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천의 권청(24)
부처님은 중생들의 실상을 보고 진리를 설파하려던 마음을 조금 주저 하셨다.
‘어렵게 도달한 이 깨달음은 완벽하고 결함이 없다. 깊은 선정에 들어 수없이 재고해 보아도 완전하고 원만한 최고의 진리이다. 그러나 이 진리는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당기 어렵고, 섬세하고, 고상하고, 단순한 사려를 넘어서는 것이다. 오직 지혜로운 이라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견해에만 매달리고, 자기가 바라는 것만 좋아하고, 자기가 배우고 익힌 것만 고집한다. 그런 그들은 이 깊고 미묘한 인연의 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좋아하고, 집착을 기뻐한다. 그런 그들은 집착을 떠나고, 집착을 없애고, 집착이 사라진 진리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집착을 없애고, 집착이 사라진 진리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집착을 넘어선 열반을 가르쳐주어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물든 그들은 혼란스러워하고 번거롭게만 생각할 것이다. 그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되지 못한다. 세상사와 반대되는 나의 가르침을 그들은 도리어 비방할 것이다.'
부처님의 의도를 알아차린 세적천이 급히 부처님 앞에 나타나 간청하였다.
"악마의 군대를 물리치신 그 마음
월식을 벗어난 달과 같습니다.
자, 어서 일어나십시오.
지혜의 빛으로 세상의 어둠 비추소서"
부처님은 제석처의 말을 듣고도 침묵하셨다. 지켜보던 대범천은 답답하였다.
그 정도 말로 움직일 세존이 아니었다. 다급해진 범천은 힘센 장정이 팔을 굽혔다.
펴듯 재빠르게 자신의 세계에서 사라져 부처님 앞에 나타났다. 그는 한쪽 어깨에 상의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꿇은 다음 합장하고 간청하였다.
“부처님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여래시여, 법을 설하소서. 세존께서 법을 설하지 않으시면 탐욕의 강물에 떠밀리고 분노의 불길에 휩싸인 이 세상은 결국 파멸로 치닫고 말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세상에는 그래도 때가 덜 묻은 이들이 있습니다. 여래시여, 이 세상에는 그래도 선과 진리 앞에 진실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버리지 마소서. 그들마저 기회를 놓치는 건 참으로 슬프고 애석한 일입니다.”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부처님 앞에서 범천은 간절한 마음으로 노래 하였다.
높은 바위산에 올라
사방의 사람들을 둘러보듯
가장 현명한 분이시여
모은 것을 보는 분이시여
슬픔을 없앤 분이시여
그와 같이 진리의 누각에 올라
태어남과 늙음에 정복당하고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굽어보소서
영웅이시여
승리자시여
일어나소서
이 세상을 누벼주소서
진리를 설파하소서
분명 이해하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범천의 간절한 요청과 중생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이기지 못해 부처님을 다시 세상을 살펴보았다.
중생들에게는 차이가 있었다.
먼지와 때가 적은 중생, 먼지와 때가 많은 중생, 두뇌가 총명한 중생, 두뇌가 무딘 중생, 품성이 좋은 중생, 품성이 나쁜 중생, 가르치기 좋은 중생, 가르치기 나쁜 중생이 있었다.
다음 세상의 과보를 두려워하며 자신의 허물을 살피는 중생도 있고, 그런 것을 무시하는 중생도 있었다.
마치 붉고 푸르고 새하얀 갖가지 연꽃들이 같은 연못 같은 진흙에서 싹을 틔워 같은 물에서 자라는 것과 같았다.
그중에는 물속에서 썩어버리는 것도 있고, 수면에서 위태로운 것도 있고, 물 위로 솟아올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도 있었다. 솟아오른 연꽃은 진흙도 묻지 않고 물에도 젖지 않은 채 화려한 빛깔과 은은한 향기로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마침내 세상을 향해 사자처럼 늠름하게 선언하셨다.
내 이제 감로의 문을 여나니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