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왕정⦁절대주의
Absolute Monarchy⦁Absolutism 君主专制⦁绝对主义
절대왕정(絶代王政)은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에 존재했던 정치체계로 절대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왕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통치해야 한다는 제도다. 절대왕정의 토대였던 절대주의(絶對主義, Absolutism)는 통치자가 법, 제도, 관습을 포함한 어떤 것으로부터도 제약을 받지 않고 절대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정치적 이념이다. 절대왕정과 절대주의는 중세 말 프랑스와 관계있다. 프랑스대혁명이 진행 중인 1791년 6월 20일 파리를 탈출하던 루이 16세와 그의 아내 앙투아네트가 잡혔다. 왕과 왕비는 유폐되어 있던 튀를리궁을 빠져나와 왕당파들이 많은 곳으로 도망치는 중이었다.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파리로 끌려온 왕과 왕비에게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다. 곧이어 왕과 왕비는 탕플탑에 갇혔다. 그리고 루이 16세는 공화제를 주장하는 혁명가들에 의하여 1793년 1월 21일 오전 10시, 기요틴(guillotine)에서 처형되었다.
프랑스대혁명과 루이 16세의 처형은 중세 유럽의 봉건주의와 프랑스 절대왕정이 끝났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봉건주의는 봉건제도의 이념으로 절대 권력을 가진 지배자가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는 정치제도다. 원래 봉건제도는 제후에게 토지를 봉(封)하여 그 제후가 나라를 건(建)한다는 뜻이다. 각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유럽에서는 대략 1500년대 중반 전후에 절대왕정이 출현하여 봉건제도가 변화했으나 프랑스대혁명까지 봉건시대로 분류한다. 절대왕정은 봉건시대와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절대주의 정치제도가 존재했으며 중국의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 프랑스의 루이 14세, 러시아의 차르(tsar) 등이 절대주의와 절대 권력의 상징이다. 유럽에서 절대주의가 최고조에 도달한 시기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루이 14세(Louis ⅩⅣ, 1638~1715, 재위 1643~1715) 통치 기간이다.
태양왕(Le Roi Soleil)이라는 별칭이 있는 루이 14세는 ‘짐은 곧 국가다(L'État, c'est moi)’라고 선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왕의 말이 법이고 왕의 명령이 신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루이 14세의 선언은 왕권신수설(Divine Right of Kings, 王權神授說)에 근거하고 있다. 왕의 통치권은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절대 권력이라는 뜻의 왕권신수설은 고대부터 존재했던 통치이념이다. 그러니까 왕은 신에게만 복종할 뿐, 그 외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존재이며, 따라서 신격을 나누어 받은 인격으로 신민을 통치할 수 있다. 유럽에서 왕권은 교황과 같은 교회권력과 역할을 나누기도 하고, 상보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교황과 대주교는 정신과 종교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반면 황제나 왕은 정치와 경제 등 세속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노사의 굴욕(Road to Canossa)과 그 이후 교황의 폐위 등에서 보듯이 왕권과 교황권은 충돌하면서 공존했다. 그러던 16세기 중반에 절대왕정이 출현한 것이다. 절대왕정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사회발전의 과정에 놓여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 시민계급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왕정은 봉건시대와 달리 관료 제도를 바탕으로 중앙집권을 구축했으며, 효율적인 조세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제도를 갖추었다. 조세제도와 군사제도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면서 부르주아 계급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절대왕정의 시대에 중상주의(Mercantilism)가 출현했고 무역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중상주의는 국부(國富)를 증대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무역을 하되 정부는 보호주의의 입장에서 수출을 우선해야 한다는 정책이다. 이런 국가 개념은 민족주의의 태동과 관계가 있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민족국가의 개념이 생겼고, 민족국가와 봉건국가의 중간에 절대왕정이 놓여 있다. 그런데 봉건제도 하에서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귀족과 종교에 토대한 성직자들은 특권계급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주의를 신봉하는 왕이 등장하여 귀족과 성직자의 특권을 제한하고 행정, 법률, 제도를 정비한 다음 왕권을 강화하여 절대왕정이 시작되었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대혁명과 루이 16세의 처형으로 왕정이 끝났으나 영국에서는 절대왕정과 시민계급이 타협하면서 입헌군주제가 탄생했다. 영국의 제임스 1세(James I)는 ‘군주는 왕으로 불리며 신 다음의 권력을 가진다’고 선언했으나 강력한 절대왕정을 이루지는 못했다. 독일에서는 프리드리히 3세 선제후(Princeps Elector, 選帝侯)가 강력한 계몽군주로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무적함대를 양성한 절대군주였고 러시아의 로마노프가의 황제들 역시 강력한 절대왕정을 구축하여 1905년까지 유지했다. 절대왕정과 절대주의 시대에 유럽의 국가들은 아메리카를 탐험하고 식민지를 개척했으며, 토지제도와 조세제도를 개혁했고, 산업혁명으로 과학과 산업을 발달시켰다. 따라서 절대왕정은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이면서 근대사회의 토대가 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자유주의 사상과 휴머니즘이 널리 퍼졌고 부르주아 계급이 상승하고 있었다.★(김승환)
*참고문헌 King James VI and I, A Speech to Parliament, 1610.
*참조 <계몽주의>, <근대⦁근대성>, <르네상스>, <봉건사회>, <부르주아>, <산업혁명>, <자본주의>, <자유주의>, <종교개혁>, <프랑스대혁명>, <휴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