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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충북불교를 사랑하는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이암 전철호
한국비구니계 큰별 묘엄 스님 원적 | ||||||||
법랍 67년, 세수 81세…비구니회·봉녕사, 장례절차 논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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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녕사 묘엄(妙嚴) 스님이 원적에 들었다.
1931년 경남 진주 태생인 묘엄 스님은 14세 때 1943년 문경 대승사에서 월혜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이래 1943년 당대의 대선사였던 성철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고 자운 율사로 부터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결혼 후 출가한 청담 스님은 대를 이을 아들 하나 낳아달라는 노모의 간청에 못이겨 아내와 하룻밤 파계로 낳은 것이 인순이다. 인순은 열네살 되던 해 봄 어머니의 편지를 품고 문경 대승사를 찾아갔다. 당시 청담 스님은 평생의 도반인 성철 스님과 함께 쌍련선원에서 수행 중이었다.
그곳에서 성철 스님의 권유로 머리를 깍은 인순은 그날부터 비구니 묘엄이 됐다. 스님은 비구니로는 드물게 1947년부터 청담 성철 향곡 자운 스님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에 참여했다. 7-8명의 비구니 스님들은 봉암사 뒤 백련암에서 '부처님 법대로' 수행정진했다. 스님은 조계종단 비구니 역사에서 숱한 기록을 남겼다. 한국 불교 계율의 중흥조로 불리는 자운 스님으로부터 비구니 가운데 첫번째로 ‘식차마나니계’를 받고 ‘사미니율의’ ‘범망경’ ‘비구니계율’ 등을 배웠다. 당대 최고의 강백인 운허 스님을 따라 공주 동학사, 부산 금수사,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등으로 옮겨 다니며 7년여 동안 경전 공부를 했다. 운허 스님은 1957년 묘엄 스님에게 ‘전강(傳講)’을 했다. 전강이란 불교에서 경전을 가르치는 자격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정식으로 인가를 받아 강맥을 이은 비구니는 묘엄 스님이 처음이다. 묘엄 스님은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교학을 배워 강사의 길에 들어섰다. 운문사 비구니 강원에서 4년여 동안 스님들을 가르쳤다. 봉녕사로 옮긴 것은 1971년. 묘엄 스님은 대대적인 불사와 운력으로 오늘날 국내 대표적인 비구니 도량으로 키워냈다. 스님은 99년 국내 첫 비구니 율원인 금강율원을 열어 지금까지 1천여명의 제자를 키웠다. 1931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45년 출가해 1961년 통도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봉녕사 주지, 봉녕사 승가대학 학장, 강주를 맡았다. |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_(__)_
스님의 생애에 한없는 존경을 표합니다.
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속히 다시 오시어 중생과 함께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