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는 / 송덕희
6월 어느 날, 5학년 선생님이 교장실로 왔다. 파리한 낯빛으로 상담을 요청했다. 한 학생의 말과 행동에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떨렸다. 과학 시간에 다툼이 있어서 지도했지만, 화를 참지 못하고 “내가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나지.” 소리치며 창가로 달려간 아이. 듣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서고 소름이 돋았다. 내가 흥분하면 안 되겠기에 감정을 내비치지 않고 다음 말에 귀 기울였다. 그래서 학생들과 함께 옷자락을 잡아 끌어당겼다. 진정시키고, 서로 사과하게 하고, 상담하느라 힘들었다. 다행히 잘못을 인정하며 아무렇지 않게 기분 풀고 집으로 가기는 했다.
담임으로서 처음 겪은 일이라 충격이 컸다. 다툼이 이어질 일도 아니었는데, 고통, 죽음이라는 단어를 쓰고 극단적인 행동을 한 것에 놀랐다. 잦은 말썽을 일으켜 지도에 애쓰고 있지만, 이제 더 이상 방법을 못 찾겠다고 하소연한다. 교사로서 좌절감이 들고, 한계에 맞닥뜨렸다며 한숨짓는다. 수업은 제대로 할 수 없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선생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그간 아이, 부모님과 상담한 내용을 꼼꼼하게 적은 걸 보여준다. 3월부터 이해하기 힘든 행동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다. 친구를 이유도 없이 때리거나 건든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싫어하는 걸 계속하면 괴롭지 않겠냐고 되물으면 그건 몰랐다고 메마르고 짧게 말한다. 자신의 잣대로 상대방을 휘어잡으려는 모습이 보이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독 자기보다 약한 이를 골라 치근거리며 화를 돋운다. 무시한다. “걔는 때려도 괜찮을 줄 알았다.”라고 고개를 들고 대꾸한다.
더 큰 문제는 집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학교에서 푼다. 소리치고, 버럭 화를 내서 이유를 물으면 엄마와 다툰 일을 들먹인다. “내가 숙제를 안 해서 휴대전화기를 압수당했다.”라며 씩씩거린다. 그때 자기 신경에 거슬리는 대상이 보이면 곧바로 화풀이한다. 부모 탓을 하거나 매를 맞았던 어릴 적 기억을 끄집어낸다.
유치원 다니면서부터 이미 약을 먹었고 지금도 복용 중이다. 상담 센터와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말과 행동이 더 거칠어진다.
담임선생님은 학부모와 수시로 소통하면서 지도하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 같은 일이 언제 또 일어날지 가늠이 안 되니, 불안하다. 물론 듣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다. 위기관리위원회를 열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전에 부모님을 불러 면담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양육 태도를 알고 싶었다. 가정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깨닫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빠는 바빠서 같이 있는 시간이 부족하고, 엄마는 약을 먹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 겉으로 보면 친·외가 어른들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한 외동이다. 하지만 얘한테 화를 잘 냈고, 부부싸움도 자주 했다. “자녀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이 사회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한다. 어떤 직업을 말하는 거냐고 하니까, 의사가 되길 바랐다. 어려서부터 공부하라는 압박감을 주었노라고 고백한다.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어해서 반은 포기 상태다. 가정에서 정리 정돈을 못 하고 문제집 푸는 걸 미루어서 자꾸 실랑이가 벌어져 큰 소란이 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원인은 짚어낼 수 있었다. 지금 손을 놓게 되면 커 갈수록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려면 부모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스트레스 없는 건강한 하루를 살게 마음을 보살피는 거다. 응어리져 있는 불만을 풀어주는 일부터 하자. 매일 진심을 담아 사랑한다고 말하며 안아 주면 좋겠다. 늦기 전에 아이가 갈망하는 사랑의 물을 뿌려주고 가정과 학교가 손 맞잡고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나아졌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10월 초에 또 위기관리위원회를 열었다. 집에서 장식장의 유리를 깨고 등교했다며 사진을 보냈다. 면담한 담임 선생님과 상담 교사가 들은 이유가 다르다. 이제 어른들까지 헷갈리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리한 쪽으로 말하면서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우리가 할 일은 하되, 지자체가 운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상담과 치료를 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을 일부라도 지원하고, 더 나은 기관을 찾아 연결한다. 또 모든 교직원으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는 믿음이 들도록 보살핀다. 잘못만 지적하고 엄하게 대하면 마음 둘 곳이 없어 더 힘들 테니까. 선생님은 난감하다며 고개를 흔든다. 지금껏 노력해 왔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표정으로 묻는다.
당장 손에 잡히는 해결책은 없다. 부모가 같이 변해야 실마리가 풀릴 텐데, 학교에서 어른까지 가르칠 수 없으니 더 어렵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긍정적으로 달라지길 기대하면서. 학생 개개인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 교육인데, 요즘 학교는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돌보고 상담하는 일이 많아져 선생님들은 지친다. 학생, 교사, 학부모가 행복한 공동체를 꿈꾸는 교육자로서 고민이 많다.
첫댓글 정말 고민이 많으시겠네요. 갈수록 그런 아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작게나마 아이들 교육에 몸을 담고 있는데,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정의 여러 결핍으로 나타나는 문제라 참 어렵습니다. 안타깝지만 최선을 다해야겠다 생각합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1학기 내내 학교를 힘들게 했던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꿀꺽 참습니다.
위기관리위원회 우리 학교도 여러 번 열었습니다.
내부와 외부 상담 진행했고요.
교육하기 참 힘든 시절입니다.
토탁토닥.
저도 쓰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합니다. 더 좋은 방향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문제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토닥토닥. 공감과 위로의 말씀이 힘이 됩니다.
선생님의 애로가 그대로 전해옵니다. 잠깐씩 마음 다독이시며 ' 잘하고 있다'를 스스로 되뇌이며 이겨내 보시게요. 날마다 교실에서 해당 학생과 부대끼는 담임 선생님 안아주시고요. 경험으로는 혼자서는 학생 감당이 안되므로 여러 체널을 이용하는 것이 나았습니다.
내일 해가 뜨면 그 아이는 조금 더 웃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자, 아자!
위로해 주시니 힘이 납니다. 다들 크고 작은 일을 겪고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 커가겠지요. 아이도 어느 순간에 변화될 거라고 기대하며 기다려야겠습니다.
담임들의 고통을 함께 감내하시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든든한 교장선생님이 계셔서 선생님들께 위안이 될 것 같습니다.
요즘 학교는 너나 없이 힘들어 하는데, 그럼에도 함께 지원하면서 보듬어 가며 살아가야겠더군요.
박선생님도 힘드실 텐데,
제게 힘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 말미에 이제 좋아졌다는 내용일 줄 알았어요. 아이는 내 아이, 남의 아이 다 키우기 힘든 거 같아요. 힘내세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교육을 하는데, 참 지칠 때가 있지요. 미옥선생님이 응원해 주시니 힘이 납니다.
에고.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네요.
고맙습니다.
하하. 선영선생님의 위로가 맘에 드네요. 저도 고맙습니다.