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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내 인생은 하나님의 차명계좌>의 줄거리:
타인의 이름으로 만든 은행계좌인 차명계좌에는 주로 기업의 비자금이나 주먹세계의 검은 돈, 사채업자의 돈, 탈세를 목적으로 하는 돈 등 떳떳하지 못한 돈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에는 불법이지요. 그런데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들 각자의 인생은 모두 하나님의 차명계좌입니다. 그러니까 지구에는 75억 개의 차명계좌가 있는 샘이지요. 인생의 최대 오류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의 차명계좌인 내 인생에 금융실명제를 적용한 것입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차명계좌
(시편 127:1~5)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오늘 말씀 중심으로 <내 인생은 하나님의 차명계좌>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차명계좌’
차명계좌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은행계좌입니다. 통장 명의자와 실제 이용자의 이름이 다른 셈입니다. 차명계좌에는 성격상 주로 기업의 비자금, 뒷골목 주먹세계의 검은 돈, 사채업자의 돈, 탈세를 목적으로 하는 돈 등의 돈들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1993년에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이후로는 차명계좌를 만드는 것이 불법이었습니다. 금융실명제는 모든 금융기관과의 거래에 있어서 실명을 사용하게 한 제도입니다. 이후 차명계좌 규제는 더욱 강화되어서 명의자와 실소유자 간의 관계에 불문하고 법적으로 재산소유권을 명의자의 것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즉 타인의 이름으로 은행계좌를 열어서 재산을 보관하면, 입금되는 순간 그 재산은 명의자의 것으로 취급된다는 것입니다. 실소유주가 차명계좌에 재산을 넣었다가 구제받기 위해서는 별도의 복잡한 법적절차와 규제를 거쳐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은 내 이름으로 진행되기에 내 은행 계좌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일평생 ‘내 인생’이라는 이름의 계좌를 채워 넣기 위해서 노력하고 수고하며 살아갑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습니다. 또한 취미생활도 합니다.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고 재테크를 하고 집을 사고 차를 사는 모든 일들이 인생을 채워 넣는 내용물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에 의해 죽을 날이 정해져 있습니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단지 불치병에 걸린 분들은 어림짐작으로나마 죽는 날을 가늠해보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살아갈 뿐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분들보다 우리가 먼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시한부로 정해진 인생에 시간을 사용하여 이런저런 사건과 일들을 만나고 해결하면서 인생의 계좌를 채워나갑니다. 그런데 아담의 후예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에 큰 오류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본래 하나님의 차명계좌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의 문제, 인생의 구간, 인생의 과제에 대해서 호불호를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내 인생이지만 내가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판단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빌려서 내 인생의 계좌를 채우시고 관리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나를 내보내신 것입니다. 이 계좌에는 내 이름이 붙어있을 뿐 그 모든 내용물의 실소유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일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름만 빌려드릴 뿐인데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내용물을 채우기도 하시고 빼기도 하시며 관리하시기 때문입니다.
매스컴에서 차명계좌에 대한 사건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계좌를 빌려준 사람들은 빌려준 계좌에 몇 백억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반응을 보이며 살아야합니다. 내 인생의 내용물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우리의 입장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인간에게 인생의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라고 꼬드겼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유혹에 넘어가서 스스로가 인생의 실소유주임을 자청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융실명제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명의자가 실소유자가 되는 것처럼, 마귀는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라고 유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계좌를 채우시기도 하고 빼시기도 하는 것처럼 스스로 그렇게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금융실명제는 성공했지만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간 인생의 금융실명제는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세상에 오셔서 인생의 금융실명제를 거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30절을 보면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으니 자신의 인생을 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대로 심판하시고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인생은 마치 이름뿐인 차명계좌와 같았습니다. 실소유주인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의 계좌에 내용물을 넣었다 뺐다 하셨던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가 성전미문에 앉아있던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일으킨 사건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베드로를 대단하게 여기자 오히려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라고 대답합니다.
베드로의 인생에는 사십 년 동한 걷지 못한 사람을 일으켜 세운 사건이 입금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를 대단하게 여겼으나, 정작 베드로 자신은 그 능력의 실소유자는 하나님이심을 알았기에 정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를 베드로에 앞서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 시는 솔로몬이 지은 것인데 역시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그렇기에 성전 생활화를 염두에 두고 해석함이 올바를 것입니다. 또한 솔로몬과 성전의 깊은 연관성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한 왕이고, 성전의 핵심 존재의미인 번제와 깊은 인연을 가진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온 모든 인물 중에 일천 번제를 드린 사람은 달리 없었습니다.
이십 세 약관에 왕이 되었던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그의 인생에서 최고이자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성전의 핵심적인 존재의미는 말씀드린 대로 아침저녁으로 드려지는 상번제의 번제단이었습니다. 솔로몬이 그 번제단이 있는 성전을 건축했기에 당시의 성전을 솔로몬 성전이라고도 일컬었습니다. 솔로몬과 성전과 번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는데 그 일천 번제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이 세상을 향한 사랑의 일천 번의 죽음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크기의 마음 공백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음의 공백은 채워지기 위한 흡입력이 작용하고, 세상에서 마음 채움 거리를 찾아서 기쁨과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세상에서 만족과 기쁨을 찾으려는 자신을 번제단에서 일천 번 죽였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마음 채움 거리를 찾는 마음을 죽이는 것이 번제단의 핵심 의미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다스려야할 나라에 대한 판단과 소원까지도 다 죽였던 것입니다. 왕의 자리에서 죽지 않는다면 나라의 통치를 통해서 기쁨과 만족을 얻으려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나라를 사유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죽임으로써 오직 하나님의 판단과 생각과 계획만을 받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죄악 된 체질은 유전죄로 남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 유전죄의 체질로 이 세상으로부터 기쁨과 만족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통해서 세상을 사유화하기를 포기했습니다. 그 간절함이 일천 번이라는 횟수에서 드러납니다. 솔로몬은 선악과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소원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판단만을 듣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왕으로서 살아가야 될 인생은 솔로몬의 이름으로 열린 계좌이지만, 실소유자는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했습니다. 스스로 차명계좌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 간구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역대하 1장 11~12절을 보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와 재물과 영광과 원수의 생명 멸하는 것과 장수하는 것은 비단 왕들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계좌에 채우고자 하는 내용물 중에 가장 강렬하게 원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이것들을 다 젖혀두고 자신의 인생이 차명계좌가 되기를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사시는 인생계좌가 되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솔로몬의 마음가짐이 오늘 본시에서 표현됩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일천 번제를 드리고 오직 하나님의 판단을 듣기 원했던 솔로몬은 구하지도 않았던 부와 재물과 영광과 장수와 원수제거까지도 받게 된 그 놀라운 역사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을 세우는 것과 성을 지키는 것은 곧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집을 세우는 것은 집안을 일으키는 것이고, 성을 지키는 것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러한 일들을 차명계좌로 돌려놨더니 하나님께서 다 하시더라는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차명계좌로 돌리지 않고 실명으로 내 인생의 계좌에 내가 입금시키겠다고 하면 2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합니다. 금융실명제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도 채우질 못합니다. 스스로 인생의 소유주가 되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을지라도 그 모든 것들은 헛되리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한 일은 자신의 인생을 차명계좌로 돌리고 하나님을 실소유자로 모셨던 것뿐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인생 계좌에 바라지도 않았던 것들까지도 입금시켜주셨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너무나 바보처럼 살아왔습니다. 추구해온 것들이 헛된 것인 줄을 몰랐습니다. 인생을 내 것이라 생각해서 인생의 계좌를 채우고자 했습니다. 열정을 다하여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으며 근면과 성실과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보의 행위였습니다. 솔로몬은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말합니다.
본래 인생은 차명계좌로 계획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입금시키시고 출금시켜 가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75억 인구는 하나님이 쓰시는 차명계좌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의 실소유자여야 할 이 75억 개의 계좌를 실명계좌로 바꿔버렸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지라도,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진다는 실명계좌를 가지고 있는 한 하나님도 인생을 채우기 위한 한 방편에 불과하게 됩니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인생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마귀가 기뻐할 뿐입니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으니 마귀의 입장에서는 통쾌하고 즐거울 뿐입니다.
3절을 보면 다소 뜬금없이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녀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자식이 태어나게 됩니다. 자식을 낳았다고 하지만 부모는 자식의 인생이나 태어난 목적에 대해 어느 것 하나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생김새부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의지가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서의 ‘자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나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질 모든 것들의 상징입니다.
5절에서는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자식이 많은 것을 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실제로 육체의 자식이 많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일이 나를 통해 이루어질수록 복됨을 뜻합니다. 내 이름의 차명계좌에 하나님이 입금시키는 내용물이 많을수록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없더라도 자식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으로 출발해서 나를 통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은 사람은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차명계좌를 내어드린 사람입니다.
3절에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입금시키는 인생의 계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실제로 내 이름하에 있는 기업들입니다. 금융실명제의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차명계좌에 있는 재산들은 실명의 재산이 되는 것처럼 지금 솔로몬이 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차명계좌로 내어드렸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엄청난 입금을 시키심으로서 은총으로 바뀌더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기업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져 타락한 아담의 체질은 나도 모르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만져지는 세상 것들로 인해서 마음의 기쁨과 만족을 채우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체질이 끝날 수 있을까요?
솔로몬처럼 일천 번제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믿음입니다. 돈 좀 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에 얼른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돈에 대해서 죽으세요. 자식에 대한 바람이 생길 때에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죽으세요. 배우자에 대한 바람이 생길 때에 십자가에서 배우자에 대해 죽으세요. 승진에 대해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세요. 외제차나 명품백에 대한 욕심이 생길 때에도 십자가에서 죽으세요. 이렇게 십자가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내 인생계좌를 스스로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계좌가 하나님의 차명계좌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유전죄의 체질에 대해 십자가에서 계속해서 죽어야 합니다. 세상이 마음에 들어오려고 할 때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만이 나의 일입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인생은 하나님의 차명계좌로 바꾸어져갈 것입니다. 차명계좌가 되면 내 인생계좌의 입금과 출금은 하나님께서 해나가실 것입니다. 들어와도 감사 나가도 감사입니다. 감사에 감사를 이어가며 항상 기뻐하면서 사는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차명계좌입니다. 금융실명제를 살게 하는 유전죄의 체질을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억제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인생을 하나님의 차명계좌로 돌려놓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실소유자가 되어서 우리의 인생을 관리하실 것입니다.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한 것처럼 우리 이름의 인생계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신 것들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하여 남은 삶을 하나님의 차명계좌로 살아가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십자가 생활화에 우리 인생의 전부를 걸고 유전죄의 체질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실명제의 인생을 살던 삶이 중단되게 해주셔서 하나님의 차명계좌로 돌려놓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