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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 성경의 어휘 연구 시간 오늘 계속하겠습니다. 요즘 우리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어휘를 연구하되, 특별히 제사와 그 중심이 되는 절기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절기 중에 속죄일, 지난 시간에 이어서 속죄일 후반부를 공부합니다. 오늘은 132번째 어휘 강의입니다. 속죄일이 무슨 날인가에 대한 주요 행사는 바로 지난번 131번 강의에서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그 행사가 가지는 역사적 또는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공부하므로 속죄일에 대한 어휘 연구를 마감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봄 절기로 시작해서 가을 절기로 이어지는데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을 이미 다 공부했고, 그다음으로 나팔절을 공부했고, 속죄일 전반부를 공부했습니다. 속죄일은 가을 절기로서 성력 제7월 10일에 행해지는 것으로서,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것입니다. 속죄일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과 속죄와 관련된 제사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연중의 클라이맥스라고 말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 외에 이제 안식일, 안식년, 희년을 앞으로 공부할 것이고, 역사적인 기념일로서 부림절과 수전절은 각각 제33강과 34강에서 말씀드렸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절기를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과 관련지어서 의미를 찾고 있는데요. 봄 절기는 이미 예수님의 초림과 함께 다 성취되었습니다. 그다음 가을 절기와 관련된 절기들은 지금 성취하는 가운데 있어요. 그중에 여기 속죄일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과 속죄를 앞으로 내다보는 그런 입장에 있습니다. 속죄일은 'Day of Atonement'라고 영어로 말하고, '욤 키푸르' 또는 '욤 하키푸림'이라고 부른다고 지난 시간에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재림 운동과 관련하여 대실망을 경험한 것은 1844년 10월 22일이었는데, 그날이 바로 그해의 속죄일이었습니다. 그 속죄일에 예수님이 재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재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다시 그들의 신앙을 추스르게 되지 않습니까? 그때는 10월 22일이었고, 다른 해에는 날짜가 유대력과 양력의 차이 때문에 조금씩 바뀝니다. 유대력은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달력입니다. 달을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자세한 속죄일의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바로 '죄의 행로'입니다. 죄가 결국은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이 제사이고, 죄 때문에 발생한 것이 구속의 역사이고, 죄 때문에 일어난 그 끔찍한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제사요, 또 그 방법의 클라이맥스가 속죄일입니다. 그래서 1년 내내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까? 그 많은 무수한 희생을 통해서 그들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죄가 어디로 이동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죄의 행로입니다. 매일의 제사를 통하여 죄가 어떻게 되고, 속죄일의 행사를 통하여 죄가 어떻게 되는지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매일의 제사를 통하여 죄가 사탄에게서 죄인에게로 갑니다. 사탄이 사람을 꼬여서 죄인 되게 합니다. 모든 죄의 근원은 사탄입니다. 그래서 사탄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죄인이 되면 죄가 여기에 있게 되죠. 그다음 이 죄인은 자기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재물을 가지고 성소에 갑니다. 그래서 그 재물에 안수하면 죄가 죄인에게서 재물로 옮겨갑니다. 상징적으로 옮겨갑니다. 그래서 그 재물은 이제 죽습니다. 재물의 희생을 통하여 그 죄가 성소나 제사장에게로 옮겨갑니다. 사탄에게서 죄인에게로, 죄인에게서 재물로, 재물에서 성소와 제사장에게로 옮겨가는 것이 매일의 제사에서 죄가 이동하는 경로입니다. 죄가 보이는 물건도 아니고 살아 있는 생물도 아니지만, 왜 이 희생이 드려져야 하는지는 그 의미를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죄 때문입니다. 죄가 그 희생 재물의 죽음으로 내가 지은 죄를 대속하고, 그 죄가 그에게로 가고 그가 죽음으로 죄가 어디로 가느냐면 성소와 제사장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그 속죄제 고기를 먹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매일의 제사를 통하여 죄가 옮겨가는 경로입니다.
그다음 1년에 마지막 속죄일의 대행사를 통해서는, 이 성소와 제사장에게까지 가 있던 죄가 이동합니다. 매일의 제사를 통한 죄가 성소와 제사장에게 가 있었는데, 그날은 황소를 먼저 잡아 드립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 공부했습니다. 제사장과 제사장의 가족, 제사장 단을 위하여 황소를 먼저 잡아 희생 제물을 드리고 피를 지성소와 성소 안에 뿌림으로써 황소의 피로 속죄하고, 그다음 마지막으로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힌 염소가 또 죽지 않습니까? 그 피를 지성소에 뿌립니다. 그래서 황소와 여호와를 위한 염소의 희생을 통하여 그 성소와 제사장까지 와 있는 죄가 지성소와 속죄소로 옮겨갑니다. 피를 뿌리니까 지성소로 옮겨갑니다. 죄가 거기까지 갑니다.
그다음 오후 행사를 통하여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너, 이 많은 우리 백성들에게 죄를 짓게 한 너, 그 죄에 대한 값을 네가 받아야 해. 이 모든 죄는 사실 너에게서 왔어. 너는 이 책임을 지고 이것을 지고 가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그 죄의 결과를 당하는 죽음을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까지는 죽지 않고 살아 있던 염소를 한 사람에게 맡겨 가지고 멀리 떨어진 먼 광야 산 위까지 데리고 가서 거기서 밑으로 밀어 떨어뜨려 죽게 하는, 그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통하여 죄가 광야로 가고 광야에 가서 그 염소의 죽음을 통하여 죄가 소멸됩니다. 죄가 소멸되어 죄가 완전히 청산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무죄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죄의 장본인도, 죄의 결과도 다 없어지는 거예요. 그것을 1년에 한 번씩 반복했습니다. 인간 역사의 죄의 역사를 한 해에 상징적으로 제사를 통하여 반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위한 염소와 황소의 죽음은 속죄를 위한 희생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뜻합니다. 황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일단 죽지 않고 있다가 광야로 가서 소멸되는데, 거꾸로 떨어져서 죽는 그 죽음은 형벌로서의 죽음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을 죄짓게 하고, 자기도 태초에 이미 죄를 짓지 않았습니까? 그 모든 죄에 대한 벌을, 형벌을 자기가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염소까지는 인간을 위한 속죄이고, 아사셀 염소는 자기가 지은 죄, 죄의 창시자로서 또 죄를 사주한 자로서 그 모든 죄에 대해 자기가 당해야 할 벌을 당하는 죽음, 형벌로서의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죄의 청산입니다. 죄가 왜 사람들을 그렇게 못살게 구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이렇게 예식들을 통해서 느끼게 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제사의 목적은, 매일의 제사는 죄의 전가입니다. 죄인에게서 재물로, 재물의 죽음으로써 성소와 제사장에게로 죄가 이동하여 전가되고 용서받는 것입니다. 개인과 백성의 용서를 위한 것이 매일 제사의 목적, 즉 죄의 대속과 전가입니다. 그러나 속죄일의 행사는 죄의 최종 처분과 소멸입니다. 성소와 제사장에게 가 있던 죄를 최종적으로 아사셀 염소에게 얹어 아사셀 염소가 자기가 받을, 또 남을 죄를 짓게 한 그 죄, 죄를 사주하고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는 처분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 개인과 제사장의 정결을 뜻하고, 성소와 지성소의 정결을 이루어 마지막에 다 깨끗하게 되는 것, 이것이 대속죄일 제사의 목적이고 매일의 제사와 속죄일 제사의 차이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역사적 속죄일에 살고 있습니다. 연중 다가오는 속죄일에 대한 행사는 이미 대충 살펴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역사적으로 앞에서 본 길고도 복잡한 속죄일의 행사를 통해서, 우리는 역사적 속죄일의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속죄일이라는 절기는 민력으로 연말 연시에 있으므로 상징적으로 말세의 최종적인 구속 사업을 가르칩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하늘나라의 삶을 내다보게 하는 그런 절기가 속죄일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이 속죄일의 심판, 곧 재림 전 심판(우리가 흔히 조사 심판, Investigation Judgment라고 합니다)이 행해집니다. 다 조사합니다. 이 조사 심판이 1844년에 시작된 것을 우리는 다니엘 8장 14절의 2300주야의 해석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그래서 예언적 속죄일이 1844년에 시작되었고, 재림교회는 이 진리를 온 세상에 전하라는 명령, 즉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고 있습니다.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고 전하지요.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첫째 천사가 날아가면서 외칩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지으신 이를 경배하라,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역사적 속죄일에 살고 있습니다. 연중 봄 절기와 가을 절기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말하는데, 그중에 가을 절기인 속죄일은 역사적으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여 심판이 이루어지는 그 어간에 해당하므로, 우리는 대속죄일의 실체적인 기간에 살고 있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절기를 맞이하여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안식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를 이루는 것, 지금까지 이렇게 죄로 말미암아 떨어졌던 상태에서 하나가 되는 것, 영어로 'Atonement'가 속죄인데 이것은 'At-one-ment', 즉 하나 됨, 하나를 이루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죄를 씻고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속죄의 참으로 훌륭한 의미입니다. 영어의 의미는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심판이 왜 필요한지, 심판이 필요한 이유와 논리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인간에게 심판이 필요한 까닭은 근본적으로 그가 죄인이고 또한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루도 죄짓지 않고 사는 날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죄 때문에 심판이 필요합니다. 인간 각자에게 죄의 유무와 경중,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서 상을 주고 벌을 주는 상벌이 내려져야 하는 것이 성경의 대원칙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아무나 천국에 다 오라 하는 것도 아니고, 다 죽어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여 죽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 기회를 주셔서 삶의 길을 찾아가게 하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을 다루심이 정의롭고 공정한지가 우주 앞에 밝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온 우주를 향하여 "하나님은 참 불공정하시다. 사람들을 저렇게 막 지옥으로 보낸다"고 무고하는데,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처사가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것을 온 우주 앞에 밝혀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도 밝혀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고 전도서 12장 14절 맨 마지막 부분에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히브리어, 아니 히브리서 9장 27절에 아주 확실하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심판은 불가피합니다. 있어야 합니다. 있는 것이 우리에게도 좋습니다. 벌벌 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시는 것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얼마나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심판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지를 보겠습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다 용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필요 없습니다.
시편 7편 8절에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라고 했습니다. 판단하시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그것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시편 9편 4절에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보좌는 두 가지 일을 크게 합니다. 하나는 통치이고 하나는 심판입니다. 보좌에 앉으셨다는 말은 통치하신다는 말도 되고 심판하신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시편 9편 7절에도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앉으신다는 말은 심판하기 위해, 재판하기 위해 앉으신다는 뜻입니다. 보좌가 자꾸 나오는데 보좌는 참 의미가 깊습니다. 그중의 가장 중요한 의미 하나가 바로 심판입니다. 시편 9편 8절에도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판단하시고 심판하신다는 말이 자꾸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심판하지 않으면 온 우주가 무법천지가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 31절에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아무렇게나 하지 않고 사리에 맞게, 앞뒤가 맞게, 누구나 봐도 오해할 여지가 없게 하십니다. 로마서 14장 10절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 심판대에 선다는 말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타인에게 자비롭게 대하면 자비로운 심판을 받을 것이고, 우리가 형제들에게 쓸데없이 까다롭게 굴면 우리도 까다로운 심판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다 판단받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선언은 분명합니다.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심판받을 각오를 하면서 하루하루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에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보좌는 심판대입니다. 책들과 생명책이 다 딱 펴져 가지고, 생명에 들어갈 사람인지 심판받아 멸망할 사람인지 판가름 납니다. 그 심판대가 바로 보좌 앞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는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고 늘 공갈이나 치고 사기나 치고 부정하게 행하는 사람은 그 행위대로 보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정하시고 공의로우시므로 그대로 우리는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최후의 심판에는 세 국면이 있습니다. 세 국면이 있어요. 우리가 전반적인 심판을 통틀어서 보편적 최후의 심판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 많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이 보편적이고 통째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심판을 한다는 이야기는 요엘 3장에도 여호와의 날로 나오고, 이사야 24장 등에도 나옵니다. 그 땅이 벌을 받습니다. 그다음 마태복음 13장 비유를 보면 나쁜 고기와 좋은 고기가 갈라집니다. 심판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열 처녀 중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가 갈라집니다. 심판받는 거예요. 요한복음 5장 29절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부활하긴 하되 심판의 부활이라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7절에는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심판 날이 올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최후의 심판은 세 국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준비하는 국면, 이루는 국면, 거두어서 결론을 짓는 국면이 있듯이 심판도 한 국면, 두 국면, 세 국면이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 세 국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재림 전 조사 심판 (Pre-advent Judgment): 이것은 심리(審理) 단계입니다. 재판할 때 심리과정을 거치잖아요. 억울함이 없도록 면밀히 심사하는 심리 심판입니다.
재림 후 천년기 심판 (Post-advent/Millennial Judgment): 이것은 판결(判決) 단계입니다. 천년 동안 하늘에서 기록을 살피며 딱 이렇다 하고 확정 짓고 판결하는 단계입니다.
천년기 후 집행 심판 (Executive Judgment): 이것은 최종 집행(執行) 단계입니다. 천년기가 끝난 후에 악인들과 사탄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집행 심판입니다.
세상의 재판 법리학과 똑같습니다. 과정이 그래야 억울한 사람이 없는 공정한 심판이 내려집니다. 재판을 대충 하거나 뇌물을 줘서 어그러진 결론을 내리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공평무사한 판결을 하심으로 우리는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국면인 재림 전 조사 심판은 언제 일어나느냐 하면, 최후 심판의 첫 번째 국면으로서 예수님의 재림 전, 다니엘 12장에 말하는 마지막 때(the time of the end)에 일어납니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고 하는 지금입니다. 예언적으로는 2300주야가 끝난 후, 지금이 바로 이 재림 전 조사 심판이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때입니다. 성경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강조하면 사람들이 자꾸 무슨 이상한 교단만의 교리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입니다. 이것을 부인하면 성경 예언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심판관은 다니엘 7장에 보면 성부 하나님이시며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대상은 누구냐 하면, 구약 속죄일 표상에서 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날에 심판을 받고 자아를 성찰했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심사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합니다(베드로전서 4장 17절). 장소는 하늘 성소, 지성소입니다. 참하늘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때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은 무엇이냐 하면, 심판관은 성부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의 역할은 대제사장 중보자로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십니다. 탄원하시는 분이에요. 그분은 우리의 변호사이십니다. 목적은 천국에 들어갈 자들을 옹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을 옹호하기 위해 죄를 심리하는 것이 재림 전 조사 심판의 내용입니다. 분명하죠. 하나하나 살펴보면 아주 명백하게 성경에 다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국면은 재림 후 천년기 동안의 심판입니다. 시기는 최후 심판의 두 번째 국면으로서 예수님의 재림 후 천년기(Millennium) 동안입니다. 그동안에 심판의 판결이 이루어집니다. 심판관은 누구냐 하면 그리스도와 성도들입니다. 구원받아서 하늘에 간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배심원이 되어서, 마귀와 악한 천사들, 그리고 하늘에 오지 못하고 죽어 있는 악인들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 책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2절, 3절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천사는 악한 천사들, 마귀의 부하들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다 심판자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 천년 기간 동안의 심판입니다. 장소는 하늘이며, 그리스도께서 총지휘하는 심판관이 되십니다. 목적은 악인들의 행위를 심사하여 형벌의 경중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책들에 기록된 대로 판결을 내립니다(요한계시록 20장). 멸망한 자들이 왜 구원받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완벽하게 규명합니다. 그래서 판결을 내릴 때 하나님의 처사가 정말로 지당하고 온당하다고 온 천사들과 성도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마지막 국면은 천년기 후 집행 심판입니다. 시기는 최후 심판의 제일 마지막 국면인데, 천년기가 끝난 다음에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사탄과 악인들이 멸망당하는 사형 집행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대속죄일에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광야로 끌려가서 산속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소멸되듯이, 마지막 이 최후 심판의 세 번째 국면인 집행 심판에서는 사탄과 악인들이 다 최종적인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관은 그리스도이시며 성부 하나님도 함께하십니다. 대상은 악인들과 사탄을 따르는 자들, 그리고 마귀 자체입니다. 마귀가 마침내 멸망합니다. 이 세상의 죄의 근원과 죄에 동참한 세력들이 다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역할은 최종 심판관이자 집행관이 되십니다. 목적은 죄의 창시자(Originator)이자 죄의 사주자(Instigator)로서의 마귀를 멸절하고, 그의 천사들과 악인들을 불못에 넣어 집행하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불못에 들어가서 마지막에 다 집행되어 소멸됩니다. 영원한 지옥 불에서 영구히 고통당하는 그런 지옥 개념은 성경의 공의에 맞지 않으며, 성경은 최종적 멸망, 즉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불로 태워 흔적도 없이 소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도표의 흐름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세의 끝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하면, 그때 죽었던 의인들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의인들은 변화되어 성도들이 공중으로 승천합니다. 주님 오실 때 지상에 살아남은 악인들은 그 영광의 광채로 멸망합니다. 이미 죽었던 악인들은 무덤 속에 그대로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첫째 부활과 예수님의 재림까지의 단계를 하늘에서의 심리 심판(조사 심판)의 결과로 주어지는 상급의 집행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성도들을 데리고 하늘로 가시면, 이 지상에는 살아서 구원받을 의인도 없고 살아남은 악인도 없이 다 죽었기 때문에 사탄이 결박당합니다. 지구에 갇힙니다. 무저갱에 갇힌다고 요한계시록 20장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구가 완전히 황폐하게 됩니다. 재림의 파괴적인 영향과 마지막 재앙들로 지진이 일어나 황폐된 채로 천년 동안 유지됩니다. 첫째 부활이 있은 다음의 이 천년 동안을 천년기라 합니다. 이 동안에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왕 노릇 하며 통치합니다. 심판관이 되어 심판의 판결 단계에 참여합니다. 아까 성경 말씀 읽은 대로 우리가 악한 천사들과 악인들을 심판하는 판결이 천년 기간 동안 하늘에서 이루어집니다. 다 이미 결정은 되었지만 의문이 없도록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다음에 천년이 끝나면 둘째 부활이 일어납니다. 악인들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과 성도들, 그리고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전 도성이 이 땅으로 다시 내려옵니다. 그때 무덤 속에 있던 악인들이 부활하는 것이 둘째 부활입니다. 사탄이 잠시 놓여 성 밖에 부활한 수많은 악인을 충동합니다. "저 성을 공격해서 빼앗자" 하고 하나님과 성도들을 향하여 대대적인 반역을 일으킵니다. 그것이 곡과 마곡의 전쟁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려 할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 사탄과 모든 악인, 그리고 죄의 결과들을 완전히 불살라 소멸합니다. 이것이 최종 집행 심판입니다. 그 불로 지구를 정결케 하시고 지구가 성도들의 영원한 고향으로 재창조되어 영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적 속죄일의 심리 단계에 살고 있고, 앞으로 천년기가 올 것이며, 그 기간이 끝나면 최종 집행을 통해 죄와 죄인, 마귀가 하나도 없이 다 소멸되고 의로운 백성만 남아 영원히 살아가는 세월이 오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결말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보편적 최후 심판 전체를 아우르는 새 국면, 즉 재림 전 조사 심판, 재림 후 천년기 심판, 천년 후 집행 심판이 다 끝나면 이 지구상에는 모든 죄악과 죄의 흔적들이 다 사라집니다. 세상이 새롭게 됩니다. 마태복음 19장 28절 말씀처럼 세상이 재창조되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있던 오염된 세상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네오스(Neos, 시간적 새것)가 아니고 카이노스(Kainos,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신천신지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확신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이와 같은 최후 심판과 악의 세력의 멸절은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 특히 속죄일 행사에 분명히 예시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보았듯이 속죄일의 제사를 드리고 그 엄숙한 절차를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죄와 죄인의 말로가 마지막에 어떻게 청산되는지를 깊이 인식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은 것을 공부하는 목적은 바로 이러한 인식을 갖기 위한 것입니다.
속죄일을 무사히 맞이하고 잘 통과하려면 매우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고 철저한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유대인들은 일주일 전부터, 열흘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성력 7월 1일 나팔절로부터 10일 대속죄일까지의 기간에는 금식과 기도로서 자신을 살피며 준비하였습니다. 일종의 자기 조사(자아 성찰)였습니다. 당일에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했던 것이 속죄일의 제사 방법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자신을 살피고 자기를 돌아보며 죄된 것을 낱낱이 주님께 고백하는 신앙적 삶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판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이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고 옹호하기 위한 재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붙어 있기만 하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4장 17절에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내 죄에 대한 처벌을 예수님이 다 감당하셨다는 확신을 가질 때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담대함을 가지게 합니다.
이 심판 제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하시는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와 의로우심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죄를 고하고 용서를 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았던 사람처럼 완전하게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그들의 죄를 은혜로 용서해 주시는 주님, 그들의 죄악을 위하여 하늘 성소에서 중보하시는 하늘의 중보자, 그들을 이끌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심판의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의로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죄를 스스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데, 그 은혜를 믿고 나가는 자는 결코 실망을 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앞에 있는 우리의 대언자요, 우리의 중보자와 변호자이시며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는 확실함과 용기를 가지고 그분에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심판을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멘 할 수 있습니까? 아멘 합니다. 우리 자신을 보지 말고 나의 허물을 다 하나님께 고하고 "하나님, 제 모습이 이렇습니다. 용서하옵소서" 하면 끝입니다. 다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성자, 즉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복음을 누립니다. 디도서 3장 5절로 7절의 말씀을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참 은혜스러운 말씀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문장은 좀 길지만 뜻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주님이 베푸신 대속의 은혜로 영생의 소망을 따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천국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주십니다. 정말 은혜로우신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속죄일에 대한 공부를 이제 거의 마감합니다. 그러면 속죄가 무엇입니까? 영어로는 'Atonement' 즉 하나 됨(At-one-ment)입니다. 성경 원어로 히브리어 속죄는 '카파르(Kapar)'입니다. 카파르는 일차적인 의미가 커버(Cover)와 같은 어원에서 온 것입니다. 히브리어 카파르는 영어의 커버(Cover)와 거슬러 올라가면 저 바벨론 탑에서 만나는 동원의 단어입니다. '덮다'라는 뜻입니다. 죄를 덮어주다, 가려주다, 없애주다, 용서하다는 것이 히브리어 속죄의 본래 의미입니다. 죄가 없다고 선언해 주다, 무재로, 무죄로 간주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전혀 안 지은 깨끗한 상태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덮어서 죄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주시는 것입니다. 속죄하다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 총 93회 나타나고, 그중에서 무려 11회가 레위기 16장에 집중되어 나옵니다. 레위기 16장이 바로 '속죄일 장'이기 때문에 거기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대속죄일은 완벽한 속죄가 다루어지는 날입니다.
속죄, 즉 하나를 이루는 것(At-onement)에는 넓은 의미(광의)의 속죄가 있고 좁은 의미(협의)의 속죄가 있습니다. 광의의 속죄는 죄를 다루고 해결하는 전반적인 우주적 과정을 전체적으로 속죄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심지어 레위기 16장 10절에는 살아 있는 아사셀 염소로 속죄한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협의의 좁은 의미로 보면 아사셀 염소는 인류를 위한 대속적 속죄가 아니라 죄의 책임을 지고 멸망당하는 형벌의 죽음인데, 왜 성경은 아사셀 염소로 속죄한다고 했을까요? 그 형벌의 최종 처단과 죄의 소멸까지도 우주 전체에서 죄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여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온전한 하나 됨(속죄)을 이루는 대과정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아사셀 염소를 처분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속죄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광의의 속죄라 그러고, 좁은 의미의 구체적인 속죄는 개인의 죄를 대속하여 용서하시는 피의 제사를 말합니다. 레위기 16장 6절에는 수송아지로 대제사장과 그 권속을 위해 속죄한다고 했습니다.
인간 스스로 완전한 무죄를 이룰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전도서 1장 15절에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죄로 인해 다 구부러져 있어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펼 수가 없습니다. 자력으로는 속죄를 이룰 수 없어요. 예레미야 13장 23절에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잠언 24장 16절에 보면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결정적인 차이는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가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 주님을 향하여 다시 일어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구부러진 것을 못 펴고 검은 피부를 희게 못 하지만, 손을 내밀어 주님을 붙들면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다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간의 절망과 복음의 희망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과녁(표준)에서 빗나간 것입니다. 히브리 말로 죄를 '하타(Hatta)'라고 합니다. 관녁을 빗나가 하나님의 거룩한 표준에 이르지 못하는 상태가 죄입니다. 그것에 이르도록 바로잡아 이끌어 주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죄를 지은 영혼은 그 죄의 삯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범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에스겔 18장 4절)" 하셨습니다. 그 영혼이 멸망당해야 하는데, 그것을 면하려면 제3자가 대신 죽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대신 속죄하는 대속(代贖), 즉 우리 주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 성소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어, 아니 히브리서 9장 22절)"고 하셨습니다. 피를 흘려야 사함이 있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양이나 염소 자체의 피가 우리 죄를 씻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 피가 상징하는 바 우리 주님의 보혈이 우리를 다 깨끗하게 씻겨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구약의 제사는 속죄의 방법이었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표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긴 속죄일의 행사와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종말론적 의미를 두 시간에 걸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 두 강의를 두세 번 깊이 들어보시고, 성소 제도에 관한 진리들을 깊이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구원에 대한, 속죄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가지고 주님이 오시는 것을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최후의 심판 앞에서 벌벌 떨며 공포에 사로잡히지 말고, "주님이시여,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주님의 공로를 붙들고 가오니 나를 용납하소서" 하고 확신에 찬 기쁨으로 우리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도록 이러한 공부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언적, 역사적으로 대속죄일의 청결 교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과거를 늘 겸비하게 되돌아보면서도, 동시에 나를 위해 모든 구속 사업을 완벽하게 이루어 주신 대제사장 예수님께 감사드립시다. 기쁨이 충만한 재림 성도의 삶을 살아가며, 속죄 사역을 마쳐 가시는 주님을 다 살아서 영광 중에 맞이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두 회에 걸친 속죄일 강의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절기를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 핵심 요약 정리
대속죄일(Yom Kippur)의 종말론적·역사적 성취 시기
성력 제7월 10일(민력 제1월 10일)에 거행되는 대속죄일은 구약 사죄 제도의 최종 종착점이자 완벽한 클라이맥스입니다.
역사적 성취: 봄 절기들이 초림으로 성취된 반면, 가을 절기인 나팔절과 대속죄일은 재림과 심판에 직결됩니다. 다니엘 8장 14절의 2300주야 예언 해석에 근거하여, 인류 역사의 실제적·예언적 대속죄일(재림 전 심판/조사 심판)은 1844년에 하늘 지성소에서 시작되었으며, 성도들은 현재 지구 역사의 마지막 속죄일 기간에 살고 있습니다.
구약 제사 제도를 통해 본 '죄의 행로' 분석
매일의 제사 (죄의 전가와 축적): 사탄(죄의 기원) $\rightarrow$ 죄인(유혹에 빠짐) $\rightarrow$ 희생 재물(죄인의 안수로 죄 전가 및 재물의 죽음) $\rightarrow$ 성소 및 대제사장(재물의 피 뿌림과 고기 섭취를 통해 죄가 성소 안으로 들어와 축적됨).
대속죄일 제사 (죄의 최종 처분과 소멸): 제사장들을 위한 황소와 백성을 위한 여호와의 염소 처형(피를 지성소 기초석과 성소 분향단에 뿌려 1년간 쌓인 죄를 지성소로 유도함) $\rightarrow$ 대제사장의 안수 고백(성소에 모인 최종 죄악을 살아있는 아사셀 염소 머리에 전가) $\rightarrow$ 아사셀 염소의 광야 처단(절벽 아래로 밀쳐 깨져 죽음으로써 우주적 죄의 도말 및 소멸 완성).
최후 심판의 3가지 국면과 구조 (법리학적 전개)
제1국면: 재림 전 조사 심판 (심리 단계): 예수님 재림 전, 하늘 지성소에서 성부 하나님(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의 주재 하에 생명책과 기록책들을 살피며 천국 성도들을 옹호하고 구원 대상을 확정 짓는 심리 재판입니다. 대제사장 예수님은 우리의 변호사이자 중보자로 활동하십니다.
제2국면: 재림 후 천년기 심판 (판결 단계): 예수님 재림 후 천년 동안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 보좌에 앉아 그리스도와 함께 배심원이 되어, 사탄과 악한 천사들, 악인들의 행적을 심사하고 형벌의 경중을 판결하는 확정 재판입니다.
제3국면: 천년기 후 집행 심판 (집행 단계): 천년기가 끝난 후 새 예루살렘 성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 부활한 악인들과 사탄이 성을 공격하려 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최종 사형 집행입니다. 이 불의 심판으로 지구는 깨끗이 정결케 되며 신천신지로 재창조됩니다.
원어적 의미로 본 속죄의 본질과 성도의 확신
원어적 의미: 히브리어 속죄 '카파르(Kapar)'는 영어의 커버(Cover)와 같은 어원으로 '죄를 덮어주다, 가려주다'를 뜻합니다. 인간 스스로는 구부러진 성품(전 1:15)이나 죄악된 본성(렘 13:23)을 바꿀 수 없기에,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를 완전히 덮어 보이지 않게 하시고 의인으로 간주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영어 'Atonement' 역시 '하나 됨(At-one-ment)'을 뜻하여 죄 장벽을 허물고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함을 뜻합니다.
성도의 담대의 특권: 심판은 본질적으로 사탄의 참소로부터 하나님의 신실한 성도들을 옹호하고 상급을 주시기 위한 재판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4장 17절 말씀처럼 주님의 완벽한 중보와 보혈을 신뢰하는 재림 성도들은 심판을 공포가 아닌 담대함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