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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록 제18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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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지음 |
송성수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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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모든 중생의 마음에 두루 미쳐서 이미 동일한 마음이거늘 어떻게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않음이 있는가. |
[답] 언제나 나타나서 나타나지 않을 때가 없다. 혹은 한 티끌에 단박에 나타나서 완전히 갖추지 않음이 없기도 하고, 혹은 모든 티끌에 널리 나타나서 두루하지 아니함이 없다. |
한 곳에서 단박에 나타난다 함은, 여래의 눈 속[如來眼睫]이요, 문수의 보배 관[文殊寶冠]이요, 미륵의 누각 가운데[彌勒閣中]요, 보현의 털구멍[普賢毛孔]이요, 정명의 방 안[淨名室裏]이요, 마야의 뱃속[摩耶腹中]이요, 겨자씨의 바늘 끝[芥子針鋒]이요, 가까운 티끌의 먼 세계[近麗遠刹]의 것이니, 저마다 단박에 나타난 것들이다. |
『문수반니원경(文殊般泥洹經)』에서 이르기를 “문수의 몸은 마치 자마금의 산과 같았고 그 문수의 보배 관은 비릉가보(毘楞伽寶)로 장식되어 5백 가지의 색이 있었는데, 그 낱낱 색 속에도 해와 달이며 모든 하늘과 용의 궁전 등 세간 중생들의 보기 드[문]일들이 모두 그 속에서 나타났다”고 한 것과 같다. |
『유마경』에서 이르기를 ‘이 대장자 유마힐이 신통력을 나타내어 즉시 저 부처님의 3만 2천 개의 사자좌를 보내자 높고 넓게 장엄되어 깨끗한 것들이 유마힐의 방으로 들어왔는데 모든 보살과 큰 제자며 제석ㆍ범왕ㆍ사천왕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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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옛날에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방은 넓고도 넓어서 그 3만 2천 개의 사자 자리가 다 넣어졌으나 걸림이 없었으며, 비야리성과 염부제의 4천하 역시 좁아지지 않아서 모두가 옛 그대로 나타났다”라고 했다. |
『화엄경』의 「입법계품(立法界品)」에서 이르기를 “마야부인이 선재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 때 보살이 도솔천으로부터 내려오실 적에, 열 부처님 국토의 극미(極微)의 티끌 수만큼의 많은 보살들이 그의 권속들과 함께 천궁으로부터 내려와 나의 뱃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여러 보살들은 나의 뱃속에서 큰 신통을 나타내어 자재하게 노닐고 다니면서 혹은 삼천대천세계를 한 보(步)로 만들기도 하고, 혹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 국토의 극미의 티끌 수만큼의 많은 세계를 한 보로 만들기도 하였으며, 또 생각생각 동안에 시방의 말할 수 없는 부처 국토의 극미의 티끌 수만큼 많은 세계의 모든 여래 처소의 보살들의 모임과 사천왕ㆍ33천ㆍ수마천ㆍ도솔타천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이며, 내지 색계의 모든 범천왕들이 다 함께 와서 보살이 계신 태 안의 광대한 신변을 보고 공경하고 공양하고 바른 법을 듣고 받으려고 모두가 나의 몸으로 들어왔습니다. 비록 나의 뱃속에 이러한 뭇 모임들을 모두 넣었으나 몸은 광대해지지도 않았고 좁지도 않았으며, 그 모든 보살들은 저마다 자기가 처한 뭇 모임의 도량이 청정하게 꾸며져 있었음을 보았습니다. |
선남자여, 이와 같이 4천하의 염부제 안에서 보살이 태어나셨고, 나는 그의 어머니가 되었거니와 삼천대천세계의 백억 4천하 염부제 안에서도 역시 그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 몸은 본래 둘이 없고 또한 하나도 아니었으며 한 곳에 머무를 것도 아니고 여러 곳에 머무를 것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보살의 크신 서원인 지환장엄(智幻莊嚴)의 해탈문을 닦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
선덕(先德)이 이르기를 “광대하기 마치 법계와 같고/마지막이기 마치 허공과 같다”고 한 이것은 태 안에 계신 것의 이치이니, 만약 그렇다면 일체 중생들이 모두 마야의 태 안에 있는 것이어서 석가 혼자만이 아니리라. 왜냐 하면 중생의 마음이 곧 법계이기 때문이다. |
또 만약 마음이 공(空)함을 요달하면 곧 태 안의 것이 없으리니, 마치 『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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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처태경(菩薩處胎經)』에서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공을 수행한 보살이거늘, 어떻게 시방의 국토를 노닐면서 중생을 교화하겠느냐.’ 미륵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공을 수행한 보살은 국토를 보지도 않고 또한 부처님도 계시지 않습니다. 부처님 스스로가 부처님이 없거늘, 어떻게 부처님께서 계시겠습니까.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식(識)ㆍ계(界)와 아(我)ㆍ인(人)ㆍ수명(壽命)이 모두 다 비고 고요하나니, 이 때문에 태 안의 것이 없습니다’”고 한 것과 같다. |
‘모든 티끌에 널리 나타난다[諸麗普現]’ 함은, 가로로는 온갖 처소를 겸하고 세로로는 온갖 시간에 사무쳐서 엇갈려 들어가 겹치고 널리 원융하여 두루한 것이니, 고덕(古德)이 이르기를 “온갖 부사의한 일이 온갖 곳에서 모두 널리 나타난다”고 했다. |
그것은 한 비로자나의 청정한 법신의 응용일 뿐이니, 이 법신이란 바로 이 마음이다. 그런 까닭에 말하기를 “만약 진실로 마음이 둘 아님을 관찰할 수 있다면, 비로소 비로자나의 청정한 법신을 본다”고 했다. |
한 생각에 악을 일으키면 법신 또한 따라 나타나고 한 생각에 선한 마음이 나면 법신 또한 따라 나타나는 것을 곳마다 서로서로 나타난다고 하며, 내지 색처(色處)가 나타나고 공처(空處)가 나타나서 자재하고 걸림 없는 것이니, 다시는 멀리서 모든 부처를 추구하지 말라. 스스로 한 생각의 공(空)한 마음이 그것일 뿐이다. |
또 마치 해인(海印)이 온갖 것을 널리 도장 찍는 것과 같다. 『화엄경』의 「출현품(出現品)」에서 이르기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여래가 정각 이루는 것을 알아야 하리니, 온갖 뜻에서 관찰할 바가 없고 법의 평등에서 의혹될 것 없으며 둘이 없고 모양도 없으며 감도 없고 그침도 없으며, 한량없고 끝이 없으며 두 가지 치우침을 멀리 여의어 중도에 머무르고 온갖 문자와 언설을 벗어나서 온갖 중생들의 생각으로 행하는 바와 근성과 욕락과 번뇌며 물든 습기를 안다. 요약하여 말하면 한 생각 동안에 3세의 모든 법을 모두 아는 것이니라. 불자여, 마치 큰 바다가 4천하 안의 일체 중생들의 육신의 형상을 널리 도장을 찍듯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라”고 했다. |
이 때문에 다 같이 말하기를 큰 바다라 하였고, 그러므로 경 안에서 해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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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海印三昧)가 있다. |
소(疏)에서 해석하기를 “해인삼매에는 열 가지의 뜻이 있다. 근기는 바로 소현(所現)이요, 보살의 정심(定心)은 바로 능현(能現)이며, 마음이 공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삼매라 한다. |
첫째는 마음의 능현이 없다[無心能現]. 경에서 이르기를 ‘공용도 없고 분별도 없다’고 했다. |
둘째는 나타나되 소현이 없다[現無所現]. 경에서 이르기를 ‘마치 빛의 그림자와 같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
셋째는 능현과 소현이 하나가 아니다. |
넷째는 다른 것도 아니다. 경에서 이르기를 ‘큰 바다는 능현이라 능소(能所)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가 아니요, 물 이외에서 형상을 구하는 것도 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정심과 소현의 법을 드러낸 것이니, 곧 성품의 모양이기 때문에 능소가 완연하고 곧 모양의 성품이기 때문에 물아(物我)가 둘이 아니다. |
다섯째는 가고 옴이 없다[無去來]. 만법이 제 마음에서 나타나되 그것 또한 오지 않았고 몸 구름이 법계에 걸려 있되 잠시도 간 일이 없다. |
여섯째 넓고 크다[廣大]. 경에서 이르기를 ‘널리 다 넣어 싸며 거역하는 바 없다’고 했다. 밝은 삼매 마음이 법계에 두루하면 중생의 물질과 마음이 모두 정심 속의 물건이며, 그 작용도 법계에 두루하여 역시 이 마음을 여의지 아니한다. |
일곱째는 널리 나타난다[普現]. 경에서 이르기를 ‘보살은 모든 마음의 행을 널리 나타낸다’고 했다. 이것과 넓고 큼이 다른 것은, 여기서는 소현에서 보아 크고 작음을 소홀히 하지 않으나 저기서는 능현에서 보아 그 분량이 넓고 두루하다. |
여덟째는 단박에 나타난다[頓現]. 경에서 이르기를 ‘한 생각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고 했다. 앞뒤가 없는 것이 마치 도장을 단박에 찍는 것과 같다. |
아홉째는 언제나 나타난다[常現]. 밝은 거울이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않는 때가 있는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
열째는 나타날 것이 아닌데도 나타난다[非現現]. 밝은 거울은 마주 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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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타나지만 네 하늘[四天]의 형상은 대하지 않는데도 나타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나타날 것 아닌데도 나타난다’고 한다. 상대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므로 언제나 나타나며 삼제(三際)를 다 겸한다. |
이 위의 것은 해인이 나타나는 이치로서 본체와 현상ㆍ능과 소를 따르면서 열 가지 문으로 나눈 것이나, 다만 하나의 참 마음이 고요히 비추면서 널리 나타난다는 이치일 뿐이다. 만약 나타나지 않음이 있다면, 바로 객진(客塵)이 스스로 막고 소견의 그물이 저절로 가리는 것이요 법신의 허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
『마하연론(摩訶衍論)』에서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평등한 법신은 자연히 온갖 곳에 두루하여 뜻을 지음이 없으며, 다만 중생의 마음에 의하여 나타날 뿐이다”라고 했다. |
중생의 마음이란 마치 거울과 같다. 거울에 만약 때가 끼면 색깔과 형상이 나타나지 아니한다. 그와 같아서 중생의 마음에도 만약 때가 끼면 법신이 나타나지 아니한다. |
그것은 마치 해와 달이 하늘에 밝아도 소경은 보지 못하고, 천둥소리가 땅을 흔들어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는 것과 같다. 도에 계합되면 이웃이니, 몸의 가까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복 있는 사람이 세간에 나오면 임랑(琳瑯)이 나타나지만 박복한 이가 나오면 가시나무가 나는 것이니, 모두가 제 마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아니한다. 만약 바로 심성을 환히 안 사람이면, 모두가 다 평등하게 나타난다. |
낙포 화상(洛浦和尙)의 신검가(神劒歌)에 이르기를 “군자가 얻게 되면 이것저것 다 잊지만/소인이 얻게 되면 절로 뽐내나니/다른 집이 우리 집의 칼을 쓰지 않거니와/세상의 높낮이가 언제 평탄하리요”라고 했다. |
그런 까닭에 중생에게 분명히 나타나지 못함은 모두가 존재[有]에 걸려서 진실을 미혹하고, 진실에 걸려서 중도를 미혹하며, 중도에 걸려서 성품을 미혹하는 세 가지의 연집(緣集)을 이룬다. 이 때문에 장애가 된다. |
『천태정명소(天台淨名疏)』에서 이르기를 “중생의 기류(氣類)는 한량없고 그지없지만 원래 그 정요(正要)는 세 가지 연집의 기류에서 벗어나지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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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
첫째는 유위 연집(有爲緣集)의 무리이다. 곧 이 지경 안의 더럽거나 깨끗한 국토에서 모두 진실을 미혹하여 존재에 걸려서 결업(結業)을 일으켜 분단생사(分段生死)를 받나니, 이는 모두 유위 연집의 중생 무리이다. 둘째는 무위 연집(無爲緣集)의 무리이다. 곧 이 지경 밖에 다른 국토와 과보토(果報土)와 하품ㆍ중품까지의 상적광토(常寂光土)가 있는데, 이 세 가지 국토 중생은 중도의 불성을 미혹하여 진공 무위에 걸려서 무위를 반연하여 모든 결업을 일으키면서 변역생사(變易生死)를 받나니, 이것이 무위연집의 중생 무리이다. 셋째는 자체법계 연집(自體法界緣集)의 무리이다. 곧 보살이 자체를 미혹하여 일으킨다. 마치 종문(宗門)중에서 말한, 기 소견을 잊지 않았다>라고 함과 같다”고 했다. |
이제 방 밖에서 지경 안의 유위 연집의 중생을 꺾어 조복하고, 다음에 제자의 한 무리는 무위 연집의 중생을 꺾어 조복하며, 마지막의 보살의 한 무리는 바로 이 자체법계 연집의 중생을 꺾어 조복한다. |
[문] 무위 연집과 자체 연집은 같은가, 다른가. |
[답] 이름은 구별이 있으나 미혹한 체성은 다르지 않다. 2승은 자체에 미혹하여 무위를 일으켜 집착을 내고 무위에 집착하기 때문에 바로 무위 연집이라는 이름을 받으며, 보살도 자체에 미혹하여 무위 연집을 일으키면서 보살은 관(觀)으로 무위의 집착을 깨뜨리나 무위 연집이 아직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이 미혹이 자체에 부착되어 따로 자체 연집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
마치 범부가 진실을 미혹하여 유위 연집을 일으키는 것과 같으며, 학인(學人)이 진실을 보고 견사(見思)를 끊으면서도 생각함이 다하지 않으니, 마치 진리에 탐냄ㆍ성냄의 색(色)이 있어서 무색(無色)의 이름에 물드는 것과 같다. |
[문] 학인은 유위 연집으로 진실을 다 보지 못하여 오히려 미혹이 있으므로 진실에서 보아 자체 연집이라 이름하지는 못하겠지만, 보살은 무위 연집으로 진실을 다 보지 못했거늘 어찌하여 따로 자체 연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가. |
[답] 2승이 진실을 보나 이것은 공(空)의 본체일 뿐 공의 본체는 법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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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므로 자체의 이름이 붙여질 수 없지만, 보살이 진실을 본 것은 바로 법신이어서 법신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따로 자체 연집의 이름이 붙여질 수 있다. |
보살이 혹은 아직 모르기도 하며, 아직 모르기 때문에 꺾어 조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세 가지 연집은 없어지지 아니하며 그런 까닭에 법신은 나타나지 아니한다. |
또 원(遠) 대사가 이르기를 “연집의 이치에는 통괄하면 한 가지일 뿐이나 혹은 두 가지로 나누기도 하는데 진실과 허망으로 설명된다. 첫째로 허망의 연집[妄緣集]이니, 3계는 허망하여 하나의 마음에서 지어질 뿐이다. 마치 꿈에서 보는 것은 이 허망한 마음만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다. 둘째는 진실의 연집[眞緣集]이니, 온갖 법은 다 참 마음에서 일어나며 마치 꿈에서 보는 것은 보심(報心)으로 지어지는 것과 같다. |
혹은 심식(心識)에서 보며 세 가지로 설명하기도 한다. 첫째 취사(就事)의 연집이니, 그 사식(事識)으로부터 온갖 법을 일으킨다. 둘째는 허망의 연집이니, 그 허망한 인연으로부터 온갖 법을 일으킨다. 셋째는 진실의 연집이니, 진식(眞識)의 체성 안에는 온갖 항하보다 더한 성품의 덕을 갖추어 있어서 서로서로 쌓이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연집이라 말한다”고 했다. |
또 진식으로부터 온갖 법을 일으키기 때문에 경에서 말하기를 “만약 여래장식(如來藏識)이 없으면 7식(識)이 머무르지 아니하며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 구하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나 여래장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을 일으킨다”고 했다. |
또, 유위와 무위에 나아가서 세 가지를 설명한다. 첫째는 유위의 연집이요, 둘째는 무위의 연집이요, 셋째는 둘을 다 갖춘 연집이다. |
[문] 곧바로 이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알아도 다시 8상성도(相成道)가 소용되는가. |
[답] 만약 이 마음을 알면 바로 그가 천진불(天眞佛)이므로 이룸과 이루지 않음을 말하지 아니한다. 만약 부처를 이룬다고 설명하면, 그것은 말참견이요 또한 그것은 군소리다. |
『원각경(圓覺經)』에서 이르기를 “온갖 여래의 묘한 원각(圓覺)의 마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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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보리와 열반이 없고 또한 성불과 성불하지 않음도 없으며 허망한 윤회거나 윤회가 아님도 없다”고 했다. |
해석하여 보자. 본래 보리와 열반이 없다 함은, 이것은 두 가지 전의(轉依)의 이름이요 또한 관에 머무르는[住觀] 말이기도 하다. 번뇌를 굴려서 버렸기 때문에 보리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생사를 굴려서 버렸기 때문에 열반이란 이름을 얻는다. 만약 번뇌의 성품이 공(空)하고 생사가 본래 고요한 줄을 알면 벌써 굴릴 바[所轉]의 모양도 없고 능히 굴림[能轉]의 이름조차도 없다. 성불하지 아니함이 없으면 허망한 윤회가 없고 또한 성불이 없으면 윤회 아님이 없으리니, 묘한 원각의 마음이라야 다시는 아무 것도 없다. |
이제는 다만 종경(宗鏡)의 광명을 얻지 못할까 근심할 뿐이니, 만약 그 광명만 얻으면 저절로 원각의 문에 들어가서 법계를 널리 비추리라. |
그런 까닭에 선덕(先德)이 이르기를 “석장(錫杖)을 날려 고국(故國) 길에 오르면/천하에 명성 없음을 근심하지 말라”고 했다. |
방(龐) 거사가 게송으로 말하기를 “시방으로부터 한 모임에 와서/저마다 무위를 배우는구료/여기가 부처를 선발하는 곳이니/마음이 통하여 급제하고 돌아가라”고 했다. |
그렇다면 저절로 등과를 생각하고 가는 곳마다 급제해야 되거늘 어찌하여 수기를 받아 이름 드날릴 것을 기다리겠는가. |
옛 사람이 노래하기를 “좌선하지도 않고 계율도 안 지닌다/묘각(妙覺)의 마음 구슬 희기가 해 같으나/그 자체는 오묘하여 한 물건도 없거니/그 뉘가 연등불(燃燈佛)을 이어받으리”라고 한 것과 같다. |
[문] 중생의 업의 과보와 종자(種子)의 현행(現行)은 여러 겁 동안 훈습한 바여서 마치 아교의 칠과 같거늘 어떻게 한 마음만을 알면 단박에 끊어져서 성불한다 하는가. |
[답] 만약 마음의 경계가 진실이라 집착한다면 인아(人我)와 법아(法我)가 공(空)하지 아니하여 만 겁 동안 수행하여도 끝내 도의 과위는 증득하지 못할 것이며, 만약 단박에 나 없음[無我]을 알고 깊이 만물이 공허함을 통달하면 능소가 함께 녹아질 터인데 무엇인들 증득하지 못함이 있겠는가. |
마치 작은 먼지가 사나운 바람에 흩날리듯 가벼운 배가 급류에 떠내려가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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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니, 다만 한 마음을 믿지 않고 스스로가 허덕거릴까 두려울 뿐이다. 만약 종경에 들어가면 어디에 간들 따르지 않으리오. |
이는 또한 용시(勇施)보살이 음욕을 범한 탓으로 오히려 무생법인을 깨쳤고, 성(性)비구니는 수행할 마음이 없었는데 역시 도의 과위를 증득하였거늘, 하물며 일승의 법을 믿고 이해하면서 진실로 제 마음을 알거늘 기필코 증득함이 없겠는가. 어떤 이는 의심하기를 ‘어찌 번뇌가 끊어지지 않겠는가’라고 하기도 한다. |
해석하여 보자. 진실로 살생ㆍ투도ㆍ음행ㆍ망어가 한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관하기만 하면 그 자리가 이내 고요하여지거늘, 어찌하여 다시 끊을 필요가 있겠는가. |
그러므로 한 마음을 알기만 하면 저절로 만 가지 경계가 허깨비와 같다. 왜냐 하면 온갖 법은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허환하게 나기 때문이다. 마음이 이미 형상 없거늘 법인들 어찌하여 모양이 있겠는가. |
그런 까닭에 고성(高城) 화상이 노래하기를 “설교(說敎)는 본래 모양 없음[無相]의 본체를 궁구함이라/널리 보아도 원래는 마음을 모른다/마음을 알고 경계를 알라/마음 알고 경계 알면 선하(禪河)는 고요하리/경계 알려면 마음 알지니/만법은 모두가 달바(闥婆)의 영상(影像)같네”라고 했다. |
성 비구니는 바로 마등가(摩登伽)이다. 『수능엄경(首楞嚴經)』에서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마등가 그녀는 오히려 음녀(婬女)로서 수행할 마음이 없었지만 신력의 은근한 도움으로 무학(無學)을 빨리 증득하였거늘, 하물며 이 회상에 있는 성문들로서 최상승(最上乘)을 구하는 너희임에랴. 결정코 성불할 것이라. 마치 순풍에 먼지를 날리는 것 같거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고 하셨다. |
『정업장경(淨業障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그 때 무구광(無垢光)이라는 한 비구가 있었다. 비사리성(毘舍離城)에 들어가 차례로 걸식을 하다가 몰랐기 때문에 음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무구광이 그 집으로 들어가자, 이때에 음녀는 음심을 내며 생각하였다. |
‘나 이제 기필코 이 비구와 함께 성교를 해야겠다. 만약 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나는 죽어버리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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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서 이내 문을 닫으면서 비구에게 말하였다. |
‘존자께서는 함께 성교를 하십시다. 만약 저의 뜻을 따르지 않으시면 저는 반드시 죽어버리겠습니다.’ |
그러자 때에 무구광은 음녀에게 말하였다. |
‘잠깐 그치시오. 누이여, 나는 지금 이런 일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을 나는 받들어 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이 계율은 깨뜨리지 않겠습니다.’ |
그때 음녀는 다시 생각하였다. |
‘나 이제 주술(呪術)과 약초로써 이 비구가 음행을 하게 해야겠구나.’ |
비구에게 말하였다. |
‘저는 이제 당신이 물러나서 계율을 깨뜨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드리는 밥이나 받으십시오.’ |
그리고 이내 집 안으로 들어가서 그 밥에 주술을 부리고 비구의 발우에 넣어주자 주술의 힘 때문에 이 비구는 바른 생각을 잃게 되면서 차츰차츰 음심이 왕성하여졌다. 그 때 음녀는 이 비구의 안색이 달라진 것을 보고 이내 나아가 손을 끌어와서 함께 성교를 하였다. 이때 비구는 그 음녀와 함께 서로가 즐기다가 음행이 끝나자, 걸식한 밥을 가지고 정사로 돌아왔다. |
정사에 돌아와서는 크게 뉘우치면서 온 몸에 번열(煩熱)이 생기고 답답해지자 생각하였다. |
‘쯧쯧, 어찌하여 큰 계율 몸을 깨뜨렸느냐. 나는 이제부터는 남의 보시는 받지 말아야겠다. 나는 지금 파계한 사람이다. 장차 지옥에 떨어지리라.’ |
그리하여 이때에 무구광은 청정한 행[梵行]을 같이하던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
‘저는 이제 파계하였으므로 사문이 아닙니다. 반드시 지옥으로 나갈 것입니다.’ |
그러자 여러 비구들은 무구광에게 물었다. |
‘어떤 일이 있었기에 파계를 하셨습니까?’ |
무구광은 위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때에 여러 동학(同學)들은 무구광에게 말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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