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흥남 철수 작전의 기적
흥남철수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미국 제10군단과 한국군 제1군단이 궁지에 몰리자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간 함경남도 흥남항에 선박 100여대를 보내 병력과 물자 등을 실어나르며 피난민을 대피시킨 작전이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흥남 철수 작전 마지막에 남은 상선이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승선 인원이 60명으로 승무원이 47명 이었기에 실제 피난민 13명만 탈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서 미국 10(X) 군단 소속의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의 눈물 겨운 호소에 에드워드 알몬드 10군단장, 그리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의 결단에 따라 선적했던 군수물자 25만t을 배에서 내리고 피난민 1만 4천여 명을 태워 남쪽으로의 철수에 성공한다.
<메르데스호 피난민>
레너드 라루 빅토리아호 선장은 이 때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구출하라."고 지시했다. 라루 선장의 이 말 한마디가 1만4천여명의 기적의 생존을 만들어냈다.
<레너드 라루 선장: 수도사 재직, 2001년 10월, 87세로 영면>
라루 선장은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22년을 보내다가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대서양에서 상선을 타고 작전에 참가했으며 1952년 작전 참가 업무를 끝냈다
이 배에도 마실 물도, 식량도 없었지만 숨진 사람이 한 명도 없어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도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이 배를 타고 남측으로 내려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흥남항을 가장 마지막으로 떠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최대 60명이 탈 수 있게 만들어졌지만, 피난민과 군인 등 총 1만 4천여명을 태우고 3일간 파도를 가르며 경상남도 거제항에 도착했다.
<흥남철수작전 중 배에서 태어난 손양영·이경필 씨: 연합뉴스>
이 배에서 일어난 가장 큰 기적은 탯줄을 이로 끊어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만 5명이었다. 한국식 이름을 모르는 미군은 아이들이 태어난 순서대로 숫자를 매겨가며 '김치'라고 불렀다. 가장 먼저 세상의 빛을 봐 '김치 1'로 불렸던 손양영(69) 씨는 북한에 남아 있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두 형을 일평생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당시 손씨의 아버지는 가족 모두가 배에 탈 수 없다고 판단하고 9살, 5살 난 두 아들을 삼촌에게 맡기고 만삭의 아내와 탑승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막내 이경필(69) 씨는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70년째 정박해 있는 거제에서 활동하는 수의사가 됐다. '김치 5'라는 이름이 처음에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이제는 명함에 새기고 다닐 정도로 애착을 갖게 됐다. 어머니의 출산을 도왔던 미군을 만나봤다는 이씨는 흥남철수 이야기를 후대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거제항에 있는 선박에 기념비를 세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흥남 구출 작전은 인류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흥남부두 피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