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에베소서 4:1~3
제목: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신 것
● 기독교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자는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께 평안을 얻습니다.
엡4:1.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기독교가 추구하는 대표적인 가치관이 평안(평화)이고 기독교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누리는 최고의 혜택이 평안입니다. 이 세상과 천국의 가장 뚜렷한 차이는 평안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이 세상은 지옥은 아니지만 천국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평안이 없고 불안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특히 한국에는, 불안한 사람 즉 평안이 없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이는 묵상자가 통빡으로 대충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021년 자살자 수 1만 3300명 넘어/ 10만 명당 23.6명꼴…OECD 중 1위/ OECD 평균 자살률 11.1명의 2배↑/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10년 주기인 정신건강 검진을 2025년부터 2년 주기로 단축하기로 했다. ← 서울신문 2023.04.14 |
전 세계에서 인구비율로 보면 기독교 신자의 숫자가 가장 많은 1위의 국가가 한국입니다. 한국의 기독교 교단과 신학교들을 보면 복음주의 경향이 매우 많고 개혁주의 경향도 많습니다. 아마도 전세계에서 한국에는 가장 올바른 신학(복음주의 & 개혁주의)을 공부하고 건전한 교단이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독교 우위의 국가에서 자살률이 전세계 1위라면 문제가 매우 많은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복음과 평안의 능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살률 1위가 된 이면에는 전체 자살자들 중에 기독교 신자도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평안의 능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일부이지만 기독교 신자들이 자살을 한다는 것은 진정한 복음이 주는 평안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결핍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묵상자조차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평안이 없고 불안이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불안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불안을 제거하고 평안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기독교 신자로서 여러 가지 신앙적인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묵상자가 보기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성경 읽기가 큰 도움이 됩니다.
시1: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
시1:2 여호와의 율법은, 율법과 복음으로 양분할 때의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의인에게 불안은 없고 평안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즐겁기 때문입니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이 할머니나 엄마의 품에 안겨서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무한 배수 이상의 즐거움이 있는 즐거움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에게 있을 것입니다. 시1:6의 의인인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고 천국에서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인 자들은 때때로 또는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천국에서 ‘의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 되는 연단과 훈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한 이 세상에서 평안이 없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고 경험하며 연단과 훈련을 견디어 나아가며 전진하는 삶(=성도의 견인)이 성도의 일생입니다.
● 이 묵상의 처음 시작에서, 기독교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신앙이라고 했는데요.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라는 것은, 성령께서 성자(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성도들을 성부께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들 안에 내주하심으로써 성도들을 하나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엡2:18.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
성령이 내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며 그로써 자신들이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됨을 유지하고 참 믿음을 증명하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의 증명이 성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갈라디아서 5장22~23절에 잘 예시되어 있습니다.
갈5: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성도에게는 위 말씀과 같은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나는데요. 특히 즐거움(희락)과 평안(화평)이 나타나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도일지라도 믿음에 의한 즐거움과 신앙에 의한 평안을 소유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의 열매가 없기 때문이고 성령의 열매가 없는 이유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께 온전히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엡4: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말씀이 “힘써 지키라!”고 하는 것은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 순종하라는 것이며 구원의 서정으로 보면 칭의의 결과와 열매인 ‘성화의 삶을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성화는 성령의 입장에서 보면 성령이 인도하시는 것이고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성도가 성령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화의 삶에는 희락(즐거움)과 화평(평안)이 있습니다.
● 한국인들에게 평안이 없고 불안하여 자살률 전세계 1등이며 한국인 중에 1/4 이상은 기독교 신자들입니다. 그 신자들 중에서조차도 평안을 소유하지 못하고 불안에 떨다가 적지 않은 숫자가 자살로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참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평안의 혜택을 이미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요14.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이미 주셨는데 왜 극심한 불안이 있을까요? 표면적으로 보면 정신질환 같은 것 때문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성부와 성자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께 우리가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순종하지 않는 것을 회개하고 평안의 능력을 소유합시다. 아멘!
첫댓글 본문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돕기 위한 일환으로 IVP 주석의 해당 부분을 올립니다(엡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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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다시 주를 위하여 '갇힌 자로 소개함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그가 기대하는 헌신의 수준을 암시적으로 말한다. 독자들은 바울이 죄수가 된 것이 지금 자신들에게 요구하는 그런 종류의 하나됨을 위한 열심 때문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3:13의 주석을 보라). 하지만 먼저 그의 호소는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좀더 일반적인 내용이다(살전 2:12; 롬 12:1; 골 1:10을 보라). 여기서의 부르심은 새로운 창조에 대한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참여하며(1:20-22; 2:6), 하늘에 있는 성전의 일부가 되라는 것이다(2:19-22). 그런 부르심에는 책임이 따른다. 바르트는 그 책임을 이렇게 요약한다. '왕자들의 선생은 자기학생을 매로 다스리지 않고 그들의 지위와 위치에 호소한다. 그의 말은 아마 맞는 말이겠지만, 여기에서는 오만한 결의, 완강함과 권위 같은 귀족적 자질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화해를 실제로 보여 주는 공동체적인 겸손, 온
겸손, 온유와 인내, 용서하는 사랑에 호소하는 것이다(2절; 참고. 골 3:12-13). 그 후에 3절은(참고. 골 3:14-15) 이것을 하나됨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호소라고 명확히 밝힌다.
이 호소는 영어로 쉽게 번역하기 어려운 재촉하는 용어로 표현되어 있다. '명령법은…수동적 태도, 정적주의, 좀더 두고 보자는 태도를 배제한다. 당신에게 주도권이 있다. 지금 바로 시작하라! 정말이다! 당신이 그 일을 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3절에 담긴 의미다'(Barth). 이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세우라는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셨고(2:11-22 의 사건들에 의해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그분의 은혜로 이끄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하나됨을 유지하며 그 안에 거하라는(견지하라!) 경고다. 성령은 하나님이 주신 조화로움이라는 메시아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며, 그것이 우리를 매는 줄이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줄이 4:17-5:14에서 다룰 오만, 거짓 교만 그리고 이기적인자기 주장에 의해서 끊어질 수도 있음을 잘알고 있다.
<IVP 성경주석(서신서)>, pp.261-262.
@장코뱅 신정통주의자 바르트를 인용한 것은 옥의 티이고 나머지 내용은 도움을 줍니다.
@노베 네, 바르트 인용이 없이 더 복음적인 정통 신학자를 인용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입니다.
톰슨3주석
4:1-32 교회와 성도의 삶
교리에서 의무로, 이론적인 신학에서 구체적인 적용으로의 전환인 본장의 주제는 새 시대의 새로운규범인 ① 교회의 일체성과 ② 순결한 삶이다.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부여받은새로운 공동체인 만큼 그 교리는 생명 없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에서 증거되는 힘있는 진리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교회를 향하여 실제적인 면에서 여러 가지 명령적인 권고를 주저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성도의 생활 원리와 계명 등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본장은 교회의 통일성이라는 맥락에서 교회의 유기체적 직분에 대해 언급한다. 본장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① 하나 됨으로 행하라(1-16절). ② 순전함으로 행하라(17-32절).
톰슨3 주석은 내용이 쉽고 복음적이라서 평신도들에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노베 톰슨3의 가성비가 제일 좋고요. 보관과 읽기에도 용이합니다. IVP주석은 물렁한 종이 책이라서 보관도 읽기도 조금 불편합니다.
@장코뱅 공감합니다.
엡4:3에 대한 칼빈의 주석을 올립니다. 그런데 저에게 칼빈의 한글판 에베소서 주석이 없어서 영문판을 올리고 소박한 번역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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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eavoring to keep the unity of the Spirit. With good reason does he recommend forbearance, as tending to promote the unity of the Spirit. Innumerable offenses arise daily, which might produce quarrels, particularly when we consider the extreme bitterness of man's natural temper. Some consider the unity of the Spirit to mean that spiritual unity which is produced in us by the Spirit of God. There can be no doubt that He alone makes us "of one accord, of one mind," (Philippians 2:2,) a
of one mind," (Philippians 2:2,) and thus makes us one; but I think it more natural to understand the words as denoting harmony of views. This unity, he tells us, is maintained by the bond of peace; for disputes frequently give rise to hatred and resentment. We must live at peace, if we would wish that brotherly kindness should be permanent amongst us.
성령과의 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바울)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성령과의 연합을 촉진하기 위해 인내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매일 수많은 범죄가 발생하는데, 이는 특히 인간의 타고난 기질의 극도의 악함에 의해 분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과의 연합을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만들어내는 영적인 합일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
한마음을 품어(빌2:2)'의 상태로 만드시고, 그리하여 우리를 하나로 만드신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나(칼빈)는 그 말씀을 조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바울)는 이 연합은 평안의 매는 줄에 의해 유지된다고 말합니다. 분쟁은 종종 증오와 원한을 낳습니다. 형제간의 친절이 영원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평안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장코뱅 칼빈의네임 밸류를 보지 않더라도 내용이 너무 합당하고 성경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어서 좋습니다.
@노베 칼빈 주석은 성경 다음으로 참고해야 할 중요 참고서입니다.
@장코뱅 좋은 주석의 내용을 올려 주셔서 도움이 됩니다.
본문 묵상 내용과 댓글의 주석들이 내용 이해를 더 풍성하게 해주어서 좋습니다.
신자들 각자는 부르심을 받은 일이 다 다르고 다양합니다. 은사가 다르듯 사명이 다릅니다. 칼빈이 주석한대로 하나 되게 함은 무조건 하나로 합하라는 의미보다는 조화를 말하고 있다는 것에 공감을 합니다. 각자의 부르심이 다르지만 그 다름을 서로 존중하고 합당히 행하는데 겸손과 온유로 하고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며 평안을 유지함으로써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로 이해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다투지 않고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잘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임을 알 수 있네요.
묵상 내용에서 말했듯 기독교인은 평안의 능력을 소유한 자들인데 평안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며 실족하여 범죄하고 자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은 성령께 순종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성령께서는 신자들에게 평안을 역사하십니다. 어떤 고난 중에도 평안케 하시는 성령을 의지하고 내 고집을 꺾고 성령께 순종한다면 국면을 극적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안전하게 보호하여 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좋은 묵상 내용으로 모든 분들이 평안의 능력으로 빛을 발하는 한 주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추가로 정리하고 좋은 분별을 달아주셔서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됩니다.
풍성한 댓글과 쉬운 정리 감사합니다.
주일 전 주말에 미리 은혜의 묵상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저와 이 묵상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오늘 주일에 늦게 이 묵상을 읽고 은혜를 나누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힘찬 한주의 시작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