했다. 세종증권은 현재 NH투자증권의 전신이다. 농협이 금융그룹으로 확장하는 핵심 인수합병 거래에 회장 개인의 뇌물이 얽혀 있었다.
2010년대 이후 사건의 성격은 달라졌지만 패턴은 이어졌다.
최원병 21·22대 회장(2007~2016)은 특혜대출 의혹으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본인은 형사 처벌을 면했지만 측근 25명이 납품 대가로 뇌물·특혜를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병원 23대 회장(2016~2019)은 선거 과정에서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임기 중 불구속 기소됐고 임기 종료 후인 2021년 벌금 150만원이 확정돼 당선무효 처분 효력이 발생했다.
처벌을 면한 이성희 24대 회장 한 명을 건너뛰면 다시 강호동 현 25대 회장의 1억원 뇌물 피의자 신분으로 이어진다.
◇ 비상근 명예직이라며 실제 권한은 막강
업계에서는 회장이 바뀌어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를 농협법 자체에서 찾는다. 농협법이 농협중앙회장을 비상근 명예직으로 규정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곱힌다. 비상근 명예직이라고 하지만 실제 권한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회장은 이사회 의장으로서 주요 의사결정을 주재하고 농협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는 농협중앙회 출신 비상임이사와 농협중앙회 측 사외이사가 참여한다. 회장 영향력이 자회사 인사에 직접 미친다는 의미다.
자리는 별도의 사적 보수 수단도 만든다. 강 회장은 농민신문사 회장(상근)을 겸직하며 연 3억원대 보수를 별도로 받는다.
농협 명칭을 사용하는 영리법인이 농협중앙회에 매년 납부하는 농지비(농업지원사업비) 운용에도 회장 영향력이 작용한다. 2026년 농협법 개정으로 농지비 부과율 상한이 매출의 2.5%에서 3.0%로 오르면 농협은행만 연 6000억원대를 부담한다.
이처럼 농협 자회사가 번 돈이 매년 수천억원씩 회장의 가용 자원으로 흘러간다. 비상근 명예직이라는 법문 규정과 실제 권한 사이의 간극이 강 회장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1988년 이래 누적된 구조라는 건 정부 합동감사반도 지적하고 있다.
회장직 권한이 큰 만큼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선거 비용도 커지고 그 비용이 비위로 이어지는 구조가 매번 나타나는 구조도 보인다.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위탁선거법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하지만 공직선거가 아니어서 후보 선거비용이 공개되지 않는다. 2024년 1월 강 회장이 당선된 25대 선거의 선관위 집계 행정비용은 약 3000만원이었지만 후보들이 실제로 쓴 비용은 별개라는 게 농협 안팎의 공통된 인식이다.
농업협동조합법의 공소시효 6개월 특례 조항도 이 구조를 떠받친다.
외부감사 위원으로 농식품부 특별감사에 참여한 하승수 변호사는 지난 1월 8일 정부 발표 자리에서 "농협 선거는 '돈을 불법적으로 써도 공소시효 6개월만 지나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돈이 많이 들어가는 선거이다 보니 자금 조달을 위해 비위나 선거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자리를 나눠주는 행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강 회장의 1억원 뇌물 수수 의혹이 2024년 1월 선거 전후의 일이지만 경찰 수사가 1년 이상 지나 본격화된 데에도 이 특례 조항이 있다.
◇ 시중지주 비교해도 거버넌스 문제 뚜렷…정부·국회 동시 정조준
반면 시중 4대 금융지주 회장의 사법리스크는 양상이 다르다. 최근 크고 작은 일로 다른 금융지주 회장들도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는 일이 있지만, 모두 회장 본인이 직접 뇌물 수수나 회사 공금 유용 혐의로 임기 중 피의자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농협은 1988년 이후 일곱 명 회장 가운데 여섯 명이 직접 사법 수사를 받은 패턴이 확인된다. 시중 금융지주에서는 찾기 힘든 사례다.
이에 정부는 지난 1월 농식품부·국무조정실·금융위·금감원이 참여하는 범정부 합동감사체계를 구축했고 3월 11일 첫 당정협의에서 1단계 농협 개혁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농협중앙회장 선출 방식 전환이다. 현행 조합장 1110명이 참여하는 직선제를 2028년 차기 회장 선거부터 중복 조합원을 제외한 187만명 조합원이 1인 1표로 참여하는 직선제로 바꾼다.
차기 회장 임기는 현행 4년에서 3년으로 줄고 2031년부터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와 동시에 실시된다. 범농협 통합 감사기구(가칭 농협감사위원회) 신설, 중앙회장의 지주·자회사 부당 영향력 행사 금지 원칙 명문화, 농민신문사 등 타 직위 겸직 금지, 인사추천위원회 외부위원 비중 확대도 포함됐다.
농협개혁 추진단은 경제사업 활성화, 조합·조합원 제도, 농협 지배구조 3개 분과를 구성해 6월까지 분과별 논의를 거쳐 2단계 개혁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농협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국민적인 공감대가 확보된 일이다.
지난 4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조합원 94.5%와 일반 국민 95.1%가 농협 개혁에 찬성했다. 임직원 비위 문제 해결을 위해 농협 개혁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조합원 55.1%, 일반 국민 73%였다.
이재명 대통령도 한마디 보탰다.
이 대통령은 2025년 12월 19일 금융위·금감원 업무보고에서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서 자기들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면서 계속 지배권을 행사한다"며 "돌아가면서 계속 은행장 했다가, 회장 했다가 10~20년 해먹고 그러는데 대책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시중지주 전반을 겨눈 발언으로 알려졌지만 회장 권한 구조로 보면 농협이 그 비판의 가장 분명한 사례라는 시각이 정부 안팎에 있다.
이어 이번 압수수색 다음 날인 지난 14일 이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농협을 직접 정조준했다. 이 대통령은 "농업의 근간을 지탱하고 있는 농협의 정상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조합원 주권이라는 관점에서 지배 구조를 조속하게 개선하고, 민주적 통제 강화 등 정상화 조치 역시 차질 없이 신속하게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중지주 일반을 향했던 12월 19일 발언이 다섯 달 만에 농협 단독 정조준으로 좁혀진 셈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현재 윤준병·문금주·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 전종덕 진보당 의원이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농협법 개정안을 앞다퉈 발의해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1988년 이래 일곱 차례 반복된 농협중앙회장의 사법 수사가 강호동 회장 임기에서 멈출 수 있을지는 이번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와 다음 회장 선거 구도에 따라 가늠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