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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감사로 간 사람이 그 지역에
아주 훌륭한 먹이 생산되는 것을 알고
훗날 한양에 갈 때 선물로 할 마음으로
한꺼번에 모두 사들입니다.
그렇다 보니 정작 먹이 필요한 사람들은
상품 먹을 도무지 구할 수가 없습니다.
황해감사의 조카도 그런 사람으로
감사를 만나 먹을 하나 주십사 청을 해도
아예 먹 소리는 꺼내지도 말라 소리를 치니
도무지 만져보지도 못할 지경입니다.
감사의 조카는 어찌하면 먹을 하나 구할까
궁리를 하다가 마침내 꾀를 낸것이
숙모의 시기심을 유발하는 것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합니다.
감사의 부인을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숙부가 밖에서 기녀들과 함께 유흥을 즐기는데
기녀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글쎄 먹에다가
기녀들 이름을 새겨놓고 두고 보는지 그 심사를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하고 짐짓 걱정을 하니
아무리 감사의 부인이라도 관심을 보입니다.
그래 그 기생 이름이 뭐라 하던가
하여 그 아이들 이름이 수양과 매월이라 합니다
하고 고하는 소리를 듣고는 평소 감사가
이것은 중요한 물건이니 잘 간직하라 맡겨둔
보따리를 풀어 내니 정말로 먹이 가득한데
먹마다 수양과 매월이라 선명히 찍혀 있습니다.
감사의 부인은 화가 솟구쳐서
그 먹 보따리들을 가져다가
마당에 내동댕이를 쳐 버리니
일부는 성하고 일부는 깨져서 마당에 나뒹굽니다.
조카는 이런 흉한 물건은 제가 가져다
내버리겠습니다 하고는 싸가지고 나가니
후에 감사는 그것을 알고 땅을 치며 통탄하였고
감사의 부인의 투기는 더욱 극성맞게 늘었으며
조카는 수양과 매월로 재미를 본 보양이더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ㅎㅎ
먹 하나만 내주었어도
부인에게 성화는 안 당했을 것이고
그 많은 먹을 잃지도 안했을 것이건만
작은 욕심 하나가 큰 재물을 손궤하게 하였으니
감사는 늦게나마 정신을 차렸을까요.
요즘 나라에 부정과 부패가 많아
군 장성이며 정치권이며 국가 기관장이며
뇌물로 받아 금고에 넣어 둔 달러와 금궤등이
마치 수양 매월처럼 발목을 잡아서
한순간에 철창 신세를 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나오는가 봅니다.
한말 비사 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
홀로 사는 과부가 있는데 재물이 많습니다.
그 집에 누렁이 개가 하나 있어서
발이 누렇다 하여 황발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니
마을 사람들이 황발이네 집이라고 칭합니다.
조선 말 얼마나 매관매직이 심했던지
어느 중개하는 녀석이 황발이네 소리를 듣고
황발이가 개 이름인 줄은 모르고
그집에서 큰 재물이 나올것 같은 예감에
황발이에게 감역이라는 벼슬을 내려 주는 것으로
벼슬 값 오천냥 하고 오백냥의 중개료를 청구합니다.
그러자 과부댁은 청구하는 자를 향하여
임금의 은혜가 축생에까지 미쳐서
이렇게 황발이가 감역이 되다니
내가 벼슬한 것보다 더 좋소
하고 5500냥을 내놓더라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이후로 그 집은 황발이네가 아닌
황감역네로 불리웠다니 나라가 흔들리는데는
공직자들의 부정과 부패가 제일 큰 일입니다.
흥선대원군이 세력을 잡고 경복궁을 중건하며
나라의 국력이 소진되고 고갈되자
성문을 들고 나는 사람들에게
통행세 명목으로 일전씩을 받게 하니
받는 과정에서의 비리는 물론이고
없이 사는 백성들이 성안을 출입하면서
호구지책을 하는 사람들로서는
말 못할 원성이 자자하였답니다.
하지만 아무도 직언을 하지 못하고 보고만 있을 때
청양 출신으로 나라가 망하자 자결을 한 최익현이
상소를 올려서 고하기를
성문을 드나드는 사람에게 일전씩을 받는 것은
국가가 거지노릇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속히 중단해야 마땅하다 하였답니다.
면암의 상소가 받아들여 지지는 아니했던지
조선은 그후 얼마 되지 않아 곳곳이 썩고 부패하여
결국은 종사를 말아먹는 데에 이르렀으니
그로 인한 국민들의 고충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불과 백년전의 조선의 현실이
백년 후 오늘의 모습에서 나아진 점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야 하겠지만
뉴스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보다 보면은
백성들의 고혈을 뽑아 내어
고관대작들의 집에서는 말과 나귀에게까지
약식을 먹이던 당시의 문란한 상황과
별반 다름 없어 보이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뇌물이 공공연하게 오가니
삼백육십주의 방백(方伯)과 수령(守令)의 봉물짐은
길거리에 길게 뻗쳐 교사동(校寺동)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와
우측 창고에 쌓인다.
이에 삼정승의 집에서 연회가 벌어질 때에는
육산주림(肉山酒林)과 주지과산(酒地果山)을 이루니
고기와 술과 과일이 산처럼 쌓였다.
천 가지 물건을 함부로 써대니
양반이나 상놈이나 노비나 종들이
약과(藥果)와 약식(藥食)을 가져다가
어느 집 나귀와 어느 집 큰 말에게 장난삼아 먹이는 고로
혜당댁(惠堂宅) 나귀는 약식을 잘 자시고
호판댁(戶判宅) 나귀는 약식을 잘 자시며,
호판댁 큰 말은 약과를 아니 잡순다는 말이
길거리 아이들의 희롱거리로 유행되었다."
어느 곳에서는 흘러 넘쳐서
썩어 나가도록 주체를 못하고
어느 곳에서는 한끼니 요기 거리가 없어서
법을 어기고 굶어 죽기도 하는 것이 세상살이이니
무어라 말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만
햇빛이 평등무차별하게 비추어도(춘색무고하)
꽃 피고 가지의 자람은
이르고 늦고 길고 짧음이 있는 것처럼
(화지자단장)
함께 나누고 함께 보듬고 살아가는 마음들이 모여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꿈꾸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