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JxZWYRTmq50?si=asg5ukcyEzr5E_qJ
사씨남정기
장희빈
장희재
김춘택과 인현왕후는 직접적인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인현왕후의 외가(어머니 쪽)가 광산 김씨인 인연으로 연결된 친척 관계입니다.
구체적인 관계: 김춘택은 인현왕후의 외사촌 형제, 혹은 인현왕후 입장에서 보면 이종사촌 형제의 아들뻘(혹은 그와 유사한 외가 친척)에 해당합니다.
인연: 인현왕후의 어머니인 은성부부인 송씨의 친정 쪽이나, 인현왕후 외조부인 송준길 일가와 광산 김씨 집안(김춘택 집안)이 긴밀한 혼인 관계로 얽혀 있었습니다.
인현왕후(仁顯王后)는 조선 후기,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아버지는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이며, 어머니는 은성부부인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송준길(宋浚吉)의 딸이다.
1681년 15세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689년 폐서인이 되었다가 1694년 복위되었고, 1701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다.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金氏, 1661년 10월 25일(음력 9월 3일) ~ 1680년 12월 16일(음력 10월 26일))는 조선 숙종의 정비이다.
서인의 영수 김장생의 현손이며, 선조의 딸인 정혜옹주는 인경왕후의 고조모이기도 하다.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며 《사씨남정기》를 지은 김만중은 숙부이며, 숙종대의 노론 김춘택의 고모이자 영조대의 영의정 이천보의 이모이다.
조선 숙종 때 서인 세력의 핵심 인물인 김춘택(1670~1717)은 폐위된 인현왕후 민씨의 복위를 위해 헌신한 문신입니다. 인현왕후와 친척 관계였던 그는 장희빈 세력에 맞서 비밀리에 복위 운동을 주도하고 숙빈 최씨를 지원하여, 1694년 갑술옥사를 통해 인현왕후가 중전으로 재입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인현왕후와의 관계 및 역할: 김춘택은 인현왕후의 친척(인경왕후의 조카)으로, 남인 세력에 의해 폐위된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활동한 서인 세력의 핵심적인 외척이었습니다.
갑술옥사 주도: 장희빈이 중전이 되어 인현왕후가 고초를 겪을 때, 김춘택은 장희재(장희빈의 오빠) 등의 동향을 염탐하고 서인 세력을 결집하여 인현왕후 복위 운동을 펼쳤습니다.
숙빈 최씨와 협력: 김춘택은 당시 무수리였던 숙빈 최씨(영조의 생모)와 긴밀히 협력하여 장희빈 일가의 죄를 숙종에게 알리고, 인현왕후가 다시 왕비로 복위(갑술옥사)되도록 도왔습니다.
말년: 인현왕후 복위 후 큰 공을 세웠으나, 이후 벼슬에 나가지 않거나 유배를 당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김춘택은 인현왕후의 복위와 서인 정권 재창출을 위해 자신의 지위와 미남계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던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영조의 생부가 김춘택이라는 설도 있다
인경왕후는 1661년 10월 25일에 한성부에서 광성부원군[7] 김만기와 서원부부인 청주 한씨 사이에서 4남 3녀 중 장녀이자 셋째로 태어났다.
서인의 거두였던 대학자 사계 김장생의 현손녀이기도 하다. 할머니 해평 윤씨는 윤두수의 현손녀이자 정혜옹주(貞惠翁主)[8]의 손녀이다. 그래서 인경왕후와 남편 숙종은 선조를 공통 조상으로 하는 10촌 관계이다.
숙부는 구운몽을 쓴 서포 김만중. 그리고 훗날 인현왕후 복위에 적극 가담한 김춘택은 친정 조카, 큰오빠의 아들이다.
친정(광산 김씨)
아버지 :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13]
어머니 : 서원부부인 한씨(西原府夫人 韓氏)
큰오빠 : 김진구(金鎭龜)
올케언니 : 부인 한산 이씨
조카 : 김춘택
조카손자 : 김덕재(金德材)
종증손 : 김두추(金德材)
작은오빠 : 김진규(金鎭圭)
올케언니 : 부인 완산 이씨[14]
올케언니 : 부인 연일 정씨
남동생 : 김진서(金鎭瑞)
올케 : 부인 덕수 장씨[15]
남동생 : 김진부(金鎭符)
여동생 : 김한혜(金漢惠)
제부 : 정언진(鄭彦眞)
여동생 : 김복혜(金福惠)
제부 : 이주신(李舟臣)
외조카 : 이천보(李天輔)[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