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7:1~10] - [새번역]
1. 인생이 땅 위에서 산다는 것이, 고된 종살이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 그의 평생이 품꾼의 나날과 같지 않으냐?
2. 저물기를 몹시 기다리는 종과도 같고, 수고한 삯을 애타게 바라는 품꾼과도 같다.
3. 내가 바로 그렇게 여러 달을 허탈 속에 보냈다. 괴로운 밤은 꼬리를 물고 이어 갔다.
4. 눕기만 하면, 언제 깰까, 언제 날이 샐까 마음 졸이며, 새벽까지 내내 뒤척거렸구나.
5. 내 몸은 온통 구더기와 먼지로 뒤덮였구나. 피부는 아물었다가도 터져 버리는구나.
6. 내 날이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지나가니, 아무런 소망도 없이 종말을 맞는구나.
7. 내 생명이 한낱 바람임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내가 다시는 좋은 세월을 못 볼 것입니다.
8. 어느 누구도 다시는 나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눈을 뜨고 나를 찾으려고 하셔도 나는 이미 없어졌을 것입니다.
9. 구름이 사라지면 자취도 없는 것처럼, 스올로 내려가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다시는 올라올 수 없습니다.
10. 그는 자기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도 못할 것이고, 그가 살던 곳에서도 그를 몰라볼 것입니다.
[묵상과 적용]
6장은 욥이 엘리바스에게 대답했다면, 7장은 이제 비로소 욥이 하나님께(동시에 친구들에게) 호소합니다. “인생은 고된 종살이와 같고, 평생 남의 집 품꾼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된 종살이를 하는 노예도, 남의 집 품꾼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쉼 없이 고된 노동을 한 후에 밤이 되면 쉼의 얻을 수 있는데, 지금 자신은 밤이 오더라도 쉼을 얻을 수 없는 괴롭고 비참한 상황이라고 호소합니다.
그 이유는 3~4절, 욥의 마음에 허탈감이 몰려와 불면증으로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눕기만 하면 괴로운 생각이 계속 떠나질 않아 새벽까지 뒤척거린다고 고백합니다. 욥은 당대 거부(巨富)였습니다. 자녀도 많았고, 종도 많이 거느리고, 의롭고 경건하여 하나님께도,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경우 “이게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그 모든 것을 누릴 때는 나의 고백이 진실한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나 자신도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어 할지 모릅니다. 욥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욥의 마음에 “내가 이렇게 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큰 복을 주셨지, 내가 매일같이 내 자녀들을 위해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내 자녀들도 이렇게 잘 되는 것 아닌가!” 그동안 큰 “복”을 받은 이유를 자신의 의로움과 신앙 열심에서 찾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아무 죄도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의로운데, 왜 하루아침에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나름 내가 신앙적으로 열심히 살았고, 의롭게 경건하게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삶에 그동안 하나님이 많은 은혜와 복을 주셨고, 자식들도 나름 잘 성장하여 남들만큼 잘 산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순간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질 때, “왜?”라는 질문이 안 생길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서 이 모든 것을 앗아갈 죄와 허물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비로소 내가 진정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이 맞나? 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붙들어주시지 않았다면 이런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이 진짜인가? 드러나게 됩니다. 고난을 죄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복을 의로움 때문이라고 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욥기는 평안이냐, 고난이냐, 형편과 상황을 바라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가며, 나의 삶의 목적과 근거를 하나님께 두라는 것입니다. 형편과 상황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분을 바라보면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5절, 욥의 육신은 피부병으로 종기가 난 상처에서 구더기가 나오고, 흙먼지가 들러붙어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졌다가 딱지가 떨어지면 고름이 흘러나오는 참혹한 상황입니다. 일말의 희망마저도 베틀의 북처럼 빨리 사라져버려 자신의 삶이 더는 아무 소망이 없음을 고백합니다(6절).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듯이, 누구나 무엇을 소망하든, 그 소망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돈이나, 자식, 성공, 출세 등 이것이 소망인 사람은 힘들어도 그 목표(소망)가 있기 때문에 버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벌 만큼 벌었다”, “이만하면 자식들 성공했네”, “이 정도 출세하면 됐다”하는 자리에 설 때 소망이 사라지고, 그때 인간은 허무해집니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전셋집 하나 마련하기 힘들구나”라고 할 때 “돈에 대한 소망은 죽어도 이룰 수 없겠구나” 하는 허탈감에 인생을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자식, 출세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욥은 7절에서 자신의 인생이 한낱 바람에 불과함을, 그리고 다시는 좋은 날을 못볼 것 같다는 절망을 탄식합니다. 시편 39편 7절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삶의 소망과 목표를 하나님께 두지 못하고, 다른 것을 소망하면 그것이 있으면 있어서 허무해지고, 없으면 없어서 절망합니다. 나의 유일한 소망, 삶의 목표는 “하나님께” 있습니까?
[출처]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작성자 Grace Wo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