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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 : 8 -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
8-9절은 사도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주 예수의 날까지 책망받지 않는 자들이 되기를 간구하는 한편, 성도를 주님과 교제케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8절은 미래시제로 표현하여 희망과 소원, 간구를 나타내고 있다.
1] 주께서
'주께서'라는 인칭관계대명사 '호스'(*)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확하지 않다.
7절을 미루어 볼 때 그리스도인 듯하지만(Origen, Meyer, Robertson), 9절에서 하나님의 미쁘심을 언급한 것으로 비추어 볼 때 하나님 아버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Calvin, Alford, Bengel, Hodge, Mare).
만약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날에 견고케 하시리라'고 말하는 격이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주의 날'이라는 표현은 바울 서신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 계 1: 10 -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 주의 날에 [영] Day of the LORD, Lord's day - 종말론적 표현.
신약에서는 메시아적인 의미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그 나라의 완성과 구원의 날로 인용되어 있다.
* 살전 5: 2 -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 살후 2: 2 -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 벧후 3: 10 -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것은 '그 날'[마 7: 22. 눅 6: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고전 1: 8. 5: 5. '주 예수의 날', '그리스도 예수의 날'[빌 1: 6, 10], 또는 '주 예수의 날'[고후 1: 14]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주 예수의 부활된 날을 뜻하는 말로서, 오늘의 일요일에 해당된다. '안식 후 첫 날'로도 불린다.[마 28: 1. 막 16: 2. 눅 24: 1. 요 20: 1]
교회에서는 일찍부터 성일로 지켰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안식일과 일요일이 지켜졌으나, 후에는 일요일만을 주일로 지키게 되었다.
(2) 여러 견해.
① 여호와의 날. - 세대주의자.
스코필드[C. I. Scofield]는 이중 재림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날과[환란 전 휴거] 주의 날로[심판의 때] 구분하였다. 주의 날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미래적인 날로 주장 하였다.
② 안식일. - 안식교. 주의 날을 구약의 율법에서 규정하는 안식일로 본다.
③ 주의 첫날. - 개혁주의 신학자.
칼뱅[Calvin] : 주의 날은 모든 사람들이 선택하였다. 이유는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율법의 그림자를 폐하였기 때문이다.
마운스[R. H. Mounce] : 주중의 첫날에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리 하셨기 때문이다. 이교도들이 그들의 황제를 공경하기 위하여 하루를 정하여 놓은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매주의 첫날을 택하였다.
(3) 저자의 견해.
① 여호와의 날로 볼 수 없다.
⒜ 문맥적인 의미
본문은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으로 발생하였다. 여호와의 날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구속사의 완성을 이루는성령의 인침을받는 자를추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본문의 날은 요한이 살아서 기록했던 매주의 첫날로 보아야 한다.
⒝ 원리적인 의미
계 1: 19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에 심판 주로 오시는 여호와의 날을 대입한다면 심판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장차 될 일을 기록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 원어적인 의미
계 1: 10은 '주의'라는 소유격 퀴리우[kurivou, of the Lord, 살후 2:2, 벧후 3:10]가 아니라 형용사인 퀴리아케[kuriakh;, Lord’s]이다.
② 안식일로 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 막 2: 28 -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구 분 : 안 식 일 : 주 일
신 학 적 : 창조의 기념[창 2: 2-3] : 새 창조의 기념
계 약 적 : 옛 계약의 끝 : 새 계약의 시작
의 식 적 : 율법적 제사[죽음] : 복음적 예배[부활]
모 형 적 : 예수 안의 안식 축복 : 신천신지의 영원 안식
구 속 적 : 우리 죄로 무덤에 계심 : 부활의 첫 열매
영 적 : 엿새 동안의 수고에서 해방 : 죄 짐에서 해방
결 론 : 구원의 과정[속죄의 필요] : 구원의 결과 [고전 15: 23-27]
대환란의 날의 예언에 언급된 안식일
* 마 24: 20 -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바울의 안식일의 강론과 주일의 강론- 행 17: 2, 18: 4. 20: 7. 고전 16: 2.
안식일(메시아의 도래)과 주일(재림의 도래).
태양의 날과 주의 날
③ 토요일을 주일로 변경 시키신 이유.
⒜ 구약의 예언은 폐한다고 했다.
* 히 7: 18-19 -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 마 5: 17-18 -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호 2: 11 -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 다른 날을 정할 것이 예언되었다.
* 히 4: 7 -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 사도 바울의 증명.
* 골 2: 16-17 -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 주일에 성령이 강림하셨다.
* 레 23: 10-16 -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1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12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고 13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쓸 것이며 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15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16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 행 2: 1 -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 초대 교회에서 주일을 지켰다.
* 행 20: 7 -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 각종 역사 문헌이 증거하고 있다.
⒢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다.
'주의 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테 퀴리아케 헤메라'(*)는 문자적으로 주께 속한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안식 후 첫날'(*) 혹은 '매주일 첫날'(*)과 같은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유대교의 안식일이었던 토요일이 사도 시대부터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로 대치된 것을 가리킨다(Morris, Lenski, Ladd).
* 막 16: 2 -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 눅 24: 1 -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 요 20: 19 -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행 20: 7 -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 고전 16: 2 -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4) 성령에 감동 - 방법 :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성령에 감동하여'의 헬라어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는 문자적으로 '내가 성령 안에 있었다.'는 뜻으로 이는 단순히 성령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황홀한 상태에 있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Lohmeyer, Ladd, Johnson,Mounce).
* 계 4: 2 -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계 17: 3 -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 계 21: 10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 행 10: 10 -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 행 11: 5 -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성령의 감동은 무아지경(無我地境)이 아니다.
계시나 말씀보다 성령의 감동이 먼저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신자들이 성령의 충만 없이 환상이나 예언을 받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언제나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서 이러한 특별 계시적 은혜를 입게 된다.
① 생명을 주시는 능력으로서 천지창조에 관련하셨다[창 1: 2].
생령이 되셨고[창 2: 7] 인간의 역사에 여러 가지 일을 하신다.[슥 4: 6]
② 특정한 개인에게 부어져, 특별한 능력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수행케 한다.
전쟁의 용기와 힘[삿 11: 29. 삼상 11: 6], 예언과 재판[민 11: 17. 삼상 10: 6], 기술과 지혜[출 31: 3. 욥 32: 8. 전능자의 기운] 등이다.
③ 생명의 원천이시고[창 6: 3. 욥 27: 3. 하나님의 기운, 32: 8. 전능자의 기운, 33: 4, 34: 14, 시 104: 30. 영→사 42: 5], 초자연적인 역사를 한다[왕상 18: 12. 왕하 2: 16].
④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거하시며[사 63: 11. 학 2: 5], 봉사를 위한 힘[삿 3: 10. 6: 34. 11: 29. 13: 25. 14: 6,19. 15: 10,14. 삼상 11: 6. 16: 13. 대상 12: 18]등 다양한 능력을 주신다.
⑤ 봉사를 위해[사 11: 2. 슥 4: 6], 선지자들에게[민 24: 2. 삼상 10: 6. 호 9: 7. 미 3: 8. 슥 7: 12], 백성을 가르치시고[느 9: 20], 성경을 기록하며[딤후 3: 16], 하나님의 신이 백성에게 부어지는 때[사 44: 13], 그들은 새 영과 새 마음을 받았다[겔 36: 26].
⑥ 자기 죄로 애통하고[슥 12: 10], 메시야적 왕[사 11: 2], 주 여호와의 종[사 42: 1]은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진다. 말일에는 모든 육에 속한 자에게 부어진다.[욜 2: 28]. 성령은 역사하심을 거역하는 자에게 노하신다[사 63: 10. 시 106: 33].
⑦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지고[마 3: 16,17], 성령에 의해 광야로 인도되고[마 4: 1], 귀신을 쫓아내고[마 12: 28],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눅 4: 16-21]. 사도들도 마찬가지이다[행 8: 39. 롬 15: 19].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성령이 임하여, 모든 성도와 함께 거하시고, 가르쳐 인도하시며, 증거하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며, 성도마다 권능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눅 24: 49. 요 7: 37-39. 14: 25,26. 15: 26. 16: 7-14. 행 1: 8].
신약에는 성령이 93회, 영(靈)이 137회, 하나님의 성령[마 3: 16. 12: 28. 롬 8: 9,14. 고전 2: 14. 3: 16. 6: 11. 7: 40. 12: 3. 고후 3: 3. 빌 3: 3. 벧전 4: 14. 요일 4: 2], 주의 성령[눅 4: 18], 예수의 영[행 16: 7] 등으로 표현 되었다.
오순절을 전환점으로 새로운 사태가 생겼다.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의 성취요, 예수님의 구원의 약속이 완성된 것으로서 말했다[행 2: 16-36].
즉 부활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완성될 때, 약속하신 성령[행 2: 33]이 주어져,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업은 교회에 전달되었다[고전 12: 3].
성령이 일하시는 곳에서는 예수의 생애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예수께서 구주이심을 믿게 되며, 현재도 살아계신 주로서 앙망하게 된다[고전 2: 10. 12: 3]. 성령에 의해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 주어지고,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며[롬 8: 14,15], 성도로써 교제와 일치가 주어진다[고전 12: 12,13].
사랑이 성령의 은사 중 최고요[고전 13: 13], 종말의 소망을 주신다.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에 따라 성도로 완성되도록 보증하신다[엡 1: 13,14].
이런 의미에서 성령은 진리의 영[요 14: 17. 15: 26. 16: 13]이며 다른 보혜사[요 14: 16]이시다.
① 영광의 영.
* 벧전 4: 14 -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② 한 몸.
* 고전 12: 13 -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③ 고난.
* 딤후 1: 6-8 -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5)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 :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나팔소리'는 구약 시대에 백성을 불러 소집하거나 군사적으로 경고할 때(*), 전쟁 때(*), 그리고 특별한 의미의 절기 때(*) 사용하였다.
* 레 23: 24 -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 겔 33: 6 -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 겔 7: 14 - 그들이 나팔을 불어 온갖 것을 준비하였을지라도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나니 이는 내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이르렀음이라.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한 징표로 나타난다.
* 마 24: 31 -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살전 4: 16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본서에서 70회나 사용되며 종말론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본문의 '나팔소리'는 심령들을 일깨우는 천사의 음성으로 이해된다(Morris, Mounce, Ladd).
여기서는 '나팔소리'가 아니고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이다. 결국 그 나팔소리 같은 음성은 하나님의 장엄한 말씀이다.
* 출 19: 19 -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① 만곡나팔(灣曲)
수양의 뿔의 뾰족한 끝을 잘라 취주구(吹奏口)로 하고, 몸통의 구멍을 뚫어서 만든 것.
길게 울려 퍼지고, 행동의 신호에 씌어졌다[출19: 13,16,19. 20: 18]
이스라엘 백성은 경계의 신호[느 4: 18. 렘 4: 5. 호 8: 1], 전쟁의 신호[수 6: 5. 삿 3: 27. 6: 34. 7: 18. 암 2: 2. 슥 9: 14], 희열(喜悅)의 표현[왕상 1: 34. 왕하 9: 13], 하나님 찬미에 사용했다[시 47: 5. 81: 3. 150: 3].
신년절은 나팔에 의해 알려졌다.[레 23: 24] 이 습관은 후대까지도 계속되고, 오늘의 유대인 회당에서도 지켜지고 있다. 미슈나에 의하면 안식일, 금식일 또는 기타의 절일은 나팔의 연주로 시작된다.
② 곧은 나팔
청동 또는 은제의 곧바른 나팔(trumpet)을 가리켰다[민 10: 2]. 조절판이 없고, 앞 끝이 나팔꽃 모양으로 넓어 날카로운 음을 발했다.
비종교적인 신호에 사용되었다[왕하 11: 14. 대하 23: 13. 호 5: 8]. 후에 종교적인 악기로 되고, 레위 사람이 연주했다[민 10: 8-10. 31: 6. 대상 15: 24. 16: 6. 대하 13: 14. 29: 26,27. 스 3: 10].
쿰란 출토의 '전쟁의 서'(Ⅶ, Ⅷ)에는 제사장의 손에 나팔, 레위인의 손에 양각(羊角)이 있었던 것을 기록하고 있다. 미슈나에 의하면 날마다 성전 봉사는 나팔의 신호로 지켜지고, 해돋이· 제의(祭儀)등이 나팔에 의해 알려졌다.
전쟁의 신호나 종교의식에 사용되었다[고전 14: 8. 히 12: 19. 계 1: 10. 4: 1. 8: 2,6,13. 9: 14]. 종말의 때에 성도를 모으기 위한 나팔로 인용되어 있다[마 24: 31. 고전 15: 51. 살전 4: 16].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마 6: 2]는 표현은 자선사업을 선전에 이용하는 인간의 비열한 심정을 경계한 것이다.
③ 소집
* 삿 3: 27 - 그가 이르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 대하 13: 12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의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 하여 전쟁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
* 고전 14: 8 -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④ 경고
* 겔 33: 3-6 - 3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4 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5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6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 렘 6: 1 -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깃발을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⑤ 종말
* 마 24: 31 -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고전 15: 51-52 -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 살전 4: 16-17 -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3]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책망할 것이 없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넹클레투스'(*)는 '고소하다', '비난하다'의 '엥칼레오'(*)와 부정 접두어 '아'(*)의 합성어로 아무도 비방할 수 없을 만큼 흠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Robertson, Plummer).
이처럼 흠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보증하는 자들을 고소할만한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Morris).
* 롬 8: 33 -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따라서 본 절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일깨워 주고 있다.
'견고케 하시리라'의 헬라어 '베바이오세이'(*)는 6절의 '견고케 되어'와 같은 동사인데 그곳에서는 교리적인 면을 묘사했다면 본 절에서는 실제 생활에 적용되는 실천적인 면을 묘사한다(Grosheide).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책망이라는 말과 관련지어볼 때 '심판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는데, 계시의 이중적 구조에 따라 두 가지로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심판을 예언한 그 날이며, 둘째는 궁극적인 종말 심판을 가리킨다.
첫째 의미의 주의 날은 구약에서 예언된 여호와의 날(사 13: 9) 또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욜 2: 31) 또는 야곱의 환난의 날(렘 30: 7) 등으로 표현된 날을 의미한다.
그날은 예루살렘 심판의 날로서 구약은 그날을 종말로 보고 있다. 애 4: 18에서도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이 다하였고, 우리의 마지막이 이르렀도다'라고 하였고, 암 8: 2에서도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으니 내가 용서치 아니하리라' 등에서 알 수 있다.
구약의 예언이 신약시대에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구약에 예언된 이스라엘 심판의 날은 A.D. 70년에 로마의 디도 군단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완전히 훼파되고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된 그 날을 가리킨다.
이 날에 대해서는 주님께서도 여러 곳에서 말씀하셨다. 마 10: 23에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고, 마 16: 28에서도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또한, 마 24: 33-34에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라고 하셨으며, 마 26: 64에서는 대제사장에게 말씀하시기를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셨다.
이러한 말씀은 모두 당시 살아 있는 자들에게 주님 오실 때까지 살아 있을 것을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이 틀림없는데, 인자가 온다는 말씀은 심판을 행하실 것임을 상징함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종말이라고 하면 최후의 심판만을 생각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은 분명히 구약으로부터 예언된 이스라엘 심판의 날을 종말이라고 하고 있다.
둘째는 주님의 강림하심으로 시작되는 종말 심판의 때를 뜻한다.
그날은 시간과 공간이 완성되고 모든 것의 마지막이 드러나는 날이며, 모든 악이 하나님 나라의 완전히 선한 것으로부터 완전하고도 영원히 분리되는 날이다. 곧, 진정한 주의 날은 최후 심판의 날이며, 따라서 첫 번째 주의 날의 개념은 최후 심판의 날의 예표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주의 날은 첫 번째 개념으로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즉, 당대의 고린도 교인들은 이스라엘 심판의 때인 A.D. 70년까지는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자들이므로, 그때 주님께서 영적으로 강림하실 때 책망할 것 없는 자로 살아 있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는 주님께서 한 세대가 가기 전에 다시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사도는 고린도전서의 다른 곳에서도 그 날을 임박한 환난(7: 26)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산 자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지, 죽은 자들을 위하여 간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일 여기서 말하는 것이 주님의 최후 심판을 뜻한다면 그때까지 살아 있을 자는 아무도 없으므로 '산 자들'을 위한 간구라고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바울 사도의 영적 체험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볼 때 바울 사도가 최후의 심판의 날을 그들의 생애 가운데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리는 만무하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바울은 또 말한다. “주께서[그가 또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재림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실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주이시다.
바울은 빌립보서 1: 6에서도,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우리의 믿음의 주[시작자]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완성자]라고 표현하였다.
* 히 12: 2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하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구속(救贖)하신 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구원에 이를 것이다.
* 요 6: 39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 요 10: 28 -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 롬 8: 30 -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주께서는 피 흘려 사신 자들을 다 찾으실 것이며 그가 찾아 구원하신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견고케 하실 것이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 롬 8: 35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성도의 구원은 보장된다. 그는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는 인격자로 훈련시키시고 보존시키실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위로와 담대함이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날마다 더 가까이하며,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일어나 힘을 내어 죄와 세상과 사탄과 싸워야 하고, 또 담대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