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 2
9월 17일, 2017
trans Canada trail
- 낟알 같은 꿈일지라도
장 계 순
오늘은 원래 나이아가라 Short Hill 로 갈 예정이었지만, 날씨가 더운 탓인지 취소하는
사람이 많아서 (정원이 30명인데 22명), 장소를 바꾸어 trans Canada trail로
갔다. 부르스 트레일 클럽에서 발간하는 ‘Footnotes’ 에는
아침 9시 욕밀스 지하철 건너편 가스바 옆에서 스쿨버스로 떠난다고 되어있다.
Uxbridge
가는 방향으로, Bloomington. Rd 와
warden. Ave 부근을 지나면, 전에 막내딸이 승마를 배웠던 York Equestrian 이 나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4, 5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오르내리던 기억이 새롭다. 파리가
득실거리는 찌는 날씨에도 말을 타기 전에 솔로 빗어주고 당근을 먹이는 등 말과 교류를 갖는 막내를 바라보곤 했다. 집에서는
파리 한 마리를 봐도 질겁하던 아이가, 말똥 냄새 진동하는 마구간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승마를 끝내고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어떤 말은
심술부릴 때도 있어 지켜보는 부모들의 가슴을 쓸어 내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막내가 말을 잘 다루는
것을 보아하니, 저 아이는 나중에 사람들을 잘 다루는 총독이 되면 좋겠다며, 함께 지켜보던 부모들이 농담하면서 웃기도 했다. 이젠 다 자라서 스스로 자기 앞을 잘 헤쳐나가는 자신감과 책임감을 지닌
아이를 볼 때, 역시 승마 덕분인가 싶을 때가 더러 있긴 하다. 그
아이가 평지뿐인 이곳을 떠나, 남미 안데스산에서 승마하는 사진을 페이스 북에서 보고는 가슴이 철렁했던
적도 있다. 가파른 그 절벽 위에서 말이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은퇴 후에 시골에다 말 키우는 농장(Ranch)을
갖고 싶다는 막내딸의 작은 꿈을 말리고 싶지는 않다.
- 단단히 잡아야 할 꿈
1991년,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11살 된 Jaycee Dugard라는 소녀가 어떤 부부에게 납치되어 18년 동안 성 노예로 감금당한 뒤, 두 딸까지 낳고 살다가 범인들의
뒷마당 텐트에서 구출된 극적인 이야기다. 그녀가 부모와 재회한 후 그 후유증 치료방법으로 승마를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승마 코치의 말에 의하면, 스스로
결정하고 말을 통제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몇 년 전에 그녀가 쓴 자서전, ‘ A Stolen Life’ 가 나왔지만, 난 차마 그 책만은 읽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 기막힌 사연이 담긴 책을, 두
딸을 둔 나로서는 가슴 떨려서 도저히 읽을 용기가 없어서다. 어린 나이에 붙잡혀 와서, 성인이 될 때까지 헤어진 엄마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밝히는 그녀, 아무리 작은 꿈일지라도 단단히 붙잡고 살아야 생존할 수 있는 길도 열리는 법이란 진리를 일깨워준다.
-키워나가는 꿈
리더 모니카는
루마니아에서 건너온 이민 1세에 속한다. 악센트가 묻어 나오는
그녀는 영어로 대화하기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일본에서 온 지 4개월 됐다는 한 일본여자는 13살 된 딸을 둔 엄마다. 벌써 직장까지 구했다는 그녀는 일본에서부터 하이킹을 했다는데, 늘씬한
다리를 자랑하는 래깅과 요가 셔츠를 걸친 모습이 이십 대라고 해도 믿어질 만한 몸매를 지녔다. 캐나다에 오자마자 하이킹 클럽부터 찾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걷기에 대한 꿈을 늘 간직하고 살았나 보다. 40대로 보이는 어떤
백인 여자는 나처럼 산티아고 카미노에 가는 꿈을 키우고 있단다.
돌아오는 길에
그 마을에서 유명하다는 bakery에 들렀다.
전에 루시 몽고메리(1900년대 캐나다 소설가)가 목사인 남편을 따라 와서 살던 마을에 견학 갔을 때에도 온 적이 있었는데,
넓은 정원에 앉아 점심을 먹을 수도 있어서 퍽 운치가 있다. 빵이나 쿠키와 파이, 케익은
가격이 좀 비싼 편이긴 해도, 이 층에 앉아 꽃이 만발한 정원을 내다보며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기분전환이
됐다. ( 눈 내리는 겨울 어느
날 한번 더 와야지…) .
모니카와 함께
리더를 맡았던 앤드루는 영국 발음을 하는, 눈이 커서 더 착해 보이는 백인 남자. 참깨에다 초콜릿을 씌운 디저트를 가져왔는데 본인이 직접 만들었단다. 알몬드
쿠키와 함께 그 고소한 맛이 다이어트를 까맣게 잊게 만드는 매직 디저트다. 그가 큰 도시락 통을 열어서 일일이 돌리는 것을 보고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백인이라고 다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들이 아니란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계기가 됐다. 아마도 그들의 정확하고 예의 바른
태도 때문에 그런 인상을 갖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잊지 말아야 할 꿈
며칠 전 토론토
스타에서 읽은 기사다.
Peter Munk 라는 사람이 심장센터에 $100M을 기부했다. 캐나다 역사상 병원 기부자 중에서는 가장 큰 액수라고 한다. 1944년, 헝가리에서 나치정권을 피해 캐나다로 이민 온 그는, “아무 돈도, 기술도 없는 나의 가족을 받아준 캐나다, 이 나라에 진 그 빚을 되갚겠다는 꿈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고
밝혔다.
비록 싹 틔우지
못했던 낟알 같은 꿈일지라도, 살기 좋은 나라, 캐나다에서
맘껏 누리는 이 자연과 사회 보장의 혜택, 이 빚을 갚을 날이 나에게도 오리라.
아니, 이제라도 작은 것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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