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허물은 쉽게 보지만, 자신의 허물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우리 눈이 내 안을 보도록 되어 있지 않고 바깥 세상을 보도록 되어 있고, 마음도 눈을 따라 안으로 향하기보다는 바깥 세상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가 있고, 그와 비슷한 것으로 “겨울바람이 봄바람보고 춥다 한다.”가 있다. 제 허물이 큰 줄 모르고 그저 남의 허물만 탓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누가복음 6:41)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갖고 뭐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타인의 허물에 대하여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보다,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두 가지 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자신의 행위이기 때문에 좀 더 너그럽게 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하였을 경우, 그것이 본인 문제이다 보니, 그렇게 했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힘써야 한다. 내 눈 속의 티나 들보를 발견하고 빼내기 위해서는 내 인생의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이 살면서 쌓아온 지식·경험·가치관, 윤리도덕과 같은 사회 규범, 다른 사람들의 지적이나 충고, 그리고 성경·불경·사서삼경 같은 경전의 가르침 등이 인생의 좋은 거울이 된다. 이 거울들을 통해서 자신을 수시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살펴보다가 자신의 눈에 티나 들보가 있으면 그냥 덮어두지 말고, 발견하는 대로 그때그때 빼내도록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누가복음 6:42)고 하셨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로 변명하거나 합리화시키지 않고,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사람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한편, 다른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행위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비난하거나 야단을 치기 전에 숨을 한번 깊이 들이마시고 그 사정을 헤아려 본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좀 더 너그러워진다. 내 속에서 치고 올라오던 것이 좀 누그러들고, 그 사람이 그런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나아가 그를 품을 수도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