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조금 포근해 졌습니다. 올해는 정말 겨울다운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오늘은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광주여성장애인연대 성폭력상담소 정세연 소장님과 상담원 박현옥님, 광주전남 평화와통일여는사람들 정동석 사무국장님, 올해 나이 70세라고 하시는 윤종순 선생님, 평통사 회원이시면서 호남신학대학원에 재학중이신 신대원님, 최만원 조선대학교 강사님, 이승희 북구의회 의원, 박수희 광주비정규직센터 상담실장님, 김희용 대표님, 며칠째 귀를 앓았다고 하는데 한눈에도 안색이 부쩍 수척해 보이시는 양금덕 할머니, 이국언 사무국장을 포함해 모두 11명입니다.
왼쪽부터 광주전남평통사 정동석 사무국장, 김희용 시민모임 대표, 평통사 회원이신 윤종순(70) 선생님입니다.
윤 선생님의 두 부모님은 모두 항일독립운동에 몸 바쳐 투쟁하신 분이라고 하시더군요. 부친(윤윤기. 작고) 께서는 일제시기부터 항일독립운동을 해 오셨던 분으로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50년 한국전쟁 직전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됐다고 합니다. "지식, 직위, 돈... 모든 것을 항일애국운동에 바치셨던 분"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옛날 독립운동에 나섰던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건 고생도 아니다. 먹을 것 먹고, 잘 것 자고 활동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더군요. 시간 되는데로 나오시겠다고 합니다. 광주전남평통사는 앞으로 매주 목요일 1인 시위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합니다.
왼쪽부터 윤종순 어르신, 양금덕 할머니, 광주여성장애인연대 성폭력상담소 상담원 박현옥님입니다.
양금덕 할머니 옆으로 박현옥님, 북구의회 이승희 의원님, 광주여성장애인연대 성폭력상담소 정세연 소장님, 광주비정규직센터 박수희님입니다.
김선호 고문을 만남 윤종순님께서 하시는 첫 마디가 "김마담이시냐?"며 "나는 윤 마담인데, 마담 자리를 빼앗겨 버렸다"라며 반갑게 인사하시더군요.
김선호 고문, 정동석 사무국장, 오른쪽은 호남신학대학원에 재학중이신 평통사 회원 신대원님입니다.
오른쪽은 최만원 조선대학교 강사입니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공부하시고 현재 정치학 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국치 100년, 일본정부가 해방 65년만에 99엔을 내밀어도 우리 정부는 말이 없습니다. 이를 추궁하는 정치인 한명 없습니다. 지금 역사의 현장에 묵묵히 서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첫댓글 시대를 보듬을 줄 아는 감수성, 삶과 역사 앞에 우뚝 서 있는 미학적 실천! 이것이 사람중심의 철학이요, 종교요, 진보다. 빈들판 한 줌의 씨앗 만으로도 숲을 꿈꿀 줄 아는 사람들이 있기에 생명수는 마르지 않고 흐르는 법. 고맙고 감사한 분들입니다.
양금덕 할머니께서 안색이 안좋으셨다. 입술이 부르트고 쥐어있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미쓰비시에서 일할 때 지진으로 2시간 매몰되었다가 구출이 되었는데 그때 오른쪽 대부분이 다쳤어. 오른쪽 귀가 요새 더 말썽이네. 윙~ 소리가 나면서 바늘로 콕 콕 쑤시듯 통증때문에 통 잠을 못 자. 어제는 하도 심해서 약국에 가서 수면제 2알을 사서 먹고 몇시간 잤어. 이비인후과 의사말이 너무 오래된 상처라 약이 없대. 심하게 아플땐 주사를 맞으래." 사고 당시 치료다운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현장에서 일을 했고 귀국해서는 어머니가 명태의 김을 쏘여주시는 것이 전부였단다.
할머니의 삶이 쉽지 않았듯 평생을 할머니를 고통속에 몰고가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에 반드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야함을 다시 한번 뼈져리게 느끼게 한 날이었다. 할머니께 건강 잘 챙기시라는 안부 전화가 필요할 것 같다. 자신의 몸이 불편해도 이렇게 시위현장에 나오시는 할머니는 이미 전사요, 스승이요, 나의 어머니다.
네! 알았습니다.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렇잖아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늘 느끼고 배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