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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 옷을 벗지 않는 재림신앙ㅣ춘계 신앙부흥회ㅣ박상길 목사ㅣ2024.4.16 (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현재 제가 연수원에서 사역하기 때문에 저희 연수원이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사역한다는 걸 좀 말씀드리고 혹시 기억나실 때 좀 기도해 주시면 하는 마음에서
저희 연수원의 사역 방향을 좀 이렇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재림 신앙을 더 선명하게 하고 교회를 향한 충성심을 더 높이며 사역의 필요를 더 구체적으로 채우는 연수원이 되는 것이 저희의 기도요.
또 목표입니다. 기억하실 때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고 이번 한 주일 동안 저는 아시는 대로 더 선명한 재림 신앙이라는 주제 그래서 제가 이제는 뭐 어디 가서 어떤 설교를 하든지 주제는 똑같습니다.
재림 신앙을 더 선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내용은 다 다르겠지만 오늘 첫 시간에 채색옷을 벗지 않는 재림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제가 이건 제가 연수원에서 하는 우리 연수 프로그램에서 1시간 반 동안 제가 강의하는 내용인데 오늘 저녁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최대한 압축하고 요약해서 전하다가 시간이 되면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결론을 먼저 확실하게 하고 진행을 하다가 아무 때나 끝나도 되니까
결론은 채색옷을 벗지 맙시다입니다. 그래서 한번 따라 하도록 하십시다.
채색옷을 벗지 맙시다. 이것만 기억하시면 지금 끝나도 됩니다마는 또 지금 끝나면 좀 아쉬우니까 조금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채색옷에 대해서 조금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을 다시 설명을 드리면 일단 채색옷은 아무나 입는 옷이 아닙니다.
채색옷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아들만 입는 옷입니다.
아들이 야곱에게 아들이 12명 있었지만 오직 한 아들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그래서 채색옷은 물론 뭐 좋은 옷이고 예쁜 옷이겠지만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이 들어있는 옷입니다.
특별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한 부담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채색옷 좋은 옷이고 자랑스러운 옷이지만 채색옷에는 또 그만큼의 부담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창세기 37장 3절에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라고 이렇게 기록돼 있는데, 야곱이 요셉을 낳을 때
나이가 몇 살쯤인지 혹시 아시는 분 계세요? 야곱이 77살에 아버지 집을 떠납니다.
형을 속이고 77살에 도망을 시작하고 84살에 결혼합니다.
두 여인과 한꺼번에 결혼하죠. 그다음에 아들을 쭉 낳기 시작해서 요셉을 낳을 때 나이가 91살입니다.
91살 물론 많은 나이지만 84살부터 아들을 10명을 낳고 열한째 아들을 91살에 낳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뭐 막 한참 이렇게 뛰어넘는 막둥이가 아니고 그냥 쭉 낳은 아들 중에 하나입니다.
근데 뭐 좀 늦게는 낫죠. 그런데 왜 야곱이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혔는가 그것은 요셉이 다른 아들들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아주 독특한 특별한 품성을 개발한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성품을 가진 한 사람 곧 라엘의 아들 요셉 야곱이 다른 아들들을 볼 때는 늘 자기의 그 온갖 죄된 본성을 아들들에게 물려준 것 같아서 늘 부담스럽고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꼈는데
요셉을 볼 때는 다른 거예요. 전혀 다른 아들 그래서 그 아들이 너무 귀하고 사랑스러워서 채색옷을 지어 입힌 것이죠.
그래서 이 채색옷에는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로 개발한 정말 고결하고 특별한 품성이 그 채색 꽃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특별한 순종입니다.
채색옷 입은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는데 세겜까지 갔다 오라는 심부름을 했지만 보냈지만 그러나 세계에서 형들을 찾을 수 없었을 때 도단까지 가서 기억코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부분적 순종이 아닌 완전한 순종, 문자적인 순종이 아닌 뜻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왜냐하면 그때 요셉이 채색옷을 입고 갔거든요.
그래서 이 채색옷에는 이런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 요셉이 개발한 독특한 품성, 그리고 그가 보여준 특별한 독특한 순종의 의미가 다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채색옷 입어야 되겠습니까?
세상을 입어야 돼 여러분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네.
부름받은 하나님 백성들은 다 채색옷의 백성입니다.
우리 다 채색옷을 입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이 채색옷은 좋기만 한 옷이 아닙니다. 채색옷은 첫째로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이 옷을 입으면 아무 데나 앉지 못합니다.
이 옷을 입으면 아무 말이나 욕도 잘 못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사람이 이렇게 옷을 이렇게 잘 입고 막 욕하고 다니면 안 되잖아요.
근데 예리 군복 입으면 막 욕 막 하고 막 그러지 않습니까?
옷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사람의 행동이나 이런 것에 영향을 많이 끼쳐서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옷을 잘 입으면 그 사람의 품격이 자기도 모르게 좀 이렇게 품성이나 행동이 이렇게 좀 제한되고 가지런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복 입으면 여자들도 더 자기를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근데 근데 문제는 불편합니다.
저도 늘 이걸 내지만 사실 이거 안 매고 싶거든요. 불편하니까 채색옷은 불편한 옷입니다.
특별히 채색옷이 불편한 이유는 어디를 가도 눈에 띄기 때문에 뭘 마음대로 못 합니다.
밥도 함대로 아무 데나 못 먹고, 잠도 아무 데나 못 자고 아무 데나 못 들어갑니다.
그래서 채색옷은 불편한 옷입니다.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는 데는 이런 불편함이 포함돼 있는 것이죠.
불편만 하면 좋은데 채색옷은 미움 받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요셉을 미워했어요.
왜냐하면 그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 사랑이 표현인 채색옷을 이놈이 날마다 입는 거예요.
뭐 이렇게 입혀줬으면 한 번 입었다가 벗어놓으면 좋겠는데 얘가 막 안 벗어요.
맨날 입고 다니니까 얼마나 형들이 보기에 꼴배기 싫겠습니까?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그래서 채색옷 입으면 미움 받습니다.
불편한 데서 끝나는 불편한 것도 사실 힘든데 미움까지 받으니 채색옷을 야 이거 정말 입고 살아야 되나 그런 생각이 들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미움 받는 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채색옷은 대단히 위험한 옷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이제 요셉이 도단에 있는 형들에게까지 갔는데 형들이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모의 합니다. 야 죽여버리자.
그리고 알리바이를 만듭니다.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여러분 사람 하나 죽이는 모의를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당연히 모르시겠죠 한 번도 안 해보셨으니까. 근데 이게 한 사람이 한 사람 죽이는 건 쉬워요.
그냥 몰래 확 죽이면 되니까. 근데 두 사람이 한 사람 죽이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마음을 맞춰야 되거든요. 사람 죽이는 게 보통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10명이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은 말이죠.
회의를 많이 해야 됩니다. 근데 이 형들이 그렇게 회의를 다 하고 결론을 낼 때까지 시간을 벌어준 게 바로 요셉의 채색옷이에요.
만약에 채색옷 입고 안 갔으면 저기서 오는데 모릅니다.
누군지 다 왜냐하면 그 시대 사람들이 옷을 다 똑같은 옷 입었거든요.
가까이 와야 요셉이 누군지를 알아볼 수 있고 그러면 뭐 야 죽이자 모의를 못하는 거죠.
근데
제사 옷 입고 오니까 멀리서 성경 말씀 그대로 그들이 멀리서 보고 죽이기로 모의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채색옷은 위험한 옷입니다. 채색옷 입고 살면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여러분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채색옷을 계속 잘 입으실랍니까?
아니면 벗으실랍니까? 입고 싶은 옷이에요. 사랑의 옷이고 품성의 옷이고 그리고 순종의 옷이니까 입어야 돼요.
당연히 그런데 한쪽으로 보면 이거 입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일단 불편하고 불편한 것뿐 아니라 그 옷 입으면 괜히 미움 받아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꾸 미움하고 뭐라 그러고 그뿐 아니라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이죠.
그래 채색옷 처음에 입을 때는 참 행복하고 하나님이 나한테 이렇게 좋은 옷을 주셨구나 생각이 드는데 입고 살아가다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이게 너무 불편하다. 꼭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들다가 그다음에 사람들이 자꾸 너는 왜 그런 옷을 입고 사냐 너는 왜 그렇게 먹냐 너는 왜 예배를 토요일에 드리냐 왜 자꾸 율법주의다 이렇게 하면 꼭 이렇게 미움받으면서 예수 믿어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러다가 이제 좀 더 지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저놈들 죽여라
여러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기 남은 무리의 채색옷 저는 이 계시록 12장 17절과 14장 12절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혀주신 채색옷이라고 제가 믿습니다.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시작
여러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예수의 증거를 가지는 것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 이것이 세천사의 기별로 말미암아 형성되는 하나님의 남은 백성 남은 무리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체성입니다.
이게 우리가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입혀주신 채색옷이에요.
여러분 이 옷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다른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과 구별됩니다.
마치 요셉이 아버지가 지어 입혀준 채색옷 때문에 다른 11명의 형제들과 구별되었던 것처럼 말이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예수의 증거를 가지는 것,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
이것 위에서 우리가 존재합니다. 이것이 재림 신앙의 핵심이고 본질이고 DNA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세상과 구별됩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수많은 기독교 사회에서 우리가 어울리지 못합니다.
저것들은 달라 이상해.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혀주신 이 재림 신앙의 채색옷을 입고 살아가면 불편합니다.
여기 계시록 13장에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대단한 불편함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건데 못하게 안 끼워줘.
그리고 미움받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뭐 합니까?
싸웁니다. 왜 싸웁니까? 미우니깐요. 싫으니깐요.
그래서 재색 옷 입고 살아가면 필연적으로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에 의해서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움받는 게 당연합니다. 제가 광안리 교회를 섬길 때 30살 31살 32살 그때였던 것 같아요.
제가 안수받기 전이었고 광안리 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그다음에 이제 안동으로 제가 갔는데 지금 기억납니다.
제가 광안리 교회에 광안리 있을 때 그때 한참 이제 우리나라에 PC 통신이 막 보급이 돼가지고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천리안 하이텔, 케텔 그런 데서 지금은 이제 우리가 다 인터넷이지만 그때는 그건 아니고 PC 통신이 아주 활발하게 이렇게 할 때 저는 비교적 이제 그런 데 좀 관심이 많아서 일찍 그런 문물에 좀 익숙해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쭉 뭐 이렇게 하다 보면 재림교회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글이 여기저기 올라오기 시작 올라오면 제가 그 때 보일 때마다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밤새워서 막 컴퓨터 앞에서 싸웠어요.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개신교 목사 있습니다.
이영재라는 목사예요. 그 사람이 컴퓨터 선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가지고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자기 거기에다가 안식교가 이단 이유를 쫙 쓴 거예요.
제가 뭐 그때 안수 안 받은 젊은 목사인데 제가 내가 이 교회를 지켜야지 이런 사명감 가지고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모릅니다.
누가 이기고 졌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는데 그때 제가 이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아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 사람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우리를 미워하노 그게 제 이해가 안 된 거예요.
막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고 막 늘 이게 막 부글부글 끓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제가 그때는 몰랐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된 게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재림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면 필연적으로 이렇게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제가 알게 됐어요.
물론 지금도 미움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미움 받습니다.
제가 인천에서 목회할 때 그 교회 뒤에 테니스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테니스를 만년 초본인데 그래도 운동을 좀 해야 되겠다 싶어가지고 핸스장에 나가서 이렇게 이렇게 가없이 운동을 했어요.
저는 뭐 잘 못하니까 별로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반겨하지는 않습니다.
근데 어느 날 제가 테니스장에 아침에 갔는데 굉장한 환대를 받았어요.
왜냐하면 테니스장에 세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시네요 테니스장에 세 사람의 의미를 아시는군요.
세 사람은 참 슬픈 숫자입니다. 왜냐하면 한 명이 더 있어야 이렇게 4명이서 복식을 하는데 셋이 있으면 정말 재미가 없어요.
근데 이 세 사람이 자기들끼리 공을 주고받고 하다가 쟤가 나타나니까 막
환영 어서 오십시오 이러는 거예요. 저는 테니스에서 제가 그렇게 환영받아본 건 처음이에요.
그래서 좀 그래서 그래서 이제 이제 걸어가고 있는데 그때 그 테니스장을 관리하는 코치가 이제 들어왔어요.
이 사람은 그 사람들도 알고 저도 아는 거예요. 그래서 이 코치가 그분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목사님들 이분도 목사님입니다.
이렇게 말했어요. 이분도 목사님입니다. 이거 보니까 그 세 사람이 다 목사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 분이 자기들끼리 있다가 한 사람이 온 것만 해도 반가운데 거기다가 그 사람이 목사라고 하니까 얼마나 더 반갑겠습니까?
환영의 강도가 확 더 올라가고 진짜 무슨 고향 친구 만나는 것처럼 목사님 반갑습니다.
제 손을 잡고 막 악수를 하는데 얼마나 힘이 센지 아유 네 목사님 반갑습니다.
한참 흔들다가 이분이 아 그런데 교단이 교단이 아 제가 안식일 교회 목사입니다.
여러분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손에 힘을 주고 저를 흔들던 그 사람의 손에 갑자기 힘이 스르르르르 빠지더니 놔버렸어요.
그러더니 아 네 아 네 더 이상 많아 그다음 사람도 악수를 마지못해 하는데 아무 말도 안 해요.
세 사람 다 여러 새가 얼마나 기분이 나빴겠습니까?
제가 이야 이런 무례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니 정말 고약하구나.
내가 테니스로 이들을 꺾어야 되겠다. 그 사람들이 저보다 훨씬 고수라 가지고요.
그러니 서로 재미가 있겠습니까? 뭐 운동이 한동 마는 둥 하다가 그냥 집으로 왔죠.
그럼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그 사람들한테 제가 뭘 달라고 그랬어요.
뭐 왜 그런데 그렇게 환영하다가 한순간에 그렇게 나를 바꾸고 마치 뭐 정말 벌레 만진 듯이 여러분 그 악수하다가 이렇게 손 떼는 것 한번 여러분 평생에 목격은 못하실 텐데 아 정말 고약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게 재림 신앙 여러분 재림 성도로 살아가는 것 미움받을 각오하셔야 합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가 막 이단 이거 극복하자 막 막 이렇게 하는데 물론 좋아요 하는 거 좋지만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세상이나 재림 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재림 신앙을 향해서 당신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그렇게 하는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 저는 믿어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왜냐 우리가 채색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맞다면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지 않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채색옷이 뭡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데 어떻게 안 미워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 미움받는 재림 신앙은 위험한 재림 신앙으로 반드시 가게 돼 있습니다.
계시록 13장 15절에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예요?
채색옷 입은 사람 마치 두라 평지에 모두가 다 우상에게 절할 때 고개를 하늘을 향해 들고 서 있었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세 사람을 느부갓네살리 풀모에 던져 넣었던 것처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는 일이 반드시 이 역사의 마지막에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채색옷을 계속 열심히 입어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벗어야 되겠습니까?
심각한 문제.
그런데 제가 이제 저도 이제 이제 죄송하지만 은퇴가 이제 한 3년 2년 조금 더 남은 이제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30대에 광안 교회를 섬길 때와 60대가 되어서 제가 최근에 가장 최근에 섬긴 교회가 용인교회인데 그 초기와 지금의 제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들의 상태를 제가 봤을 때
우리의 재림 신앙이 그때보다 더 선명해졌는가 아니면 희미해졌는가 저는 이게 큰 고민이고 숙제입니다.
316 부산 병원 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재림 신앙이 주님이 오심이 가까워질수록 더 선명해져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더 희미해져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 전체가 깊이 생각해 봐야 될 문제입니다.
세상이 볼 때 우리는 우리의 채색옷을 더 깨끗하게 잘 빨아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볼 수 있게 입고 살아가는가 아니면 거기 위에다가 뭐 이런 거 저런 거 막 덧입어가지고 안식일에는 채색옷 보이다가 남포동 나가면 그 위에 다른 거 입고 오셔서 이 사람이 뭐 어느 교인인지 에 여러분 예전에는 우리가 저는 제 기억은 그렇고 그렇습니다.
선명했어요. 더 지금보다 훨씬 더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 더 선명했고요.
우리가 먹는 음식도 더 선명했고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우리의 가치관 더 재림 신앙의 그 선명함 쪽에 있었는데 왜 우리가 세월이 갈수록 그런 우리의 선명함을 자꾸 자꾸 잊어버리고 살아가는가
여러분 저기 교회 증언 5번에 엘렌 하윗이 이렇게 기록한 증언이 있습니다.
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독특한 백성으로 인정받고
독특한 백성 물론 지금도 우리가 독특한 건 맞습니다.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예배드리지 않는 안식일에 예배드리니까 예배드리는 날 독특합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 우리의 자세는 태도는 방법은 정신은 그 독특성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잃어버린 것이 현실입니다.
이건 뭐 세상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우리가 다시 한 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서 채색옷의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해야 하는가 저는 저는 늘 고민입니다.
그래서 연수원에 오시는 목회자들이나 또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늘 우리가 우리의 신앙이 더 선명해져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물론 제 자신이 이미 그런 선령 하나를 많이 잃어버린 것 제가 인정하고 알지만 그러나 요셉은 그 불편한 채색옷을 그 미움받는 채색옷을 위험한 채색옷을 평생 입고 살았는데 아버지 집에 있을 때나 심부름 갈 때나 애굽으로 팔려갈 때나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던져질 때도 여전히 요셉은 그 옷을 입고 있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는요 그가 30살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도 여전히
히브리 11장에 믿음의 사람들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요셉에 대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고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 요셉의 믿음입니다.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에 떠날 것을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애굽은 요셉이 인생에서 거둘 수 있는 모든 성공을 다 거둔 곳입니다.
더 이상 누릴 것도 가질 것도, 옳을 것도 없는 성공을 한 곳이 애굽이에요.
근데 고향에서는 끊임없이 형들에게 미움받다가 결국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팔려버렸죠.
여러분 사람이 성공한 데서 살아야지 그렇게 미움받고 구박받고 버림받은 곳으로 돌아갈 마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여기 있으면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여기 와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이 너희 당신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실 때가 오는데, 그 때에는
아무런 미련 갖지 말고 돌아가야 한다. 그게 요셉의 유언이에요.
그게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의 의미입니다.
그다음에 거기다가 덧붙여 있죠. 또 자기 해고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뭡니까?
니들만 가면 안 된다. 누구도 데려가라. 나도 데려가 나는 이제 죽어서 내가 뭐 이렇게 미이라가 되겠지만 애국할 때 반드시 내 해고를 가져가야 한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린 성공의 땅에서 요셉은 내 죽으면 무덤에다가 비석 이렇게 세우고 비문 이렇게 써라 그런 말 하지 않고 나 묻지 마라.
그냥 그냥 저 관에 넣어놨다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돌아갈 때 나 데리고 와라.
요셉은 일평생뿐 아니라 죽은 이후에까지도 그 채색 꽃을 그렇게 말하는 게 맞는지 모르지만,
우리 3693병원에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복음을 전하시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채색옷의 백성으로 살아가십시다.
이 채색옷이 매우 불편하고 부담스럽지만 채색옷 입었기 때문에 아무 까닭 없이 비난도 받고 조롱도 받지, 나아가서 앞으로 채색옷 입었기 때문에 죽이라는 명령 아래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위협을 다 받겠지만, 우리는 요셉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향하여 하늘, 가난을 향하여 채색옷 입고 충성하며 살아가는 재림 성도, 더 선명한 재림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기로 결심합시다.
마지막 날 사건을 45쪽입니다. 제칠 안식일 예수 재림 교인들은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으로 선택되었다.
그분께서는 진리의 큰 칼로 그들을 세상의 채석장에서 잘라내어 당신 자신에게 연결시키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대표자로 삼으시고, 그들로 마지막 구속 사업에서 당신의 대사가 되도록 부르셨다.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입니다. 남은 우리 재림 성도 그래서 우리는 이 독특함을 더 잘 지켜가야 합니다.
그게 재림 신앙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독특함을 잃어버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독특한 백성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독특한 백성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교회가 있는데 뭐하러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교회를 만들어 내서 우리를 여기에 포함시켜 놓으셨겠습니까?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이 독특함이 너무 불편해서 늘 이단이다.
율법주의다 뭐 여자를 여자를 교주로 뒀다 뭐 이런 소박 많은 우리가 듣는 비난과 조롱이 너무 스트레스가 되고 힘들어서 아 우리도 좀 편하게 믿지 그렇게 해서 재림 신앙의 독특함을 나타내는 채색옷을 벗어버리는 재림교인들이 많습니다.
많습니다.
옛날에는요 다들 아시겠지만 재림 신앙하다가 믿음이 없어지면 신앙을 안 하면 안 했지 무슨 장로교 가고 친내교 가고 무슨 안상홍증인회 가고 그런 일은 우리가 선명한 신앙을 할 때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1980년대 90년대까지는 거의 그런 일은 우리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사실은 근데 지금은요 그런 일이 흔히 일어납니다.
심지어 신천지도 갑니다. 재림 신앙하다가 여호와 증인도 갑니다.
옛날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인데 왜 일어나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그거예요.
우리가 우리의 신앙의 독특함을 다 놓쳐버리고 나니까 차이가 별로 없는 거예요.
여기서 이렇게 믿어라 저기서 저렇게 믿으라면 다 그게 그거 아니냐 독특함을 잃어버리면 저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으로 선택하셨는데 우리가 그 독특함이 너무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 일반화되어 버리면
장로교처럼 되고 감리교처럼 되고 침례교처럼 되어버리면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또 익숙하고 사람들에게 좀 인정받고 그런 데서 신앙생활을 하는 게 더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우리 귀한 고향의 믿음의 가족 여러분 저는 우리 36 부산 병원 교회가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신 우리 재림 신앙의 선명함을 회복하고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 백성의 독특함을 애써 지켜나가시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은 그렇게 재미있는 일은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입 좁은 문이고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제가 남은 시간 동안에 제가 정리한 채색옷 재림 신앙의 일곱 요소를 간략하게 그저 읽어드리고 8시 30분에 딱 마치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지금쯤 마치면 제일 좋으실 텐데
제가 이 7가지라고 한 건 그냥 제가 그렇게 정리를 한 겁니다.
왜냐하면 제일 아름다운 색깔이 무지개 일곱 색깔이니까 내가 우리 재림 신앙의 독특함을 이렇게 7가지로 한번 정리를 해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뭐 꼭 그렇다 그건 아니고 무슨 제가 학자도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의견을 이렇게 정리한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시고 한번 쭉 한번 따라가 봐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첫째 독특한 이름입니다. 독특한 이름은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라는 정말 독특한 이름입니다.
두 번째 독특한 기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독특한 기별은 하늘 성서와 그곳에서 행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사역입니다.
조사 심판 우리에게는 독특한 사명이 있는데 그것은 율법의 보존자와 옹호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독특한 선물이 주어졌는데 그것이 예언의 신의 증언입니다.
독특한 품성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한 품성이고 그다음에
독특한 생활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옷과 말과 태도와 음식과 가치관에 있어서 그리고 독특한 소망은 늦은 비와 특별 부활입니다.
이 7가지를 그냥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독특한 이름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우리가 공언하는 바와 일치하고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고 우리를 독특한 백성으로 구별해 주는 그런 명칭 외에는 어떤 명칭도 우리가 택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라는 명칭은 개신교에 대한 변함없는 책망이다.
여기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과 짐승을 경배하고 그 표를 받는 자들을 구분하는 선이 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이름 여러분 이 세상에 기독교 이름이 뭐 많이 있지만 기별로 이름을 삼은 유일한 교회가 우리 교회예요.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 기별입니다. 독특한 기별이고 우리를 세상과 구별하는 기별이 우리의 이름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이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이 이름의 뜻을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이 이름에 합당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한 거룩한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인이라면 정말 정말 우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우리의 삶의 모든 가치를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이름과 우리의 삶을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삼육부산 병원 교회를 통해서 우리의 독특한 이름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이름을 정말 하나님이 주신 귀한 기별로 사랑하며 살아가시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이 기별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과 짐승을 경배하고 그 표를 받는 자들을 구분하는 선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삶을 통하여 나타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넘어가겠습니다. 둘째 독특한 기별입니다. 이 기별에 대해서는 여기 대쟁2 489쪽에 있는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늘 성서에서 사람을 위하여 진행되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은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십자가상에서의 그분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기묘하다.
여러분 이 세상에 어떤 신학자도 어떤 목사도 이런 말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세천사의 기별만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이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십자가상에서의 그분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긴요하다는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이런 독특한 기별을 받은 백성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비난받고 조롱받고 공격받는 것입니다.
미움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들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믿고 가르치는데 우리는 아니다.
십자가에서 그분의 죽으심으로 시작된 일이 하늘에서 완성된다는 하늘 성서의 기별 그리고 예수께서 조사 심판을 통하여 우리의 구속 사업을 완성하신다는 독특한 기별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다른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우리 재림 신앙을 싫어하는 거예요 미워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독특한 기별을 더 선명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독특한 사명입니다. 율법의 보존자와 옹호자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율법의 보존자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치고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첫째 가는 특별한 한 백성 곧 지상의 한 교회를 가지고 계신다.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독특하고 본질적인 사명은 율법을 보존하고 옹호하는 일입니다.
제가 이것은 금요일과 또 토요 안식일 예배 시간에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율법의 보존자, 율법의 옹호자 우리가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보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지 못하면 우리의 존재 가치는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사라집니다. 다른 모든 것에서 성공했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의 보존자라는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해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독특한 선물은 예언의 신의 증언입니다. 각 시대의 대쟁토 중 가장 극심한 이 환난에서 살아남도록 그들을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심으로 그의 백성에게 그들이 홀로 있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을 주셨다.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은 그들의 최종적 목적, 즉 재림 때 그들의 구조화의 연합으로 그들을 안전하게 인도할 것이다.
여러분 예언의 신의 선물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예언의 신의 선물이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당신의 인도하심의 손길이라는 사실을 믿고 신뢰하셔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재림 성도들이 예능신의 증언을 예전처럼 사랑하지 않습니다.
잊지 않습니다. 그 기별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채색옷이 점점점점 희미해져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우리에게만 주신 선물입니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어느 교회에도 주지 않고 우리에게만 입혀주신 이 소중한 선물을 여러분 사랑하고 아끼고 깊이 연구하고 그 이별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심으로 더 선명한 재림 성도가 되도록 하십시다.
다섯째, 독특한 품성입니다. 그리스도인 품성의 완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고 계시는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 재림교회 안에 이상한 현상이 있습니다. 완전이라고 그러면 저거 이상한 거 아니야 완전 줄이기 아니야 여러분 완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지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에요.
여러분 이런 기별, 재림교회 밖에서는 상상도 못합니다.
재림교회가 이런 기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다른 기독교가 이 재림교회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불편하게 생각하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도우시는 은혜 안에서 완전해지고자 하는 거룩한 품성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선명한 재림 성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여섯째, 독특한 생활입니다. 우리는 옷과 말과 태도에 있어서 세상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옷과 말과 태도, 먹는 것, 입는 것, 살아가는 방법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점점점점 세상과 비슷해져가고 있습니다.
비슷하게 먹고 비슷하게 살고, 비슷하게 말하고 슬픈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독특하고 그들 주위에 있는 불신의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분명해지는가.
우리의 위치는 흥미롭고도 두렵다. 마지막 날에 살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께서 가신 그대로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여러분 독특한 생활은 불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독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독특한 생활은 미움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신앙의 독특함이므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합니다.
저는 우리 삼육부산병원 교회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독특한 삶의 가치를 방법들을 지켜나가는 영적인 공동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독특한 소망입니다. 독특한 소망은 늦은 비입니다.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이런 비가 내렸던 것처럼 늦은 비가 우리에게 내릴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늦은 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늦은 비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은 제가 내일 저녁 시간에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계시록 18장 4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또 내가 들으니
여러분 계시록 18장에 힘센 천사는 그 천사가 우리에게 하는 기별은 이것입니다.
너희들은 독특한 백성이 되어라. 구별된 백성이 되어라.
수많은 사람들이 가는 그 길에서 나와라.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마라.
이것이 마지막 이별입니다. 독특성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외롭지만 따로 있는 재림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외롭지만 따로 있을 수 있는 영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읽겠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으로 서는 것이다.
우리는 이 타락한 시대의 습관과 유행의
한 치도 양보하지 말고 도덕적으로 자립하고 그 부패한 우상숭배의 관습과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수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고, 돈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고, 힘이 세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으로 서는 것입니다.
채색옷을 벗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시작할 때 저를 따라 한 걸 한번 하고 마치겠습니다.
채색옷을 벗지 맙시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채색옷의 백성으로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사랑의 표현으로 이 복음의 채색옷, 진리의 채색옷을 입혀주셨으니, 저희들 불편해도 미움받아도, 위험해도 이 옷 입고 끝까지 충성하며 주님 따라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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