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부 정면대결 /17]
약속한 사흘째.
허준이 공빈과 생살여탈권을 걸고
병자의 구안와사와 반위를 낫우어 놓겠다 한 그날 ...
연 나흘 낫.
사흘 밤을 꼬박 허준의 곁에서
그의 시술을 도우며 가슴을 옥죄고 있던
미사는 절망했다.
낫는 낌새가 없는 것이다.
낫기는커녕 나아가는 조짐조차 병자의
안색이나 거동 속에서 찾아낼 수 없었다.
뜸을 놓은 열두 군데 혈이 짓무르고
부어오른 채고 부위마다 박하탕으로
식히곤 있으나 돌아간 입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침이 꽂히면 바로 돌아오던 입도
새벽녘부턴 꽂으나 뽑으나 돌아간 채였다.
또 하나 불길한 현상은,
사흘째인 이 새벽부터 병자의 전신이
불덩어리 처럼 열을 뿜고,
그건 가위 살인적이라 할 바깥 더위
때문이 아닌,
제대로 아물지 않는 뜸의 부작용 같았다.
김병조는 더위와 뜸뜬 상처의 욱신거림, 그 모든 고통을 이를 악물고 견디면서
허준에게 향한 눈빛이 전점 살기를
띠어갔다.
"허봉사님 ..."
미사가 김병조가 소피를 보러 가느라
잠시 자리를 뜬 사이 안타까운 얼굴로
허준에게 말했다.
"반위란 낫는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오니,
그 처치는 뒤로 미루더라도 구안와사부터 확실하게 고쳐지는 처치를 취하심이
어떠하오니까?"
"가서 한숨 눈붙이고 돌아오너라."
"제 고통을 아뢰는 것이 아니오라,
먼저 구안와사만 바로잡는다면 허봉사님의 처치가 정당한 것이라 신임이 될 것이옵고
그 한 가지를 해결한 뒤엔,
반위를 완치한다는 약속을 다만
며칠이라도 말미를 얻을 구실이 되지 아니하오리까?"
"내가 아는 대로 시술할 뿐.
그러고도 낫지 아니한다면 아직 내가
의원으로서의 자격이 모자란 증거일
것이다."
미사가 소리쳤다.
당돌한 목소리였고 그 눈빛이 필사적
이었다.
"의원이라 하여 세상 모든 병을 어찌 다
고칠 것을 기필 하오니까!"
"세상 모든 병을 다 고친다고 한 적 없다.
내가 아는 병이기에 고쳐낸다 했을 뿐!."
"소녀가 듣기 의원이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난치의 병이 반위라 들었사옵고..."
"세상 떠도는 말이야 여하하건,
내가 가장 자신있게 그 내용을 아는 병은 반위란 병이요,
반드시 고쳐내리라 맹세한 병인즉..."
"하오나,
병자나 공빈마마와 주고받은 날짜가 이미 찼사오니,
우선 입돌아간 것만이라도 바로잡아
신임을 회복한 연후에 ..."
허준은 미사의 말을 더 듣고 있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미사의 눈이 젖어가는 것을 보았는지 자기 말을 이었다.
"반위를 일명 바위 암자 암병 이라고도
한다.
그건 몸속에 든 바위를 으깨는 만치
어려운 병이란 뜻인데,
그러나 병이 있으면 반드시 낫울 방법도 있다,
여기는 것이 내 심지인즉,
아직 남아 있는 시각을 믿어볼뿐..."
김병조와 밖에서 만난 듯 문병 온
이이첨이 들어왔다.
자리에 좌정하자 이이첨이 입을 열었다.
"뜸뜬 것은 너의 고집인데,
뜸뜬 자국마다 화농하는 것은 미리
예상했던 것인가?"
"화농은 병이 아니외다."
"뭐라?"
"병자는 머리를 동으로 하여 누우시오."
지시받은 김병조가 조소했다.
"이자가 이젠 무당의 흉내내어 피방까지 시키는군,"
"시키는 대로 하오!"
"암 하다마다.
허나 바로 오늘이 네가 장담한 사흘째라는 것을 잡아떼진 못하리."
"알고 있소."
"눕게."
이이첨이 허준을 조소하며 김병조에게
권했다.
김병조가 눕자 이이첨이 이죽거렸다.
"됐구먼.
이자가 이토록 큰소리치니 해 떨어지기까지 더 믿어보는 수 밖에!"
"난 믿지 않아!"
김병조가 허준과 미사를 한꺼번에
노려보며 말했다.
"단지 구안와사일 땐 입은 돌아가도
몸 하난 편했거늘,
이자가 있는 병. 없는 병 끌어대어
내 온몸에 불구멍을 내놓고 조석으로
혈변을 쏟게 하니,
오히려 생병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세."
"그건 혈변이 아니라,
자라고 있는 반위의 종양을 삭여내는
증좌외다."
김병조가 이를 악물었다.
"기다리고 말고.
나흘 낮 사흘 밤을 기다렸는데,
마지막 두세 시각 못기다릴 리 없지."
허준이 몸을 일으켰다.
방문 밖에 공빈이 시위상궁들을 거느리고 서 있었다.
예를 표시하는 허준과 미사에게 공빈은
냉랭했다.
약속이 사흘이거든,
이틀 전이나 하루전이면 그만치 눈에 띄는 차도가 있어야 함에도,
차도가 보이지 않으니 공빈 또한
허준에 대한 불신이 단단히 자라 있는
듯했다.
노상궁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병자가 어제 저녁부터 속을 비우고 있어 화채 대령했소만 이는 먹어도 되오니까?"
허준은 알아들었다.
사흘 약조를 할 때,
허준이 내세운 약속,
병자가 접하는 일체의 음식을 자기가
용인하는 것에 한한다는 자신의 조건을
공빈이 일깨우고 있다는 것을....
꿀을 탄 오미자 국에 과일을 썰어넣고
잣과 얼음이 띄워진 그 화채 그릇을 들고 비뚤어진 입에 반이나 흘리며,
떠마시던 김병조가 갑자기 공빈께
호소하듯이 말했다.
"입안도 뱃속도 온몸이 불덩어리 올시다. 물을 마시려 들어도 물이 모래알 같아서
목구멍으로 넘아가질 않습니다."
"그 고통도 오늘로 끝나지 않겠느냐.
의원이 그토록 다짐한 날짜가 바로
오늘이요,
유시까지 인즉슨?"
공빈이 그 이름다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언중유골의 말을 내뱉었다.
여름날 긴긴 해가 곤두박질치는 듯했다.
"해가 졌네."
미처 안 진 석양을 보며 이이첨이
흥미진진한 얼굴이 되어 김병조에게
말했다.
"아직 반 시각쯤 남았다고 하겠지."
김병조가 뇌까렸을 때였다.
도제조 노수신과 혜민서 제조 정종영
그리고 정작이 나타났다.
예를 표하는 허준에게는
시선도 줌이 없이 세 사람의 눈이 곧장
김병조에게 날아갔다.
순간,
허준에게 분기를 드러낸 건 노수신이었다.
"경과가 대체 어찌 돼가고 있기
여직 병자의 안형이 저 모양인가!"
미사가 얼른 말했다.
"허봉사가 연사흘 낮밤을 꼬박 뜬눈으로 병자의 수발을 들고 있사옵고 ..."
"병자 수발들 사람 없어 의원을 갈았더란 말인가!"
"전하께서도 유념하시는 병자요,
그토록 호언장담 하고도 여직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면 미상불 일은 컸네!
소란만 떨었지 한치도 병자가 차도가
있는 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정작이 말했다.
"만일,
허봉사의 의술에 효험이 없다면
허봉사를 천거한 책임을 소직도 지고자
하옵니다."
"낫우지 못하면 의당 책임이 아니
지워질까 자청인가!
의원부터 말하거라.
병은 낫고 있는 건가 아니 낫는 겐가!"
"낫고 있다 여기옵니다."
"낫고 있다?
이 모습이 낫고 있는 모습이더란 말인가?"
도제조가 조소 어린 김병조의 눈빛을
발견하고 물었다.
"병자가 느끼기 감이 어떠한가?
이 사람이 맡은 후 종래의 고통이 많이
덜어졌다 여기는가?"
"난 속았습니다."
"속다니?"
"병을 고치러 궁에 들어왔다가 이제야
제가 여기서 죽어나가는구나
여길 뿐올시다."
김병조가 등을 돌려 흉하게 자국난
몸뚱이를 보였다. .
"도제조께선 이 의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소서.
그간 소인이 더러 토악질을 하고,
먹은 걸 토하고 어지럼증을 겪은 적은
있으나,
그것으로 인해 숨이 찬 적도 아파한 적도 없을뿐더러,
연이틀 혈변까지 보는 이런 일은 애초부터 있질 않았습니다."
"혈변? 피똥 말인가!"
"이럴 수가 ..."
도제조 정종영도 탄식했다.
허준이 말했다.
"몸을 째어 병자의 종양을 뜯어내지
못하니 ,
그 종양을 삭여내리는 약을 쓰고 있사옵고 혈변은 곧 소인이 예기한 대로 병이
나아가고 있는 증좌올시다."
"병이 나아가고 있다는 증좌?
도대체 모를 소리!
혈변이란 가장 위급한 병자의 증좌가
아니고?"
"아니옵니다."
"그럼 왜 돌아간 입은 조금도 바로잡힌
모습이 아닌가?"
"반위에 비하면 구안와사는 작은
병올시다."
"무에라!"
"낫는 경과가 생각보다 더디긴 하오나,
소인의 보는 바대로는 병자는 두어 번
혈변이 더 계속된 후,
그칠 것이옵고,
수삼 일의 어지럼증을 겪고나면 회복된다 보옵니다."
"그대가 호언장담한 날이 오늘 아닌가?"
"병의 뿌리는 이미 빠지고 있다 보옵고,
남은 일은 안정과 회복이라,
그건 소인이 수발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
아뢰는 것올시다."
"긴 말 필요없으니 시술기 보이게!"
"시술기는 아직 정리해 적지 못했사옵고 병자에게 사용하고자 약재를 타낸 약방문은 내국에 내놓았습니다."
"정판관이가 그 약방문을 가져오게."
노수신의 어조에 쩡!
하고 노기가 묻어났다.
초조히 오락거리던 양예수의 발이 멎었다.
시각을 알리는 바라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유시다!'
양예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틀림없는 유시를 알리는 바라 소리가
바앙 ... 바앙 ...
한껏 평화롭게 울려오고 있었다.
내일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