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이 딜레마는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보는 일반인의 도덕적 심리가 어떠한가를 묻는 설문으로, 사례1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89% 였으나 사례 2에 찬성하는 사람은 1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소수를 희생시키고 다수를 구하더라도 그 방법에 있어서 잔인성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함축한 것이다. 선로를 변경하는 문제는 단순히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의 문제에 가깝지만, 사람을 밀친다는 것은 고의적 살인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사고실험과 비슷한 일이 실제로 영국에서 일어났다. https://youtu.be/iWIY-iEWaEw 내용: 영국선 미뇨네트호가 희망봉 앞바다에서 난파하여, 표류 18일 만에 음식이 떨어져 선원 4명이 모두 굶어죽을 상황이 되자, 소년선원을 죽여 그 고기를 먹고 살아 남아 표류 24일 만에 독일 선박에 의해 구조되었다. 도덕적 의문도 품을 수 없었던 긴급하고 처참했던 상황... 그렇다면 이것은 정의일까? 처음에 선원들은 제비뽑기를 해서 죽을 사람을 정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자 고아출신인 리챠드 파커가 갈증을 견디지 못하고 바닷물을 마셨다. 이렇게 되었을 때 선장은 사죄의 기도를 드리고 리챠드 파커를 살해한 후 식인하였다. 4일 후 그들은 지나가던 배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리고 재판이 열렸다. 만일 이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이어서 당신이 배심원이라면 어떤 평결을 내리겠는가? 당시의 재판은 6개월 실형이 선고되었으나, 국민 여론을 참작하여 사면이 되었다.
비슷한 경우가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요한 11:50) 이 말은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 것이다. 가야바는 왜 이 말을 했을까? 그는 예수가 계속해서 백성을 선동하고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한다면, 로마의 탄압이 이스라엘 전체 백성에게 더 심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공리주의적 입장이다. 이러한 많은 문제들은 사람마다 다른 결론에 이른다. 다수의 행복에는 소수의 희생이 따른다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아마 그런 관점에서 고대의 인신공양이 정당화 되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