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계속 살다보면 한라산 꼭대기를 하루에 한번씩 꼭 보게 되는것 같다.
꼭대기가 보일 때마다 선생님은 늘 한라산을 가리켜 우리가 오를 곳이라고 말했었다.
9시간 이상 등산해야 한다는 것과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각오를 해야할지 예상되는 부분이었다.
당일 새벽 5시부터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5시에 일어날 것도 아니면서 혁수가 알람 시간을 이른 시간대에 맞춰놓은 것이다.
그러더니 30분 후에는 국민체조 음악이 들리면서
교관처럼 구호를 외치는 유준 형 목소리에 모두가 잠에 깼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세수도 안하고 바로 출발했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길도 잘 안보여서
핸드폰 조명에 의지하며 등산하다가 날이 점점 밝아졌다.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잎들이 보였고
추웠던 기온은 따뜻해져갔다.
반듯하고 경사높은 계단 길을 쭉 걸어 오르는데 계단 턱이 생각보다 높아서 인상깊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출렁거리는 쓰릴감을 더 느끼려고 일부러 뛰어다니기도 했다.
이날 등산에 참여하기 어려운 현서는 오늘 숙소에 머무르기로 했는데
혼자 있는 건 안전하지 않아 전날에 현서 어미님이 오셔서 같이 있게됐다.
그런데 어제 저녁 식사를 하고 장애인들도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숙소를 운영하는
좋은분들을 소개시키려고 선생님이 그곳에 모셔다드렸다.
그곳에서 하루 자고 점심때 돌아오기로 해서
우린 현관문을 잠가놓고 열쇠를 숨긴 후 먼저 출발해야 했다.
그런데 현관문 열쇠를 슬리퍼 밑에다 숨겨놓고 온다는 걸 깜빡하고
내 가방에 넣어가지고 와버렸다. 당황스럽다.
현서랑 현서 어머님이 밤이 되도록 낮이 되도록 밖에서 머물것을 생각하니
오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혼자 굳은 얼굴로 조용히 침묵하며 걸어 올랐다.
간간히 보이는 표지판을 보고 걸어 오르면서
끝이 없을것만 같았던 정상에 도착했다.
백록담은 늘 물이 고여있는 곳인줄 알았는데...
몇 년 전에 오를 땐 비 내린 날이라 안개가 끼어있었는데
이번엔 제주도에 비가 안내린지 꽤 되어서 땅이 말라있었다.
낯선 모습이었고 아쉬웠지만 날씨가 맑은 덕분에
백록담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는게 어디인가 싶다.
우리가 올라왔던 길은 관음사 코스였고 내려갈 때는 성판악 코스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는데 걷고 걸어도 끝이 안보였다. 성판악으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과 마주쳐
수도 없이 멈춰야 해 내려가는 속도는 더욱 더디어졌다.
물을 아껴 마셔야 하는데 얼마나 고되던지 다 마셔도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안그래도 발에 물집이 잡혀있는 유준 형이 무릎까지 아파와서 무릎에 테이프를 감고 걷게 됐다.
그 모습을 보고 한라산에 오르는 것을 선택한 유준 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 또한 지친 상태라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우릴 앞서가던 선생님의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우리보다 먼저 하산했다는 연락을 받고 당황했다.
제일 잘 걸을줄 알았던 우리가 꼴지가 됐다.
어찌됐든 다들 무사히 하산해서 다행이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 김영갑 미술관을 구경하고 나온 현서 일행을 태우면서 나는 인사를 하는 동시에
열쇠를 가져간 저 때문에 고생하셨다고 죄송하다고 사과드렸다.
그러자 괜찮다고 하시지만 미안해서 면목이 없었다.
숙소에서 나눔을 했다. 마리아 선생님은 백록담에서 내려오는데 입에서 단내가 났다고 하셨다.
그리고 산에서는 물이 귀한데 그 귀함을 알았으면 좋겠고, 물이 적으면 마지막까지 배분해야 하는데
밥 먹으면서 꿀꺽꿀꺽 마셨던 것, 단풍이 감탄스럽고 풍광이 아름다웠다고,
힘든데 자기 몸의 힘을 빼고 명상하듯이 걷는 사람이 있고 헉헉거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유준이 무릎을 많이 걱정했는데 잘 걸어줘서 고마웠다고 말씀하셨다.
현서 어머님께선 일정을 같이 참여하지 못했지만
소개받았던 숙소에서 잘 쉬었고 현서와 오랜만에 길게 시간을 같이 보내고
충분한 이야기를 하고, 걸어서 행복했다고 하셨다.
고단했던 하루를 마치고 모두가 푹 쉬기를 바란다.
■ 숙소 – 한라산 – 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