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그림자가 공하여 실체가 없다는 말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아비담에서는 말하기를 “무엇을 색입(色入)이라 하는가?
청(靑)/황(黃)/적(赤)/백(白)/흑(黑)/옥색[?]/자주색[紫]/광명/그림자 및 신업(身業)으로 짓는 세 가지 색이니,
이것을 볼 수 있는 색입(色入)이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 없다고 말하는가?
또한 실제로 그림자가 있으니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인(因)은 나무요 연(緣)은 광명이니,
이 두 일이 합쳐져서 그림자가 생기거늘 어찌 없다 말하는가?
만일 그림자가 없다고 한다면 나머지 인연으로 생긴 법들도 모두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그림자의 모양[色]은 볼 수가 있으니,
길고 짧고 크고 작고 거칠고 섬세하고 굽고 곧음의 형태가 움직이면 그림자도 움직인다.
이런 일은 모두 볼 수 있나니, 이런 까닭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 색은 크게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오온 즉, 색수상행식에서의 색은 물질/몸을 의미하고, 보고 또 만질 수 있습니다.
육경 즉,
색성향미촉법에서의 색은 보여지는 형체/모습을 뜻합니다.
[답] 그림자는 실제로는 공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아비담 가운데 설해진 것을 말하지만, 이는 아비담의 뜻을 해석하는 사람이 지은 말이고
일종의 법문이거늘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사실이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 아비담마에도 다 맞는 얘기만 있는 건 아니라는 뜻 입니다.
비바사에서 설하기를 “미진(微塵)은 지극히 가늘어서 깨뜨릴 수 없고
태울 수도 없으니 이는 항상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말하기를 “3세(世) 가운데 법이 있으니, 미래 가운데에서 나와서 현재에 이르고,
현재로부터 과거로 들어가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이것이 곧 항상함[常]이다”고 했다.
또한 말하기를 “모든 유위의 법은 새록새록 생멸하여 머물지 않는다.
이는 곧 단멸상(斷滅相)이니, 왜냐하면 먼저는 있다가 지금은 없어졌기 때문이다”고 했다.
- 위는 과거 초기불교의 논장에서 주장하는 논리들입니다.
이렇듯 갖가지 다른 말씀이 부처님의 말씀과 어긋나니, 이것으로 증명을 삼을 수는 없다.
지금 그림자는 색법(色法)과는 다르니,
색법이 생한다면 반드시 냄새와 맛과 촉감 등이 있는데 그림자는 그렇지 않다.
이는 곧 존재하지 않음[非有]이 된다.
- 용수보살(나가르주나)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설법입니다.
- 이러한 것들이 과거 날란다 대학의 논리학이고, 이것이 티벳으로 전수되었습니다.
예컨대 항아리[甁]는 두 감관으로 아나니, 곧 눈과 몸이다.
그림자가 있는 것이라면 역시 두 감관으로 알려져야 하는데,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 항아리는 눈으로도 볼 수 있고, 또 손으로 만질 수 있지만
그림자는 오로지 눈으로만 볼 수 있을 뿐 손으로 만질 수 없기에 색(色), 즉 물질이 아니다라는 뜻 입니다.
그러므로 그림자는 실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눈을 속이는 법일 뿐이다.
마치 불통을 잡고 돌리는 것과 같으니,
빨리 돌리면 불 바퀴가 만들어지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림자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림자가 곧 존재하는 사물이라면
마땅히 깨뜨리거나 없앨 수 있어야 하며,
형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림자는 끝내 없어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공한 것이다.
또한 그림자는 형체에 속하여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공하며,
비록 공하지만 마음에 생겨나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그림자 같다’고 말한다.
- 대지도론/용수보살 지음/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동국역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