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 경전에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할수 없는 이상한 글이 적혀있습니다.
그것은 고대 인도의 비행물체를 떠올리게 합니다.
"몸은 가볍지만 하늘에서 자유자재로 날 수 있는 새처럼 '비마나'의 몸체는 단단하고 내구력이 있어야 한다.
'비마나'속에는 밑부분에 쇠로 만들어진 열을 만들어내는 기계가 받치고 있고, 그 위로 수은 엔진을 장착한다.
수은에 숨겨진 잠재적인 힘을 이용하여 비행동작을 힘차게 만드는데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하늘에서 멀리까지 여행할 수 있다.
'비마나'는 수직상승을 할 수 있으며 수직하강과 기울인 자세에서 앞뒤로 움직일 수도 있다.
이 기계의 덕택으로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있으며 하늘에 있는 존재들은 땅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바빌론의 법률인 '하카타'에도 이런 문장이 있는데
"하늘을 나는 기계를 탈 수 있는 특권은 대단한 것이다.
비행에 관한 지식은 선조들이 남긴 유산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며,
'저 위에서 온 존재들'의 선물로서, 우리는 이것을 많은 인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명분으로 받은 것이다."
고대 칼디어어로 쓴 작품인 '시프랄라'에 보면
무려 100여 쪽이 넘는 문서에서 비행기계 제작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그 내용에는 오늘날의 흑연봉, 동코일, 수정시계, 진동구, 안정각 등을 뜻하는 단어들이 있다고 합니다.
남미 콜롬비아에 있는 기원전 500-800년 경의 시누문명 유적으로부터
길이 6cm, 폭 5cm, 높이 1.5cm의 새와 같은 모양을 한 황금 비행기 여러 개가 발견되었습니다.
동물학자 아이반 샌더슨 박사는 이 황금 세공물의 기계적인 속성을 처음 언급하였는데,
이 기이한 물건은 한눈에 봐도 삼각 주날개와 수평 꼬리날개, 수직 꼬리날개가 있고,
풍향계, 조종석, 엔진의 공기 흡입구까지 보입니다.
세계 최초의 로켓 비행사로 유명한 잭 A 울리치는 이 황금 비행기를 처음 본 순간,
"비행사의 직감으로 이것은 그냥 비행기가 아니라
초음속기를 연상케 하며, 그것도 전투기 종류일것"
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 후 뉴욕 항공연구소 아서 포이슬리 박사를 비롯한 연구원들이 더 조사를 한 후
"이 모형은 항공 역학의 이론대로 만들어진,
델타 날개의 제트 전투기이거나 미국의 콜럼비아호같은 로켓식 스페이스 셔틀의 모형이다."
라고 발표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물건은 이것만 발견된것이 아닙니다.
1898년 이집트의 사카라 교외 분묘에서 프랑스 고고학자 로러(Lauret)가
새를 닮은 목재 유물을 발굴했는데 측정해보니 시기는 기원전 2백년 경 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새'로 분류되어 이집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비행기가 발명되지 않은때라 사람들은 조금의 의심조차 갖을수 없었지요.
(인류가 동력 비행기를 발명한것은 1903년(라이트 형제)이 정설입니다.)
그러나 약 8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1969년 칼리르 메시하라는 학자에 의해 새롭게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새를 본뜬 모형이 아니라 바로 무화과 나무로 만들어진 글라이더였다는 겁니다.
나일강 서안에 있는 고대 이집트 유적인 아비도스(Abydos)의 신전에서 발견된 이 벽화는
역사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들이 보아도 무엇을 뜻하게 되는 것인지 알수 있을정도로 현대의 운송수단과 꼭 닮아 있습니다.
과연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것보다도 더 기이한것이 호주의 한 사냥꾼으로부터 발견됩니다.
1907년 호주에서 캥거루를 잡아 가죽을 파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한 사냥꾼은
호주의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헌터밸리에서 동굴로 들어간 캥거루를 쫓아 들어가다
동굴의 암벽에 새겨진 정체 불명의 고대문양을 발견하고 이 사실을 호주 시드니의 주립대학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고고학전문가가 없던 시드니의 대학은
영국의 옥스포드대학에 있는 고고학자들을 초빙하여 발견된 문양을 조사하도록 부탁하였으며
1908년 호주에 도착한 영국의 고고학팀은 본격적으로 암벽에 새겨진 문양을 해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문양을 본 고고학팀은 헌터밸리에 있던 문양이 고대 이집트문양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뒤
경악을 금치못하였으며 어떻게 고대 이집트 인들이
지구반대쪽에 있는 호주에 문양을 새길수 있었는지는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암벽의 탁본을 만들어 영국으로 가지고간 옥스 포드대학의 고고학팀은
당시 고대 이집트어를 해석 할수있는길이 전혀 없어 아무런 조치를 할수가 없었 습니다.
1918년 이집트에 원정을 가서 고대유적지를 발굴하던 옥스포드대학의 고고학팀은
피라미드 앞의 모래를 파내다 우연히 발견된 고대 이집트/그리스어로 함께 기록되어있는
1000개 문양의 피라미드 설명 석판을 발견한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집트어를 해독 할수있었습니다.
그후 이집트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두 언어의 석판을 더 찾아내게된 고고학팀은 석판이 발견된
피라미드의 주인 이름이 투탄카맨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고 하며,
이 석판의 탁본을 영국으로 보내게되었습니다.
당시 편지로 탁본을 받게된 옥스포드대학측은 호주 에서 발견된 고대문양을 해독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당시 해독된 호주의 문양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습니다.
"드제스앱 선장이 죽었다. 라-제데프(기원전 2400년 나일강 북쪽의 왕)의 어명에 따라 신대륙을 찾은
우리는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고 다시는 돌아갈수 없을것같다"와
"죽은 사람들은 모두 근처에 묻었고 많은 사람들이 뱀에 물려죽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습니다.
위의 문장이 해독된뒤 1922년 투탄카맨의 무덤을 열게된 카터경은 고대 왕의 무덤속에서
캥거루가 새겨져있는 금장부메랑을 발견한뒤
오래전 호주에 좌초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일부가 후에 모국으로 돌아갔을 확률이 높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집트 카이로의 위성사진과 비슷한 한 고대 지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보고 그린 지도 같습니다.
1959년 미국이 인공위성이 우주공간에서 찍은 사진을 성공적으로 수신하고
비록 사진의 효과가 이상적이지 못했지만,
인류가 처음으로 과학을 이용하여 17,000 마일(약 27,200 킬로미터) 상공에서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이후 위성사진기술은 과학 연구 분야에 대량으로 사용되었고,
또 외계에서 지구를 관측하는 과정 중에 매우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한번은 과학자들이 인공위성으로 카이로 상공에서 지구를 촬영하였다.
이 때 인공위성에 장착된 사진기의 렌즈는 바로 이 지역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이로 중심 반경 5천마일 내의 일체 사물이 모두 들어옵니다.
단 중심점으로부터 사방을 둘러보면 육지와 평원은 점점 희미해지며 둥글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인데 중심에서 멀수록 아래로 기울어지며 남미 같은 경우 지형이 길고 좁게 나타납니다.
우주인이 달에서 찍은 사진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데
한 과학자가 이 한 장의 사진과 터키의 고대지도를 비교하니 그 지도와 위성사진이 매우 유사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극의 지도도 있었는데 남극의 산맥은 수백 년이래 빙산에 뒤덮여 있어
1952년 지진파 기기의 도움으로 그 산맥의 위치를 겨우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한 장의 고지도에는 이미 남극대륙의 모습이 명백하게 그려져 있었고
그 외에도 미국, 아프리카 대륙의 윤곽과 경도, 위도가 매우 정확히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지도는 터키 해군사령관 레이스(Piri Reis)가 16세기 초 여러 장의 고지도를 맞붙여 제작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발견은 과학자들에게 매우 흥미를 불러 일으켰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1. 이 지도는 6장의 매우 오랫동안 내려온 원시지도를 합성한 것이다.
2. 이 원시지도의 제작기술은 현재의 평면기하 기술과 유사하거나, 적어도 그와 비슷한 제작기술을 갖추고 있다.
3. 지도의 그림은 카이로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 점으로 보아 우리는 레이스가 갖고 있는 원시지도가
오늘날과 같은 진보된 기술로 그려졌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