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과 공 동 체 이 야 기
2010-09
소 유 냐? 존 재 냐?
박병민 목사(새터공동체)
겨울을 이기고 다가드는 봄이 새색시처럼 얌전하고 아담하다면, 여름을 보내고 온 가을은 깔끔을 떠는 조촐함과 푸른 하늘이 가져다주는 청량함이다. 두세 달 사이에 지나간 올해의 여름은 매우 무더웠고, 자주 내리는 비 때문에 습하게 보내야만했던 지리한날들이었다. 그리고 해안 지방이라든가, 중북부 지방에서는 커다란 태풍과 물난리를 치러내야만 했다. 이런 길고 어려운 터널을 빠져나온 우리들에게, 그래서 가을은 더더욱 산뜻하다는 말을 자아내게 한다. 한들한들 부는 가을바람과 함께 파란 하늘과 드넓은 푸른 저 바다를 바라볼 때, 산뜻하다는 말 그 이상의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살아가는 많은 날들 가운데에서 산뜻한 것과 상쾌하고 가분가분하게 지내는 개운함이 얼마나 되는가? 아니면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한없이 늘어진 채 마치 와불(臥佛)에 가까울 정도로 누울 듯한 생활을 하고 있는 때가 많지는 않은가? 그 전에도 이야기 했듯이 건강(健康)하다고 말할 때, 그 건(健)이라는 글자는 사람(人)이 곧게 세워진(建) 모습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아침에 기상(起床)하여 높은 하늘을 보며 살아갈 때 더더욱 희망이 있다. 그러다보면 넘어져서 겨우 지탱해가며 살아가던 사람도 어느 순간에 기사회생(起死回生) 하는 삶에 이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을 다른 곳으로 이끌자면 일어서서있는 건강(健康)한 사람들은 몸의 부자유로 인해서 앞이 가로막혀있는 말 그대로 장애인(障碍人)들의 장애물을 치워가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산다는 말의 그 인류생활(人類生活)을 이루어가는, 바로 그 사람들의 본연의 모습이 된다.
사람들의 마음은 아홉을 가지게 되면, 그것도 부족해서 하나를 더 가져서 열개를 채우고 싶어 한다고 말들을 한다. 성서도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장면 속에서 그런 모습은 여실히 보여지고 있다(열왕기상 21:1-29). 그런데 중세시대의 플라톤은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한 다섯 가지의 조건을 앞에서 말한 그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외모,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절반 밖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남과 힘을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정도의 체력,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정도만 박수치는 말솜씨 등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볼 때 플라톤이 제시한 행복의 조건 다섯 가지의 공통된 모습은 “부족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하게 지나치면 오히려 미치지 못하는 것 보다 더욱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성서에서도 바울 선생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말을 하였다(빌립보서 4:11-12).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제목의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생존 양식을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의 두 가지로 구분하여 말하고 있는데, 존재에 바탕을 둔 사회를 인간 중심의 사회로, 소유에 바탕을 둔 사회를 사물 중심의 사회로 정의를 내린다. 이 책에서 나와 세계의 관계는 소유 및 점유의 관계인데, 나 자신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나 물건을 내 소유물로 만들기를 원한다. 따라서 ‘나는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나다’라는 비인간적인 관계가 나타난다. 결국 소유 양식에 있어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그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돈, 사회적 지위, 가정, 자식 등을 일종의 소유물로서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제도나 규범, 물건 등의 피조물에 복종하게 되며, 그 복종에 의해 우리는 소외된다. 따라서 그는 말하기를 개인의 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의 변화까지 실현되어야만 진정한 새로운 사회의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새로운 사회는 바로 존재 양식의 사회를 말하는데, 그 사회란 물질적인 소유와 권력, 탐욕, 질투, 폭력, 낭비적인 소비 등이 지양되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 가운데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그런 세상을 의미 한다. 성서도 같은 얘기로 말을 한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 12:15).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법정스님도 무소유를 말했다. 그것에 대해서 어느 사람은 말하기를, 그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는 소유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쏠리어 떨쳐내지 못하는 그 집착을 버리라는 뜻의 얘기란다. 교회에서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른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 듯이......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 몸을 버리셨던 것처럼,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그저 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 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오! 하나님, 나의 이 이중적인 생활 속에서의 허덕이는 모습. 그렇지만 다른 곳에 자기의 것을 한 아름 가득하게 안겨다주는, 이 가을의 나무열매들을 보고 배우게 하소서.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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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이은주 김복순 지명수 권희숙
채경일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2010년 8월 27일에 신평교회 최영득 장로님께서(충만육묘) 가을배추 육묘를 주셔서 튼튼영어대전동구 선생님들께서(연월순 지사장님) 밭에 심어주셨고, 소식지 발송작업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금성교회.충전교회.최선희.수영교회.정무래.최영애.라홍채.박종만.진영택.이은주.최성재.김기홍.양오석.대덕교회.공주원로원교회.사랑의쌀나눔공동체(장진성).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8인).신영숙외3인.진명구.유성반석교회.이원교회.주식회사EG(이광형).성남교회(한영선).동춘교회4남선교회.동춘교회6여전도회.임정순.남부중앙교회(13인).살림교회(박상용외23인).대한적십자사금산군추부봉사회(강정숙.성삼순외2인.3회).대성교회여전도회(3인).영도교회8여전도회(김영권).신평반점(문창준).농협중앙회금산지부(2인).산돌교회(최태준).대덕교회(이중삼.백종학).그리스도의집(옹인숙).한상익.동춘교회221목장(김봉숙).오정교회7남선교회와7여전도회(4인).금영훈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