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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그림 동양의 정신 I
범례:
*wad-World Art Dictionary: 월간미술 출간, 세계미술용어사전을 이름
동양화 관련 용어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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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필 葛筆 wad 수묵화
수묵화의 기법. 묵의 사용을 억제하여 묵기가 적은 붓으로 그린다. 고필枯筆, 찰필擦筆이라고도 한다. 습필과는 다르며 초속超俗적 일기逸氣를 표현하는데 주로 사용된다. 원말의 黃公望은 갈필의 일종인 피마준으로 산맥을 그렸고, 倪瓚은 준법 . 수법樹法을 갈필로 그렸다. 특히 유민화가들은 공통적으로 금욕적인 건수乾廋의 효과를 표현했으며, 또한 남종화 계통에도 黃公望 양식의 갈필을 사용했다. *담예록 談藝錄*에는 “李成은 먹을 금같이 아꼈는데, 董其昌은 그림을 그리는 데는 먹을 아껴야 할뿐만 아니라 물도 아껴야 한다고 했다. 옛 사람들은 모두 갈필로 아름다움을 얻었는데 오늘날 사람들은 倪瓚 한사람만을 본받으니, 이는 잘못된 것이다”고 했다.
· 감필 減筆 wad 수묵화
붓을 많이 대지 않고 최소한의 필선으로 그리는 기법. 형상을 생략시킨 채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할 때 주로 쓰인다. 원래는 생필省筆, 약필이라 하여 글자의 자획을 쓰는 서예의 기법이었으나, 당말 오대 경부터 회화기법으로 응용하기 시작하여, 남송의 양해에 의해 그 전통이 확립되었다.
· 강남화 wad 화법
북송의 미 후米芾는 강남지방의 특유한 화법을 강남화라 했고, 그 전통은 顧愷之로부터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董源 계통의 산수화 뿐 아니라, ‘강남의 기상’을 나타내는 피마준 또는 비백이나 초서의 법을 활용한 강남화의 특징적 묘사 형식을 생각했던 것 같다. 원·명대에서는 미법산수나 강남을 주제로 한 작품을 강남화로 부른 예가 있다.
· 江西화파 wad 화파
중국 청초의 화가 羅牧을 대표로 하는 유파. 나목은 계녕도系寧都 지금의 江西에 속함 출신으로 남창지금의 江西에 살면서 산수화를 그렸는데, 처음엔 魏石狀의 전수를 받다가 뒤에는 黃公望에게 배웠다.
· 개자원화전 芥子園畵傳 wad 화보
명 말기의 화가 李流芳이 옛 명화들을 모아 *산수화보 山水畵譜*를 만든 것을 王槪 王槪 가 증보편집하여 1679년에 간행한 것이다. 개자원이라 함은 그 산수화보를 소장하고 있던 선 신이어沈心友의 장인 李漁의 별장 이름이다. 처음에 집필된 것은 나무·돌·산수 등으로 나누어 기법을 설명하였다. 그 후 우앙 까이의 형제王蓍, 王臬가 2집으로 사군자를, 3집으로 화훼, 초충 등을 더하여 1701년에 발간하였다.
· 개자점 介字点 wad 회화기법
동양회화 기법의 한가지. 나뭇잎을 표현하는데 쓰인다. 네 개 정도의 작은 필치를 한 단위로 하여, 마치 한자의 ‘介’와 같이 보이는 작은 잎을 그린다.
· 거비파 巨碑派 wad 화파
비교적 짙은 수묵을 많이 써 직사각형 꼴의 大山大水를 장엄한 느낌이 나도록 그리는 오대와 북송의 화가들을 말한다. 미국의 중국 회화 전문가인 Sherman E.Lee가 Monumental School이라고 붙인 명칭에서 유래한 말. 오대의 荊浩·關仝, 북송의 董源·巨然·李成·范寬·許道寧·郭熙, 북송의 李唐 등을 들 수 있다.
· 겐지모노가타리에 源氏物語繪 wad 일본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엮은 *겐지모노가타리*11세기 초에 나오는 중요한 장면, 특히 정취가 물씬 베어있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것. 한장 또는 두루마리로 여러 장 그려진다. 현존 最古의 작품은 12세기 전반에 제작된 *겐지모노가타리 두루마리源氏物語繪券*가 있다. 카마쿠라 시대에는 색채 두루마리인 *와카무라사키 若紫*와 *수에츠무하나 末摘花*, *미오츠쿠시 澪標* 등이 있다. 한편 15세기 중기에는 토사파를 중심으로한 정교한 색지그림色紙繪과 부채그림이 나왔다. 점차로 이러한 양식은 정착화되어 에도 시대를 통하여 토사파와 가노파의 화가·화공들에 의해 병풍화, 색지화 각종 공예품의 주제로 응용되었다.
· 경직도 耕織圖 wad 화제
권계도勤戒圖의 하나. 농민의 부지런함과 땀흘려 일하는 모습을 임금에게 알리기 위하여, 또 왕실의 교육에 이용하기 위하여 제작됨. 남송의 로우즈우-樓璹가 고종에게 진상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농사짓는 장면 21, 베짜는 장면 24에 각각 오언시를 붙이는 것이 본래의 체제인데, 원본은 남아 있지 않다. 淸 강희 년간1662-1722에 焦秉貞이 투시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리고, 御製를 붙인 것의 판각본인 *패문재경직도佩文齋耕織圖*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 계화 界畵 wad 화법
건물, 배, 수레 등의 건조물을 자나 컴퍼스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그리는 것 또는 그 기법. 본래 실용적인 목적에서 출발한 것으로 장인적이라고 하여 낮게 평가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의 점 하나의 필획일지라도 자나 컴퍼스와 같은 도구에 의거해서 정확을 기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 그리는 대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요청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것으로, 회화의 학습에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唐의 懿德태자묘706의 벽화에도 실례가 있으며, 북송의 郭忠恕는 이 방면의 명수였다고 한다.
· 계회도 契會圖 wad 화제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문인들의 계모임을 묘사한 그림. 특히 표제와 인적사항을 적은 座目을 첨가하고 있다. 생활 풍속적인 경향이 강하며 전통문화 내지 회화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고고유사묘 高古遊絲描 wad 화법
중국 인물화에서 옷주름을 그리는 방법의 한 가지. 붓끝을 살려 가늘고 길게 계속 이어진 선묘로, 출렁이며 넘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북제北齊, 550-577의 서역 출신 화가 曹仲達의 옷주름 묘사법을 지칭하고 顧愷之와 陸探微의 의습선衣褶線도 이에 해당한다.
· 고목도 枯木圖 wad 화제
문인의 墨戱로서 묵죽과 더불어 특히 원대에 유행하였던 화제. 문인의 고수한 기골을 상징하는 경향이 강했다. 蘇軾의 그러한 작품이 기록상으로는 유명하나 확실한 유품은 없다. 오대에서 북송에 걸쳐 산슈화 중에 보이는 해묵은 나무가 그 시초로 말해진다. 묵죽과 怪石을 조화시킨 고목죽석도枯木竹石圖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 고사산수 故事山水 wad 화제
동양회화의 화제. 자연을 배경으로 꾸민 신화나 역사적인 인물에 얽힌 일화나 이야기를 산수화로 그린 것. 황제 신화에 의한 *百澤圖*, 동진의 王羲之의 일화를 그린 *섬계방대도 剡溪訪戴圖*, 현종 황제의 일화에 의한 *명황행촉도*, 白居易에 의한 *비파행도 琵琶行圖*, 蘇軾에 의한 *적벽도 赤壁圖* 등이 잘 알려져있다. 주제 취급 방식에 따라 고사산수가 되기도 하고 고사인물이 되기도 한다.
· 고숙파 姑熟波 wad 화파
중국 명말 청초의 문인화가 소운종蕭雲從을 시조로 하는 화파. 무호 출신의 *圖繪寶鑑續篇* *國朝畵徵錄* 등에서 당도 출신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당도 부근의 고숙계 또는 고숙성의 이름을 따라 고숙파라 명명한 것 같다.
· 고화품록 古畵品錄 wad 화론
중국 남북조 시대, 남제479-501의 화가, 謝赫이 찬술한 화가품평서. 현존하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화론으로 532년 이후의 것이다. 오의 曹不興으로부터 남제 말기까지의 화가 27인을 명성에 따라 제1품에서 제6품까지 나누고 짧은 평론으로 적은 것으로 본래는 *화품*이라고 불렀다. 특히 謝赫이 이 책의 서문에서 회화창작의 요체로서 서술한 육법은 후세에 회화 비평의 기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과석도 窠石圖 wad 화제
怪石圖의 한 화제로 구멍이 뚫린 기괴한 형상의 돌을 그린 그림. 화북의 괴석을 말함.
· 관조도 觀潮圖 wad 화제
음력 8월 중순에 중국 浙江省과 錢塘江의 썰물은 큰 파고로 밀려들다가 강물과 충돌하여 장관을 이룬다. 그것을 浙江潮라 부르며, 예로부터 관조자가 많이 찾아갔다. 그 광경을 그린 것을 관조도라 한다.
· 광태사학 狂態邪學 wad 화파
중국 명대 후기의 양식인 절파를 비판했던 말. 南北 二宗論이 성립한 뒤, 문인측에서는 절파를 공격했는데, 절파 화가 가운데 주로 洪治 년간1488-1505이후의 몇명을 가리켜 “ 미친 행동을 멋대로 하는 자”, 그림에 있어서의 “邪學의 무리”라고 혹평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 이 논평은 高濂의 *燕間淸賞箋*, *遵生八牋* 또는 項元泰의 *蕉窓九錄*에 보이고, 屠陸1542-1605의 *畵箋*, 徐沁의 *明畵錄*, 唐志契1579-1651의 繪事微言* 등도 이 용어를 인용했다.
· 구로회도 九老會圖 wad 화제
인물화의 한 화제. 845년에 당의 白居易이 낙양에서 재야 여덟 老友들을 만나면서 3월에는 七老를 그리고 여름에 가서 二老를 마저 그려넣어 한 화면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 후세의 이런 종류인 會合圖의 선례이다.
· 구륵 鉤勒 wad 기법
동양 회화의 전통적인 기법. 순례에 따라 붓을 놀리는 것을 ‘구’라 하고 세를 거슬러 하는 것을 ‘륵’이라 한다. 또 한 단번에 써 내는 것을 ‘구’라 하고 겹쳐서 그리는 것을 ‘륵’산수화에서는 復이라 씀이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왼쪽을 ‘구’ 오른쪽을 ‘륵’이라 부르기도 한다. 보통 선으로 사물의 윤곽을 묘사하는 것을 가리키며, 순·역·단·복順逆單復을 구별하지 않고 ‘쌍구’라고 부른다. 구륵 후에 대개 채색을 입히는데 기법상 몰골·점주와 대비되며 일반적으로 정밀하고 세밀한 화조화에 사용된다. 구륵은 필력을 필요로 하는데 청대의 原濟는 *大涤子題畵詩跋*에서, “깨달음이 있은 뒤에야 종이를 대하니, 구륵과 서예는 서로 비슷하다”고 말했다.
· 구인묘 蚯蚓描 wad 화법
인물화의 옷무늬를 그리는 기법. 인물십팔묘의 하나. 구인이란 ‘지렁이’의 뜻으로서 저렁이가 꿈틀꿈틀 움직이는 듯한 옷무늬 묘사기법을 말하는 듯하다. 불화에서 파도 치는 듯한 선을 반복하여 옷무늬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옷무늬 묘사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 국화점 wad 화법
수묵산수화에서 나뭇잎을 그리는 기법. 작은 필촉으로 여덟 내지 아홉 개 정도의 점을 찍어 국화가 핀 것처럼 그린다. 주로 근경을 그리는데 사용된다.
· 궤두묘 撅頭描 wad 화법
인물화의 옷에 무늬를 그리는 기법. 궤는 나룻배를 뜻한다. 끝이 무지러진 禿筆로 처음 붓을 댈 때에는 굵게 그린 후 가늘게 빠지게 하는 묘선을 말한다. 인물십팔묘에서 馬遠, 夏珪의 인물묘에 해당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산수화 속의 점경인물을 가리키는 묘사법인 듯하다.
· 귀면준 鬼面皴 wad 화법
일명 鬼皮皴. 수성암의 특질을 표현하는데 쓰인다. 산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바위들의 형세를 귀신의 얼굴처럼 험상궃게 그려 괴이한 느낌을 주는 이 준법은 남송대에 閻次平의 *四樂圖*에 잘 나타나있다.
· 금곡원도 金谷園圖 wad 화제
금곡은 중국 하남성 洛陽의 縣城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의 이름으로 西秦 때에 石崇의 莊園이 있었다. 금곡원도는 석숭이 손님을 불러서 주연을 베풀고 賦詩경쟁에서 떨어진 자는 벌주 세 되를 마시게 하였다는 고사를 그린 것을 말한다.
· 금릉팔가 金陵八家 wad 화파-명/청
명말 청초에 금릉지금의 江蘇省 南京에서 활약한 여덟 사람의 화가. 龔賢,樊圻, 高岑, 鄒喆, 吳宏, 葉訴, 胡慥, 謝蓀 등을 가리킨다. 그들 그림의 제재와 양식은 서로 다르다. 같은 지역 같은 시대에 칭송을 받았으므로 그렇게 불렸다. 이들의 출전은 청대의 張庚의 *국조화정록 國朝畵征錄*에 보인다. 건륭년간1661-1722의 *상원현지 上元縣志*에서는 陳卓·吳宏·樊圻·鄒喆·蔡霖淪·李又李·武丹·高岑 등을 ‘금릉팔가’라 보기도 한다.
· 금벽산수 金碧山水 wad 화법
금벽이란 고운 색채란 뜻. 철록산수의 산과 바위의 윤곽선 안쪽에 금니의 선을 첨가하거나 금니의 皴을 부연한 산수화를 말한다. 당대의 李思訓이 이 방법을 이미 썼고 송대의 趙伯鮈가 또한 유명하다. 그 후대는 대개 옛 방법의 모방.
· 금은니 金銀泥 wad 재료
금이나 은가루를 아교물에 개어 만든 안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희 바탕의 종이 등에서는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없으며 紺紙와 같이 어두운 바탕에 사용되어 독특한 효과를 낸다. 주로 사경과 같은 종교용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일반 서화에서도 간혹 쓰임.
· 기명절지 器皿折枝 wad 화제
동양회화의 화제. 꺽여진 꽃가지, 과일 등의 절지와 보배롭고 귀중한 그릇을 조화시켜 그리는 일종의 정물화. 북송시대의 간행된 *선화화보*에는 10개 분야의 그림에 대한 작가와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花鳥門·蔬果門 등이 있어 채소와 과일 등은 화조와 마찬가지로 별도로 그려졌다.
· 김정희1786-1856파 wad 화파- 조선
趙熙龍, 許維, 田琦, 權敦仁, 李昰應, 등이 대표적으로 김정희를 따르고 교류했던 인물이다. 文氣와 사의를 존중했던 이들 경향은 조선 말기 화단에서 남종 문인화를 성행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조선 후기에 풍미했던 진경산수화와 풍속도를 쇠퇴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 낙관 落款 wad 용어
落成款識의 준말로서 서화를 마무리한다는 의미로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쓰고 인장을 찍는 행위를 말한다.
· 낙신부도 洛神賦圖 wad 화제
중국 고사를 다룬 그림. 낙신은 洛水陝西省 남동의 秦嶺에서 원류가 시작되어 황하에 흘러 들어가는 강의 여신으로 伏羲氏의 딸 宓妃이다. *낙신부*는 위나라의 曹植192-232이 황초 3년222에 낙양으로부터 책봉지인 견지郵地로 가던 중 복비의 환상을 보고 나서 읊은 것이라고 한다. 내용은 1. 조식과 시종이 복비를 만난다. 2. 복비의 아름다운 자태를 표현한다. 3. 복비는 용 여섯 마리가 끄는 구름마차를 타고 사라져 버린다. 4. 조식은 배를 띄워 그 종적을 그리워한다. 5.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6. 마차를 타고서도 떠나기가 어렵다고 술회하는 것 등이다. 낙신부도는 이와같은 시의 내용을 두루마리그림으로 충실히 그린 것이다. 미인도의 하나로서 낙신만을 그린 것으로는 청나라의 顧洛이 그린 것이 있다.
· 난엽묘 蘭葉描 wad 기법
수묵에서 인물의 옷 무늬를 그리는 방법. 온화하게 그리기 시작하여 도중에 완만하게 넓혔다가 붓을 뺀다. 묘선이 부드러운 난초의 잎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牧谿의 작품인 *관음도*京都 大德寺에서 전형적인 기법을 볼 수가 있는데, 일찍이 당대의 吳道玄에게 이러한 옷무늬의 묘사기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난정서 蘭亭序 wad 서예
중국 동진의 王羲之가 쓴 行書帖. 동진 穆帝 영화 9년353 3월 3일 회계산음의 난정에서 당시의 명사 40여명이 어울려 놀며 시를 지었는데 그 시집에 붙인 서문을 王羲之가 썼다. 이를 *난정서*라 하는데 *세설신어 世說新語*의 註에는 문장은 조금 다르지만 *臨河敘*라고 나와 있다. 명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서예가의 글씨본 *蘭亭帖*으로서 애호되고 모사된다.
· 남송사가 wad 화파-남송
남송의 원체산수화가인 李唐·劉宋年·馬遠·夏珪에 대한 총칭. 그들의 화풍은 호방하고 간략함을 특징으로한다. 처음엔 이런 명칭이 없었으나 원대의 湯垕가 남송화원에서 명성을 얻은 사람들, 예컨대 李唐, 周曾, 夏珪,李油, 李安忠, 樓觀, 양해 등에 대해 “나는 李唐에 대해서만 약간의 감상을 덧붙일 수 있를 뿐 그 나머지에 대해선 모두 구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에서 비롯되어 명대의 唐寅이 劉宋年의 *춘산선은도 春山仙隱圖 *에 詩題를 붙이면서 ‘이·유·마·하李劉馬夏’란 명칭을 썼다. 그 뒤에 屠隆이 “李唐, 劉宋年, 馬遠, 夏珪 이 네 사람이 남송의 사대가이다”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다.
· 남종화 wad 화파- 명
중국 명대의 莫是龍, 董其昌이 지칭한 북종화에 대립하는 산수화 중심의 양식. 당나라의 王維를 시조로 추앙하는 유파의 기법이다. 시조인 王維는 말할 것도 없고 오대송초의 董源과 巨然을 거쳐 실질적 開祖인 黃公望, 倪瓚, 王蒙, 吳鎭 그리고 藝林百世의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董其昌 등은 남종화의 정통파 거장들이다. 북종화와 대비되는 이 남종화의 특색은 천진과 감흥의 존중이며 형식상의 특징으로는 산형, 樹法이 부드러울 뿐 아니라 준법에서도 피마준 같은 부드러운 수법이 주로 사용되는 점을 들 수 있다.
· 남진북최 南陣北崔 wad 화가-
명말에 활약한 陳洪綬와 崔子忠의 두 화가를 말한다. 陳은 남방의 浙江省 출신이고 崔는 북방의 山東城 출신이어서 그 호적수를 병칭하여 남진북최란 말이 생겼다. *국조화징록 國朝畵徵錄*에 그용례가 보인다.
· 盧仝전다도 盧仝煎茶圖 wad 화제
고사인물화의 한 화제. 盧仝은 당대의 高士로 벼슬을 마다하고 少室山에 숨어 지냈다. 그림으로는 *육우팽다도 陸羽烹茶圖*와 같은 종류가 있다.
· 노자출관도 老子出關圖 wad 화제-주
중국의 고사인물화의 화제. ‘출관’은 주나라가 쇠미한 것을 보고 몸을 운둔하기 위해 하남성 영보현의 남서쪽에 있는 函谷關을 향해 나선 것을 가리킨다. 그 관소를 지키는 사람인 尹喜의 요청에 따라서 오천여 글자로 된 글을 남겨놓은 후 선인이 되었다고 한다. 라오쯔老子의 상은 소가 끄는 수레를 타거나 소에 걸터 앉은 모습으로 그려지면서 尹喜 등을 첨가하는 경우도 있다. 성인이 온다는 의미에서 *자기동래도 紫氣東來圖*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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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鴻초당도 盧鴻草堂圖 wad 화제
중국 고사 산수화의 화제. 盧鴻은 당나라 때에 嵩山으로 은거했던 高士. 승산의 초당은 관영으로 5백명의 학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초당의 모습을 스스로 그린 *초당십지도 草堂十志圖*에서 시작된다.
· 녹각법 廘角法 wad 화법
나무를 그리는 방법 가운데 하나. 가지가 사슴의 뿔처럼 벌어진 모습이다. 가을 숲을 그리는데 알맞고 농묵을 써서 그린다. 봄 경치에는 녹색의 작은 점, 서리 내린 숲은 붉은 색의 작은 점을 찍어서 붉은 잎사귀를 나타낸다.
· 누각산수 樓閣山水 wad 화제
산수와 고루, 대각을 조합하여 구성하는 산수화. 그 제작은 북송 무렵부터 활발해진다. 郭熙의 *임천고치 臨天高致*에 의하면, 산수에 누각이 있는 것은 그곳이 명승지임을 보여준다고 한다.
· 누동화파 wad 화파
중국화 유파의 하나로 ‘태창파太倉派’라고도 불린다. 이 파의 대표자인 청대의 산수화가 王原祁는 조부 왕시민의 가법을 계승하고 黃公望의 기법을 모방하여 성조 강희 년간1661-1722에 명성이 높아서, 師承하려는 이들이 매우 많았다. 사촌 동생 王昱과 조카 王愫, 그리고 제자인 王鼎, 王敬銘, 金永熙, 李爲憲, 曹培源, 溫儀 등이 유명. 이 파의 崇古保守의 화풍은 우산화파와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 다자도 多子圖 wad 화제
吉祥圖 화제. 가문의 번영을 위해 사내 아이가 많이 태어나고 자라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크게 세 종류가 있다. 1. 석류의 종자가 많은 사실에 비유하여 그림을 그리고 여의如意, 靈芝, 珊瑚 등을 곁들여 놓는 일이 있다. 2. 백명의 남자 아이가 기뻐하며 노는 광경을 그리는 百子圖 3. 아들, 손자가 많았던 고사 인물과도 관계시키면서 노인과 여성, 많은 아이가 함께 있는 그림 등이 있다.
· 단청 丹靑 wad 회화
1. 중국 고대 회화에서 주홍색과 파랑색을 자주 사용했으므로 ‘단청’이라고 했다. *한서 漢書* *소무전 蘇武傳*에는 “죽간과 비단에는 글을 쓰고 단청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杜甫의 시에 “단청인증조장군패 丹靑引贈曹將軍覇”라는 구절이 있다. 민간에서는 화공을 단청사부라 불렀다. 또한 광범위하게 회화예술을 칭할 때도 있다. 가령 *秦書* 顧愷之傳에는 “더욱 그림에 뛰어났다尤善丹靑”라는 기록이 있다.
2. 여러가지 색으로 문양이나 그림을 그려 구조물을 보호하고 건물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동양 목조 건축의 중요한 意匠技法의 하나. 석조, 塼造의 고분, 기명器皿, 공예품, 造像 등도 단청의 대상물로 彩畵되었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목조 건물에 많이 사용되었다. 단청술은 현대 건축에서도
매우 뛰어난 건축 의장기법으로서 계승·발전시킬 만한 가치가 있다.
· 단필마피준 短筆麻皮皴 wad 화법
짧은 麻를 풀어놓은 듯한 약간 거친 느낌을 주는 준으로, 부서지거나 각진 바위, 험준한 산봉우리를 효과적으로 그릴 때 주로 쓰인다.
· 당삼채 唐三彩 wad 도자기
중국 당나라618-906때 만들어진 삼채 도자. 장안, 낙양의 귀족들의 장례를 위해 만들어 副葬했다. 陶質의 素地에 화장을 하고 녹·갈·황·백의 鉛釉로 화려하게 칠한다. 기형은 용머리 항아리, 접시, 바리 등과 여러가지 모습의 남녀 인물상, 신상, 鎭墓獸, 말, 낙타 등 각종의 明器가 있다. 이것은 당시 유행했던 서 아시아 양식의 위장과 복식 등을 엿볼 수 있다. 측천무후則天武后 690-705땐 厚葬 풍습으로 삼채가 유행했고 그 영향으로 발해삼채, 요삼채, 송삼채, 나라삼채 등이 생기고 페르시아의 삼채에도 그영향을 끼침.
· 대련 對聯 wad 서예
판·종이 등에 對句의 글을 써서 대문이나 기둥의 양쪽에 부착하거나 걸어 놓은 것을 말함. 문짝에 걸어 놓는 것을 門聯 또는 門心이라하고, 문기둥 좌우에 거는 것을 框對라 하며, 새해에 쓰는 것을 春聯이라고 한다.
· 도리원도 桃李園圖 wad 화제
인물화의 한화제. 당대의 리바이李白의 병려체騈儷體문장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挑李園序에 입각하여 그린 상상화이다.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詩作을 즐기는 문인들을 그린다.
·도원도 桃源圖 wad 화제
고사산수화의 화제. 중국의 東晋 태원 년간376-396에 무릉군 부근에서 한 어부가 복숭아꽃이 핀 仙境에 들어가 그 마을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았다는 고사. 마을 사람들은 秦대에 전쟁을 피하여 은둔했던 사람들의 자손으로 한·위진의 변천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동진의 陶淵明이 *도화원기 桃花源記*를 짓고부터 유명해졌으며 별세계, 선경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 도해도 渡海圖 wad 화제
승려나 도사가 물위를 걸어가는 모습의 그림. 이러한 그림으로 그들의 초인적 능력을 말하려는 것인데 당대의 王維와 盧楞伽 등이 이미 이 화제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 도화견문지 圖畵見聞誌 wad 화론
북송의 郭若虛가 지은 화론서. 이 책은 張彦遠의 *역대명화기*의 속편이다. 五代에서 희녕 7년 1074에 이르기까지 敍論·紀藝·故事·拾遺·近事의 다섯 부문으로 나누어 모두 150-160년 간의 명인예사류파名人藝士流派의 본말本末을 들어 넓고 체계적으로 논하였다. 제1권 *서론*은 회화의 규감規鑒작용에 대해 논술하고 있는데, 서로 다른 인물의 신모와 물상의 특징을 표현하는 모범과 ‘판版, 또는 板’·‘각刻’·‘결結’ 등 붓놀림의 세가지 병폐用筆三病 등을 쓰고, 아울러 오대·북송 초기의 李成·關仝·范寬 등 북방삼가의 산수화와 黃筌·徐熙의 화조화파의 연원과 특징을 밝혔다. 또 畵科의 성쇠로부터 고금의 우열불도인물화는 근대의 것이 고대의 것보다 못하고, 산수화조는 고대가 근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 등을 논했는데 그 견해가 탁월하다. 제2권 *기예*는 당나라 會昌 원년841 이후에서 북송 희녕 7년에 이르는 233년 간의 화가 284명의 소전과 평론을 싣고 있다. 마지막 두권은 *고사습유*와 *근사*로 화단의 유문질사遺聞軼事만을 전문적으로 기록하였다.
· 도화서 圖畵署 wad 화원-조선
조선시대 궁정에서 회화를 담당했던 기관. 궁중 및 정부가 필요로 하는 회화를 제작, 즉 어용御容, 왕의 초상화, 풍경화, 古畵模寫, 삽화, 도자기 그림, 세화, 陵園途 등을 그린다. 중국의 화원 翰林圖畵院의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 *삼국사기*에는 典彩署, *고려사*에는 한림도화원, 畵局 등의 명칭이 있다. 직원은 提調 1, 別提 1, 善畵 1, 善繪 1, 畵史 1 를 포함한 화원 20명, 생도 10명이 있다.
· 두자미기로도 杜子美騎驢圖 wad 화제
고사인물화의 한 화제. 杜子美는 盛唐때의 대시인 杜甫로 자미는 그의 字, 보는 이름이다. 호를 붙여 두소능기로도杜少陵騎驢圖라고도 한다. 보통 杜甫가 당나귀를 타고 정처없이 떠다니는 모습이 그려진다. 다른 해석으로는 생활이 가난하여 당나귀를 타고 통근하였던 고고하고 청빈한 모습을 숭상한 그림이라고 한다.
· 마아준 馬牙皴 wad 준법
산의 모습을 말의 이빨처럼 뾰족하게 그리는 준법. 구륵법으로 윤곽을 그리고 그 안에 淡彩를 하여 장식적인 맛을 나게 한다. 당대의 李昭道의 *춘산행려도 春山行旅圖*와 송대의 작품인 *송암선관도 松岩仙館圖* 등에서 이 준법을 볼 수 있다.
·마하파 馬夏派 wad 화파
남송의 화원에서 활약했던 馬遠과 夏珪에 의해 형성된 화파로서 주로 직업 화가들 사이에서 추종되었다. 마하 화풍은 강남지방의 특유한 자연환경과 이를 향유하는 인물을 소재로 하여 근경에 역점을 두되 한쪽 구석에 치우치게 하는 一角構圖로, 원경은 안개 속에 잠긴 듯 시사적으로 나타내어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과 암벽의 표면은 부벽준으로 처리하고 굴곡이 심한 나무를 근경에 그려넣는 것 등도 이 화파의 독특한 작풍이다.
· 망량화 魍魎畵 wad 화법
매우 맑고 묵으로 그린 주로 선종화적 주제를 다룬 수묵화의 하나. 남송의 智融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생각되며 남송 후반부터 원 초에 걸쳐 많이 제작되었다.
· 망천도 輞川圖 wad 화제
망천은 중국 陝西省 남전현에 있는 谷川으로 당대에 王維가 그곳에 망천장輞川莊이란 별장을 짓고 풍류의 생활을 즐겼고 또한 그 일대의 절승한 자연경을 그림으로 망천도라 하였는데 그후로 이 화제가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王維의 원작은 전하지 않으나 오대의 郭忠恕가 모사했다고 하는 것과 북송의 李公麟 모본 계통의 작품이 전해진다.
·매화서족점 梅花鼠足點 wad 묘법 / 화법
원말 사대가의 한사람인 吳鎭이 애용한 묘법으로 호초점과 같은 계통이며 문인 산수화에 흔히 쓰인다. 매화 꽃잎과 쥐발자국 같은 작은 흑점을 밀집시키는 표현이다.
· 명사가 明四家 wad 화파
명나라 중기의 沈周, 文徵明, 唐寅, 仇英 등 네 사람에대한 통합 명칭. 그들은 스승과 벗의 관계였지만 그림에는 각각의 품격과 특징이 있으며 후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 명황행촉도 明皇幸蜀圖 wad 화제
당 현종황제가 안녹산의 난을 피하여 천보 15년756, 촉四川省으로 피신하는 고사를 그린 그림. 당대부터 이미 이 주제의 작품이 제작되었던 듯하고 현종과 동시대의 인물인 王維의 *명황검각도 明皇劍閣圖*가 기록에 남아 있다. 촉에 이르는 위험한 잔도棧道와 화려한 人馬의 행렬은 청록산수화, 풍속화의 좋은 주제가 되었으며 *촉잔도도 蜀棧道圖*로서 수많은 그림이 그려졌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李昭道와 仇英이 그린 작품 등이 있다.
· 모시도 毛詩圖 wad 화제-시경 ...
중국 고사인물화의 화제. ‘모시’는 *시경*의 별명. 진의 衛協, 당 문종826-39 재위시대의 程修己 등이 옛부터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현존하는 유품으로는 남송의 고종의 글씨, 馬和之의 그림에 의한 서화합권書畵合卷이 유명하고, *대아·탕지십 大雅·蕩之什*, *빈풍 豳風*, *당풍 唐風*이 있다.
· 몰골 沒骨 wad 묘법
동양화의 묘법가운데 하나. 형체의 윤곽을 필선으로 그리지않고 수묵 또는 채색으로 직접 대상을 그린다. 예전에는 山岳圖에 쓰였고 양梁의 場僧繇, 당의 楊昇 등에게 그러한 작품이 있었다고 하는데 오대 이후에는 화조화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이 기법은 채색 위주의 黃氏體와 대립되는 徐時體의 수법이 되었으며 특히 惲壽平이 창시한 사실적인 몰골 화조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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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근수 無根樹 wad 묘법
미법산수에서의 수목법. 보통 수목은 작은 관목 이외에 주기를 윤곽선으로 나타내고 뿌리는 대지나 암석에 단단히 내려진 형태로 그려지게 마련이지만 미법산수에서는 수근 부분을 안개로 가리면서 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傳 牧谿의 *소상팔경도 瀟湘八景圖*같은 작품에서 그 수법을 볼 수 있다. 무근수란 말은 본래 米友人의 그림 속의 나무에 대해서 친구들이 비웃던 말로 썼던 것인데 龔賢의 *畵訣*과 *개자원화전*같은 책은 세 그루의 나무를 붙여 그릴때에는 한 그루에만 뿌리를 보이게 하며 다른 두 그루는 무근으로 한다고 말하고 있다.
· 묵 墨 wad 문방구
文房具의 한 가지. 소나무나 식물기름 등을 연소시켜 그때 생기는 그을음을 악 고체화 시킨 것. 묵을 벼루에 갈면 탄소의 콜로이드 용액인 묵액이 생긴다. 은대에 묵이 있었던 것은 갑골문에서 묵서한 예로 알 수 있는데 그 영향은 분명치 않다. 고대의 먹은 전설상으로는 칠에서 시작되었다. 묵은 黑과 土로 이루어진 상형문자로서 검은 흙의 뜻이 되므로 石墨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므로 묵의 색은 그을음 혹은 석묵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대에는 천연의 석묵이 사용되었다고 전하며 인공의 그을음도 쓰였던 듯하다. 하북성 望都에 있는 後漢墓 벽화에 둥그런 벼루 위에 방추형의 먹을 놓은 그림이 있다. 당대에는 먹 만드는 법이 정교해졌고 李廷珪와 같은 명공이 있었다. 후에 먹 만드는 법은 점점 정교해지고 송의 潘谷, 원의 朱萬初, 명의 程君房, 方于魯 등의 墨工이 나왔다. 청대에 이르러서는 趙素功, 汪近聖, 胡開文 등이 나타나 안휘성安徽省에서 번성했으므로 ‘휘묵호필 徽墨湖筆’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소나무 이외에 기름 그을음으로된 먹이 성행한 것은 실제로는 명대 이후이다. 제묵법을 기술한 저서로는 沈繼孫의 *묵법집요 墨法集要*가 있고 먹의 생김새를 그림으로 그려 보인 것으로 方于魯의 *정씨묵원 程氏墨苑*, 方端生의 *묵해 墨海*등이 있다.
· 묵매 墨梅 wad 화제
수묵으로 그린 매화. 묵죽과 더불어 문인화의 화제로서 보급되었다. 북송의 승려 仲仁이 창시하였다 하며 楊補之에 의해 더욱 발달되었다. 양보지는 그때까지 수묵의 선염渲淡으로 그리던 매화를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나머지는 흰 바탕으로 나타냈으며 나무줄기, 나무가지만을 몰골로써 나타내는 법을 창시하려 이후의 묵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묵죽 墨竹 화제
수묵으로 그린 대나무. 성긴 대나무, 떨기를 이룬 대나무, 꺾인 가지 등이 그려진다. 북송의 문동文同에 의해 문인화로서 새로운 양식적 생명을 얻고 蘇軾의 이론적 뒷받침으로 문인화로서 보급되었으며 후세의 수묵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원통의 묵죽의 전통을 계승한 사람들을 湖州竹派라고 불렀다. 원대에 李衎의 *죽보상록 竹譜詳錄*이 나온 이후에 점점 성행되었다.
· 묵화 墨花 wad 화제
수묵으로 그린 꽃. 매화, 부용, 난초, 국화, 수선, 연꽃 등이 자주 그려지는데 특히 소나무, 대나무, 매화 등 歲寒三友나 매, 란, 국, 죽 등의 사군자는 문인화 가운데서도 문인의 정신이나 인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널리 보급.
· 문인화 wad 화가
전문적인 직업화가에 대하여 문인, 사대부의 餘技적인 그림을 말한다. ‘문인의 그림’을 제창한 사람은 명대 말기의 董其昌인데 종래에는 사대부의 그림이라 일컬어지고 행가行家, 전문가의 그림에 대해서 이가利家, 문외한의 그림이라고도 불렸다. 따라서 화가의 심분적 속성에 의한 구별이지 특정한 양식과의 관계는 아니었다. 사대부 화가의 출현은 후한 말기 인데 명대 중기 이후 전문화가를 압도하여 화단을 독점하였다. 그 무렵에 상대방의 양식을 북종이라 부르고 그들 자신의 화풍을 남종이라 칭하였다. 그런데 董其昌이 말하는 ‘문인의 그림’의 계보에 속하는 화가는 남종화의 화가들과 큰 차이가 없다. 여기에서 문인화와 남종화의 혼동이 생겨나고 문인화는 남종화와 같은 의미의 용어인 것처럼 간주되기에 이른다.
· 문희귀한도 文姬歸漢圖 wad 화제
文姬는 후한 때에 남쪽 흉노에 붙잡혔던 제염薺琰의 字. 학자였던 차이 용蔡邕의 딸로 박학다재하였다고 전한다. 흉노에게 12년 간이나 잡혀있는 동안 두 아이의 어머니가 돼 있었고 曹操의 도움으로 풀려나 한나라로 돌아 갈 때에 자식들과 헤어져야 했는데 그때의 슬픈 광경을 그린 것이 문희귀한도이다.
· 미점 米點 wad 기법
미법산수의 한 기법. 둥그스름한 산봉우리의 일대에 붓을 옆으로 뉘어 큼직한 묵점을 찍어나간다. 미 후米芾가 창시했다고 하며 발묵의 성겨이 강했던 것 같으나 후대에 가서는 형식화 되었다.
· 미파 米派 wad 화파
중국화의 유파 가운데 하나. 송대의 미 후米芾, 米友仁, 부자가 창안한 화풍을 가리킴. 회화사에서는 ‘大米’, ‘小米’, 또는 ‘二米’로 불린다. 미 후는 항상 李公麟과 더불어 고금의 산수화에 대해 논했는데 문밖을 나서는 일이 거의 없어서 편지로 대신했다. 그는 스스로 “李成, 關仝의 속된 기질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다”고 자부헀다 한다. 중국의 전통 산수화는 선을 위주로 하는데 미후는 와필횡점臥筆橫点으로 덩어리진 면을 만들어 ‘낙가법 落茄法’이라 부르면서 선 위주의 기성 규범을 타파했다. 그 특징은 연우운무烟雨雲霧와 같은 자욱한 롼상의 풍취를 표현해내는데 세칭 ‘미씨운산米氏雲山’이라한다. 미우인은 家傳의 기법을 계승, 발전시켜 뿌리없는 나무·자욱한 구름 같은 것을 잘 그렸는데, 항상 자신의 작품에 ‘원휘희필 元暉戱筆’이라 제목을 붙였다. 이 유파는 남송의 牧溪, 원의 高克恭 및 方從義 등이 모두 이 유파를 본받았다.
· 발묵 潑墨 wad 기법
중국 회화의 기법. 전하는 바로는 당의 王洽이 흰 종이에 먹을 뿌리고 발로 차고 손으로 문지르다가 그 형상을 따라 바위·구름·물을 그렸는데 마음 먹은대로 손을 놀려 그름과 노을 및 비바람을 그려 내니 신의 기교를 부린 듯 아름답고 엎드려 보아도 먹이 얼룩진 자국이 없었다 한다唐朝名畵錄*. 명대의 李日華는 *죽란화잉 竹嬾畵媵*에서 “발묵은 먹을 오묘하게 사용해서 붓의 흔적이 보이지 않게하고, 마치 먹을 뿌린 것처럼 그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청대의 沈宗騫은 *개주학화편 芥舟學畵編*에서 “먹은 발묵, 산색은 발취潑翠, 풀색은 발록潑錄이라하니 潑의 쓰임새는 그림 속의 기운氣韻을 피워내는 것이라 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했다. 후세에는 먹물이 풍부하고 기세가 가득한 모든 것을 다 ‘발묵’이라 불렀다. 현대에는 채색을 위주로 한 붓놀림이 호방한 화법을 ‘발채潑彩’라고 부른다.
· 백묘 白描 wad 기법
중국 회화의 기법. 고대의 ‘백화’에서 유래함. 묵선으로 대상을 묘사하면서 색채를 칠하지 않는 것을 백묘라 한다. 넓게는 색채를 칠하기 전의 밑그림, 본분, 소묘 등도 포함되지만 본격적인 백묘화는 선묘로서 완결시킨 작품을 가리킨다. 당대의 吳道子·북송의 李公麟·원대의 趙孟頫 등은 인물을 그리면서 화장을 없애고 옅고 가벼운 필치로 부드러우면서도 초연절속하게 그려내서 백묘의 고수로 추앙받았다. 또 옅은 먹을 약간 번지게하는 방법도 있다. 송·원 양대의 화가들은 모두 백묘 수법을 사용해서 화조화를 그렸다.
· 백화 帛畵 wad 회화
베絲織品 위에 그린 그림. 고대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중요한 서화용 재료. 오늘날 전하는 것 중에서 가장 시기가 빠른 것은 호남성 장사湖南省長沙에서 출토된 전국시대 초나라의 묘지에 있던 백화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에 계속 발굴된 서한의 백화로는 1972년 1월 호남성 장사의 마왕퇴 1호 한묘, 1973년 11월 같은 지역의 3호 한묘에 모두 내관을 덮은 채색백화 있었는데 T자형으로 ‘비의非衣’라 이름 붙였다. 화면은 기본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뉘어 천상·인간·지하의 각종 풍경을 그리고 있다. 1976년 5월 山東城 臨沂 金雀山 9호 한묘에서 출토된 장방형의 깃발은 내용은 위 두 그림과 같지만 ‘인간’을 표현하는데 비중이 더 커졌다. 후에 북위의 司馬金龍의 묘에서 나온 칠화漆畵와 顧愷之의 *여사잠도*두루마리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하겠다.
· 번마도 蕃馬圖 wad 화제
동양화의 화제. 기마민족 계통에 속하는 호족과 말을 한 화면에 전개시킨다. 번蕃은 미개한 번족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호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호족의 세력이 강성했던 당말에서 오대에 걸친 시대에 이 화제가 종종 다루어졌다. 이 화제로 특히 저명한 화가는 종종 다루어졌다. 이 화제로 특히 저명한 화가로는 당말 송초의 胡壞·高益이 꼽하고 원대의 趙孟頫의 작품도 알려져있다.
· 변각경 邊角景 wad 화풍
남송화원 특히 馬遠·夏珪파에 보이는 화면 형식과 화풍을 말한다. 이른바 잔산잉수를 화면의 아래 모틍이에 붙여서 그리고, 중앙이나 윗부분에 상당한 여백을 만들어, 시각적인 여운에 의해서 감상자에게 詩情을 유발시키려는 하는 것이다. ‘마일각馬一角’, ‘하일변 夏一邊’ 등으로 지칭되지만, 특히 馬遠 일파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북종산수화의 대관적인 구성에 비해서, 남송화원의 산수화가 자연의 한모퉁이 밖에 파악해내지 못했다고 하는 비판적인 뜻으로도 사용된다. 이 형식은 화조화에도 적용되었으며 후대의 절파의 산수화에 받아 들여져서 매너리즘의 요인이 되었다.
· 복생수경도 伏生授經圖 wad 화제
중국 秦의 박사였던 山東城 제남의 伏勝이 始皇帝의 焚書 때에 벽 속에 책과 문서를 감추어 보호한 후, 전한의 文帝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이미 90여세의 고령이 나아가지를 못하고 다만 조착鼂錯에게 *尙書* 29편을 물려주었다는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북종화 화파
중국 明代의 莫是龍과 董其昌이 지칭한 남종화와 대립하는 산수화 중심의 양식. 唐代의 李思訓을 시조로 삼는 유파의 화법을 지칭하지만 실은 문인 화가가 전문적인 직업 화가를 차별한 이른바 상남폄북 떄문에 생긴 양식어이다. 청조의 沈宗騫은 李思訓 이후의 북종화파로 郭熙, 李堂, 馬遠, 劉松年, 趙伯駒, 戴進, 周臣 등을 들고 있고 吳偉, 張路 등의 절파를 그 末流로 보았다. 그러나 명대의 남종화가들이 차별의식으로 배격한 것은 실은 절파의 화가들이었다. 남종화와 대비되는 북종화의 특색은 기교적이고 형사적인 화풍이며 형식상의 특징은 산수의 일각을 강조하는 변각경적邊角景的인 구도법과 부벽준같은 딱딱한 준법을 사용한 데 있다. 흔히 ‘북화’라고 부르는 것은 ‘남화’라는 말과 함께 근대 이후 일본인들이 붙인 약칭이다.
· 분본 粉本 wad 회화
중국 고대 회화에서 말하는 일종의 화고畵稿 또는 밑그림. 당대의 吳道子는 일찍이 大同殿에 嘉陵江 300여리의 산수를 하루 만에 그려 냈는데 玄宗이 그 형상들에 대해, “저는 분본이 없이 모두 마음 속에 새기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원대의 夏文彦은 *도회보감 圖繪寶鑒*에서, “옛사람들의 화고를 일컬어 분본이라 한다 “고 했는데 그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늘을 가지고 화고의 먹선을 따라 치밀하게 작은 구멍을 뚫고 粉을 종이·비단絹 또는 벽 위에 바른 후, 분점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두번째는 화고의 뒷면에 백악이나 토분 같은 것을 바른 후에 비녀로 정면의 먹선을 따라 그림으로써 밑에 받친 다른 종이·비단·벽 위에 선을 새기고, 그런 뒤에 그 분자국을 따라 그리는 것이다. 분본이라는 말은 원래 당대에 사용되었는데, 인물화에 한하지 않고 산수화, 화조화 등에도 응용되어 사용되었다.
· 비백 飛白 wad 서예
서체의 일종. 후한의 蔡邕이 百壁을 띠고 칠한 것을 보고 고안한 것이다. 서체의 필세가 유동적이고 흰 부분이 나타난다. 예서에서 변화해 온 것으로서 扁額 등의 큰 글자에 많이 쓰인다. 雜體書에는 飛白篆, 飛白草 등이 있다. 당 태종의 *진사명비액 晋祠銘碑額*이나 일본에서는 空海의 *진언칠조상찬 眞言七祖像贊* 등의 예가 있다.
· 사군자 wad 화제
화훼화의 화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고결한 군자에 비교해서 그린 그림. 화조화의 지류. 송·원의 몇몇 화가들은 대나무와 매화를 즐겨 그리면서 소나무를 첨가하여 ‘세한삼우’라 불렀다. 원대의 吳鎭은 ‘삼우’외에도 난초를 덧붙여 ‘사우도四友圖’라 이름 붙였다. 명의 신종 만력 년간1573-1619에 黃鳳池가 *梅竹蘭菊四譜*를 편집했고, 陳繼儒는 ‘사군’이라 불렀는데 후에 사군자가 되었다. 후인들은 소나무를 덧붙여 ‘五淸’ 혹은 ‘五友’라 불렀다. 청대의 王槪가 편집한 *개자원화전* 제3집은 바로 매화·난초·국화·대나무에 관한 사보四譜이다. 이러한 제재는 정직, 강건, 견인, 낙관적인 성격과 더불어 폭압에 굴복하지 않는 정신을 상징한다. 역대의 화가들이 끊임없이 그렸으며, 특히 양주팔괴가 선호해 많은 그림을 그렸다.
· 사녀도 仕女圖 wad 화제
인물화의 한 가지. 원래는 봉건사회의 상층 사대부와 부녀들의 생활을 제재로 한 중국화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후에는 인물화 가운데서도 상층 부녀 생활을 제재로 한 부분만을 가리키는 말로 되었다. 당대 주방의 *휘선사녀도 揮扇仕女圖* 두루마리와 張선의 *괵국부인유춘도 虢國夫人游春圖* 두루마리 등은 사녀화 양식의 전형이다. 뛰어난 화가들은 五代 周文矩의 *중병회기도 重屛會棋圖* 두루마리, 북송 王居正의 *방거도 紡車圖* 두루마리, 명대 仇英의 *열녀도 列女圖* 두루마리, 청대 비단욱의 *仕女冊* 등이 있다. 중국 민간 목판 年畵 가운데 있는 ‘미녀화’도 역시 ‘사녀화’라 부른다.
· 사신 四神 wad 화제
중국 고대의 사방신. 동의 靑龍蒼龍, 남의 朱雀鳳凰, 서의 白虎, 북의 玄武 등 사방을 상징하는 동물을 말한다. 원래 사방의 성좌를 동물에 대비시켜, 그것에 고대 중국의 물질론, 우주관인 오행의 색을 배치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관념이라 한다. 그 체제는 이미 전한시대의 후반에 완성되었고, 거울, 화상석, 벽돌, 와당, 묘지, 벽화고분 등의 모티브에 사용되었다. 특히 고구려 벽화 고분에 많이 그려졌는데, 통구에 사신총, 중화군 진파리 1호분 등의 후기 고분벽화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엿볼 수 있다.
· 사왕 四王 wad 청 / 화파
‘청초육대가’ 가운데 王時敏·王鑑·王翬·王原祁 등 네명. 이들 사이는 스승과 친구 혹은 친척의 관계이다. 이들의 그림이나 예술 사상은 원말 사대가를 모범으로 하는 남종화의 이념을 董其昌으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영향을 받았다. 기법이 비교적 숙련되고 화풍은 모고摹古를 숭상하여 정식화를 추구한 작품이 많다. 王翬, 王原祁 는 한때 궁정을 출입하여 전국에 이름을 날렸다. 王翬는 송원의 各家各派를 종합하여 체제가 완비된 하나의 화격을 만들었고 王原祁는 원대의 黃公望과 같은 계열로 실질을 융합하여 정신과 합치시킴으로써 또한 일가를 이루었다.
‘사왕’은 청대와 근대의 산수화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강희에서 건륭 년간에 이르기까지 王昱·王愫·王玖·王宸이 있었고, 그 뒤로 王三錫·王鼎元·王鳴韶가 있어 산수화에서 모두 사왕을 본받았다. 앞의 넷을 ‘전사왕’, 뒤의 넷을 ‘후사왕’이라 부른다.
· 사의 寫意 wad 화법
속칭 ‘조필粗筆’이라 하며 ‘공필’과 대비되는 동양 회화 기법. 간략하고 개괄적인 필체로 묘사 대상의 기운과 품격 등 정신서의 표현에 중점을 둔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남송의 梁楷·法常과 명대의 陳淳·徐渭, 청대의 주따朱? 등이 모두 이 기법에 뛰어났다. 송대의 韓拙은 “붓을 놀리는 데는 쉽고 간단하게 하면서도 뜻을 완전히 표출해내는 것이 있고 교묘하게 치밀하여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 있다”고 말했는데 전자가 바로 사의를 가리키는 것이다.
· 사자림도 獅子林圖 wad 화제
산수화의 화제. 사자림은 강소성 蘇州의 동북쪽에 현존하는 장원. 원대 지정 년간1341-67무렵, 승려 天如惟則이 朱德潤, 趙原, 倪瓚 등과 더불어 만든 것으로 倪瓚이 그 장관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하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 산수화 wad 회화
자연경관을 그리는 풍경화. 신선이나 靈獸가 살고 있는 곳으로서의 산수 표현은 진·한秦漢 때부터 이미 성행하였으나 자연 경관을 대상으로 하는 순수한 산수화는 육조에 이르러서야 독립된 주제로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북방적인 ‘산천’외에 남방적인 ‘산수’란 말이 흔히 통용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무나 언덕, 특히 공간 표현은 여전히 고졸한 형태였다가 당대의 李思訓, 李昭道 등에 의해 청록산수화로서의 초기 자연주의의 양식이 완성되었다. 때를 같이하여 성립된 수묵화 수법으로 吳道子가 보여준 이른바 ‘산수의 변화’를 통해 표현 방법이 한층 다양해졌다. 그후 오대의 荊浩, 李成 북송 초기의 范寬 등으로 대표되는 화북계 산수화와 董源, 巨然 등이 중심인 화남계 산수화가 형성된다. 그러다가 郭熙에 의해 종합되고 이론이 정립되었으며 삼원법이 시도되었다.
· 산해도 wad 화제
동양화에 있어서 龍魚畵의 화제. 상상의 동물로서 흔히 홍수를 일으키는 이무기나 숨을 내쉬면 신기루를 일으킨다고 하는 이무기 등이 물 위에 출몰하는 모습을 그린 것.
· 삼관도 三官圖 wad 화제
도석인물화의 화제. 삼관은 도교에 있어서 하늘·땅·물의 세 神으로 모두 사람의 선악을 판가름한다고 한다. 음력 정월 보름의 上元節은 天官이 하강하여 복을 주는 날, 7월 보름의 中元節은 地官이 하강하여 죄를 용서하는 날, 시월 보름의 下元節은 水官이 하강하여 재액을 제거하는 날이라 하여 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이 그림은 구름을 탄 삼관이 많은 권속이나 시종, 깃발 등에 둘러싸여 순행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송의 마린의 필체로 전해지는 *삼관출순도 三官出巡圖*, 청나라의 *대원사복도권 大元賜福圖卷天官*·中元普度圖卷地官·下元解厄圖卷水官 등이 있다.
· 삼병 三病 wad 기법
북송 때의 郭若虛의 *도화견문지*에 보이는 版·刻·結이라는 用筆에 있어서 조심해야 할 세 가지 결함을 말한다. 판이란 운필이 약하고 억양도 없어서 형상이 평판처럼 되버리는 것, 각이란 운필이 도중에 조화를 잃고 엉뚱한 과장을 하거나 딱딱해지는 것, 결이란 붓이 머뭇거리며 부드럽게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 삼원 三遠 wad 화법
산수화의 원근법 또는 구성원리. 북송의 郭熙가 *임천고치*에서 시점의 위치에 따른 구도 포착의 변화를 설파한 高遠·深遠·平遠을 말한다. 고원은 산 밑에서 산정을 쳐다본 것으로 ‘치솟는 산세’를, 심원은 자연을 멀리 바라보는 것으로 ‘중첩되는 산세’를, 그리고 평원은 가까운 높은 산에서 먼산을 바라 본 것으로 아득한 원망의 정취를 취하는 것. 郭熙는 산수화가 지방적 특색의 경관에만 치중되는데 반대했었고, 삼원법은 기존 산수화 양식을 총합한 자신의 입장을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중국의 일반적인 산수화는 한 화면에서 시점이 자유롭게 움직이기도 하고, 삼원법이 한 화면에 병존하는 일도 많다.
· 삼절 三絶 wad 용어
1. 시·서· 화의 세가지 모두에 매우 높은 경지를 이루었을 때 ‘삼절’이라 부른다. 당 현종 李隆基가 일찍이 정건의 산수에 題字를 쓰면서 ‘鄭虔은 삼절이다’고 했다 한다.
2. 회화사에서 볼 때 東晋의 顧愷之가 ‘삼절’로 불렸다. *진서*의 顧愷之 본전에는 그가 ‘才絶·畵絶·痴絶’의 세 가지를 구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명·청 간에는 또 ‘재절·화절·書絶’ 을 ‘삼절’이라 불렀었다.
· 삼청상 三淸像 wad
도교의 세 신인 玉淸元始天尊, 上淸靈寶道君, 太淸太上老君의 세 像을 칭함. 세 신은 각각 玉淸宮, 上淸宮, 太淸宮에 거주한다고 한다. 오대에 삼청을 주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원대의 영락궁 삼청전1325에서는 소조상으로 만들었다. 회화로서는 도교사원의 벽화에 그려진 경우가 많으며 掛幅으로 된 *삼청위기도 三淸圍碁圖* 등이 있다.
· 삼품 三品 wad 평론
중국에 있어서 서화의 평가 기준의 하나. 盛唐 시대의 서평가 張懷瓘이 *서단 書斷*에서 처음으로 神·妙·能의 삼품을 정했으며 당말의 화평가 朱景玄은 *당조명화록 唐朝名畵錄*에서 그 삼품을 답습하면서 그 위에 각 품을 상·중·하로 나누어 도합 9등급으로 하였다. 원나라 夏文彦의*도회보감 圖繪寶鑑*은 삼품에 관해 ‘신품은 히늘이 이루어 주는 것이며, 묘품은 의취가 넘쳐서 되는 것이며, 능품은 형사를 얻는 것’이라 하였다. 또 이 삼품 외의 평가 기준으로 일품이 있다.
· 상남폄북 尙南貶北 wad
남종을 숭상하고 북종을 멀리 한다는 의미. 兪劍華에 의하면 莫是龍·董其昌 등의 남북분종分宗은 단순히 기호에 의한 것으로 문인화가인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받들어 남종이라 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배척하면서 북종이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의 기호가 문인화가와 전문화가의 신분적 차별과 동시에 양자의 화풍이 상이한 점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 상주화 常州畵 wad 화제
강소성 무진현 상주 지방에 전해지던 草虫圖風과 그 작품. 당대에 시작된 초중도는 북송 때에 이 지방의 특수한 화풍으로 이어졌는데 居寧이 특히 유명하다. 한 화면에 각종 곤충과 화초를 그려넣을 때 몰골·구륵 수법을 혼용하고 풍부한 색채를 활용하였다.
· 서원아집 西園雅集 wad 화제
북송의 원우 원년1086경 변경에 있는 왕선의 저택 서편 정원에서 蘇軾·李公麟·李之儀·黃庭堅 등 16인의 묵인·묵객이 文雅의 모임을 가졌다는 고사에서 비롯한 화제. 李公麟이 그 정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미후가 贊을 썼지만 그림은 전하지 않고 미후가 쓴 찬만 법첩으로서 전한다. 그러나 그 후 역사상의 유명한 문사들을 숭상하는 화제로써 많은 회화작품이 그려졌다. 馬遠이 그린 것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유품이다.
· 서체 書體 wad 서화
한자에는 형·음·뜻의 세가지 요소가 있는데 여기서 형은 글자의 자형을 말한다. 자형은 고대로부터 체제상의 변천이 있었으며 새에 따라 문자의 체제도 점차로 변화했다. 금문도 거의 마찬가지로 일정한 서체는 인정하기 어렵다. 다만 주대의 대전이라든가 고문으로 불리는 문자는 이미 서체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서 한대의 자전에도 나타내고 있다. 서체가 주목되는 것은 후한대의 허신의 *설해문자*의 서문에 나오는 秦八體, 新六書에서 비롯된다. 서체에는 그 시대에 통용되는 정체와 특수한 사물에 대해 쓰여지는 응용체가 있다. 진나라의 전서·한나라의 예서·육조 이후의 정서인 해서는 각각의 시대에 통용된 정체의 글씨이며 刻符, 蟲書·摹印·殳書·署書라고 하는 것은 응용체의 글씨이다. 후대가 되면 응용체의 글씨는 점차 쇠미해지고 주로 정체가 사용하게 된다. 당대에는 역대의 서체를 정리하여 고문·대전大篆·주문籒文·소전小篆·팔분·예서·장초·행서·비백·초서의 10가지로 나누었다. 이 중에 소전과 팔분은 석비에 사용되는 경우가 있으며 일반의 전적典籍·표진表秦·공사문소公私文疏 등에는 모두 예서가 쓰여지고 기록이나 서간에는 行草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글씨의 발흥과 더불어 행서의 비문이나 초서의 전적 등도 나타나고 서체는 점차 예술품으로서의 세련도를 더해갔다. 송대 이후 글씨를 예술 작품으로 제작하는 경향이 강해짐과 동시에 서체를 취급하는 방법도 실용적인 면만이 아니라 조형미술로서의 작품 속에 넣게 되었다. 현재 중국에서는 簡體를 시행하고 그 중에 장초나 草體를 운용함으로써 구체제 서체의 제한이 지켜지지 않는 새로운 정체의 글씨가 나오고 있다.
· 서화 박사 wad 서화-북송
唐代에 국자감 소속. 전문학교로서 서학이 설립되어 교수로서 박사를 둔 적이 있었고 북송 말기 휘종1104때에는 서학과 함께 畵學이 개설되어 역시 박사가 교수직을 맡았다. 그후 1110년에는 화학을 翰林圖畵局에, 서학은 翰林書藝局에 소속시켰다. 그때의 저명한 서화 박사가 미후米芾·宋子房 등이다.
· 서화일치론 wad 화론
그림과 글씨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하는 주장. 盛唐期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회화예술이 육조 이래 이미 예술적 가치를 확립한 글씨에 필적하려고 하는 사상에 입각하고 있다. 당나라 張彦遠의 *역대명화기*에는 문자와 그림이 그 원초가 동일하다는 설과 내면표출을 가능하게 하는 용필법이 공통된다는 설 등이 기술되어 있다.
· 선염 渲染 wad 화법
동양회화의 기법. 1. 먼저 물을 칠하고 마르기 전에 수묵이나 채색을 구사함으로써 표현효과를 높이는 기법. 산수 운연雲煙의 흐릿한 정경이나 우중의 정취 또는 으스름 달밤의 풍경을 표현하는데 활용된다. 2. ‘색의 배치’로 해석할 수도 있다. 청대의 휘윈 서우핑惲壽平은, “속된 사람들은 그림을 논하면서도 모두 색의 배치設色가 쉽다고 여기나 어찌 선염의 어려움을 알랴? 그림에 착색을 하는 것은 마치 용광로에 집어넣는 것처럼 여러번 단련하는 것이니 불기가 조금이라도 차이가 생기면 앞서 했던 노력이 모두 수포가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 선월풍나한 禪月風羅漢 wad 화제
당말·오대의 詩畵僧이었던 선월대사 가 창시한 나한의 양식. 선월대사가 꿈에서 감득했다고 하는 應夢羅漢의 도상은 *익주명화록*에 ‘기다란 눈썹과 큰 눈, 튀어나온 턱과 우뚝한 코. 북방 이민족이나 인도의 얼굴 모습’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선종화 禪宗畵 wad 화파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의 이념이나 그와 관계되는 소재를 택한 그림을 말하며 종교화로서보다 감상화로서의 의의가 더 크다. 전통적인 불교회화와는 달리 수묵을 사용하여 簡逸한 화풍을 이루는게 상례이다.
· 선화화보 宣和畵譜 wad 화보
중국회화의 著錄. 편자의 성명은 남아있지 않고 모두 20권이다. 권수에는 송 휘종, 선화 2년1120에 씌어진 *어제서 御制書*가 있다. 그러나 序에서 ‘지금의 天子’를 운운하는 것이 마치 臣屬들의 찬송 같아서 표제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송 휘종의 궁정에 소장된 역대 화가 231명의 작품 총 6396점을 기록하고 있다. *필진筆塵*에서는, “화보는 여러 사람들의 기록을 뽑아 썼는데 아마도 신하가 찬술한 듯하다. 한 사람이 써 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모순에 빠진 부분도 있다.”고 기록했다.
· 세화 歲畵 wad 회화
중국에서 정월에 민가의 문·실내에 장식하기 위하여 신춘을 축하하기에 적합한 군상이나 정경 등을 다색으로 인쇄한 판화. 목판인쇄에 다시 채색을 하거나 금박을 입힌다. 원색의 강렬한 대조에 의한 단순하고 명쾌한 효과가 있다. 명·청대 이후 민중적인 것으로 발전해 왔으며 민구시대 魯迅이 민중예술운동의 일환으로 부흥시켰고 현대 중국에서는 농촌에까지 보급되어 지방색이 풍부한 내용과 소박한 양식으로 널리 애호되고 있다.
· 소경화 小景畵 wad 회화
산수화 주제의 한 형식. 산수 경관을 크게 잡아 그린 산수화에 비해서 안개가 피어 오르는 등이나 물가의 비교적 협사한 경관으로 국한시킨 그림. 흔히 물가에 오리나 기러기가 등장하여 화조화와도 관계가 깊다. 이 형식은 당대에 시작되지만 ‘惠崇小景’이라 불리는 송 초의 후에이 츠옹에 의해 양식화가 이루어졌다. 그후 남송 초기의 조령양에 의해 한층 발전하여 남송 원체산수화풍의 성립에도 영향을 미쳤다.
· 소무목양 蘇武牧羊 wad 화제
고사인물화의 한 화제. 소무는 한대의 인물로 武帝가 그를 흉노에게 보냈던 바, 체포되어 곤욕을 치르게 되었으나 글하지 않았다. 이후 북해에서 양을 치면서 1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다가 昭帝 때에 생환하여 관내후란 벼슬을 한 고사가 이 화제의 배경이다. 흉노에게 같이 붙잡혔다가 항복해 버린 무장과 유배지에서 만나 다시 헤어지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장면을 그린 송대의 진거중의*소이별의도 蘇李別意圖* 등이 있다.
· 소상도 瀟湘圖 wad 화제
중국 호남성·洞庭湖의 남쪽, 瀟水와 湘水가 합류하는 주변을 소상이라 하여 옛부터 뛰어난 경치로 인해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끊임없이 찾아들었다. 이 주변의 절승한 자연을 주제로 그림이 많이 그려지게 되었는데 곧 소상도라고 한다. 안개의 어슴프레한 빛 아래에 전개되는 소상의 자연을 여덟개의 주제로 나누어 그린 것을 특히 소상팔경도라고 한다. 李成파의 문인화가 宋迪이 북송 때 이곳을 방문하여 그린 이후 11세기말에서 12세기 초에 나타난 화제였다고 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 소송파 蘇松派 wad 화파
명대 후기에 華亭상해시 송정에 출현했던 한 화파. 조좌를 시조로 하여 먹을 아끼고 화면 구상에 신중을 기하는 필치가 특징이다. 만력년간1573-1619에 오파화가를 많이 배출한 화정지방에서 董其昌 등의 송강파, 顧正誼 등의 화정파, 沈士充 등의 운간파와 비견되는 오파의 한 지류이다.
· 소혼점 小混點 wad 기법
붓끝으로 찍는 타원형의 작은 점으로 흐리고 진한 것을 뒤섞어 혼란하게 그린다. 산이나 나뭇잎 등의 묘사에 폭넓게 사용된다.
· 수묵화 wad 회화
채색을 하지 않고 먹물로만 그리는 동양회화 고유의 양식. 백묘화를 토대로 발전한 수법. ‘수묵’이라는 말은 유상8세기 후반의 시에서 보이고, 荊浩의 *필법기*에 나타나는 수운묵장의 약칭이라고도 한다. 백화가 선 위주인데 반하여 묵화는 면 위주이고 먹의 번짐으로 농담명암을 나타낸다. 수묵화는 盛唐 무렵 산수화가 자연주의적 경향으로 변화하던 시기에 성립하였고 특히 산수와 수석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했다.
· 수운묵장 水暈墨章 wad 회화
당말 오대의 荊浩의 *필법기*에 나오는 말로 수묵화란 용어가 거기서 비롯됐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농담 변환의 먹의 무리暈와 깊은 표현성章을 뜻하며 파묵·발묵은 그 용필법이다.
· 수지법 樹枝法 wad 기법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줄기, 가지, 잎 등의 표현 기법과 포치 방법을 말하며 시대와 화파에 따라 특징을 달리하기 때문에 작품의 연대와 양식의 변천을 판별하는 데 좋은 기준이 된다.
· 수직준 垂直皴 wad 준법
조선 후기에 활약한 겸재 정선1676-1759이 사용한 수직선적 필법. 준법은 중국 화보에서 발전되어 왔으나 수직준은 진경산수를 대성시킨 정선의 독특한 준법을 말하기 위하여 근래에 만들어낸 용어. 수직준법은 그후 김홍도 등에 이어졌다.
· 수하인물도 wad 화제
나무 아래 남녀의 인물을 그려 넣는 동양 회화의 화제. 그 모티브는 일본 정창원의 *鳥毛立女圖*에서 볼 수 있으며 중국에서는 서기 700년 전후의 산서성 태원 금승촌 4,5,6호 묘, 745년의 소사욱의 무덤에 있는 벽화에서 나타난다. 최근에 아스타나 38호 묘에 여섯개의 목판으로 된 수하인물도 벽화가 발견되었는데 위치도 같고 盛唐期의 묘장에서는 수하인물도가 관상 배후에 그려지는 주제였다고 추정된다. 무덤 벽화의 작은 아스타나에서는 칸막이 식의 종이 그림으로 대용되었는데 오오타니 탐험대가 가져온 *수하인물도*, *수하미인도*는 그 좋은 예이다. 두 가지 모두, 속에 붙어있는 호적부개원 4년, 716의 연기로 보아 8세기 전반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 습필 濕筆 wad 기법
갈필에 대비되는 동양회화의 기법으로, 붓에 물기가 많이 밴 것을 가리킴. 당의 張操가 창안하였다고 전함. 오대의 荊浩는 스스로 “붓 끝은 겨울나무처럼 가늘고, 먹은 엷기가 들판의 구름처럼 가볍다.”고 했는데 여기서 ‘가볍다’는 것은 바로 물기가 가득한 습필을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송의 郭熙는 “먹의 색깔이 축축하게 윤기나지 않은 것을 일컬어 말랐다고 하며, 말라있으면 생기가 없게 보인다.”고 하면서 그림 속에 반드시 습필이 있어야 함을 주장했다. 청대의 장강은 만년에야 비로소 그 뜻을 깨닫고 “습필은 어렵지만 건필은 쉽다.”고 말했다. 청말의 진조영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 가장 피해야 할 것이 습필인데, 붓을 놀리면서 먹의 화려하고 깨끗함만 추구한다면 힘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습필법을 버리고 건필을 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黃賓虹은, “건필이 있어야 습필도 있고, 습필이 있어야 건필도 있게 된다”
· 승왕각도 勝王閣圖 wad 화제
누각 산수화의 한 화제. 승왕각은 당태종의 아우인 勝王 李元嬰이 洪州 都督에 임명되었을 때, 가까운 江西성 新建에다가 양자강을 굽어보기 위하여 높이 세웠던 누각이다.
· 시의도 詩意圖 wad 화제
동양화의 한 화제로 시의 뜻을 주제로 한 그림. 명대 이후 당·송의 시, 특히 당의 시인 李白·杜甫나 북송의 蘇軾의 시를 그린 그림으로 그린 것이 많다.
· 신농도 神農圖 wad 신화
동양화에서 인물화의 한 화제. 신농은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의 하나로 농사짓는 법 과 제약법을 백성들에게 처음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대체로 그가 풀옷을 입고 풀을 맛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삼재도회 三才圖繪*의 삽화나 *성군현신 상화책 聖君賢臣像畵冊* 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 신사 神似 wad 회화
형사와 대비되는 동양회화의 용어. 직역하면 ‘정신의 닮음’이다. 주·객관의 통일은 사물의 표상을 통해 의상의 심화에 이르는 것이라는 점을 가리킨다. 문인화의 이론이 정착되면서 회화비평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북송의 蘇軾은 “형사로써 그림을 논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견해와 같다”고 말했다. 위앤 원? 文은 “그림을 그릴 때 형의 묘사는 쉽지만 신의 묘사는 어렵다. 형이란 그 형체요, 신이란 그 神彩이다. 무릇 사람의 형체란 그림을 배우는 사람이면 모두 그려낼 수 있지만, 신채에 이르면 스스로 남을 앞지르지 못하면 표현해낼 수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 북송의 黃休復는 육법을 논하면서, “오직 형사와 기운이 두 가지를 먼저 내세워야 한다. 기운은 있는데 형사가 없으면 바탕質이 무늬文를 앞서게 되고, 형사는 있는데 기운이 없으면 화려하지만 내용은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여기서 ‘기운’이 곧 ‘선사’이다. 晁以道, 楊愼, 李贄 등도 모두 “그림이란 그저 형상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形神을 함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形神兼備’는 회화 예술의 定論이라 할 수 있다.
· 신선산수 wad 화제
중국 고대의 신선 사상에 기초하여 신선의 세계를 산수화로 그린 것. *영주신선도 瀛州神仙圖* *봉래산도 蓬萊山圖* 등이 예로부터 그려졌다. 초현실적인 느낌과 꿈 같은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기괴하고 가파른 산봉우리를 잇달아 그린 것이 많고 화려한 누각을 배치하며 학이나 거북 등 상서로운 동물을 종종 그려넣는다. 송대 이후로는 전통적인 방식인 청록산수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 신안화파 新安畵派 wad 화파
명말 청초의 漸江곧 弘仁을 선구로, 査士標·孫逸·汪之瑞 등을 일컬어 신안파 사대가라 부른다. 점강은 흡현 출신이고 나머지 세 사람은 모두 휴녕 출신인데 두 현은 모두 휘주부에 속하고 晋·唐代에는 신안군에 속했으므로 그렇게 명칭이 붙었다. 또한 ‘해양사가海陽四家’라고도 불렀다. 이들 사대가는 倪瓚·黃公望을 본받아서 黃山의 雲海松石 같은 경치를 많이 그리면서 먹을 많이 쓰지 않고 붓놀림이 간결하다.
· 실경산수 wad 화법
실재하는 산수를 표현한 그림. 조선시대에는 진경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그에따라 ‘진경산수화’라 부르기도 한다. 동양화가 사의적인 동양사사의 관념적 측면이 강조된 반면에 실경산수는 실경을 대상으로 하며 보다 사생적이다. 실경을 그린 예는 고려시대에 李寧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금강산도*를 비롯한 명소·실경도의 제작, 선비들의 기행 시문과 사경 등으로 실경산수화의 유형과 寫景 등으로 실경산수화의 유형과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의 鄭敾은 힌국 실경 표현의 정형을 이루었다. 이러한 18세기-19세기 전반의 실경산수화는 당시 한국적인 화풍으로 부상했던 풍속화와 함께 조선 말기에 들어서면서 쇠잔하고 만다.
· 심원 深遠 wad 화법
삼원 중에 하나로서 앞에 있는 산이나 봉우리로부터 뒤에 있는 산들을 들여다볼 때의 모습이며, 산의 깊이를 강조할 때 취하는 기법.
· 십장생도 wad 화제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길상도, 십장생이란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해·달·산·물·돌·소나무·불로초·거북·사슴·학 등이다. 십장생의 개념은 중국의 도교와 관계있는 고구려 벽화에 그 선례가 보이지만 고려 말경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의 동경 등에 나타나고 중기 이후에는 공중의 벽화·병풍에서부터 민간의 민화·자수·도자기·목공예품 등에 넓게 분포되어 나타났다. 그림은 정형화된 형식과 도식화된 형태에 따라 제작되었는데 짙고 화려한 색감에 장식성이 강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 십팔학사도 十八學士圖 wad 화제
중국의 고사인물화의 화제. 세상의 현자를 존중하는 뜻을 나타나기 위해서 당의 진왕의 홍문관학사가 된 杜如晦, 房玄齡, 于志寧, 薛收 등 18명의 문학사를 태종의 명에 의해 閻立本이 그리고, 褚亮이 찬을 쓴 것이 유래이다. 당 현종이 집현전에 모은 開元의 18학사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정원에서 많은 시동을 거느리고 거문고, 바둑, 글씨, 그림이나 술, 음식을 즐기는 장면을 그린다.
· 쌍송도 雙松圖 wad 화제
수석화의 일종. 두 그루의 소나무가 붙어 서 있는 풍경이 그려진다. ?다아대에서 비롯되며, 杜甫는 韋偃의 쌍송도를 시로 읊고 있다. 쌍송은 독립된 화제로 그려졌을 뿐 아니라 이곽파의 산수화에서는 전경의 소재로 취급되는 일도 있다.
· 안견파 wad 화파
조선조 세종 때에 활동했던 화원인 安堅의 화풍을 따랐던 유명무명의 화가들을 일괄하여 일컫는다. 중국의 이곽파 또는 郭熙派의 화풍을 토대로 한국적인 양식을 형성하였던 이 화파의 화풍은 조선 초기는 물론 중기 까지도 그 영향을 끼쳤다.
동양그림의 언어 II로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