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오늘은 전교주일로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하여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대부분의 신자분들이 이러한 말씀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내 자식도 성당으로 이끌지 못하는데, 또, 오래전부터 냉담하고 있는 내 자녀들, 배우자, 가족들도 성당에 나오라고 못하는데,
어떻게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믿으라고, 성당에 다니라고 할 수 있겠어요.”
라고 말입니다.
사실, 자녀들의 신앙 교육과 가족들의 세례 후 냉담의 문제는
해결하기 쉬운 문제가 아님에 분명합니다. 참으로 난감한 사항입니다.
요즈음 우리 서울대교구에서 준비하는 중요한 사목 행사는 2027년에 있을 ‘WYD, 세계 청년 대회’입니다.
그래서 교구의 청소년 담당 교구장 대리이신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께서 청년 대회를 준비하며 각 지구를 다니시며 청년들과 미사를 드리고 대담과 식사도 나누시며 청년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청년들과의 대담에서 나온 이야기를 한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청년이 주교님께 말했다고 합니다.
“주교님, 저는 앞으로 결혼을 해도, 새로 태어날 아기에게, 유아세례를 주지 않고, 훗날 아이가 성장해서 자신의 종교를 택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할 배우자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청년의 이야기에 주교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자네는 아기가 태어나 배고플 때,
아기에게 모유를 먹을지? 분유를 먹을지? 아기에게 묻겠는가?
또한, 아기를 잘 씻기고 나서 아기에게 존슨즈 베이비 오일을 바르기를 원하는지? 니베아 크림을 발라주길 원하는지 묻겠는가?
분명, 자네는 아기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줄 것 아닌가!?”
주교님의 대답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론 종교와 세상의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겠지만 부모에게 신앙이 좋고,
소중하고, 세상살이에서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면
분명 자녀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하고,
사랑하는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들도 신앙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청년이 그렇게 말한 것은 신앙에 대한 확신이나 믿음이 부족해서인 것은 아닌지?
또, 주님과의 간절한 사랑의 관계, 체험이 부족해서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오늘 전교 주일을 맞이하여 복음을, 예수님을 타인에게 전하기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신앙의 확신, 믿음이 우선 굳건히 서야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굳건히 서야 되는 신앙의 기본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바로 나를 향한, 우리를 향한 주님의 강렬한 사랑을 믿는 것 그리고 그러한 주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한 주님께 대한 애착, 사랑을 갖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들은 주님과의 관계를 주종의 관계,
즉 하느님은 주인이시고, 우리 자신은 비천한 종이라는 생각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앞서서 우리 자신들의 부족함부터 먼저 생각합니다.
즉, 내가 이러저러하게 죄를 지어서 주님을 뵐 면목이 없다.
그리고 내가 잘 살고 계명을 잘 지켜야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생각하며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기에, 은총을 받기에, 봉사하고 뭔가 책임을 맡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주님과의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하느님,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내가 잘해서, 성실해서, 완벽해서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바로,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죄 많은 아들을 받아주시고 안아주시는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의 모습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주종의 관계로 결과에 따라 상을 내려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냥 자녀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한계와 나약함 불완전한 믿음으로는 분명 복음을 실천하기에도 복음을 증거 하기에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라고 말씀하시는, 무조건으로 나를 사랑해주시고 용기와 힘을 주시는
주님께서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한 주님께 대한 애착을 가지고
주님의 복음 선포의 사업에 헌신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바오로 사도의 오늘 독서 말씀으로 강론을 끝마치겠습니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