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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게 주시는 성부의 선물에 대해 성부께 감사 드린다.
1.
우리 오늘 감사하자.
우리는 보다 부드러운 경로와, 보다 순조로운 길에 도달하였다.
돌아간다는 생각도, 진리에 대한 완강한 저항도 없다.
약간의 멈칫거림, 사소한 반대, 작은 저항 등은 남아있지만 우리가 얻은 것에 당연히 감사할 수 있다.
우리가 얻은 것은 우리가 깨닫는 것보다 훨씬 크다.
이제 감사에 봉헌된 하루는 그대가 얻어낸 모든 소득, 그대가 받은 선물에 두루두루 통찰력의 혜택을 더할 것이다.
2.
성부께서 그대를 그대 자신에게 버려두지 않으셨으며, 그대가 홀로 어둠 속을 방황하도록 하시지 않았음을 사랑으로 감사드리면서 오늘 기뻐하라.
성부께서 그대가 성부와 성부의 창조를 대체하려고 만들었다고 생각한 자아로부터, 그대를 구원하신 것에 감사 드려라.
오늘 성부께 감사 드려라.
성부께서 그대를 버리지 않으셨으며, 성부의 참사랑이 영원히 변함없이 그대 위를 비출 것임을 감사 드려라.
3.
그대 또한 변함없음에 감사드릴지니, 성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은 성부처럼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구원되었음을 감사하라.
구원 안에서 그대가 이행할 기능이 있음을 기뻐하라.
그대의 가치는, 신께서 당신의 아들로 확립하신 사람에게 그대가 주는 하찮은 선물과 인색한 판단을 훨씬 초월함을 감사하라.
4.
오늘 우리는 감사 안에서 우리의 가슴을 절망 위로 들어올리고 감사의 눈으로 위를 보며, 더 이상 먼지를 향해 아래를 보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신께서 당신 안에서 우리의 참된 정체가 되도록 뜻하신 참나에게 영광을 돌리면서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오늘 우리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하러 가면서 가벼운 발걸음을 걷는다.
5.
우리는 홀로 가지 않는다.
우리는 참친구가 홀로 있는 우리에게, 신의 구원의 말씀을 들려주려고 왔음을 감사한다.
그리고 성령에게 경청하는 그대에게 감사한다.
성령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 말은 소리가 없다.
성령에게 감사할 때 그 감사는 동시에 그대의 것이다.
그러나 그 참음성이 아무리 막강하고 그 메시지가 아무리 사랑으로 가득하더라도, 들리지 않는 메시지는 세상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6.
그것을 들은 그대에게 감사한다.
왜냐하면 그대는 성령이 참음성을 가져와 세상 곳곳에 울려 퍼지도록 하는 메신저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신께 감사드리면서, 신의 감사를 받아라.
성부께서는 그대가 드리는 감사를 그대에게 주시며, 사랑의 감사 안에서 그대의 선물을 받으시고 그대가 드린 선물을 천 배, 그리고 십만 배 불려서 돌려주시기 때문이다.
성부께서는 그대의 선물을 그대와 나누심으로써 그 선물을 축복하시며, 따라서 그 선물은 권능과 힘이 자라나 마침내 기쁨과 감사로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다.
7.
오늘 15분씩 두 차례, 성부의 감사를 받고 성부께 감사드려라.
그러면 누구에게 감사를 드리는지, 그리고 성부께 감사드릴 때 성부께서 누구에게 감사하시는지 깨달을 것이다.
성부께 드리는 이 30분은 초당 수년의 비율로 돌아올 것이며, 성부께 드리는 그대의 감사 때문에 세상 구원을 수억 겁이나 빨리 앞당길 것이다.
8.
성부의 감사를 받아라.
그러면 성부께서 참마음 안에서 얼마나 그대를 사랑하시는지, 그대에 대한 성부의 배려가 얼마나 깊고 무한한지, 그대에 대한 성부의 감사가 얼마나 완전한지 이해할 것이다.
잊지 말고 매시간 성부를 생각하고, 성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것에 대해 성부께 감사 드려라.
그럼으로써, 신의 아들이 성부와 참나를 기억하면서 세상 위로 떠오를 것이다.
...
[예수의 추가 설명]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온갖 것이 가득한 세상에서 끊임없이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그대 사회의 큰 병이다.
큰집에 좋은 가구를 잔뜩 들여놓고, 온갖 최신 전자 제품을 소유하고 있으며, 차고 안에 비싼 차를 두 대씩 갖고 있고, 옷장 안에는 거의 입지도 않은 고급 옷이 가득한 자들이 있다.
그대들은 여기저기 투자도 하고 은행 잔고도 꽤 높지만, 여전히 다른 무언가를 찾고 있다.
모두들 멈춰라!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나는 이미 무엇을 가지고 있나?”
그대에게 있는 것은 우리가 여기서 설명한 소유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대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찾고 있으며, 이는 서구인들 마음에 있는 심각한 감염병이다.
선물을 사기 위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기도 한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다.
하지만, 그대는 신으로부터 아주 놀라운 선물을 받았다.
상상력, 연결하고 사랑하고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 등이야말로 정말로 감사해야 할 놀라운 것 아닌가!
그대는 아이디어가 있고, 영감도 있고, 열정도 있다.
이에 대해 감사하라.
물질적인 필요로부터 그대를 해방시켜 줄 참으로 영양분이 많은 것들이다.
그대 사회는 끊임없이 몸, 더 큰집, 더 좋은 차, 새로 나온 핸드폰 등에 집중하도록 그대 마음을 훈련시킨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대의 창조성, 소통하는 능력, 사랑하는 능력, 영감을 받는 능력, 좋은 것에 목적을 두고 삶을 이끄는 것 등, 진정으로 만족을 주는 비물질적인 것에 초점을 두지 못하게 한다.
물질적인 것에 그렇게 초점을 두지 않게 된다면, 그대는 몇 달 동안 구매 다이어트를 실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엄밀히 말해서,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볼 때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없다!
3개월 동안 아무것도 사지 말자.
지금 가진 것을 감사하면서 사용하자!” 다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돈을 저축할 수 있는지 놀랄 것이다.
또한 얼마나 더 좋은 느낌이 드는지 놀랄 것이다.
잠시 동안 조금 더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밖에서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내면으로 깊이 들어갈 것이고, 신이 주신 선물들을 발굴하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지성, 배려, 사랑, 관심, 호기심, 창조성, 삶에 대한 열정, 이 모든 것이 신의 선물이다.
마음의 풍요로움은 감사에 초점을 두는 만큼 늘어나고, 물질에 대한 초점을 두는 만큼 줄어들 것이다.
...
[알렌의 설명]
오늘의 레슨은 저로 하여금 아버지가 제게 주신 선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오늘의 레슨은 우리에게 “받은 축복을 헤아리며 하루를 보내기”를 기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한 제 개인적인 경험을 써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각자 그런 작업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삶의 대부분, 아니 거의 전부의 시간 동안 영적인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제가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 이미 나의 길은 정해졌다는 영감을 받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유모를 위해 쓴 시 한 편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 태양과 들판에 대해 당신께 감사 드려요.
저 수풀과 나무에 대해 당신께 감사 드려요.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당신께 감사 드려요.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제가 열 살이던 어느 월요일 방과 후에 저는 친구 세 명을 모아 놓고, 바로 전날 교회 일요학교에서 들은 “너의 빵을 물 위에 던져라.
왜냐하면 며칠 후에 그것이 너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전도서 11:1)라는 구절이 얼마나 감명 깊었는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 구절의 바탕이 되는 원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는 것이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우리의 부는 우리가 무엇을 얻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많이 주는지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저는 나중에 기적수업에서 이 메시지를 매우 분명하게 다시 들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내내 영적인 허기와 신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비록 때로 다른 방향에서 헤매기도 하고, 젊은 치기의 장난으로 방학 때 아르바이트 자리를 주겠다던 가게에서 물건을 슬쩍 하다가 경찰서 신세를 지는 부끄러운 일도 있었지만...
그 시절에 기적수업이 거룩한 순간이라 부를 만한 경험, 신과의 친밀함을 경험했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16살 때 저는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22년 동안 근본주의 기독교인으로 살았지만, 한 번도 특정 교파를 확고히 지지해 본 적은 없습니다.
제 안의 어떤 것이, 끊임없이 사람들이 저를 끼워 넣으려고 하는 틀을 부수게 했습니다.
저는 신비가들에 대해 읽었습니다.
저는 성경뿐만이 아니라 “이단자”들의 글도 읽었습니다.
저는 다른 누군가가 저를 위해 새 예루살렘(천국)으로 가는 지도를 그려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 그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저는 예수가 기적수업에서 말하듯, “죄와 싸우며” 전형적인 서양 종교의 패턴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수가 이 문장에서 말하듯이, 그 길은 속죄에 도달하기가 극단적으로 어렵습니다!
그 22 년 동안 저는 계속 신을 갈구했습니다.
그 22년 동안 대부분 저는 비참했으며, 저 자신에게 역겨움을 느꼈습니다.
그 22년 동안 저는 과연 제가 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했습니다.
마침내 저는 포기했습니다.
한쪽으로 치워 놓은 성경 위로 먼지가 쌓였습니다.
저는 기독교가 제 막다른 골목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저는 과연 “요단강을 건널” 수나 있는지, “약속된 땅에 들어 갈”수나 있는지에 대해 절망했습니다.
저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삶을 통해 배우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약 6년이 흘러갔습니다.
저는 여전히 뭔가를 추구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영적인 추구는 아니었습니다.
또는 저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와 신과의 관계는 유보된 상태였고, 우리는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심리학에 대해 읽었습니다.
저는 EST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참선에 관한 책들을 읽었고, 약간의 명상을 시도했습니다.
저는 마음의 과학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또한 멋진 섹스를 하고, 제 삶의 어느 때 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등 세상을 완전히 즐겼습니다.
그것들은 전에는 절대로 저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던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제가 공부하던 심리학, 세속적인 철학들, 동양의 종교들에서 말하던 것들이 정확히 기독교가 제게 말하던 것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올더스 헉슬리가 말하듯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진리, 사람들의 종교적인 배경과 관계없이도 그것을 성취한 사람들이라면 동의하는 영속적인 철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것에 대해 점점 더 분명히 알게 될수록, 저는 그것이 제가 어떻게든 늘 알고 있었던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너의 빵을 물 위에 던져라.
왜냐하면, 너는 며칠 후에 그것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처럼…
그리고 1985년 1월에 저는 기적수업을 발견했습니다.
그 때 이후로 저는 기적수업을 읽고, 공부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기적수업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 삶을 바라보면, 어느 지점에서 중요한 전환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절대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에서, 그것을 이미 찾았다는 견고한 확신으로 옮겨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의 레슨을 읽을 때, 깊은 감사의 느낌에 휩싸입니다.
첫 문단을 읽으면 그 내용이 제게 너무나 잘 적용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돌아간다는 생각이나 진리에 대한 완강한 저항은 없다.
약간의 멈칫거림, 사소한 반대, 작은 망설임 등은 남아있지만, 우리가 얻은 것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다.
그것들은 우리가 깨닫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
며칠 전(1995년) 우리들의 친구인 Allan Greene이 51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COA의 스터디 그룹과 지원 그룹에서 역할을 맡기 위해 1년 전에 세도나로 이사 온 사지마비 환자였습니다.
그는 거의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지원 그룹은 그의 집에서 모임을 했습니다.
그는 간신히 머리와 어깨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 전의 2년 동안, 그는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그는 한 조각, 한 조각씩 자신의 몸과의 동일시를 포기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Allan은 기적수업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으로서,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몇 안 되는 기적 수업의 필사자인 헬렌 슈크만을 실제로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기적수업에 대해 반박했으나, 결국에는 기적수업의 가르침 모두를 제대로 배우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역경 아래서도 Allan은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라운 유머를 잃지 않았고,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겠다는 기쁜 결심을 유지했습니다.
그의 주변에서는 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기적을 수업의 일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난 달 담낭 제거 수술을 받을 때, 그는 마취제를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그는 몸에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간호사는 그가 자신의 몸이 절단되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차단막을 쳤습니다.
수술 기간 내내 Allan은 간호사와 기적수업에 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지난 밤(1995년 5월 2일), 우리는 Allan을 추모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지난 1년 동안 Allan을 돌봐온 직업적인 간병인 6명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Allan이 어떻게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말했습니다.
Allan의 삶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줬음에 틀림없습니다.
오늘의 레슨이 말하듯이, 저는 그가 얻은 것은 그 자신이 깨달은 것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물론 Allan이 자신이 특별히 앞섰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압니다.
그는 말년에 자신이 얼마나 느리게 배우는 학생인지에 대해 한탄했습니다.
그는 종종 자신의 간병인들과 언쟁을 해서 그 중 한 두 명이 화가 나서 그만 뒀습니다.
그는 자기 회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밤 모임에서 그가 사랑하던 사람들과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보면,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앞선 학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저에게도 해당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해 왔던 모든 것들, 미소, 작은 친절, 또는 정말 필요한 순간에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어루만져준 것과 같은 작은 것들, 그리고 아마도 알란의 경우처럼 단지 웃음, 혹은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든 것의 긍정적인 영향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Allan이 병원에 있을 때, 우리는 기적수업 공부 중에 잠시 멈춰 Allan을 위한 고요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가 죽기 전 날, 학생 중의 한 명이 병원에 있는 Allan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Allan을 위해 몇 분간 고요한 시간을 가졌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Allan은 “여러분이 몇 분 동안 농담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로 하여금, 신이 제게 주신 모든 선물들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하소서.
저는 기적수업을 주신 것에 대해 신께 감사드립니다.
기적수업은 집으로 가는 저의 확실한 길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랜 기간의 절망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신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방황할 때, 신이 저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제 안에 있는 그 분의 영, 나의 안내자이자 교사에 대해, 그리고 그 분께서 제 길로 만들어 주신 여정 중의 모든 사랑스러운 친구들과 동료들에 대해 (특히 오늘 밤 Allan에 대해) 감사를 느낍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나누도록, 그리고 여러분 모두로부터 받도록 신이 제게 주신 기회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제가 저의 참나를 기억하기 시작한 것에 대해 그 분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집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것이라고 점점 더 확신하게 된 것에 대해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내게 주신 선물들에 대해 내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