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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문보기 글쓴이: Next Paul Scholes No18
토털 축구 신봉자들은 대부분 점유율 축구를 위해서 스리백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점유율을 버리기 위해 한시적으로 스리백을 선택한 감독이 있다.
그 이름은 첼세에 부임하고 우승을 이룬 콘테.. 이 내용은 바로 설명하지 않겠다. 죽 읽어보면 어느 순간 필자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기에...
자 일단은 읽어보자.
어느 중앙 수비수도 합을 이룰만한 주춧돌이 되지 못한다면 부임한 감독에는 크게 곤란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채로 불안한 중앙 수비수를 어떻게든 메꿔야 한다면 말이다.
첼시 시절의 갈라스
그리고 아스날로 건너가는데..
토트넘으로 이적하는 갈라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첼시 1기 시절의 무리뉴는 존테리와 가장 최적의 조합을 냈던 갈라스를 아스날에 보내버리고, 10대 후반의 독일인 유망주인 후트를 미들즈브러에 보낸 이후에 절망적인 포즈를 보였다.
중앙수비수는 4명이 기본적인 로테이션을 갖춰야 하는데, 당시 애슐리 콜을 영입하면서 써보라고 했으니 말다한 거 아닐까.
당시 갈라스는 풀백, 중앙수비수 모두 볼 수 있었기에 웨인 브릿지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는 동안 공백인 풀백을 볼 수 있었기에 히카르두 카르발류와 존테리가 중앙수비수를 볼 수 있었고, 결국 첼시는 리그 최소 실점으로 우승하는데 갈라스의 몫은 컸다. 그런 선수를 왜 로만은 보냈을까.
첼시 1기시절의 무리뉴 보다 절망적인 구멍이 수비진에 가득했던 첼시로 부임했던 콘테 감독은 어떠했을까. 풀백인 이바노비치는 완전히 헬인 상황에 케이힐은 메롱하고 있던 당시의 첼시 수비진은 정말 답이 없었다. 필자는 당시 잘나가던 콘테과 유벤투스를 버리고, 도전하고자 온 클럽이 하필 첼시였을까 의문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그는 이내 답을 주었다. 부임 시즌 우승후 다음 시즌 경질.
[ 클롭이 펩에게 전하는 말 : 너는 내 밥이다. ]
반면 리버풀로 온 클롭은 어떠했을까... 음...그에게는 이미 게겐 프레싱으로 팀의 다득점을 기반으로 한 전술적 컨셉이 분명했기에 수비 불안은 2시즌 내내 여전히 따라다녔지만 두시즌을 기다려준 팬들과 구단이 있었다. 역시 감독은 구단을 잘 만나야 한다. 물론 리버풀이 잘나서 클롭을 그냥 데려온 게 아니다.
칠버풀까지 내려간 마당에 그를 데려온 것이다. 오죽하면 수아레즈도 나가고, 벤제마도 리빅아란 말을 하는 상황에 바르샤에 가서 정말 평범해진 쿠티뉴는 리버풀을 떠나고 싶어 그리 난리 쳤는데, 감독 하나 오고 나서 클럽의 위상이 확 바뀌게 된 지금의 상황은 축구는 감독 놀음으로 시작해야 오래 간다는 누군가의 말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빌샹클리 -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폼은 정말로 일시적이기에 팀의 리빌딩은 가급적 수년을 주기로 많은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감독의 전술이 바뀌지 않더라도 말이다.
[ 로저스는 정말 자기 수준에 맞는 팀을 잘 선택했다. 이는 그를 깍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
[ 그가 정말 베니테즈급정도 였다면 챔스우승은 했을 것이다. 그를 꾸준히 기다려준 클럽은 정말 보살이 아니었나 싶다. ]
리버풀에게는 클롭이 구세주였기 때문에 그가 당장 성적을 내지 못한다 해도 버릴 수 없었다. 로저스보다는 훨씬 나은 감독이었기에.. 그리고 그는 구단이 돈을 거하게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구단은 그에게 반다이크라는 큰 선물을 주었다. 기실 중앙수비수 몸값이 갑자기 비대해진 그 시발점은 클롭에게 있음에도 말이다.
매과이어의 몸값과 그리고 유벤투스로의 이적이 이뤄진 데리흐트의 몸값... 이게 몇 시즌전에는 말이 되지 않았다. PSG나 맨시티 같은 기름구단주는 물론 바르샤까지 중앙 수비수를 영입하는데 이만한 돈을 투입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인플레를 주도한 리버풀의 과감한 지름은 기름구단주가 지를 수 있는 그 이상의 가치를 안겨주었다.
그 가치의 이름은 거품.
최근의 린델로프는 최근에서야 상대 선수 압박을 빗겨내는게 능숙해졌는데, 이것이 그의 폼은 리그 탑이다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 걸음마 단계를 뗀 거지. 그럼, 왜 이 선수를 필자는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보다 나은 수비수가 이팀에는 적어도 두명 정도는 있어야 했다. 가장 나은 폼을 보여준 1920시즌의 린델로프.. 그런데, 그의 빌드업과 몸싸움이 나아졌음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최악의 실점을 보이고 말았다. 이 최악은 데헤아도 막을 수 없었다.
[ 비디치 ... 그대가 그립다. ]
[ 왠지 모를 이 답답함은 대체 어디서.. 온거냐. ]
스몰링이 있음에도 바이가 있음에도 이팀은 어느 순간 제공권을 상대방에게 내주고 있다. 펠라이나와 즐라탄, 포그바가 나란히 있을적의 제공권을 생각해 봤는가... 당시가 몇 시즌 전이었는지 상기하지 않더라도 까마득한 곳에 있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셋은 모두 중앙수비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셋의 제공권으로 인해, 상대 세트피스는 물론 상대 골리 진영에서 세트 플레이를 할 때, 상당히 우세한 득점 옵션이 있었다.
다음 그림을 보자.
[ 즐라탄과 펠라이니 옆에 있는 에레라는 난쟁이처럼 보일정도로 신장이 크다. ]
[ 포그바와 펠라이니.. 이 둘보다 키가 작은 뒤의 넌 중앙수비수? ]
당시에는 이 세명의 존재와 스몰링이라는 선수로 인해 제공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까마뜩히 몰라도 되었다. 그리고, 즐라탄이 있던 당시 리그에선 유난히 프리킥 기회가 많았다. 원톱에서 비벼주는 선수 즐라탄이 있었기에...
하지만 1819시즌은.. 후... 할말이 없어진다.
아직까지도 검증이 되지 않는 수비수 조합... 이건 어느 감독이 와도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검증되지 않는 수비수 조합은 빌드업에 관한한 리그 탑 이상 수준을 보여줄 선수의 부재와 동일한 의미를 내포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어쨋거나 필자가 1920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리그를 시작하기 앞서 왜 중앙수비수에 딴지를 걸고 있을까. 이 팀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첼시 시절의 콘테가 첼시에 부임했을 당시 가장 고민을 햇던 포지션은 어디였을까. 중앙 수비수다. 폼이 확 떨어지고, 발이 느린 케이힐과 아스필리 쿠에타만으로는 첼시의 구멍난 수비를 메꾸기 어려웠다. 결국 시즌 중 시행착오를 거쳐 다비드 루이스를 리베로와 수비형 미들의 역할을 맡도록 했다.
다비드 루이스에게 빌드업을 맡긴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 그렇기에 그에게 보누치와 같이 경기를 조율하며 사실상 리베로에 가까운 역할을 맡기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에 존재해야 했을까. 그는 다른 선수와 긴밀히 패스하며 이른 시간에 미들 싸움에 참여해야 했기에 케이힐보다는 아스필리 쿠에타와 공조해야 했다. 위의 패스맵을 보면 알 수 있다.
필자의 생각에 콘테는 보누치를 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사리처럼 조르지뉴를 고집하지 않고, 다비드 루이스를 유동적으로 배치했다.
패스맵 상에서 다비드 루이스는 아스필리 쿠에타 근처에서 좌우의 활동량을 가져갔다. 이 패스맵 자체가 비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경기한 한 경기에 국한할 수 없는 것이 발이 느린 케이힐은 그를 메꾸기 위해 마르코스 알론소의 오버래핑이 절실했고, 이미 폼이 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이바노비치는 경기에 나서기 곤란했다.
그리고 그대로 죽 알론소가 측면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만다.
여기서 상당히 이의를 제기할 만한 부분은 볼의 관여도가 루이스보다 왜 아스필리 쿠에타가 더 많을까 하는 점이다. 패스맵을 보면 공격과 미들 수비 사이가 아주 좁다. 흡사 거미줄처럼 상대를 꽉 막아놓고, 공간을 주지 않는 형태고, 상당히 유동적인 관점에서 라인을 높게 생성하고 있다.
그 이유로 다비드 루이스가 일찍 미들 싸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공격과 수비사이의 라인의 간격이 좁아야 함을 들 수 있다. 네마냐 마티치는 좀 더 2선으로 올라가 아자르와 코스타의 전진배치된 뒷 공간을 커버하고 있고, 이 두 선수가 공격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마티치는 아자르와 코스타에게 패스 줄기를 만들어 주는 데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캉테와 아스필리 쿠에타의 패스에 절대적으로 많은 볼 관여를 하고 있다. 이런 전술 상황에서 마티치의 롤은 확실하다. 아자르와 코스타가 볼을 루즈했을 때, 미리 정해진 반경 내에서 커트하는 역할 인 것이다.
- 콘테의 다이나믹 스리백에 대한 중간 결론 -
따라서 누군가는 후방에서 볼 관여에 많은 선수가 존재해야 하고, 그것이 캉테와 아스필리 쿠에타 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루이스는 일찍 전진하지만 이 전진성으로 수비 불안이 없었던 이유는 마티치의 한정된 롤과 캉테의 전방위적인 박투박 플레이와 공격이 풀리지 않을 때, 마티치와 연계된 패스의 연결고리가 존재했기 때문에 케이힐의 느린 발에도 불구하고, 콘테의 다이나믹 스리백 전술은 역설적으로 빠른 역습이 강조되고, 점유율은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기형 기조를 띨 수 밖에 없었다.
[ 당시 잘나가던 첼시 ]
바로 필자가 위에 언급한 점유율을 위한 스리백이 아니라 점유율을 버리기 위한 스리백으로 콘테는 첼시에 스리백을 도입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한 시즌 내내만 성공적...
이 성공이 그의 다음 시즌을 보장하진 않았다. 이미 이 전술은 다음 시즌에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첫째, 이 전술이 나온 근본적인 배경은 케이힐의 느린 발 때문이었다.
둘째, 다비드 루이스가 전방으로 올라가는 속도는 빨라서 경기 속도는 다이나믹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후방의 빌드업은 생략한채로 올라간 것에 기인한다. 따라서 경기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딱히 플랜 B를 가동하려면 정상적인 중앙수비수 조합은 반드시 필요했다.
셋째, 아자르의 캐리는 인정한 콘테가 코스타의 득점에 대해서는 굉장히 소홀히 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모라타를 데려왔으나, 무리뉴 시절 영입한 원톱의 특성상 얼마되지 않는 기회로 득점할 줄 아는 전형적인 원톱은 항상 존재해야만 했다.
무리뉴가 떠나고 첼시의 드록바 이후에 데려온 공격수들은 하나같이 무덤을 팠다. 아스날의 9번의 저주처럼... 리버풀 시절 날라다니던 토레스는 물론이거니와 무리뉴가 떠나자 마자 데려온 모라타까지.. 그는 무리뉴가 정립한 첼시의 정통 공격수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 무리뉴가 원한 드록바 ]
당시 로만은 드록바를 왜 영입하냐며 물었으나 무리뉴는 잔말말고 영입하라 했다. 마르세유 시절의 드록바를 발굴한건 무리뉴다. 그로서는 굉장히 실리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대 성공. 지금 첼시에서 드록바를 능가할만한 공격수를 댈 수 있을까.
반면 이 선수는 무리뉴가 첼시에게 리그 우승을 안긴 이후에 선수 써보라며 로만이 푸시해서 영입한 선수다. 이거보면 참..감독 앞에서 왈가왈부하기 시작하는게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 꼭 지나야 아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
첫경기에 무난한 셰브첸코는 그 후로 줄 나락으로 떨어진다. 왜 첼시에 와서 고생한 거냐...
[ 아자르가 첼시에 온 이유 ]
아자르가 왜 첼시에 왔을까? 그건 무리뉴가 첼시를 통해 세운 포스가 강력했기 때문이다. 당시 데브라이너, 루카쿠같은 선수들에게 첼시는 로망이었다. 프랑스 리그에서 잘나가던 아자르... 그가 온 이후에 역설적으로 첼시는 그보다 훨씬 돈 쓰는데 주저함없는 맨시티 구단주의 파도에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다. 몇 몇 시즌은 맨유보다 돈을 못쓴 시절이 존재했다.
아쉽게도 지금 레알로 이적한 상황의 첼시와 아자르가 왔었던 첼시의 위상은 선명과 바래진 추억의 간극처럼 좁히기 힘들다.
[ 무리뉴는 이런 공격수가 필요하다고 강력한 컨셉을 가지고 임했다. ]
심지어 맨유에선 집나간 즐라탄을 데려왓다. 한번 들어가면 개미지옥인 파리 생제르맹에서 프리로 영입하는데..
반면 콘테는 코스타를 보내고, 데려온 모라타의 성적이.. 와 걍 돈 버렸다.
[ 처음엔 오를 줄 알았으나 ]
[ 이후 절망으로 머리가 기울어지더니.. ]
[ 주저앉은 모라타... 통수를 긁으며.. 아, 대체 난 여기 왜 온 것인가.. ]
[ 콘테는 코스타와 잡은 손을 절대 놓으면 안되었다. ]
[ 걍 이 손은 놓았었야 했는데... ]
어쨋거나 여기까지 각설하고, 콘테의 전술과 관련되어 설명할 것이 많다.
일단 패스맵을 보자.
콘테의 다이나믹 스리백에 관련하여 흥미로운 부분은 제로톱 운용시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활용이다. 캉테 대신 그 자리에 선 파브레가스 파트너로 마티치가 동일 선상에 위치하고, 아자르와 페드로 윌리안이 스리톱을 서는 형태의 제로톱 운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제로톱은 성공적이긴 하지만 시즌 내내 주축으로의 활용을 의미하진 않는다. 문제는 파브레가스와 캉테만큼의 수비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코스 알론소와 모제스가 측면 윙백으로 파고드는 형태의 우산 형태의 공격은 3-4-3 포메이션이라기 보다는 3-2-5 포메이션에 가까운 다소 공격적인 형태다. 캉테가 나설때와 다른 점은 공격과 수비 간격이 비교적 넓다는 것이다.
제로톱이다 보니, 실제 미들과 수비라인을 넓게 잡지 않고는 상대를 끌어내리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똑같은 다이나믹 스리백을 써도 이와 같은 형태의 제로톱은 미들이 투볼란치 형태로 서야 불안한 후방을 커버할 수 있다.
실제 마티치도 비교적 밑으로 내려오면서 파브레가스와 비슷한 비중으로 전방의 공격수에게 패스빈도가 많아졌다. 이와 같은 형태의 제로톱은 결국 코스트를 쓰지 않고도 플랜 B로 쓸 수 있는 옵션이다. 하지만 강팀을 상대로 가장 안정적인 방법은 코스타의 원톱 툴이 맞다.
다음은 사리가 온 이후의 첼시가 임한 경기의 패스맵이다.
조르지뉴를 중앙에 두면서 윌리안과 지루 아자르를 내세운 스리톱은 콘테의 그것과 달리 세 선수 모두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
이 패스맵은 공격수 형태가 아주 안좋다. 그 이유.. 설명해보자.
어느 한 쪽으로 공격수 두명이 연계를 해야 상대 수비수의 대인마크가 밀집되고, 알론소와 모제스 같은 선수의 오버래핑이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밑의 패스맵을 보면 아자르와 코스타가 항상 근접해 있고, 코스타는 아자르의 패스와 밀접하게 연계가 되기 때문에 득점 빈도 또한 높아진다. 다음은 콘테가 어떤 형태로 공격수를 운용했는지 지금까지 설명한 글을 예시로 들어본다.
상대 수비수가 아자르-코스타 이 두 선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모제스와 알론소는 전방으로 전진이 가능하고, 페드로와 아자르의 횡적인 움직임에 코스타는 그 주변에서 골을 받아 먹는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전방의 두 선수의 연계로 인해 바로 뒤 후방의 패스밀도까지 높아지게 된다. 왜냐 전방에서 상대 수비수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사리의 매스맵은 콘테의 전술과 비교할 때, 유동적이지 못하다. 루이스와 코바시치-아자르로 이어지는 패스를 보면 답답하지 않은가...
공격의 침투 루트가 패스 게임으로 인해 콘테 시절의 공격 루트보다 많이 줄어들은게 이 패스맵으로도 알 수 있다. 사리가 패스 메커니즘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바로 전방압박이다. 이건 반드시 공격하는데 필요한 1차 압박이다. 그런데 왜 그는 이 것을 간과하고 있었을까. 문제는 그가 세리에서 하는 축구와 이피엘에서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을 인지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세리에선 웃을 수 있겠지. ]
수비에서 공격으로 빌드업하는 과정이 주전술인 세리에에서 사리의 패싱 게임은 아름답게 빌드업과 공격 전개가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조리지뉴의 능력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피엘에서 이런 아름다운 축구를 하기 위해선 많은 공격 루트의 옵션이 존재해야만 한 선수의 프리롤이 가능해진다. 가령 아자르나 다비드 실바, 캐릭처럼 탈압박이 가능한 선수가 존재해야 사리가 추구하는 사리볼이 가능해진다. 만약 사리볼이 성공하기 위해선 조르지뉴보다 은퇴한 피를롤를 데려오는 것이 훨씬 나았을 지도 모른다.
[ 차라리 피를로를 데려왔던게 나았을 뻔하지 않았나 싶다. 이건 우스개소리다. ]
[ 개소리를 우습게 하고 싶다면? => 우스개소리 ]
[ 벵거볼과 사리볼의 차이 ]
두 명장은 기본적으로 볼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벵거는 볼의 순환의 중심을 선수들의 패스앤 무브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패스앤 무브의 중심은 언제나 2선의 포지션 체인지로 공간을 창출하며 움직이는데 있다.
그런데, 사리는 조르지뉴에 의존한 볼 포제션 축구를 함으로 벵거볼이 의미하는 선수의 포지션 체인지로 상대 선수의 압박을 탈피하는 행위를 간과했다. 이것이 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벵거가 압박이 심한 이피엘에서 첫 10시즌간 꾸준히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다. 아쉽지만 사리볼은 벵거볼의 어느 한 단면에 치우쳐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비단 탈압박은 한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꾸준히 리빌딩하면서 클럽의 장기집권을 유지하는데 옳은 방향이다. 사리는 기본적으로 장기집권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한 선수에 대한 의존도? 이건 장기집권과 무의미한 전술의 고착화를 의미한다.
지금 이말은 아마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시즌2에서 다룬다.
[ 콘테와 알론소 ]
전술의 유동성에서 첼시 2년차 시즌에 문제를 보여준 콘테 조차도 이피엘에 와서 한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에 내놓은 전략은 유벤투스 시절의 3-5-2 포메이션이 아닌 3-4-3 포메이션 운용이었고, 쓰리톱을 제로톱으로 운용한다든가. 투미들을 투볼란치로 쓰다가 박투박의 투미들로 운용하는 형태로 바꾸는 전술적 변환을 보여줬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전술에 맞게 선수들이 대응해서 움직이고, 그러다 보니, 볼 관여에 대해서도 상대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콘테 시절의 첼시는 사리보다도 중앙 미들의 볼 관여도가 컸는데, 이는 한 선수의 볼 관여도가 아니라 투 미들의 볼 관여도를 의미한다. 또한 투 미들의 역할 분담이 가능해서 한 선수는 박투박 내지 수비형 미들을 2선에서 볼 수 있고, 나머지 한 선수는 플레이를 만드는 유형으로 배분이 가능하다.
그런데, 패스만 하는 한 선수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키다 보니, 미들에서 수비와 공격에 대한 압박과 플레이메이킹의 분화는 사리가 오면서 많이 망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한 선수의 패스 게임으로 인해 초반에 많은 패스를 하고도 수비에서 공격으로 거쳐가는데, 많은 제약을 안게 되었다.
[ 사리와 에메리 ]
알론소는 오버래핑하러 전방으로 침투하는 대신 조르지뉴와 같은 선상에서 패스 게임에 관여하고 있고, 루이스는 라인을 끌어올리는 대신 알론소에게 패스하는 루트가 지배적이다. 이 상황에서 포지션 체인지는 정말 어렵다. 칸테가 측면으로 밀리고, 아스필리 쿠에타는 풀백포지션마냥 측면에서 패스게임에 동참만 하고 있다.
캉테의 쓰임새와 능력이 확 줄어버린 첼시의 사리볼은 결국 캉테도 불만 윌리안도 불만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거기에 루이스도 마찬가지 불만일 수 밖에.
루이스와 뤼디거는 라인을 이미 끌어올렸어야 하는데, 그 중앙에 조리지뉴가 패스만 하고 있으니, 가면 갈수록 경기력이 떨어 질 수 밖에 없는 전술이 되었다.
[ 콘테와 아스필리쿠에타.. 때는 콘테와 맨시티를 이겼을 시절 ]
조르지뉴가 저리 눌러 앉아 있으니, 당연히 점점 사리의 전술은 파훼될 수 밖에 없다. 캉테는 조르지뉴와 패싱 게임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고, 이들의 볼관여도의 크기 또한 콘테 시절보다 현저히 줄었다. 패스 게임을 한다는 사리가 어떻게 콘테 시절보다 더 낮은 패스 관여도를 보이고 있는 걸까?
정답은 패스게임의 함정 시즌 2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