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막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막 3: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막 3: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막 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막 3: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막 3: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예수님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12제자를 세우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측근에 두신 제자는 3명이었다. 시몬과 야고보와 요한이었다. 예수님은 그 세 명에게 특별한 이름을 지어 부르셨다.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지어 부르셨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이고, 보아너게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반석과 우레는 견고한 힘을 의미한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의 특성을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우리도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그것에 대하여 이름을 짓는다. 이름은 자기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지어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특성을 알아봐 주셨던 것이다.
우레는 순 우리나라 말이다. 빛을 발하는 모양을 번개라고 하고, 그 번개의 소리를 천둥 또는 우레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땅에 가까이 다가오면 벼락이나 낙뢰라고 한다. 번개는 대기 중의 질소를 땅으로 돌려보내어 땅을 기름지게 한다.
어제 그제 금요일에는 하루 종일 날씨가 변덕을 부렸다. 특히 번개가 몇 번 씩이나 쳐서 컨테이너 2층에 앉아서 근무하던 나를 흔들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번쩍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전기가 다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번쩍하고 전기가 나간 후에 2초 정도 있다가 지진이 일어나는 것 처럼 땅이 흔들리면서 우르릉 쾅 우르릉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하늘에서 뭔가가 쏟아지는 듯 강한 바람이 몰아치며 컨테이너를 흔들었다. 2층에서 근무하다가 컨테이너가 아래로 떨어져서 죽지 싶어서 내려가려고 했지만 무서워서 발이 안떨어져서 의자에 그대로 않아서 긴장하고 있었다. 우레 소리가 그친 후에 내려 가서 두꺼비집을 열고 차단기를 올렸다. 다시 컨테이너 안에 불이 들어왔다. 이젠 아무 일 없겠지 싶어서 앉아 있는데, 다시 하늘에서 번쩍 하더니 전기가 나갔다. 2초 정도 있다가 다시 땅이 진동하면서 우르릉 쾅 하는 우레 소리가 심장을 때렸다. 나는 이러다 떨어져 죽겠다 싶어서 1층으로 내려가려고 했지만 발이 안 떨어져서 그대로 앉아 있었다. 소리가 잦아진 후에 다시 1층으로 내려가 두꺼비집을 열고 차단기를 올렸다. 다시 올라와서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번개가 또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의식적으로 2초를 기다렸다. 2초가 지나자 어김없이 우레 소리가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 다행히 두꺼비집의 차단기는 내려가지 않았다. 그 후로 몇 번 번개가 더 쳤지만 강도가 약한 번개라서 그럴까 전기는 나가지 않았다. 우레는 번개의 소리이다. 우레가 땅에 닿으면 낙뢰, 벼락이 된다. 다행히 벼락을 맞지는 않았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우레 소리를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소리로 인식했다. 십계명을 받을 때도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의 성격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받은 야고보와 요한은 겉으로는 외형적으로는 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요한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도 못하게 수줍음을 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글에서 자신을 ‘그의 사랑하는 제자’라는 정도로 표현했다. 요한의 글은 섬세하고 부드러워 여성의 글을 연상시킨다.
안드레는 무릎이 낙타무릎을 닮았다고 전해진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다 사람들이 보는 길거리에 서서 기도하였지만 그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곳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기 때문에 무릎이 낙타무릎처럼 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용기 있는 제자였다. 요한과 야고보는 겉으로는 약해 보였지만 복음을 전할 때는 우레 소리와 같이 우렁차고 담대한 사람들이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된 것은, 예수님이 그들의 강한 면을 알아 주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별의 별 일을 다 당하게 된다. 크고 작은 고난과 환난이 끊임없이 닥치는 것이 인생이다.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은 많은 환난 속에서 사역했던 사람들이다. 마음이 약했던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고서도 회개하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은 배신했지만 다시 돌아왔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근기가 부족하다 싶은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잘 배우고 영리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는 것을 지겨워하고 짜증을 내고 정신줄을 놓는다. 이런 사람을 가르치기는 정말 힘들다. 조금 영리함이 덜하다고 해도 변함없는 끈기로 배워내는 사람은 칭찬을 받는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식사하시는 곳에 와서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믿지 않는 약한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그리고 믿음으로 무장하고 내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막 16: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 16: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마음이 강했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사랑하셨다. 우리는 어떤 독(이단 사설)을 마셔도 끄떡없을 만큼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는 용사인가?
우리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약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베드로처럼 강하고 요한과 야고보처럼 우렁찬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