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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4일 광덕산 백운산 (모데미풀 히어리)
사니조은 님 고인돌 님 일초 님
산행코스 : 광덕 계곡 – 광덕 고개 휴게소 – 백운산 - 흑룡사
산행거리 : 약 16 km
산행시간 : 약 8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996008
거리 16.1 km
소요 시간 8h 47m 42s
이동 시간 6h 42m 17s
휴식 시간 2h 5m 25s
평균 속도 2.4 km/h
최고점 907 m
총 획득고도 391 m
난이도 보통
들 꽃
양산박
누가 사랑해 달라 했나요?
그저 때가 되어 피어나는 꽃
아직도 안피었다고 투정하나요?
햇볕 나면 어련히 피어날 것을
계곡 물소리 바람소리 가득
그리고 멀리 별들이 떨어지는 소리
그저 한 번 피었다 지는 꽃인걸
예쁘다고 성화요 밉다고 투정일세
모데미풀
모데미풀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고유종이며 주로 높은 산 중에서도 습기가 있고 여름에 바람이 잘 통하는 기름진 토양에서 자란다. 작년에 청태산 휴양림 기슭 얼음 위에 핀 모데미풀을 처음 보았고 지난주에는 소백산에 있는 자생지를 둘러보고 왔다. 그리고 오늘 그 세 곳 중 하나인 광덕산 모데미풀을 만나러 떠난다.
이름도 참 독특하다. 무엇보다도 꽃이 아니라 풀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1923년 일본인 식물학자인 오이 지사부로가 지리산 근처 운봉면에 있는 ‘모데미’라는 마을에서 처음으로 이 꽃을 보고 세계 식물학계에 이름을 올렸다. 학명은 Megaleranthis Saniculifolia Ohwi 로서 크다는 뜻의 Megal 과 너도바람꽃의 학명인 Eranthis 의 합성어로 너도바람꽃처럼 생겼는데 꽃이 크다는 의미를 갖는다. 미나리아재비과의 다년생 풀로서 ‘아쉬움’ ‘슬픈 추억’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모데미풀 - 습한 계곡의 물가에서 자란다.
아직 바람꽃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작년 봄에 이 꽃을 처음 만났다. 얼음 위에 피어난 꽃은 매우 신선하고 청초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직 다른 풀들은 언 땅 속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을 시기에 하얀 꽃잎과 노란 꽃 술을 완벽하게 갖추고 피어난 모습은 충격이었다. 광덕산 계곡에 모데미풀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작년에 보았던 청초한 모습을 떠 올리며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 앞 도로에는 작년에 비해 일 주일쯤 일찍 벚꽃이 활짝 피었다. 남쪽부터 피기 시작한 벚꽃은 분명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감동을 심어줄 터이지만 올 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사정이 달라졌다. 진해에서부터 화려한 벚꽃 축제를 준비했을 터인데 바이러스의 확산을 염려하는 지자체나 중앙정부에서는 축제를 취소하고 그래도 찾아오는 사람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트를 설치하여 출입을 통제한다. 그래도 이렇게 마을에 핀 벚꽃이라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벚꽃은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마침내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이했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징표다.
집 앞 도로에도 봄이 찾아왔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사창리로 7시 31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원래 4월 6일에 각 학교의 개학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아직은 사태의 엄중함을 감안하여 2주간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이어가기로 정했다. 그래서인지 버스는 한산하고 승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동서울을 출발한 지 한 시간 삼십 분 걸려서 광덕고개에 도착했다. 이 곳에 여러 번 탐방한 경험이 있는 고인돌 형님을 따라 조경철 천문대로 가는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그 동안 공기가 말은 날이 지속되었는데 근래 들어 다시 미세먼지가 꽤 짙게 깔린다. 중국에서 코로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어 공장들이 조업을 재개한 모양이다. 멀게만 느껴지는 중국이 이런 면에서 보면 아주 가까운 이웃이다.
광덕계곡 입구에 있는 노점상 - 산나물, 버섯, 더덕 등 온갖 임산물을 팔고 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꽃들이 시들하다. 나도양지꽃이 제일 먼저 반긴다. 그냥 양지꽃이랑 뱀딸기꽃만 구분해도 좋으련만 양지꽃도 왜 그리 종류가 많은지 모르겠다. 세잎양지, 나도양지, 은양지, 물양지, 돌양지, 솜양지 등 약 20여종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간절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 날 갑자기 꽃이 피는 것이 봄꽃이다. 나도양지꽃이 등성듬성 피어 있는데 잎은 아직 오무려진 상태다.
나도 양지꽃이라예 ~~ 꽃이름은 띄어쓰기 하면 안된다. 나도양지꽃
계곡에는 금괭이눈이 피어 있다. 아마 지난주까지만 해도 눈에 띄지 않았을 터이다. 꽃의 수정을 도와줄 곤충의 눈에 잘 띄도록 꽃 주변의 잎까지 노란 금색으로 치장을 했다. 자연의 신비로움은 그 끝을 모르겠다.
금괭이눈 - 꽃 주변의 잎들도 꽃 색으로 치장하고 들러리를 서고 있다. 수정이 끝나면 잎은 녹색으로 변한다.
지금 피어나는 꽃들은 다른 꽃들이 피기 전에 할 일을 다 마치고 일찌감치 열매를 맺을 것이다. 왜 그리 서둘러야 하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 꽃들의 조상님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몸소 익히고 그 노하우를 씨앗에 새겨 놓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꿩의바람꽃
소담스러운 박새 잎이 부쩍 자랐다. 넓은 잎이 명이나물이라 부르는 산마늘과 비슷하여 나물꾼들이 잘못 먹는 바람에 사고가 난다는 풀이다. 여름날 꽃이 귀할 때 푸른색 또는 짙은 갈색으로 산길을 멋지게 장식해주는 꽃이다.
박새
이 광덕계곡은 야생화의 보고다. 물론 이 계곡뿐만이 아니라 높은 산 계곡의 양지바른 땅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어나지만 여기는 도로에서 멀지 않으니 접근하기가 쉬워서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님보러 오듯 자주 들르는 곳이다. 이미 너도바람꽃과 복수초를 찾아 왔던 사람들의 발자취가 여기저기 많이 남아있다. 그들도 나름대로 꽃을 밟지 않고 피해서 다닌다고 조심했겠지만 그들의 발 아래, 아니 지금 내 발 아래 또 다른 야생화의 새싹이 짓이겨지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보고 감탄했을 복수초는 이미 져버리고 파란 씨앗이 달려있다. 꽃은 지고 나면 그뿐 더 이상 꽃쟁이들의 눈길을 받지 못한다.
복수초 - 한 때 좋은 모델이라며 각광을 받았을 터인데 꽃이 져가는 지금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다.
복수초 열매
꿩의바람꽃과 얼레지는 햇볕이 없으니 잔뜩 움추리고 앉아있다. 햇볕이 나면 꽃잎이 펼쳐지고 그늘지면 다시 오무라드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이 꽃 자체가 탄소동화작용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벌 나비가 활동하지 못하는 흐리거나 비오는 날에는 꽃잎을 꼭 닫고 있다가 햇볕이 들면 활짝 피는 것도 다 잘 먹고 살아서 자자손손 후손을 보기 위해 취득한 오랜 노하우일 터이다.
얼레지와 꿩의바람꽃이 동거한다.
홀아비바람꽃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한다. 여기저기 옹기종기 홀아비들이 앉아 마지막 화려한 잔치를 준비중이다. 앞으로 열흘이란다. 열흘만 지나면 꽃대를 높이 올리고 접시돌리기 하는 광대들처럼 각자 하얀 꽃을 피워댈 것이다.
홀아비바람꽃
동의나물도 잎을 무성하게 피우고 꽃대를 올릴 준비를 완료했다. 이제 필요한 건 봄볕과 시간이다. 온 세상이 죽은 듯이 푸른 빛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던 겨울날에 이들은 얼어붙은 땅 속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동의나물
그리고 마침내 모데미풀을 만났다. 개울가 돌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소녀처럼 눈가에 졸음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내가 너무 일찍 일어났나? 한 숨 더 잘까? 하고 고민하는 듯하지만 그 부지런한 꽃들이 부푼 가슴을 앉고 찾아온 꽃쟁이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모를 것이다. 난 모데미풀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풀들이 모여서 피어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줄 알았다. 꽃이 핀 것은 두 무데기 뿐이다. 다른 아이들은 아직 잎만 나 있고 꽃이 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모데미풀
꽃을 보며 노는 것은 신선놀음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벌써 12시가 지났다. 길 가 식당의 야외 탁자에 앉아 각자 준비한 점심을 잔치를 벌였다. 빵과 과일, 떡과 술 그리고 커피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광덕고개 고갯마루
강원도 화천과 경기도 포천의 경계를 이룬다.
오늘 꽃산행의 목적이 또 하나 있다. 히어리꽃이다. 이름도 생소하고 이제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꽃인데 그 히어리 꽃이 백운산 자락에 핀다는 것이다. 백운산은 광덕산과 함께 한북정맥 산줄기를 잇는 산이다. 북한땅에 속하는 백두대간 강원도 추가령(楸哥嶺)에서 갈라져 남한지역으로는 대성산에 이어지고 그 산줄기는 수피령, 복주산을 거쳐 이 광덕산 백운산으로 연결된다. 한북정맥은 동쪽으로 북한강과 서쪽으로 임진강을 가르는 분수령을 이룬다.
한북정맥은 한강과 임진강을 가른다.
조경철 천문대가 있는 광덕산 그리고 능선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길
광덕고개에는 평소 많은 산남산녀들이 찾아들어 마치 전통시장처럼 산나물과 버섯 등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경기도 포천군과 강원도 화천군을 가르는 광덕고개에서 백운산 방향으로 한북정맥 줄기를 탄다.
히어리
광덕고개에서 백운산쪽으로 얼마 가지 않아 고인돌 형님이 오른쪽 능선으로 내려선다. 옳거니. 바로 이 곳이 히어리 자생지역인 모양이다. 꽃이 활짝 피면 물박달나무 꽃처럼 길게 늘어진다는데 아직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피며 따라내려간다.
아직은 때가 이르다. 연노랑빛 꽃봉오리가 잔뜩 달려있는 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아마도 뿌리로 번식하는 것인지 가느다란 나무들이 무데기로 모여서 자랐다. 그리고 그 아래 산비탈에도 히어리꽃 나무가 상당히 많다. 수피는 함박꽃나무처럼 회색빛이고 매끄럽지 않고 조금 거칠다. 작은 꽃 봉오리 안에 여러 송이가 가득 담겨 있다. 마치 마술쇼를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달린 꽃봉오리를 사진에 담는 것은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그리고 끝내 만족스런 사진은 찍지 못하고 다음에 꽃이 피면 다시 찾아 와야겠다고 자신과 타협한다.
히어리 꽃봉오리
꼭 외국말 같은 히어리는 순수 우리말이라고 한다. 1924년 일본 식물학자 우에끼 호메끼 박사가 전라도 조계산 송광사 부근에서 처음 이 꽃을 발견하고 송광납판화(松廣蠟瓣花)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꽃잎 모양이 마치 밀랍을 바른 종이로 만든 꽃처럼 생겼다는 느낌을 반영한 것이다.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에는 히어리 자생지가 없다는데 이 백운산에 히어리 군락지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모른다.
1960년대 초 서울대학교 이 창복 교수는 전라남도 식물학자들과 함께 탐방을 갔을 때 마을 사람들이 흥얼거리는 노래 가사에 주목했다. ‘뒷동산 히어리에 단풍들면 우리네 한 해 농사도 끝이 난다네’라는 가사인데 그들이 가리킨 산 허리를 보니 송광납판화 군락에 단풍이 아름답게 들어 있었다. 일본 학자가 지은 송광납판화라는 이름이 너무 딱딱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라 그는 동네사람들이 부르는 대로 히어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외국어 같은 이 히어리라는 이름은 그러니까 전라도 주민들이 부르는 순수 우리나라 말인 것이다. 히어리는 전라도 지리산과 백운산 등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우리 고유종이라 한다.
만개한 히어리꽃 - 인터넷에서 펌
이제 비록 꽃은 활짝 피지 않았지만 히어리꽃을 보았으니 오늘 산행의 주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백운산 정상을 밟고 흑룡사로 내려가기로 했다. 백운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이미 두 번 걸었던 길이라서 눈에 익었다. 간간이 나무 사이로 조망이 터지고 주변의 높은 산들이 눈에 비친다. 오전에는 미세먼지가 상당히 두텁게 끼었으나 오후에는 맑게 개어 화악산과 명지산도 가깝게 보인다.
백운산에 오르는 길
멀리 화악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산이 높아서 언제나 하얀 구름을 두르고 있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백운산(白雲山 903.1)이다. 도교 사상에 심취했던 우리 조상들은 매우 낭만적이었다. 구름 위에 올라가 신선처럼 떠다니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산 이름을 백운산이라 했을까. 전국적으로 백운산이라 부르는 산이 상당히 많다. 일전에 다녀온 강원도 평창의 동강(東江) 위에 있던 산도 백운산이었다. 정상석 뒷면에는 증금옹(贈琴翁 – 고문고 타는 노인에게 바침)이라는 봉래 양사언(15717~1584) 선생이 쓴 시 한 수가 새겨져 있다. 봉래 양사언 선생은 이 곳 포천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작년 여름에 이어 세 번째 찾아왔다.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증금옹(贈琴翁)
록기금백아심(綠綺琴伯牙心) 거문고를 타는 백아의 마음은
종자시지음(鍾子始知音) 종자기만 알아 듣는다오
일고부일음(一鼓復一吟) 한 번 타매 또 한 번 읊조리니
냉냉허뢰기요잠(冷冷虛籟起遙岑) 맑고 맑은 바람소리 먼 봉우리에 일고
강월연연강수심(江月娟娟江水深) 강과 달은 아름답고 강물은 깊어라
백운산 정상석 뒷면에 봉래 양사언 선생의 시가 새겨져 있다.
백운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직진하면 삼각봉 도마치봉을 지나 국망봉 견치봉 강씨봉 등을 지나는 한북정맥 길이다. 몇 년 전 한겨울에 친구들과 이 길을 걸어 국망봉 바로 전 신로령까지 내려갔던 기억이 새롭다. 시간도 넉넉치 않고 이번 산행의 목적인 모데미풀과 히어리꽃을 보는 것이었으니 우리는 흑룡사로 하산하기로 하고 오른쪽 길을 택했다.
우리는 1코스로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니 길이 또 갈라진다. 왼쪽길은 봉래 양사언 선생이 수련하였다는 봉래굴이 있는 급경사길이다. 지난 여름 이 길을 걸어 계곡으로 내려간 적이 있다. 우리는 직진하여 흑룡사로 향한다.
길 가에 노랑제비꽃이 하나씩 둘씩 피어 있다. 정말 봄이 부쩍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계절인데 봄을 맞는 느낌은 매번 달라진다. 조급함인가? 집에서 쉬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든 부단히 찾아 다니고 무엇이든 쉬지 않고 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낀다. 올 해 피는 저 제비꽃은 작년에 피었던 그 꽃이 아니고 지금 피는 것은 지고 나면 그 뿐이고 내년에는 또 다른 꽃이 피어난다. 한 번 내 곁을 스쳐간 시간은 다시 올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가버린다.
노랑제비꽃
차 시간에 맞추기 빠듯하다며 앞서 뛰어내려간 고인돌 형님을 따라잡으려 늘어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상당히 급한 내리막 길에 작은 모래 알갱이가 미끄럽다. 바윗길에는 안전로프도 매어져 있고 발디딤쇠도 설치해 놓았다.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걸으면 제법 운치도 있어 보이는 길이다.
소나무가 멋지게 서 있는 작은 안부에서 쉬고 있는 고인돌 형님을 따라잡았다. 배낭에 남은 과일을 꺼내 마시면서 일초님이 옛날 얘기를 꺼내는데 시골 출신인 나에게도 생소한 얘기다. 경북 울진이 고향인 일초님은 어렸을 때 집에서 소와 염소를 길렀다. 이른 봄이면 새끼를 낳는데 아직 여물을 먹기에 힘들어 하는 어린 송아지에게 마른 아카시아 꽃을 먹였다 한다. 내가 직접 아카시아 꽃을 따서 먹었던 기억은 있지만 가축에게 먹였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루를 들고 야산에 올라가 아카시아꽃 따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다. 그 꽃을 햇볕에 말려서 서늘한 곳에 보관했다가 이듬해 낳은 송아지에게 먹였다고 한다.
T.S. Elliot 이 쓴 황무지라는 시에서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던 4월은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행복한 달이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비로소 진달래가 보이더니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을 보면 서러워지는걸까? 저리도 예쁜 꽃이 어쩌다 울다 지친 소쩍새의 피가 묻은 꽃이 되었으며, 헤어진 님이 사뿐히 즈려 밟고 떠나야 하는 이별의 꽃이 되었을까. 진달래 꽃 한 송이 입에 따다 물어본다. 향긋한 즙이 입 안 가득 솟아난다. 어릴 적 추억이 가슴 가득 아련하게 젖어온다. 어릴 적 고생을 하지 않고 자란 때문인지 나에게 진달래는 귀촉도(歸蜀道)도 아니고 슬픔 젖은 이별의 꽃도 아니다. 나에게는 저녁 햇살에 물든 선홍빛 아름다운 추억이다.
5시 40분 마침내 산길을 벗어나 계곡길에 내려섰다. 그리고 흑룡사 앞 길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친다. 작년 여름에는 휴가철이러서 그랬던 건지 주차장이 가득 찼었는데 지금은 두 세 대 정도 주차되어 있을 뿐 넓은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하산 완료
텅 빈 주차장
산수유 꽃도 이제 지고 있다.
계곡물에 손을 씻고 버스정류장으로 올라가 조금 기다리니 사창리에서 6시에 출발한 버스가 도착한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우리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려는 것을 큰 소리로 불러 세웠다. 하마터면 아까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할 뻔했다. 긴 하루 꽃과 함께 보낸 봄날이 저물어간다. 7시 30분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다.
보름을 사흘 앞둔 낮달이 하늘 한 가운데 떠 있다.
한 때 물 좋기로 소문났던 백운계곡에 흑룡사가 들어서고 덩달아 식당들이 문을 열면서 이름이 무색해졌다.
에필로그
포스트 코로나
2019년 말에 시작하여 1,2월에 중국 전역을 꽁꽁 얼어붙게 했던 코로나 사태가 우리나라에는 2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감염자 수가 급격히 늘었다가 약 한 달간 지속되던 오름세가 꺽이고 3월 중순부터 하루 감염자 수가 100 여명 아래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등 해외에서 귀국하는 유학생 및 교회와 양로원 등 집단 시설을 통해 감염자가 나오지만 대체적으로 관리가 가능한 상태가 된 것 같다.
이와 반면 유럽과 미국의 사태가 심각하다. 이태리 북부에서 시작된 감염사태가 스페인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전반에 불길처럼 번지더니 급기야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국민 이동금지 조치가 취해졌다. 아직 그 추이를 알 수 없겠지만 유럽인들의 생활방식 즉 개방적이고 포옹과 볼 인사 등 접촉이 일상화되어 있는 습관과 마스크 착용 등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추진된다면 올 여름이 오기 전에 한 풀 꺽일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완전히 정복되기까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가의 말을 밀어 미국에서 약 240,000 명이 죽을 수도 있는데 100,000 명 선에서 막을 수 있다면 대단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수 없이 많은 전염병이 발생했고 인류는 그 전염병을 이겨냈다. 1798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발명한 이후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극복하였으나 그에 따라 또 스스로 변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끝없이 이어져왔다. 이번에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도 결국 인체에 자연적인 항체(백신)가 생성되던가 아니면 인위적으로 항체를 개발하여 대량 접종을 실시해야만 완전히 극복되었다고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서서히 포스트 코로나 현상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세계적인 무역이나 교류 망이 유지되고 있으나 많은 나라에서 공산품의 생산 및 유통이 중단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광이나 숙박 등 여행업계가 도산하고 장례와 결혼 문화의 변화 추이에 따라 장례식장과 예식장도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그에 따라 일부 품목을 제외한 생산업도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공장 일꾼들을 줄임으로써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이는 자칫 세계공황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세계적으로 코로나 감염증 사태가 얼마나 빨리 진정되느냐에 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 산업국가들은 기존에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일단 빠른 진단과 치료를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빈약한 경제력을 갖고 있으면서 인구가 많은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및 아프리카 국가들은 코로나에 대한 인식도 저조한데다 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나 치료를 위한 의료시설 그리고 감염을 막기 위한 위생이 빈약하여 마치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태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독일이다. 독일은 3월 중순까지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다가 이태리에서 대량감염과 사망사태가 급격히 진전되자 총리가 직접 나서 1,560 억 유로의 추경 예산을 긴급히 편성하고 코로나 사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게는 간단한 서류 검토를 거쳐 기업당 5,000 유로의 특별재난 지원금을 지불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지원금이다. 또 규모가 큰 기업에게는 그 회사를 담보로 800,000 유로까지 무이자 대출을 제공한다. 이런 정부 방침에 이어 각 중소 정당과 지방정부에서도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긴급 명령으로 이동금지 조치를 내렸다. 4월 19일까지 불필요한 이동을 자제하라는 명령이다. 그러면서 하루에 10,000 건 이상 감염 검사를 실시하며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여 병상을 마련하고 평소 박람회장으로 사용되는 시설에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경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감염자 수가 7만 7천명을 넘겼고 사망자도 1,000 명에 육박했다.
올해 6~7월이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이상 지속된다면 경제부국에서도 더 이상 이동제한이나 조업중단 또는 재택근무 등 비상사태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그런 상태까지 발생한다면 결국 지금 스웨덴이 실시하려는 것처럼 자율적인 통제 속에 자연적인 면역체계 형성을 통해 엄청난 희생을 치룬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새로운 문명을 재건해야 할 것이다.
과연 이번 코로나
사태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첫댓글 증금옹이라는 시를 보니 어느 시대의 인간상이 가장 인간적일까?궁금증이 드는걸 왜 일까요.잘보고 갑니다.
나는 양사언 선생이 어째서 한글로 쓴 시를 한 수도 남기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ㅎ 그 시대에는 한글이 천대받았으니 한자로 써야 멋있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